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컷 패스트볼(커터)
<리베라의 커터 그립>
[1]
마리아노 리베라의 93마일 커터
흔히 커터라고 부르는 구종. 2000년대 들어와 메이저리그에서 대 유행을 타고 있으며, 21세기 야구에서 서클 체인지업과 함께 가장 각광받는 구종이다. 21세기 초반은 이제 커터의 시대가 될 것이라 보기도 한다. 2010년대 야구의 대세인 '빠른 구속에 더해지는 무브먼트'를 열다시피한 구종.
구속 자체는 포심 패스트 볼 구속보다 4~5km 가량 떨어지는 것이 보통이며 우완투수가 던지면 우타자 바깥쪽으로, 좌투수가 던지면 좌타자 바깥쪽으로 수평 방향 변화를 살짝 보인다. 무브먼트를 보면 알 수 있다시피 슬라이더와 흡사한 무브먼트를 보여주는데, 변화량이 슬라이더보다 적고 구속이 더 높다. 실제로 슬라이더 대신 커터를 던지는 투수들도 있다. 대표적인 예가 부상 위험 때문에 프로 데뷔 이후 슬라이더를 봉인하고 커터를 익힌 데이비드 프라이스. 종적인 무브먼트는 적지만 슬라이더 중 종적인 무브먼트도 큰 슬라이더가 있듯이 커터도 던지는 투수에 따라 종방향으로 크게 휘기도 한다. 또 구속이 포심보다 떨어진다고 했지만 일부 커터를 던지는 재능을 타고난 투수들의 경우 포심과 구속이 비슷한 경우도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후술.
포심패스트볼과 거의 구분을 할 수 없는데다, 타자 앞에 와서야 공이 바깥쪽으로 살짝 빠져나가기 때문에 싱커, 투심과 함께 땅볼이나 범타를 양산해내는 구종으로 잘 알려져 있다. 미국의 경우 팔꿈치 부상의 확률이 높아지는 슬라이더 대신 커터의 변화를 많이주는 하드 슬라이더성의 구종을 가르치는 유소년/청소년 야구교육이 대세가 되고 있다. 다만 커터가 정말 부상을 유발하지 않는 구종인지에 대해서는 아직 논란이 좀 있는 편이다. 로이 할러데이의 경우 잘못된 그립으로 커터를 배웠을 때에는 커터를 던질 때마다 팔꿈치에 엄청난 통증을 느껴서 이후 자신에게 맞는 그립을 배운 뒤에야 고통없이 커터를 던질 수 있었다고 하는 만큼, 확실히 던지는 사람에게 맞는 그립을 조심스럽게 개발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데에는 다들 동의하고 있다.
커터라고 불리우는 이유는 반대손 타자(우타자-좌투수나 좌타자-우투수)가 이 공을 포심으로 생각하고 치면 스윗 스팟에서 안쪽, 즉 타자의 몸쪽으로 휘어지게 되는데, 이 경우 배트의 가늘어지는 부분에 공이 직격해 부러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공인된 배트 브레이킹 놀이의 제왕은 뉴욕 양키스의 영원한 수호신 '슈퍼 마리아노', '커터의 신' 마리아노 리베라.[2] 리베라의 경우 젊은 시절에는 커터의 평균 구속이 93마일, 최고 구속이 96마일이 찍히기도 했으며, 단순히 빠를 뿐 아니라 타자가 96마일 슬라이더로 알고 충공깽[3]할 정도로 고차원의 무브먼트와 컨트롤과 구속이 동반된 커터를 구사했다.
리베라 외에 커터를 잘 구사한 선수들로 알 라이터, 에스테반 로아이자, 앤디 페티트, 존 레스터, CC 사바시아, 클리프 리와 로이 할러데이 등이 있다. PHantastic 4로 잘 알려진 필라델피아 필리스 투수진의 경우 리와 할러데이에게 커터를 배운 투수가 많다. 박찬호도 클리프 리와 리베라에게 커터를 배웠다. 사실 MLB의 웬만한 신진급 투수들은 커터를 구사 구종에 포함하고 있으며, 포심에 의존하던 투수들도 점점 커터의 비율을 높이고 있다. 체인지업을 구사하는 많은 우투수들이 좌타자 상대용으로 연습하기도 한다. 커터를 흔히 우vs좌 좌vs우 전용으로만 생각하는 경우가 있지만, 확실히 익힌다면 같은손 타자에게도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4]
커터가 대유행한 이유라면 바로 '빠른 구속에 더해지는 무브먼트'라는 특징 때문. 한마디로 페스트볼이 변화구처럼 들어 온다는 것. 공의 변화량이 적다지만 구속이 빠르다보니 타자입장에서는 절대 쉬운공이 아니다. 반대손 타자에게 유용한것도 이때문인데, 어차피 페스트볼은 반대손 타자 상대로도 투구의 기본인데 이런 페스트볼에 무브먼트를 더해줄수 있으니 투수입장에서는 유용할 수 밖에 없다. 비슷한 변화를 보여주는 슬라이더와 비교하면 커터는 그 변화량이 슬라이더보다 작지만 그때문에 슬라이더는 반대손 타자상대로는 몸쪽으로 크게 휘기에 사용이 어려운 반면, 커터는 그 변화량이 작기에 보다 과감한 구사가 가능해진다.
커터는 크게 두 가지 그립이 있다. 첫 번째 그립은 슬라이더 그립. 슬라이더 항목에 있는 것처럼 공의 실밥을 걸쳐서 잡고 팔꿈치 내지는 손목으로 약간의 횡방향 회전을 주며 공을 던진다. 슬라이더보다는 회전을 덜 주고 대신 구속에 더 신경을 쓴다. 그러면 보통 포심 패스트볼 보다 평균 구속이 시속 5~7킬로미터 정도 느리고 수직 무브먼트는 포심보다 5~6인치 정도 낮아지지만 횡방향 변화가 5~6인치 정도 일어나는 구종이 완성된다.
두 번째는 그냥 포심 패스트볼 그립으로 던지되 중지로 눌러주는 경우. 바로 위에서 두 번째 사진인 리베라의 그립이 그러한 그립이다. 리베라의 그립을 보면 포심 패스트볼 소항목에 나온 그립과 별 차이가 없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실 공에 인위적인 무브먼트를 포심보다 강하게 일으키려면 결국 손가락을 실밥 위에 걸칠 수 밖에 없다. 그래야 손가락이 실밥에 걸려 공을 잡아채고 팔꿈치와 손목의 회전을 공에 전달해 공에 회전을 줄 수 있으니 말이다.
커터 자체는 매우 대중화된 구종이지만, 선천적으로 강한 악력을 가지고 태어난 선수들의 경우 그 위력을 극대화시킬 수 있다. 위에서 말한 커터의 그립 중 두 번째 그립 역시 그러한 강한 악력을 가지고 태어난 마리아노 리베라에 의해 개발된 그립. 물론 물론 국내 언론에 류현진이 공개한 것 처럼, 류현진 등 악력 면에서 그다지 타고나지 못한 투수들도 두 번째 그립의 커터를 사용할 수 있다. 하지만 켄리 잰슨이나 마리아노 리베라 마냥 자신의 포심 패스트볼 구속과 시속 1~2 마일 정도 차이가 나는 고속 커터를 던지며 그 위력을 극대화 하진 못한다. 게다가 류현진의 자신의 커터에 대한 개념은 '빠른 슬라이더' 인데, 이 경우 첫 번째 그립과 두 번째 그립 사이에서 절충을 한 케이스라고 봐야 할 듯. 물론 선수마다 같은 구종이라도 그립이 다르고 메커니즘, 논리가 다른 만큼 이런 두 가지 부분은 어디까지나 대체적인 구도가 이렇다는 정도로 알아두자.
이렇게 타고난 손가락 힘으로 커터를 던지는 투수들의 커터는 케리 우드, 호세 페르난데스, 프란시스코 로드리게스 등이 던지는 슬러브가 부상 위험을 제외한 모든 면에서 보통 커브보다 우월하듯이 모든 편에서 일반적인 커터보다 우월하다. 투구폼이 포심이나 투심, 싱커등과 다를 게 없으니 타자를 더 곤란하게 할 수 있으며 팔꿈치와 손목의 힘을 쓸데없는 회전주기에 쓰지 않으니 커터의 구속을 비약적으로 높여 포심 패스트볼 구속과 커터의 구속 차이를 확연하게 줄일 수 있고 원한다면 포심의 상승 무브먼트를 그대로 커터로 끌고 올 수도 있으며 손목과 팔꿈치에 무리도 안 간다. 리베라와 잰슨과 로벗슨, 특히 리베라와 잰슨의 경우는 커터 구사율이 90%에 육박한다. 한 마디로 타자도 야수도 관객도 다음 공이 뭔지 알고 있으며 당연히 타자의 노림수도 커터 하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자들이 공을 치질 못하고 범타 내지는 삼진을 조공하니 이 유형의 커터가 얼마나 강력한 위력을 가졌는 지 알 수 있다. 그냥 94마일 슬라이더라고 보면 될 듯.
다만 단점이 하나 있다면 타고난 신체 조건, 엄청난 중지 손가락 힘이 없다면 뭔 짓을 해도 못 던진다는 것. 메이저리그 투수들은 다 손가락 힘이 엄청난 사람들인데 그 중에서도 이런 커터를 던질 수 있는 투수가 메이저리그 역사를 통틀어 고작 두 셋에 그친다는 건 이런 커터를 던지려면 상상을 초월하는 강력한 손가락 힘을 타고나야 한다는 것을 단적으로 말해준다.
메이저리그에서도 이런 커터를 던지는 투수는 리베라와 켄리 잰슨 정도다. 하지만 따지고 들어가면 두 사람의 커터는 또 약간 성격이 다른데, 홈런이 잘 터지는 양키스 구장에서 공을 던지는 리베라는 커터를 포심 패스트볼만큼 띄울 수 있는 충분한 능력은 있으나 일부러 가라앉히며 땅볼을 유도하고,[5] 저녁에는 외야에서 바람이 불어와 홈런의 위험성이 상대적으로 적은 다저 스타디움을 홈으로 쓰는 잰슨은 커터를 포심 패스트볼만큼 띄우며 삼진을 유도한다.
아무래도 컷 패스트볼이라는 구종이 비교적 최근에 유행한 구종이니만큼 이 구종을 누가 유행시켰는지, 현대적인 개발과 개척에 누구의 공이 컸는지 역사가 긴 다른 구종보다 많이 알려져 있다. 이미 이 소항목에 이름이 여러번 나온 마리아노 리베라. 그가 은퇴하는 2013년에는 그의 후계자로 같은 팀에서 그에게 커터를 배운 데이비드 로버트슨보다도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의 켄리 잰슨이 거론된다.[6]
국내투수들 중에서는 커터를 제대로 던지는 투수가 없었는데 2011년 시즌부터 LG에서 뛰기 시작한 벤자민 주키치가 커터를 이용해 쏠쏠하게 재미를 봤고, 2012년 시즌에는 박찬호도 커터로 재미를 봤다. 2013시즌에는 오승환이 해외진출을 겨냥하고 커터를 습득했는데, 한국시리즈에서도 잘 써먹기도 했다. 손승락은 커터를 주무기로 사용하는 투수이다 다만 횡변화보다는 종으로 구사되는 편이다. 에릭 해커는 2015 시즌 부터 커터 비중을 늘려 재미를 보고 있다. 헨리 소사와 허프도 2017년 부터 커터를 구사하고 있다.
[1] How Mariano Rivera Dominates Hitters라는 기사에서 분석한 리베라의 커터와 포심의 궤적이다.[2] 다만 리베라의 커터 그립은 위에서 보다시피 포심 패스트볼과 별 차이가 없을 정도이며 이런 그립으로 만족할 만한 무브먼트를 만들어 내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기에 많은 투수들이 리베라에게 물어서 커터를 배워가지만 실제로 주무기로 삼을 정도로 향상된 투수는 적다. 실제로 현역 선발 투수 중 최고의 커터를 구사하는 걸로 지목되는 로이 할러데이의 경우 리베라에게 배웠다는 말이 있었지만 실제로는 백업포수에게 배운 그립을 쓴다고. 그런데 커터의 신께선 포스트시즌 전용 커터 그립까지 만드셨으니...[3] 어떤 타자가 커터에 헛스윙을 한 다음 슬라이더의 각에 한번 놀라고 전광판에 찍힌 96마일에 또 한번 놀라고 그게 사실 커터였다는 사실에 멘붕한다는 드립이 있을 정도였으니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4] 커터는 관점에 따라서는 종 무브먼트가 유난히 적고 적게 꺾이는 대신 구속이 빠른 '슬라이더'라고도 볼 수 있다. 이렇게 보면 같은손 타자에게 경쟁력이 없을 이유가 없다.[5] 그래서 리베라는 포심도 잘 던지지 않고 커터를 보조하는 패스트볼로 투심 계열의 가라앉는 패스트볼을 많이 던진다.[6] 사실 잰슨은 다저스의 마이너리그 불펜 코치&포수인 마이크 보젤로에게 커터를 배웠는데, 이 사람은 뉴욕 양키스의 불펜 코치&포수였고 당연히 리베라의 커터를 수도없이 받아본 사람이었다. 그래서 한눈에 잰슨이 타고난 리베라와 동일한 재능을 알아보고 리베라의 커터를 잰슨에게 적용시킨 셈이니, 넓게 보면 잰슨도 리베라의 제자이며 후계자 자격이 있다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