이름 | 칼에리크 팔메르 (Karl-Erik Palmér) |
생년월일 | 1929년 4월 17일 |
사망년월일 | 2015년 2월 2일 (향년 85세) |
국적 | 스웨덴 |
출신지 | 말뫼 |
포지션 | 인사이드 라이트 포워드 |
신체조건 | 168cm | 65kg |
소속팀 | 말뫼 FF (1948-1951) AC 레냐노 (1951-1958) 유벤투스 FC (1958-1959) 말뫼 FF (1959-1960) |
국가대표 | 14경기 10골 (1949-1950) |
[clearfix]
1. 개요
스웨덴의 전 축구 선수.2. 생애[1]
2.1. 선수 생활
2.1.1. 클럽
팔메르는 1948년, 고향팀 말뫼 FF에서 데뷔했고 팀의 주축 선수로 말뫼의 알스벤스칸 3연속 우승의 주역으로 활약했다. 그는 리그에서의 활약에 1950년 월드컵에서의 모습을 더해 이탈리아에 진출했다.팔메르의 새 팀은 AC 레냐노였고 그는 레냐노에서 7년을 뛰었다. 하지만 팔메르의 활약에도 불구하고 팀은 세리에 B를 맴돌다 세리에 C로 강등당했다. 세리에 C에서 한 시즌을 끝으로 팔메르는 유벤투스 FC로 이적해 한 시즌을 더 보냈고 코파 이탈리아 우승을 차지하고 말뫼로 돌아왔다.
팔메르는 말뫼에서 1960 시즌을 끝으로 은퇴했다.
2.1.2. 국가대표
팔메르는 스웨덴 대표팀의 1950년 월드컵에서 뛰어난 활약을 보였다.1949년 11월 13일, 달리마운트 파크에서 열린 월드컵 지역 예선전에서 팔메르는 아일랜드를 상대로 해트 트릭을 기록했다. 이로써 스웨덴은 브라질 본선행을 확정지었다. 팔메르는 스웨덴의 주전 인사이드 라이트 포워드로 본선에서도 맹활약을 보였다. 그는 스웨덴의 본선 5경기에 전부 출전했고 3골을 넣어 스웨덴의 3위에 공헌했다.
그러나 팔메르는 월드컵을 끝으로 이탈리아로 이적했고 스웨덴 축구 협회의 자국 리그의 아마추어 선수 선발 원칙으로 인해 더 이상 대표팀 경기를 뛸 수 없었다.
2.2. 이후
팔메르는 저널리스트로 일했다.3. 플레이 스타일 & 평가
팔메르는 매우 재능 있는 선수였으며 신체적으로는 다소 약하고 작지만 기술과 속도가 매우 뛰어났다. 스웨덴에서 팔메르는 더욱 공격적인 플레이를 펼치며 득점 능력을 보여줬고, 이탈리아에서는 플레이메이킹을 전담했다.4. 사생활
팔메르는 1952년에 5살 연하의 실비아와 결혼했다. 그리고 그는 1988년 올림픽에 스웨덴 대표팀으로 참가했고 아버지의 뒤를 이어 말뫼 FF에서 뛰었던 안데르스 팔메르의 아버지이다.5. 수상
5.1. 클럽
- 알스벤스칸 우승 3회: 1948-49, 1949-50, 1950-51(말뫼 FF)
- 스벤스카 쿠펜 우승 1회: 1950-51(말뫼 FF)
- 코파 이탈리아 우승 1회: 1958-59(유벤투스 FC)
5.2. 국가대표
[1] 출처: 위키피디아, 11v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