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니 샌섬의 역임 직책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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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니 샌섬의 수상 이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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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수상 | ||||
베스트팀 | ||||
| 1979-80 · 1980-81 · 1981-82 · 1982-83 · 1983-84 · 1984-85 · 1985-86 · 1986-87 |
잉글랜드의 前 축구선수 | |
<colbgcolor=#eeeeee,#191919> 이름 | 케니 샌섬 Kenneth Sansom |
본명 | 케니 그러햄 샌섬 Kenneth Graham Sansom |
출생 | 1958년 9월 26일 ([age(1958-09-26)]세) 영국 잉글랜드 그레이터런던 런던시 |
국적 | [[영국| ]][[틀:국기| ]][[틀:국기| ]] ( [[잉글랜드| ]][[틀:국기| ]][[틀:국기| ]]) |
신체 | 173cm |
포지션 | 레프트백 |
소속팀 | 크리스탈 팰리스 (1975~1980) 아스날 FC (1980~1988) 뉴캐슬 유나이티드 (1988~1989) QPR (1989~1991) 코벤트리 시티 (1991~1993) 에버튼 FC (1993) 브렌트포드 (1993) 왓포드 FC (1994) |
국가대표 | 86경기 1골 (잉글랜드 / 1979~198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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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케니 그러햄 센섬은 잉글랜드의 前 축구 선수이다. 그는 1980년대 아스날은 물론이고 잉글랜드 최고의 레프트백으로서 명성을 날렸다. 특히 PFA 1부 리그 올해의 팀에 8번 연속 선정되었는데, 이는 잉글랜드 축구 역사상 전무후무한 기록이다. 그러나 선수 시절부터 술에 중독되어 샤블리[1]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던 그는 은퇴 후 심각한 알코올 중독에 걸려 인생을 망치고 말았다.2. 선수 경력
2.1. 크리스탈 팰리스 시절
센섬은 1958년 9월 26일 영국 런던 챔버웰에서 태어났다. 그는 다섯 자매 중 2번째로 어렸다. 그의 아버지 조지는 그가 태어난 지 얼마 안돼서 가족을 떠나 거리 부랑아로 지냈고 그의 어머니 로즈는 청소부로 살아갔다. 그는 처음 축구를 접했을 땐 골키퍼를 봤지만 지역 유스팀인 스프링 파크 울브스에 입단한 후 팀동료가 부상당하면서 그 자리를 매꾸기 위해 포지션을 레프트백으로 변경했다. 이후 그는 고등학교에 진학한 후 자신의 진가를 드러내기 시작했고 이내 잉글랜드 연령별 대표팀에 출장해 좋은 모습을 보여줬다.
아스날, QPR, 그리고 토트넘 핫스퍼는 이 잠재력이 충만한 젊은이를 스카우트했다. 하지만 정작 센섬은 1975년 크리스탈 팰리스 유스팀에 입단했다. 그후 1977년 팰리스 주니어팀 주장을 맡은 그는 팀을 FA 유스컵 우승으로 인도했고 잉글랜드 유스팀에서도 훌륭한 활약을 선보였다. 그는 이러한 활약에 힘입어 이 해에 크리스탈 팰리스 올해의 선수에 선정되는 영예를 누렸다. 이후 1978-79 시즌, 팰리스는 2부리그 우승을 차지하고 1부리그에 승격했다. 여기엔 센섬의 공로가 지대했다. 그는 일찍부터 리그 최고의 레프트백으로 부상해 탁월한 활약을 선보였으며 거의 모든 경기에 출전해 꾸준한 경기력을 펼쳐 팀의 든든한 대들보가 되어주었다. 그는 1부리그에서도 좋은 활약을 선보였고 팰리스는 그의 이같은 활약 덕분에 1979-80 시즌에 13위를 기록하며 1부리그에 성공적으로 자리잡았다.
2.2. 아스날 시절
1980년 여름, 아스날은 100만 파운드의 이적료와 스트라이커 클리브 알렌을 크리스탈 팰리스에게 넘기고 센섬을 영입했다. 센섬은 1980년 8월 16일 웨스트브로미치 알비온과의 경기에서 데뷔전을 치렀고 첫 시즌부터 대단한 활약을 선보여 1981년 올해의 1부리그 팀에 선정되는 영광을 누렸다. 그러나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센섬은 1979-80 시즌 크리스탈 팰리스에 있던 때부터 1986-87 시즌까지 8시즌 연속 PFA 1부리그 올해의 팀에 선정되었다. 이러한 사례는 이전에도 없었고 이후에도 없었으며 앞으로도 재현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울 듯하다. 또한 센섬은 1987년 리그컵 결승전에서 주장을 맡아 리버풀과의 경기를 2:1로 승리해 우승을 차지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그러던 1987-88 시즌, 조지 그레이엄이 아스날 감독으로 부임했다. 그레이엄은 센섬이 맡고 있던 주장 자리를 토니 아담스에게 넘겨줬다. 이후 센섬은 주전 자리에서 밀려나기 시작했고 결국 나이젤 윈터번에게 밀려 1988년 12월 아스날을 떠났다.
2.3. 말년
1988년 12월, 센섬은 조지 그레이엄 감독이 리 딕슨을 영입해 나이젤 윈터번과 함께 양 풀백을 맡게하는 바람에 경기에 제대로 나오지 못하자 이적을 결심하고 뉴캐슬로 이적했다. 하지만 그는 단 한 시즌만 뛰었고 이후 QPR, 코벤트리 시티, 에버튼, 브랜트포드, 왓포드로 차례로 이적한 후 1994년에 은퇴했다.2.4. 국가대표 경력
1979년 5월 23일, 센섬은 잉글랜드 대표팀 선수로 데뷔해 웨일즈와 경기를 치러 0:0 무승부를 거두었다. 이후 그는 이탈리아에서 열린 유로 1980 대회에 참여했지만 잉글랜드는 조별 리그에서 3전 1승 1무 1패를 기록하며 탈락하고 말았다. 그후 1982 스페인 월드컵에서도 대표팀에 뽑혔지만 잉글랜드는 이번에도 2라운드 진출에 그쳤다. 또한 1986 멕시코 월드컵에도 역시 대표팀에 뽑혀 레프트백 자리를 맡았지만 불행히도 디에고 마라도나의 환상적인 돌파에 제쳐지며 마라도나의 2번째 골을 허용하는 바람에 대표팀의 8강 탈락을 막지 못했다.
센섬은 1979년부터 1988년까지 9년간 국가대표로서 단 한 경기만 결장했다. 특히 1984년 5월부터 1987년 4월까지 37경기 연속 출전했는데, 이는 훗날 빌리 라이트와 론 플라워가 경신할 때까지 최고 기록으로 남아 있었다. 센섬은 통산 86경기를 대표팀 선수로 출전해 1골을 기록했다.
3. 은퇴 후의 삶
선수 인생을 은퇴한 뒤, 그는 제2의 인생에서 쓰디슨 실패를 맛보았다. 그는 사업에 실패해 큰 빚을 졌고 알코올 중독에 빠져 아내와 자식들을 폭행하는 불량 가장이 되고 말았고 도박에도 빠져 재산을 모두 탕진했다. 결국 아내와 아이들이 모두 떠나버렸지만 그는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돈만 생기면 술을 마셨다. 하루에 많게는 7병의 와인을 마시기도 했다. 급기야 2015년 6월엔 공원에서 노숙을 하며 술을 마시는 모습이 언론에 보도되었고 8월에는 슈퍼마켓 주차장에서 빈 술병 두 개를 덩그러니 놓아두고 땅바닥에 누운 채 잠이 든 모습이 보도되기도 했다. 이에 샌섬을 재활 센터에 보내려는 노력도 있었지만 본인이 완강히 거부했다. 술을 마시지 못 한다는 사실이 두려웠기 때문이었다고... 급기야 그는 2016년 12월 25일 사람들의 도움으로 호텔에서 크리스마스를 보내게 된 상황에서도 스스로에게 깊이 절망한 나머지 “더 이상 살아야 할 이유가 없다. 통제할 수 없는 내 인생을 끝낼 수 있다면 그러고 싶다”라는 발언을 해 팬들을 안타깝게 만들었다.
그러다 2020년 5월 15일 머리 부상으로 병원에 입원해 있다. #
4. 수상
4.1. 우승
- 크리스탈 팰리스 FC (1975~1980)
- FA 유스컵: 1977
- 풋볼 리그 디비전 2: 1978-79
- 잉글랜드 축구 국가대표팀 (1979~1988)
- 브리티시 홈 챔피언십: 1981-82, 1982-83
4.2. 개인 수상 기록
- PFA 올해의 팀: 1979-80, 1980-81, 1981-82, 1982-83, 1983-84, 1984-85, 1985-86, 1986-87
- 크리스탈 팰리스 올해의 선수: 1977, 1979
- 아스날 올해의 선수: 19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