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9-24 02:17:15

케임브리지 자본 논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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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배경2. 결론

Cambridge capital controversy, 혹은 the capital controversy.

1. 배경

1960년대 경제학계에서 벌어진 경제학의 가정에 대한 논쟁이다. 피에로 스라파, 조앤 로빈슨 등의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교를 기반으로 한 스라파주의 경제학자들과 폴 새뮤얼슨, 로버트 솔로우 등 미국 MIT[1]를 기반으로 한 신고전학파 경제학자들 사이에 벌어졌다.

당시의 주류 경제학이라고 볼 수 있던 신고전학파는 생산함수를 사용하여 경제활동을 묘사하기 시작했다.[2] 그리고 솔로우-스완 모형등을 보면 이런 함수를 통해 전체 경제 상태를 나타내기도 한다. 즉 전체 경제를 일종의 '하나의 공장'처럼 묘사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에 따라 각각의 생산요소는 그 요소의 한계생산성과 같은 수익을 올린다.

그런데 1960년 들어 스라파 및 로빈슨은 여러 생산요소들간의 차이로 인해 단순하게 생산성을 더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예를 들자면, 생산함수 방식에서는 전투기 1대와 통조림 2만 개를 더하는 식의 계산이 되는데, 이렇게 본질적으로 다른 물건들을 단순하게 더할 수는 없다는 지적이다.

생각할 수 있는 가장 간단한 대응 중 하나는 전투기 1대 2만 원, 통조림 1개 1원 식으로 금전적 가치로 환산하여 계산하면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다 하더라도 이론적으로는 문제가 된다. 전투기 1대 2만 원이라는 가격은 전투기가 국민총생산에 기여하는 한계생산성에 영향을 받아 결정된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3] 그 한계생산성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국민총생산, 즉 Y가 얼마인지를 알고 있어야 된다. 그리고 국민총생산을 알려면 다시 전투기의 한계생산성(K)을 알아야 하고… 이런 식으로 순환논리가 발생하게 된다.

이런 문제로 인해 주어진 경제에 2개 이상의 생산요소가 존재할 경우,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우하향하는 수요곡선이나 우상향하는 공급곡선의 존재를 보장할 수 없게 되어버린다. 참고로 이는 소넨샤인-만텔-드브뢰 정리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내용이다.

2. 결론

논쟁의 결론은 엄밀히 말하자면 사람마다 평가가 엇갈리기 때문에 뭐라고 말하기 어렵다. 경제학자들도 저 논쟁에 대해 각기 다른 의견을 가질 수 있다.

오늘날에는 새뮤얼슨이나 로빈슨, 솔로, 스티글리츠[4] 같은 사람들도 거의 옛날 사람이 되어버렸고 어느 정도는 과거의 유물 대우를 하는 사람들이 대다수이다. 생산요소시장이론과 분배이론이라는, 고전적인 미시경제학의 결론이라고 할 수 있는 일반균형이론과 후생경제학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눈에 띄는 문제점임에도 불구하고, 주류에서는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보거나, 아예 관심을 두지 않기도 한다. 학부 미시경제학 교과서에도 짧게 나오긴 하지만 지나가듯이 다루기 때문에, 특별히 이 문제에 관심이 있거나 공부를 깊게 하는 소수의 학생들이 아니면 나중에는 “그런 게 있었나?” 수준으로, 기억도 잘 못 하는 학생들이 많다.[5]

다만, 경제학의 연구 중 저 케임브리지 논쟁과 관련이 있는 것들이 있어서 그걸 두고 몇년을 두고 논문으로 주고받는 등 논쟁은 계속되고 있다. 위에서 언급한 소넨샤인-만텔-드브뢰 정리만 해도 어찌보면 케임브리지 자본 논쟁에서 제기된 문제점에 대한 답으로 보는 입장도 있고 심지어 우리나라에서 비주류 경제학을 하는 박만섭 교수 역시 해당 정리를 주류 경제학에서 제시한 답으로 보기도 했다. 물론 그 답이 옳다고 받아들인 것은 아니고 후속 연구를 통해 비판하는 것이 비주류 경제학계의 입장이기도 하다.

스라피언들은 논리적 문제를 지적하는 과정에서 한계이론을 대체할만한 구조를 제시하는데 실패했을 뿐더러, '서로 다른 것을 같게 취급할 수 없다'라는 전제를 통해 경제현실에 대한 그 어떤 과학적 설명도 포기하는 모양을 보였다.[6] 반면 신고전학파는 꾸준히 각종 이론을 개발하며 현실 경제에 대한 설명력을 높여 결국 주류경제학의 계보를 잇게 되었다. 또한, 다른 문제도 있다. 예를 들어 재전환이나 자본역전과 같은 신고전학파의 모델의 약점으로 지적되는 현상이 일어날 가능성은 현실적으로 굉장히 낮다는 점[7] 등 때문에 당해 논쟁은 실증적으로 무가치하다는 결론이 나올 수도 있다.[8]

노동가치론[9] 때문에 실질적으로 뒷방 늙은이 신세가 되어 버린 마르크스 경제학뿐만 아니라, 다른 정치경제학자들이나 비주류 경제학 쪽에서 그 전부터 가지고 있던 의구심, 즉 신고전파 경제학이 다른 경제학파들에 비해 이론적 우위를 점하고 있게 해준 '과학으로서의 경제학'의 허구성에 대한 학문적 결정타가 바로 자본논쟁이다.

재전환이니 자본역전이니 같은 것은 결국 기존 경제학의 자본에 대한 측정방식에 대한 대안이 있느냐는 점에서 역공으로서 의미를 가지고 있지만, 결과적으로 저런 발언이나 역공들은 말문이 막힌 신고전파가 '그러면 니네는 대안있냐?' 식의 윽박을 지른 것에 지나지 않는다. 즉 주류 경제학은 로빈슨이 제기한 강력한 의문에 답을 내놓은 것이 아니라, 질문에 질문으로 대응하는 식으로 논쟁을 끌고가면서 그들의 논리와 가정의 허구성을 은폐한 것이다.

이는 논쟁에 참여한 내로라하는 신고전파의 거두들도 생산함수가 가지고 있는 치명적인 이론적 결함, 즉 자본을 측정하는 방식에 있어서 순환논리를 깰 수 있는 답을 주류 경제학이 가지고 있느냐에 대해서는 결국 'No...'라고 대답했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주류경제학이 말하는 '과학'의 밑바탕이자 뿌리가 어떤 자연법칙 레벨의 명징한 사실적 근거에서 발현된 것이 아니라, 다른 학파들이 가지고 있는 가정과 기껏해야 동등한 위치에 서 있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 이 논쟁을 통해 드러났다.

결국 폴 새뮤얼슨을 비롯한 이들이 내놓은 궁색한 답변도 거칠게 말하면 '야! 그걸 순환논리라고 말해버리면, 우리 학파 이론 체계 자체가 그냥 말장난이란게 되고, 지금까지 우리가 쌓아온 게 뭐가 되냐? 어쨌든 현실 경제에 대한 설명은 저 생산함수와 수리학적 모델에 기대서 그럭저럭 해내고 있으니까, 우리 '가정'이 가장 정확하다고 치지?'라는 답변이었다.
[1] 여기도 주소가 케임브리지로,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따온 지명이다.[2] 예를 들어 Y=AF(K,L) 등[3] 편의상 전투기 시장과 전투기가 활용되는 생산물시장이 모두 완전경쟁시장이라고 가정하면, 전투기 1대의 가격 2만원은 전투기를 활용하여 생산할 수 있는 재화의 가격에 전투기의 한계생산성을 곱한 값이 된다.[4] 1974년에 자본 논쟁을 다룬 논문을 낸 적이 있다.[5] 요소시장과 분배이론이 아니더라도 미시경제학이 다루는 주제가 워낙 방대하고 중요한 것들이 많아서 나타나는 문제이다.[6] 왜냐하면 이것은 경제활동에 대한 측정 가능성 자체를 부정하는 셈이기 때문이다.[7] 단순히 수학적, 이론적으로만 따지면 수식 계산 결과 음값이 나올 수도 있겠지만 현실적으로 수량이나 가격지표 등과 관해 음값은 마이너스금리같은 예외를 빼면 나오지 않는다. 또한, 이 문제는 스티글리츠도 지적한 것인데 이론적으로 기펜재가 존재할 지는 몰라도 현실적으로 기펜재가 통계적으로 눈에 띌 정도로 소비자 이론을 다시 쓰는 식의 판 뒤집기가 일어나지는 않는다.[8] 이러한 실증상의 약점은 심지어 논쟁을 시작한 로빈슨 역시 훗날 인정할 지경이었다.[9] 아이러니한 것이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을 이론적으로 침몰시킨 것이 측정 불가능하고, 유동적이며, 상대적인 노동의 가치를 '과학적'으로 분석해서 엄밀한 값을 낼 수 있다는 확고한 믿음이었다면, 신고전학파의 이론에 가장 치명적인 부분이 생산함수와 그에서 비롯되는 수리학적 모델을 구성하는 요소들, 각 가정들이 신고전학파 경제학자의 생각대로 작동하고 있는 상황에서만 유효하며, 또한 이 가정안에서는 '과학적'으로 자본의 값을 비롯한 각 생산요소의 값을 측정가능하다는 것이라는 점이 굉장히 의미심장한 부분이다. 심지어 이걸 까면서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을 맹공했던 것이 신고전학파 경제학자들이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