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08-25 18:56:37

칼튼 풋볼 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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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31a29><colcolor=#ffffff> 칼튼 풋볼 클럽
Carlton Football Club
창단 1864년([age(1864-07-01)]주년)
정식 명칭 Carlton Football Club Limited
별칭 블루스 (Blues)
블루 배거스 (Blue Baggers)
모토 Mens sana in corpore sano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마음)
연고지 빅토리아 주 멜버른 칼튼
홈 구장 도클랜즈 스타디움(Docklands Stadium) / MCG
연습 구장 프린세스 파크(Princes Park)[1]
라이벌 콜링우드 풋볼 클럽
에센던 풋볼 클럽
경영진
감독 마이클 보스(Michael Voss)
주장 패트릭 크립스(Patrick Cripps) / 샘 도커티(Sam Docherty)
파일:1200px-Carlton_FC_Logo_2020.svg.png |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 |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우승 기록
VFL/AFL 우승
(16회)
1906, 1907, 1908, 1914, 1915, 1938, 1945, 1947, 1968, 1970, 1972, 1979, 1981, 1982, 1987, 1995
정규 시즌 우승
(17회)
1906, 1907, 1908, 1910, 1914, 1916, 1921, 1932, 1938, 1941, 1947, 1972, 1976, 1979, 1981, 1987, 1995
클럽 기록
최다 출전 크레이그 브래들리(Craig Bradley) - 375 경기
최다 득점 스티븐 커내핸(Stephen Kernahan) - 738 골
브라운로 메달(시즌 최우수)
(회)
놈 스미스 메달
(그랜드 파이널 최우수)
(회)
콜먼 메달(득점왕)
(회)
팀 컬러 / 유니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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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컬러
네이비 블루 흰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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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럽 테마송. [2]
We are the Navy Blues,
We are the old dark Navy Blues,
We’re the team that never lets you down,
We’re the only team old Carlton knows,
With all the champions they like to send us,
We’ll keep our end up.
And they will know that they’ve been playing
Against the famous old dark Blues.

1. 개요2. 역사
2.1. 19세기2.2. 20세기
2.2.1. 첫 전성기2.2.2. 바라시 아래 최전성기2.2.3. 계속 이어가는 전성기 2.2.4. 파킨의 재선임, 16번째 우승 달성2.2.5. 21세기 - 암흑기의 도래2.2.6. 잠시 보였었던 빛줄기2.2.7. 밑바닥 아래 더 한 바닥
3. 유니폼4. 유명 선수
4.1. 실바니가 - 클럽의 명예스러운 가문4.2. 존 니콜스 - 빅 닉4.3. 알렉스 제살린코 - 알렉산더 대왕4.4. 스티븐 커내핸 - 거다란 주장
5. 라이벌6. 유명 팬

1. 개요

오스트레일리안 풋볼AFL 팀. 멜버른 시 중북부근교 칼튼에 위치한 클럽. 공통 최다기록인 16번의 우승을 한 클럽이다. 라이벌 콜링우드, 리치몬드와 에센던과 함께 불리는 빅4 클럽이다. 여러가지 이유로 인하여 옛날의 영광에 멀어졌지만, 다시 재기를 노리는 호주 내 손꼽히는 스포츠 명문 구단이자 인기 구단이다.

팀 유니폼은 1871년에 처음으로 사용했고, 유니폼에 새겨진 상징적인 CFC 모노그램1909년부터 사용하고 있다. 팀 컬러이자 별명 블루즈(Blues)라는 이름은 군청색 유니폼으로 부터 유래혔다.

2. 역사


구단의 역사를 소개하는 다큐멘터리

2.1. 19세기

2.2. 20세기

2.2.1. 첫 전성기

칼튼이 잘 알려진 명가로 도약하게 된 동기는 잭 워렐이라는 감독이였다.

워렐은 원래 칼튼 크리켓 구단의 단장이였으나, 호식축구로 옮기면서 실질적으로 처음으로 감독 역할을 수행한 사람이였다.

그래서 1906년 첫 우승 이후 1908년까지 우승 3연패를 기록하였고 칼튼의 성공을 시작하였다.

게다가 칼튼은 4연패도 기록할수 있었으나, 사우스 멜버른 (현 시드니)한테 결승에서 겨우 지면서 목표가 아쉽게 무산된 이후 워렐은 구단이 한대로 사임하였고 이후 에센던으로 건너갔다.

하지만 첫 영광은 좋은 성과를 불러오지 못했는데, 먼저 선수 임금 상승의 정체와, 워렐의 감독의 지도력에 대한 불만이 많았고, 선수들이 항의하면서 출전 거부는 물론이고, 이 악사태는 이후 선수들이 승부조작까지 하는 사태도 일어나게 된다.

다만 놈 클라크 부임 이후 칼튼은 성과를 유지하는데는 성공하였고 1914년과 1915년에 우승하면서, 이러한 성공은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 많은 호주인들이 참천하는 가운데 쪽박이 되버린 VFL에서 계속 출전할수 있었다.

이때 성과는 칼튼을 꾸준한 클럽으로선 완성시켰으나, 다만 다음 우승을 할때까지 23년을 기다려야 했다.

1938년 이후 1945년과 1947년에서도 우승하였으나, 이후 다시 침체기에 들었고 20여년의 세월이 또 지나갔다. 몇번 결승에 진출하였으나, 좌절하였다.

2.2.2. 바라시 아래 최전성기

새로 부임한 회장은 멜버른에서 업적으로 명성이 컸던 론 바라시를 감독 겸 선수로서 정신적 지도자로 불어오는 당시 파격적인 대안을 하였다.

그리고 결승 무대를 다시 맛보게 된 바라시는 칼튼을 6년전 상대한 에센던을 다시 상대하였다. 21년전처럼 같은 상대를 극적으로 넘으면서 다시 한번 우승하게 되었다.

1969년에 또 다시 우승에 도전하였으나 시대의 또 다른 대항마이자 헤이피가 이끌던 리치몬드에 패배하였다.

다음해에는 기적을 이끄는데 지금도 깨지지 않는 최다 관중 아래 결승의 상대는 시즌 1위이자 최대의 라이벌 콜링우드와의 결승이였다. 하프타임에서 44점까지 앞서며 뒤지던 상태에서 바라시는 핸드볼 강요로, 10점 차이로 극적으로 우승하였고,

파일:uVnsFZGm.jpg

알렉스 제살린코[3]는 지금도 유명한 공잡이를 보여준, 희대의 명경기에서 3년간 두번째 우승을 차지하였다. 멜버른뿐만 아니라 칼튼에서도 레전드가 되어버린 바라시는 아예 호식축구 자체의 전설로 되어가는 것이였다.

두번의 성과 사이 한번의 굴욕을 먹여준 리치몬드와 2년후 다시 상대하였고 결승 최다 점수 아래 바라시는 칼튼에서 세번째 우승을 차지하였다. 하지만 리치몬드와 다시 만난 다음해에서 또 한번 좌절하면서 바라시는 노스 멜버른으로 옮기고, 칼튼은 잦은 감독 교체로 인하여 강팀의 포스를 잠시 잃게 되었다.

2.2.3. 계속 이어가는 전성기

잦은 선임과 경질 이후 이번에 부임한 감독은 선수로서 맹활약한 제살린코였고, 1979년 1위로 수행하면서 숙적 콜링우드와 다시 붙게 되었다. 두 숙적과 다시 벌어진 결승의 명경기였다.

1979년 결승은 경기내 최우수 선수에서 주는 놈 스미스 메달이 처음 수상된 경기였는데, 수상자는 공교롭게 놈 스미스의 조카뻘 웨인 함즈. 막판에 겨우 앞서던 상태에서 골 가까이 있던 웨인 함즈는 경계선에 결처있던 공을 치면서 셸든이 받아 우승을 확정시키는 골을 만들어 내는 명활약으로 그들의 숙적을 극적으로 다시 넘게 되었다.

하지만 또 다시 아쉽게 우승을 높쳤던 콜링우드 팬들한텐 큰 논란인데, 그들은 공이 이미 경계선을 지났다고 주장했기 때문에 아직도 민감한 갑록을박이다.

하지만 우승 이후 경영진 사이 내분으로 인해 제살린코는 세인트 킬다로 반쯤 쫐겨나게 된 상태에서 이번엔 호손에서 두 번의 우승을 이끌어 활약한 데이비드 파킨을 선임시켰다.

파킨은 호손의 경혐에 힘없어 1981년 지난 숙적 콜링우드를 다시 격파하고, 다음해 1982년에는 리치몬드를 넘어서 칼튼을 최다 우승팀으로 각인시켰다.

하지만 파킨은 두번 우승 이후 결승에 진출하지 못한 이유에 에센던의 기세 사이에서 칼튼 선수였던 월즈한데 감독직을 넘기게 되었다.

월즈는 첫 해에 칼튼을 결승에 진출로 이끌며 왕조를 만들어가던 호손과 상대했으나 패배하면서 레전드 둘의 마지막 경기를 패배로 끝내는 아쉬움에서

다음해에 탈바꿈하면서 다시 상대한 호손을 당대 최고온도 사에에선 저번의 실패를 전환하면서 다시 최다 우승팀으로 앞서게 되었다.

칼튼은 한번더 다시 도전했었으나 연속으로 탈락하였고 다음 시즌의 부진은 월즈의 입지를 위기롭게 만들어 경질당했다.

2.2.4. 파킨의 재선임, 16번째 우승 달성

공석이였던 칼튼 감독 자리를 이미 두번의 우승을 하였던 파킨이였다.

기세를 이어가며 칼튼은 1993년 결승에 한번 더 도전하여, 1위였던 에센던보다 약간 밀려서 2위로 마감하였고 파이널 시리즈에 격돌하면서 에센던을 겨우 이긴건 칼튼이였고 그들이 먼저 결승에 진출하고, 숙적 에센던과 우승차이를 둘로 벌릴 각오하였지만 풋내기 에센던한테 크게 지면서 좌절되었다.

1994년엔 다시 2위로 마감한 이유 준결승 혹은 결승 진출에 유력한 사이에서 파이널 시리즈 두 경기 연속으로 지면서 충격적인 탈락 이후, 1995년엔 사상 손꼽을 최강의 시즌을 보내면서 마지막이자 (공동) 최다인 16번째 우승을 차지하게 된다.

1996년엔 5위로 마감하였으나 지난 시즌의 위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두번 파이널 시리즈 경기를 다 지면서 재작년과 비슷하게 광탈하였고, 다음 두 시즌은 아예 진출을 실패했다.

1999년 재기를 노리면서 파이널에 간신히 6위로 진출하였고 브리즈번 상대로 패배한 칼튼이였으나, MCG와의 계약으로 상대인 웨스트 코스트가 홈경기를 MCG에서 치려야 하면서 사실상 홈팀인 칼튼은 놀랍게 준결승에 진출하면서 상대는 시즌 1위 라이벌 에센던이였다. 허드, 루카스 등 주요 선수 부재에 불구하고도 우승후보였도, 많은 이들은 에센던이 압승할꺼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에센던의 경기내 골내에서 삽질하면서 경기는 막상막하, 경기 몇초를 남기고 브라운의 태클은 에센덴의 공격을 저지하고 공격으로 넘어간 칼튼은 1점차 리드를 유지하면서 결승에 진출하는 역대급 이변을 내게 되었고 이제 한번더 둘로 벌릴 기회가 있었으나, 캥거루스는 너무나도 강했고 17번째 우승의 꿈은 무산되었다.

안타깝게 준우승한 칼튼이지만, 팬들한텐 롯기도문같은 전설로 화자되고 있고, 또한 칼튼은 이번 이후로 결승에 진출하지 못하고 있다.

2.2.5. 21세기 - 암흑기의 도래

2000년 칼튼은 이번엔 간신히가 아니라 정규시즌을 2위로 마감하였으나 패권을 실세하던 에센던을 넘을지는 둘째치고 첫 파이널 시리즈 4강 상위전에서 멜버른 상대로 지게 되었다. 다만 6강전에서 브리즈번을 넘고, 준결승에서 에센던을 다시 만났으나 두번의 기적은 일어나지 못하고, 파킨 감독은 사임하였다.

파킨의 자리를 이은건 웨인 브리테인이였다. 그는 첫 시즌에 5위로 마감하면서 막판 베테랑 선수들 부상으로 인한 부재에 불구하고 6강에서 마감하였고 능력은 있는 감독인걸 보여 주었지만 갑자기 다음시즌 사상 가장 굴욕적인, 사상 처음으로 칼튼이 최하위로 마감하는 사태를 막지 못하고 경질되었다.

그리고 또한 칼튼은 샐러리캡 위반한걸로 밝혀졌고, 최다 우승팀 갑자기 최약으로 몰락하게 되는 계기가 되어, 아직도 벗어나기 어렵게 만드는 후유증을 만들어 냈다.

또한 보드진도 삽질이 컸었는데 먼저 장기간 회장 엘리엇이 물러나면서 전통 홈구장인 프린세스 파크에서 새로 지였던 도클랜드로 홈경기를 이전하였다.

이러한 악상황 아래 노스 멜버른/캥거루즈를 두번이나 정상에 올린 페이건을 선임하였지만 내외적 문제가 너무 커서 할수 있는건 거의 없었다. 2004년엔 막판에 승리로 11위로 마감하였으니 다음 두 시즌을 연속으로 최하위로 마감하였다.

페이건 아래 칼튼은 다음 시즌에서도 비슷하게 하위권에 매몰며, 연속으로 대패 이후 경질되면서 전 선수 래튼이 임시감독으로 승격하였고, 시즌 이후 승리를 없었지만 그래도 수습을 수행하면서 정식 감독으로 오르게 된다.

2.2.6. 잠시 보였었던 빛줄기

칼튼은 바라시의 이적 이후 가장 파격적인 오프시즌을 경험하였는데, 먼저 웨스트 코스트의 우승을 이끌었던 주장자, 브라운로도 수상받았던 리그 내 최고 스타였던 져드의 트레이트 이적이였다. 이 트레이드는 잠시만은, 칼튼 입장에선 암흑기에 시달리던 칼튼 팬들한테 희망같은 존재로, 암흑기를 이제 부셔버릴꺼라고 믿었었다.

첫 시즌은 파이널 시리즈 진출엔 실패했지만, 다음 시즌엔 막판이 아쉬웠지만 7위로 마감하면서 2001년 이후 처음으로 파이널 시리즈에 진출하였고, 한번 5골차 리드하면서 6강에 들뻔했으나 브리즈번의 추격으로 통혼의 패배를 겪게 되었다.

다음 시즌은 페볼라의 계속되는 기행으로 인해 강제적인 트레이드로 날러버림에서 작년의 통한의 패배를 갈면서도, 한 순위 낮은 8위로 2년 연속 파이널 시리즈에 진출하였지만, 이번엔 시드니 상대로 또한의 안타까운 패배를 겪었다. 그러나 져드는 의외로 이변으로 그의 두번째 브라운로 메달을 받으면서 그가 리그 내 최고의 선수 중 하나라는 것, 또한 그가 이끄는 칼튼의 재기는 성공적으로 가고 있었다는걸 증명하였다.

두번의 좌절을 겪고 2011년엔 5위로 등극하면서 에센던을 격파하면서 10년만에 6강 진출, 이번에서 원정으로 날아가 웨스트 코스트를 상대하였으나 시원치 않은 판정 등에 인하여 이번에서 원정의 통한의 패배를 겪에 준결승행이 좌절되버렸다.

2012년엔 작년의 선전의 기세로 다크호스 중 선두두자로 꼽혔으나 부상 들의 시즌 중반의 부진, 그리고 골드 코스트 상대로 충격패를 당하면서 파이널 시리즈 진출에 실패한 칼튼은 래튼을 경질시켰다. 그러나 이게 최악의 선택 중 하나였다는게 밝혀졌고 재기는 실패로 끝나게 되는 암흑기가 다시 도래하였다.

2.2.7. 밑바닥 아래 더 한 바닥

3. 유니폼

4. 유명 선수

4.1. 실바니가 - 클럽의 명예스러운 가문

4.2. 존 니콜스 - 빅 닉

4.3. 알렉스 제살린코 - 알렉산더 대왕

4.4. 스티븐 커내핸 - 거다란 주장

5. 라이벌

콜링우드 - 지금은 내용상 그저그러하지만 아직도 꼽아주는 AFL내 흥행매치. 두 지역이 가까운 이유도 있지만 칼튼과 콜링우드의 대결들이 레전드로 남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결승전 그랜드 파이널에서 6번 충돌[4]도 있고 이 두 팀은 사회적 차이가 있었는데, 상류층의 칼튼과 노동층의 콜링우드, 또한 이민계 서포터 이미지의 칼튼과 보건 서포터의 이미지의 콜링우드[5] 등이 있다. 그리하여 이러한 차이점은 안좋은 관계의 이유중 하나가 되었다.

6. 유명 팬



[1] 2005년까지 공동 홈 구장이였다.[2] AFL의 원조 클럽들의 테마송은 자작이 아니기 때문에 원곡이 있다. 원곡은 Lily of Laguna.[3] 소련인 부모 사이에서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났으나, 어렸을때 캔버라로 이주하였다.[4] 칼튼이 5번, 콜링우드가 1번. 콜링우드가 AFL내 콩라인인지라...[5] 물론 이건 고정관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