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3-03 17:52:14

케빈 존슨(농구)

케빈 존슨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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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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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케빈존슨.jpg
<colbgcolor=#1d1160><colcolor=#fff> 피닉스 선즈 No. 7
케빈 모리스 존슨
Kevin Maurice Johnson
출생 1966년 3월 4일 ([age(1966-03-04)]세)
캘리포니아주 새크라멘토
국적
[[미국|]][[틀:국기|]][[틀:국기|]]
출신학교 캘리포니아 대학교
신장 185cm (6' 1'')
체중 86kg (190 lbs)
포지션 포인트 가드
드래프트 1987 NBA 드래프트 1라운드 7순위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 지명
소속 팀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 (1987~1988)
피닉스 선즈 (1988~1998, 2000)
등번호 11번 - 클리블랜드[1] / 피닉스[2]
7번 - 피닉스
소속당


1. 개요2. 커리어3. 플레이 스타일4. 은퇴 이후5. 기타6. 관련 문서

[clearfix]

1. 개요

미국의 前 NBA 농구 선수이자 前 새크라멘토 시장. 농구 선수일때의 포지션은 포인트 가드이다. 1990년대 초중반 존 스탁턴, 게리 페이튼, 팀 하더웨이 등과 더불어 NBA를 대표하는 포인트 가드였다.

2. 커리어

UC 버클리를 졸업하고 1987년 1라운드 7순위로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에 드래프트 되었다. 클리블랜드에는 백인 단신 가드 마크 프라이스가 먼저 자리를 잡고 있었는데 프라이스를 밀어내지 못하고 루키 시즌 도중 1987-88 시즌 피닉스 선즈로 트레이드 되었다.

이후 몇년동안 피닉스 선즈의 에이스였지만 NBA 파이널과는 인연이 없었는데 찰스 바클리가 3:1 트레이드[3]로 선즈로 트레이드 된 후 1993 NBA 파이널에 진출했지만 마이클 조던, 스카티 피펜시카고 불스에 2-4로 패배했다.

1987-88 시즌부터 1999-00 시즌까지 12시즌을 뛰었고 커리어 평균 17.9점(FG 49.3%), 9.1어시스트, 3.3리바운드, 1.5개의 스틸을 기록했다. 커리어 하이인 1989-90 시즌에는 평균 22.5점(FG 49.9%), 11.4어시스트, 3.6리바운드, 1.3개의 스틸을 기록했다.

NBA 올스타에 3번 뽑혔고, 올 NBA 세컨팀에 4번, 서드팀에 1번 선정되었다. 1994년 드림팀 2에 뽑혀서 당해 FIBA 농구 월드컵에 우승했다. 은퇴 후에는 피닉스 선즈의 영구결번(7번)으로 선정되었다.

3. 플레이 스타일

90년대 대표적인 공격형 포인트 가드로 이름을 날렸다. 커리어 동안 20득점 - 10어시스트를 3시즌 달성할 정도로 공격력이 무척 뛰어났던 포인트 가드로 특히 스피드가 탁월했고, 골밑 마무리와 미들슛도 뛰어났다. 역대 3명뿐인 단일시즌 20득점 - 12어시스트 기록 보유자이기도 하다.[4]자유투도 뛰어나고 동료에게 빼주는 어시스트 능력도 좋아서 상대하기 무척 까다로운 선수였다.

다만 3점 능력에 대해서는 뭔가 말하기 애매하다. 시대를 대표하는 공격형 포가라서 어느정도 3점을 쐈을 것 같지만, 사실은 3점을 거의 안 던지는 유형의 선수였다. 통산 3점 성공률은 .305%로 당시 기준으로 봐도 썩 좋지 않았는데, 사실은 통산 경기당 3점 시도가 0.7개밖에 되지 않을 정도로 3점을 거의 던지지 않았다. 그리고 후술하겠지만, 사실 시도수나 성공률 모두 96-97 시즌의 기록 때문에 껑충 뛰어오른 것이지, 96-97 시즌을 제외하면 경기당 시도수는 불과 0.48개, 통산 성공률은 .220 밖에 되지 않는다. 즉, 케빈 존슨은 두 경기에 한번 3점을 던졌고, 3점이 들어가는 건 9경기에 한번이었다는 것이다. 포인트 가드의 3점 기록이 이 정도 밖에 안 된다는 건, 정말 어쩔수 없이 죽은 볼 처리를 해야할 때 말곤 3점을 절대 안 쐈다는 얘기.
그런데 케빈 존슨은 후대의 벤 시몬스 마냥 3점에 재능이 없어서 안 던진게 아니었다. 3점은 확률이 낮으니 가급적 안 던지는 게 맞다고 생각해서 안 던졌던 타입이었다. 본인 스스로도 훗날 인터뷰에서 직접 언급했는데, 스스로의 3점 실력이 성공률과 관계없이 나쁜 편은 아니라고 늘 생각했지만, 선수 시절 내내 팀에 3점을 던질 다른 선수들이 있어서 안 던졌을 뿐이고 어쩔수 없이 던져야 했던 3점은 대부분 하프라인 터프슛이었다고 밝혔다.
사실 케빈 존슨이 데뷔했을 때는 NBA에 3점슛이 도입된지 아직 10년도 안된 시점으로, 2010년대 이후처럼 팀원 전부가 3점을 쏘는게 아니라 3점을 쏠 슛터 한두명을 정해놓고 무조건 그들만 3점을 쏘는 식으로 3점 전술 운영을 했는데, 유독 선즈에는 늘 시스템적으로 케빈 존슨에 우선해서 3점을 던질 선수들이 존재했고, 케빈 존슨 자신 또한 3점에 대해 보수적인 입장이었다. 그렇게 해서 나온 결과가 죽어라 3점 안 쏘는 포인트 가드 케빈 존슨이었던 것. 이게 케빈 존슨만 유별난게 아니라, 80년대 말, 90년대 초의 농구 시스템이 이랬다. 당시 뛰었던 포인트 가드들 대부분이 한 경기에 3점을 한개 터프샷으로 던질까 말까였다.
그러다가 94-95 시즌부터 96-97시즌까지 세 시즌 동안, 사무국이 3점 라인을 단축하면서 리그 전체 팀의 평균 3점슛 시도가 5.5개나 증가하는 3점슛의 시대가 열리면서, 그 3점 안 던지던 케빈 존슨조차 3점을 던지게 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그 결과, 경기당 불과 0.5~6개의 3점을 던지던 케빈 존슨이 95-96시즌에 1.0개, 96-97 시즌에 2.9개의 3점을 던지게 되었는데, 마음 먹고 3점을 던지자 의외로 3점 실력이 출중했다. 특히 작정하고 202개의 3점을 던진 96-97시즌에 .441의 성공률을 달성했는데, 그러니깐 케빈 존슨은 사실 3점에 재능이 있었고, 그전에 3점을 안 던진 까닭은 그냥 안 던졌던 것이다.
참고로 이 96-97 시즌 덕분에 케빈 존슨의 통산 3점 기록이 크게 달라졌다. 일단 96-97 시즌을 제외한 케빈 존슨의 통산 3점 시도는 불과 경기당 0.48 개 밖에 되지 않는데, 96-97 시즌 덕분에 통산 0.7회로 껑충 뛰었다. 또한 케빈 존슨의 통산 3점 시도수는 524개인데 거의 절반에 달하는 202개가 96-97 시즌에 쏜 것이고, 통산 성공 갯수는 160개인데 그 절반이 넘는 89개가 96-97 시즌에 들어간 것이다.
그러나 또 플옵이 되니 얘기가 달라졌는데, 정규 시즌에 인생 처음으로 3점을 맘 먹고 던져 재미를 봤던 탓인지 플옵 첫 상대인 시애틀 슈퍼소닉스를 상대로 5 경기 동안 22개의 3점을 난사해서 달랑 3개를 넣는 최악의 모습을 보여주며(경기당 4.4개 시도, 성공률 .136) 팀 플옵 광탈의 1등 역신이 되어버렸다[5]. 게다가 다음 시즌 97-98 다시 3점 라인이 단축되자 또다시 경기당 0.5개로 3점을 지독하게 안 던지는 선수로 돌아갔고, 이게 케빈 존슨의 사실상 마지막 시즌[6]이었다.

어쨌거나 결론은 3점 실력이 떨어졌다기보다 당시 시스템에 따라 3점을 안 던지는 선수였다. 라인이 단축된 단 한시즌 기록이지만 4할이 넘는 3점 성공률을 기록하기도 했고, 선수시절 내내 보여준 점퍼나 자유투를 볼 때 분명 타고난 슛감이 좋은 선수였기에, 조금 더 늦게 태어났으면 더 훌륭한 기록을 남겼을지도 모르겠다. 3점 없이도 시대를 대표하는 공격형 포가였으니...

그리고 또한가지 문제는 바로 부상. 커리어를 보면 알겠지만 실력이 여전했음에도 은퇴가 빨랐던 편이다. 사실 95-96 시즌이 끝나고 은퇴하려 했으나 구단의 만류로 선수생활을 연장했는데, 그 말인즉슨, 실력이 여전히 짱짱했던 만 서른 살에 이미 은퇴를 마음 먹었었단 얘기. 케빈 존슨을 힘들게 했던 건 바로 탈장이었는데, 스물 여섯이었던 92 시즌 직전 팀원을 들어올리는 훈련을 하다 발병했고, 수술 이후로도 재발병하며 선수 시절 후반기 내내 케빈 존슨을 고생시켰다.

4. 은퇴 이후

은퇴 후 정계에 입문하여 민주당 소속으로 2008년부터 2016년까지 새크라멘토 시장을 역임했다.

5. 기타

  • 부인이 한국계 미국인인 대학교수 미첼 리(이양희)이다.
  • 슬램덩크에서 송태섭의 모델이 되었던 선수다. 헤어 스타일과 플레이스타일이 비슷하다.[7]

6. 관련 문서



[1] 이 번호는 27년 뒤 지드루나스 일가우스카스의 영구 결번이 되면서 쓰지 못하게 되었다.[2] 1988[3] 제프 호너섹, 팀 페리, 앤드류 랭 ↔ 찰스 바클리[4] 나머지 둘은 매직 존슨, 아이제아 토마스.[5] 사실 이때 선즈는 부상으로 은퇴 예정인 케빈 존스를 필두로 수비는 아예 포기하다시피하고 공격에 올인해서 간신히 플옵에 진출했는데, 하필 플옵 상대인 슈퍼소닉스는 공수 완전체에 가까웠고 심지어 역대 최강의 포가 수비수인 전성기 게리 페이튼이 있었다.[6] 99-00시즌에 플옵에 진출한 팀을 위해 시즌 막판과 플옵 때 잠시 복귀했다.[7] 다만 불우한 개인사와 성격 및 플레이 스타일은 아이제아 토마스를 모티브로 한것에 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