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6-06 01:13:09

카우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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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1994년

빌뉴스 역사 지구
Vilniaus istorinis centras
2000년

쿠로니아 모래톱
Kuršių nerija
2004년

케르나베 고고 유적
Kernavės archeologinė vietovė
2005년

스트루베 측지 아크
Struvės geodezinis lankas
2023년

모더니즘 도시 카우나스
: 낙관주의적 건축, 1919-1939
Modernusis Kaunas
: optimizmo architektūra, 1919–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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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unas[1]
카우나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800px-Vytautas_the_Great_Bridge_from_hill%2C_Kaunas%2C_Lithuania_-_Diliff.jpg
파일:110px-Kaunas_city_COA.png
시기 시장
국가리투아니아
카우나스 주
면적157km²
인구298,753명[2]
인구밀도1,935명/km²
시간대UTC+02:00(서머타임 적용)
카우나스 행정 사이트
||<-2><tablewidth=450><tablebordercolor=#000><tablebgcolor=#FFF,#1F2023><#000> 파일:유네스코 세계유산 로고 화이트.svg
유네스코 세계유산
||
<colbgcolor=#000><colcolor=#FFF> 이름 [[리투아니아어|
파일:리투아니아 국기.svg
]] Modernistinis Kaunas: optimizmo architektūra 1919-1939 m.
[[영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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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odernist Kaunas: Architecture of Optimism, 1919-1939
[[프랑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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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aunas, ville moderniste : une architecture de l’optimisme, 1919-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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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더니즘 도시 카우나스: 낙관주의적 건축, 1919-1939
국가·위치
리투아니아 카우나스 주 카우나스
북위 54° 53′ 49″
동경 23° 55′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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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colcolor=#FFF> 등재유형 문화유산
등재연도 2023년
등재기준 (ⅳ)
인류 역사에 있어 중요 단계를 예증하는 건물, 건축이나 기술의 총체, 경관 유형의 대표적 사례일 것.
지정번호 1661 }}}}}}}}}

1. 개요2. 언어별 표기3. 역사4. 현황5. 언어6. 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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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리투아니아 제2의 도시이며 카우나스 주의 주도(州都)이며 리투아니아 가톨릭 교회의 카우나스 대주교 소재지이기도 하다. 인구는 2021년 기준으로 29만 명.

2. 언어별 표기

리투아니아어 Kaunas
폴란드어 Kowno(코브노)
러시아어 Ковно(코브노)
벨라루스어 Коўна(코우나)
독일어 Kauen(카우엔)
라트비아어 Kauņa(카우냐)

보통 폴란드어나 러시아어명인 코브노로 알려져 있는데 오늘날 영어권에서는 카우나스를 리투아니아어 표기를 따라서 Kaunas로 부르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과거에는 오랫동안 러시아어를 음역한 Kovno라는 명칭을 사용해왔다. 마찬가지로 빌뉴스도 과거에는 러시아어를 음역한 Vilna라는 표기가 일반적이었다.

3. 역사

현재 카우나스 시에 해당하는 지역에 10세기 무렵 수운 교통을 이용하기 편리한 전략적 위치를 바탕으로 요새가 건설되었다. 요새와 수운을 바탕으로 14세기 한자 동맹 상인들이 머무르며 성당이 건설된 것이 카우나스 시의 시초가 되었다. 1408년에 도시는 마그데부르크 법의 혜택을 받게 되었으며, 1만여명의 인구가 거주했다. 리투아니아인은 유럽에서 가장 늦게 기독교를 받아들인 민족으로 14세기에 기독교로 개종하였으나 카우나스 인근 주민들이 기독교를 받아들이는 건 조금 더 늦어서 15세기에나 개종이 이루어졌다. 카우나스에 새로이 건설된 고딕 성당에는 폴란드인 성직자들이 파견되어 가톨릭뿐만이 아니라 서유럽 문화 전반도 전파하였다. 1441년에 도시는 리투아니아 대공국 도시 중 유일하게 한자동맹의 일원이 되었다. 16세기에 이르면 르네상스종교개혁의 영향으로 카우나스 시에도 많은 학교와 병원들이 지어졌다.

폴란드-리투아니아의 멸망 이후에는 러시아 제국에 편입되어 코브노 현(Ковенская губерния)의 소재지가 되었다. 러시아에 통치하던 당시의 리투아니아에서도 리투아니아인 귀족 지주들은 대부분 자신들의 지위를 그대로 유지했으며, 이들은 꾸준히 리투아니아어를 보존 및 발전시켜나갔다.[3] 폴란드인 귀족들이 자신들이 사르마트인으로부터 기원했다고 생각하며 고대 동방 유목민 문화를 흉내낸 것과 다르게, 코브노 현을 중심으로 한 리투아니아인 귀족들은 자신들의 기원을 가톨릭의 성도인 로마에서 찾기를 좋아했다.

하지만 카우나스 시의 역사는 종종 귀족들의 낭만적인 상상과는 반대로 흘러갔다. 나폴레옹러시아 원정 당시 카우나스는 나폴레옹의 침략을 두 번이나 받고 두 번이나 크게 파괴되었다. 때문에 패퇴하고 돌아온 대육군을 카우나스 사람들은 잔혹하게 대했고, 리투아니아에서는 이 시기를 흑역사 취급한다. 러시아 제국 지배 말기로 갈수록 리투아니아어를 금지한다든지, 리투아니아어를 로마자 대신에 강제로 키릴 문자로 표기하도록 압력을 넣기도 했다.

1861년 카우나스 시에 철도가 뚫리면서, 카우나스 시는 독일 제국과 러시아를 연결하는 통로 역할을 수행했다. 하지만 철도가 건설되고 새로운 이주민들이 러시아 제국 곳곳에서 유입되면서 도시의 리투아니아인 비중은 더 줄어들었다. 1897년 러시아 제국에서 실시한 인구조사에서 유대인은 도시 인구의 35.3%, 러시아인은 25.8%를 차지했지만 카우나스 시의 리투아니아인 인구 비율은 6.6%에 불과했다. 리투아니아인은 대부분 카우나스 교외에서 농업에 종사하면서 시대에 뒤쳐진다는 위기의식을 느껴야 했다. 이후 제1차 세계 대전 중인 1915년, 독일 제국군에 의해 점령되어 1918년까지 독일의 점령하에 놓였으며 전후 리투아니아가 독립하였을 때는 폴란드 제2공화국에 점령된 빌뉴스를 대신하여[4] 리투아니아 제1공화국임시수도 역할도 했다. 이 상황은 1939년의 폴란드 제2공화국 붕괴 때까지 이어진다. 제2차 세계 대전 전에는 유대인이 도시 인구의 32%를 차지했고, 폴란드인도 30%를 차지하여 리투아니아인의 비중이 30%에 불과했으나 일시적인 나치 독일의 점령 기간중 벌어진 홀로코스트소련으로의 강제편입등의 격변을 거치면서 지금은 리투아니아인이 인구의 94%를 차지한다.

4. 현황

학생의 수가 5만 정도인 교육도시로 알려져 있다. 주변의 비스트로나스, 우테나 등등의 소도시에서 카우나스 시로 유학을 많이 온다. 연세대학교와 교환학생 시스템을 갖춘 카우나스 공과대학이라든지, 동국대학교와 교환학생 시스템을 갖춘 비타우타스 마그누스 대학[5]이 카우나스 시의 대표 대학이다.

이 도시를 연고로 한 프로농구팀 BC 잘기리스(BC Žalgiris)는 리투아니아 리그 최다 우승을 비롯 구 소련 시절 5회 우승에 빛나는 명문팀이다. 그러다보니 유명한 농구선수들을 배출한 도시로도 유명한데, 리투아니아의 전설적인 센터 아비다스 사보니스지드루나스 일가우스카스를 배출한 곳이기도 하다.

5. 언어

2021년 인구 조사에 따르면, 카우나스 시민들의 모어는 리투아니아어 95.54%, 러시아어 2.88%, 폴란드어 0.26%로 조사되었다. 빌뉴스, 클라이페다와 달리 리투아니아어 비율이 90%를 넘는다. 전간기 리투아니아의 임시 수도가 되면서 폴란드어, 러시아어 사용자의 비중이 줄어들었고, 홀로코스트의 영향으로 이디시어 사용자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또한 전간기에 카우나스에 잔류한 폴란드계 리투아니아인들은 적성국의 언어 대신 국어를 사용하길 택했다.

6. 갤러리

파일:Office_Center_1000.jpg
파일:historic hotel in kaunas.jpg
  • 카우나스 호텔


[1] 실제 리투아니아어 발음으로는 '커나스'에 가깝다.[2] 통계인구, 2021년 기준.[3] 빌뉴스의 리투아니아계 주민들이 폴란드어를 사용하며 결국 대다수가 완전히 폴란드화한 것과는 대비되는 부분으로 지역 감정의 떡밥이기도 하다.[4] 이에 관해서는 중앙리투아니아 공화국 문서 참조[5] 리투아니아 대공국 전성기를 이끈 비타우타스 대공 이름에서 따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