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0-02-15 08:53:28

독일 제국군

파일:나무위키+유도.png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나치 독일의 군대에 대한 내용은 독일 국방군 문서를, 현대 독일의 군대에 대한 내용은 독일 연방군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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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 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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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utsches Heer / Kaiserliche Marine
독일 육군[1] / 황립 해군
표어: Gott mit uns(신이 우리와 함께)

1. 정의2. 역사3. 전술과 전략4. 전쟁범죄5. 제국군의 제식장비6. 대중 매체

1. 정의

1871년부터 1918년까지 독일 제국의 국방을 담당하던 군대이다. 육군해군으로 구성되었고, 공군은 끝까지 창설되지 않았으며 육군, 해군 항공대만 존재했다.

프로이센 왕국의 재상 오토 폰 비스마르크가 독일의 여러 소국들을 통일한 이후, 보불전쟁에서 승리하여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에서 빌헬름 1세의 대관식을 거행한 후, 독일 제국의 수립을 선포하였는데 그 때부터 제1차 세계 대전 종전일인 1918년 11월 11일까지 존속하였다. 그리고 이들은 나치 독일의 군대였던 독일 국방군의 정신적 지주 겸 계승 대상이 되었다.

2. 역사

넓게 보면 제국군 특히 육군의 기원은 프로이센 왕국 시절부터이다. 사실상 프로이센 왕국이 여러 소국들을 병합하여 독일 제국으로 거듭났었다 하더라도 군대는 크게 바뀐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바뀐 것이라곤 시대별로 약간의 복장 개정 뿐이다.

독일 제국군의 전성기는 비스마르크 시기이다. 보오전쟁에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을 대파하였으며 보불전쟁에서는 당시 유럽 최강으로 불리던 프랑스 육군을 대파하였다. 이후 제1차 세계 대전이 벌어지는 1914년까지 독일 육군은 유럽 최강의 지상군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 이는 독일 제국 육군이 신병들을 오랫동안 훈련시켜서가 아니라[2] (자세한 것은 참조) 장군참모로 대표되는 뛰어난 참모체계를 갖추고 이를 체계적으로 운용할 수 있는 시스템을 먼저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독일 제국군의 동원 예비군 체제는 상당히 잘 짜여져 있어서, 1차 세계 대전 초기 병력의 양과 질 측면에서 프랑스군보다 우위에 설 수 있었다.

독일 제국은 프로이센 왕국이 여러 소국들을 병합함으로서 성립되었다는 역사적 경위로 인해서 연방제를 채택하고 있었으며 따라서 내부적으로는 여러 구성국으로 나뉘어 있었는데, 이러한 제국의 구조는 독일 제국군의 편제에도 어느 정도 영향을 주었다. 독일 제국 육군이 독일 제국 내의 각 구성 제후국이 보유한 육군의 집합체로 구성되어 있었던 것이 좋은 예로, 제후국들의 육군이 제국 육군이라는 하나의 틀로 묶여 통합된 것도 제국 성립 이후부터였기 때문에 독일 제국의 전신인 북독일 연방 시절에는 아예 그러한 체계 자체가 제대로 마련되어 있지 않았었다고 한다. 이후 제국이 세워지면서 제후국들의 육군은 대부분이 편제상 제국 육군으로 흡수되었고[3], 바이에른 왕국 육군만이 예외적으로 독자적인 조직으로 남았다. 물론 그렇다고 제국 육군에서 완전히 분리된 조직인 것은 아니었지만.[4]

한편 독일 제국 해군의 경우에는 처음부터 황제 직할로 취급되었기 때문에 독일 제국 육군과는 다른 편제를 지니고 있었는데, 이는 이미 북독일 연방 시절부터 훗날의 제국 해군의 전신이 되는 북독일 연방 해군이 존재하고 있어서 제후국들이 각각 따로 해군을 가지지는 않았었기 때문이다. 즉 제국 육군이 제후국들이 각각 따로 갖고 있던 육군을 하나로 통합하는 형태로 만들어졌다면, 제국 해군은 처음부터 단일 조직으로 창군되었던 것이다.

육군과 해군의 의무부대들을 합쳐서 의무군이라는 군종을 만들었던 것도 독일 제국군의 특징이었는데, 이는 오늘날의 독일 연방군에도 계승되었다.

3. 전술과 전략

아예 개전 초부터 양면전쟁에 놓인 최악의 불리한 상황 속에서도 여러 전투에서 수많은 승리를 거둔 것과 패배하면서도 상대에게 큰 출혈을 강요하는 등 전술적인 면에서 만큼은 제1차 세계 대전에서 가장 강력했던 군대임에는 이의를 제기하기 힘들다.

그동안 제2 제국의 외교와(제1차 세계 대전 발발의 책임을 포함한) 독일 제국군의 전략적 능력에 대해서는 비교적 저평가가 되어왔으며 이것이 주류였지만 최근에는 조금 바뀌는 추세이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에서 작성한 내용 참조 링크)

슐리펜 계획의 경우 중립국 벨기에를 친다는 외교적으로 고립을 자초하는 전략과 실전에서 쓸데없는 수정을 가해 계획자체도 제대로 추진되지 못했다는 점 등으로 비판받는데 계획을 입안했던 슐리펜에게는 변호의 여지가 있다. 슐리펜이 계획을 짜던 1905년은 러일전쟁의 패배로 러시아 제국의 열악함이 여지없이 드러난 순간이었다. 러시아의 동원능력은 열악하였고 최초로 벨기에로 밀고 들어오는 것은 프랑스라고 가정되어 벨기에를 오히려 우방으로 삼는 등 최초의 의도는 1914년과는 정반대로 계획 되었다. 하지만 러-불 동맹으로 프랑스의 차관이 들어오면서 러시아는 1914년까지 연간 10%를 넘어서는 경이적인 경제성장을 이루어내며 무시무시한 속도로 철도를 확충하여 총동원 속도가 빨라져 당초 계획보다 훨씬 앞당겨져 35일 안에 프랑스를 쓰러뜨려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제1차 세계 대전 당시의 러시아의 총동원령 선포와, 그에 맞춘 러시아의 동맹국 프랑스의 동원령 선포로 위협을 느낀 독일이[5] 먼저 선수를 치기로 하면서 뒤바뀐 것이다.

단 위에서 인용된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의 서술에서는 제1차 세계 대전 개전 직전의 상황만을 다루고 있기에 그보다 훨씬 이전 시점에서 벌어졌던 독일의 심각한 외교적 실책으로 말미암아 독일이 이미 스스로 선택의 여지를 없애버렸었다는 사실은 서술되어 있지 않다. 일단 슐리펜 계획은 러시아가 최악의 순간이었던 1905년의 수준에서 짠 전쟁계획이었음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 또한 1905년은 프랑스 역시 현대인들의 착각[6]과는 다르게 벨 에포크 시대의 낭만에 젖어 전쟁 준비는 커녕 전쟁을 하겠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던 시점이었다. 그 때문에 1905년에 벌어졌던 제1차 모로코 위기에서 프랑스는 영국이 프랑스에 대한 지지를 확실시하기 전까지 독일에 대해 저 자세로 끌려다니는 형국이었다. 1906년 알헤시라스 회담에서 1890년대부터 독일의 해군 강화에 위기를 느끼고 있었던 영국이 프랑스를 지원하였고 회담은 북아프리카에서의 프랑스의 우위를 인정하는 것으로 끝맺음 되었다. 이 결과를 보고서 실망한 이탈리아는 독일에게서 등 돌렸고 독일의 외교적 고립은 가시화 되었다. 그리고 그것을 군사력으로 돌파하고자 더더욱 군비확충을 서두르게 된다. 슐리펜이 계획을 짜던 1905년은 이러한 시점이었고 이 때 전쟁을 벌였더라면 준비가 덜 된 프랑스군과 러일전쟁으로 파탄난 러시아군을 상대로 독일이 이겼을 가능성이 높았겠지만 독일의 전쟁준비가 가시화 되자 영러협상을 통해 영국이 협상에 가담하고, 프랑스는 군비 확충과 더불어 러시아에 차관을 제공하여 러시아의 재무장을 돕게 된다. 이윽고 러시아의 경제발전과 군비확충은 놀라운 속도로 이루어져 1914년 시점에서는 아직 원래 계획이 전부 이루어지지 못했었지만[7] 독일에게 치명적인 위기를 선사하였고 오스트리아-헝가리를 박살 내버리는 군대를 양성하는데 성공한다. 비록 타넨베르크 전투에서 러시아가 참패하였지만 그 동안에 독일에게 생긴 틈은 독일이 프랑스를 상대로 전력을 내지 못하게 만들었고 프랑스가 독일군을 마른 전투에서 격파할 수 있는 중요한 순간이었다. 또한 독일군이 슐리펜 계획을 슐리펜 사후에도 계속 첨삭을 거듭하면서도 "프랑스를 6주 안에 정복한다"라는 부분이 계획의 골자였음과 삼국협상의 존재, 세르비아를 상대로 오스트리아가 강경책으로 나갈 수 있게끔 독일이 백지수표를 써주었다는 것을 감안해 볼 때 실상은 "독일이 오스트리아를 전폭적으로 지원하면 러시아가 한발 물러날 것이다"라고 믿은 것이었고 이렇게 생각한 독일 수뇌부의 전략적 착오가 원인이라 볼 수 있겠다. 하지만 러시아는 물러난다면 발칸반도에서의 러시아 영향력이 완전히 일소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는 걸[8] 생각하면 러시아는 처음부터 절대 물러날 수 없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결론적으로 슐리펜 계획은 군비 확충과 팽창주의로 어그로를 끌며 도박수를 던져댄 끝에 전부 실패하고 외교적으로 완전히 고립되어버린 상태에서 그것을 다시 군비확충과 팽창주의로 돌파하려는 악순환이 이어진 결과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슐리펜은 날이 갈수록 강화되는 협상군을 상대로 오히려 점점 짧아지는 기한을 맞출 방법을 찾지 못했고 후임자 小 몰트케도 마찬가지였다. 위에서는 프랑스가 벨기에를 공격할 테니 벨기에를 독일의 우군으로 만든다는 계획이 있었다고 하는데 실제로 1913년에 프랑스는 벨기에 영토를 통과하는 방법을 제의한 적은 있었지만 결국 프랑스의 알자스-로렌 방면으로 정면돌파 하는 것을 선택했다. 하지만 독일은 벨기에를 통과하는 것은 시한을 맞추기 위해서 선택의 여지가 없는 울며 겨자먹기식 도박이었다. 설령 계획이 그랬어도 독일이 그리 할 수 있었을지는 의문스럽다. 독일군이야 이미 고립된 상황에서 어떻게든 돌파구를 찾아보려 애쓴 것이라고 변호해 줄 수는 있겠지만 그것은 독일을 더더욱 고립 시킬 뿐이었다.

4. 전쟁범죄

독일의 전쟁범죄 문서 참조.

5. 제국군의 제식장비

제1차 세계대전기의 동맹군 보병장비
{{{#!folding 【펼치기 · 감추기】개인화기볼트액션 소총Gew71, 베르단, 그라스, Gew88, 마우저 M1893, Gew98, 만리허 M1886, M1888, M1890, 만리허 M1893, M1895, 만리허-쇠나워, 모신나강 M1891
레버액션 / 폴링블록마티니-헨리, 윈체스터 M1866
반자동소총젤프스트라더 M1906E, 몬드라곤 M1908, 젤프스트라더 M1916
기관단총헬리겔 1915E, 슈바르츠로제 기관단총E, MP18
권총리볼버라이히 M79, M83, 마우저 C78, 라스트&가서 M1898, 나강 M1895, S&W 모델 3
자동권총보르하르트 C93, 마우저 C96, FN M1900, FN M1903, 드라이제 M1907, 로트-슈타이어 M1907, 루거 P08, 마우저 M1910, 슈타이어 M1912, 프로머 슈토프, 베홀라 M1915, 마우저 M1914
지원화기기관총경기관총마드센 M1902, 호치키스 M1909, MG15nA, MG08/15, MG08/18, M.18, MG14/17
중기관총호치키스 M1900, 스코다 M1909, 슈바르츠로제 M.07/12, MG08
수류탄M15, M16, M17
대전차화기탕크게베어 M1918, 집속수류탄
화염방사기벡셀아파라트 M1917
박격포그라나트베르퍼 16, 미넨베르퍼
※ 윗첨자E: 테스트만 치른 후 제식 채용되지 않음}}}




제1차 세계 대전의 동맹군 기갑장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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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차중전차A7V
프로토타입LK I, LK II, A7V, A7VU, 슈투름바겐, 트레파스바겐, 그로스캄프바겐, PzZug II 장갑열차, 오리온바겐, 오버슐레지엔
노획전차Mk. IV, Mk. A 휘펫, FT-17
장갑차E-V/4 에르하르트, P.A.1, 오스트로-다임러 장갑차, 란치아 안살도 강갑차, 뷔싱 A5P, 롬펠 장갑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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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차 세계대전의 동맹군 항공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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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격기 타우베, 고타 G IV, AEG G.IV, 한자-브란덴부르크 G.I(오-헝)
기타 항공병기 체펠린 비행선, 알바트로스 J.1}}}



제1차 세계 대전의 독일 해군 군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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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습함드라헤급
건보트일티스급, 파터란트, 그라프 폰 괴첸, 칭다오, 아터, 포어베르츠급
어뢰정 / 함1898급, 1906급, 1911급, 1913급, 1914급, 1916급, 1917급, 1918급, G101급
잠수함U보트
항공모함I
경순양함헬라, 가젤급, 브레멘급, 쾨니히스베르크급(1905), 드레스덴급, 노틸러스급, 콜베르크급, 마그데부르크급, 카를스루에급, 그라우덴츠급, 필라우급, 비스바덴급, 쾨니히스베르크급(1915), 브루머급, 쾰른급
장갑순양함퓌르스트 비스마르크, 프린츠 하인리히, 프린츠 아달베르트급, 룬급, 샤른호르스트급, 블뤼허
방호순양함클라스 플레밍급, 빅토리아 루이제급
순양전함폰 데어 탄급, 몰트케급, 자이들리츠급, 데르플링거급, 마켄젠급, 에르자츠 요르크급
전함전 드레드노트급브란덴부르크급, 카이저 프리드리히 3세급, 비텔스바흐급, 브라운슈바이크급, 도이칠란트급
드레드노트급나사우급, 헬골란트급, 카이저급, 쾨니히급, 바이에른급, L 20 α
기타제아들러
취소선: 건조 취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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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대중 매체

독일 제국군은 비록 훗날의 2차 대전 독일 국방군이나 무장친위대 수준의 전쟁 범죄를 저지른 것은 아니지만, 제1차 세계 대전을 일으킨 국가임과 동시에 벨기에 학살과 같은 만행도 있고 당시 시대 상황이 상황인지라 제대로 된 사과나 반성도 없었던 고로 인해 서구권 세계에서는 대접이 나쁜 것은 마찬가지라 FPS액션 게임에서 주인공으로 나오는 경우는 거의 없다. 나치 보단 '그나마' 덜 하지만 이쪽도 대부분 적으로만 등장. 전쟁의 주범인 빌헬름 2세에리히 루덴도르프 등은 제대로 된 사과도 않고 오히려 죽기 전까지 백인우월주의와 파시즘, 극단주의, 나치즘에 손을 얹어주면서 또다른 비극의 씨앗을 제공했다.

그러나 이보다 더 정확한 이유는 많은 대중매체가 영국미국, 프랑스, 캐나다에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특히 영화나 TV 드라마는 연합군 측이 과거 동맹군 진영에 비해 압도적이다. 미국 영화에서 독일군이 주인공으로 나와 미군을 격파하면 흥행이 어떻게 되겠는가?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북한군이 주인공이고, 미군과 한국군이 악역으로 나와 박살나는 영화를 한국에서 만들면 그 영화는 어떻게 될 지 생각해보자. 그래도 흥행에 엄청 민감한 영화보다는 상대적으로 나은 게임이나 소설에선 종종 주인공이나 플레이어 진영으로 나왔었다.

AAA급 FPS 게임에서는 배틀필드 1에서 첫 등장했다. 캠페인에서는 미국과 영국 시점에서 적으로 등장한다. 적으로 등장하기는하지만 프롤로그 시네마틱에서 흑인 병사랑 서로 총을 겨누다 이내 허탈한 표정으로 무기를 거두거나 블랙번 파트 마지막 부분에서 그라프 체펠린이 추락하면서 블랙번 일행에게 다가오자 블랙번 일행과 싸우는걸 멈추고 자기도 살기위해 비행선에서 블랙번 일행과 같이 뛰어내리는 등 그래도 인간적인 모습이 나오기는한다. 몇몇 잠입미션에선 독일군 병사끼리 떠드는 걸 엿들을 수 있는데 대화 내용은 당시 군인들이 흔히 할법한 평범한 대화로 되어있다.[9] 싱글플레이로는 플레이 못하지만 멀티플레이로는 플레이 할 수 있다.

블랙옵스2 좀비 모드에서 1차 대전이 배경인 Origin 맵에서 독일 제국군 좀비가 등장한다.

베르됭(게임)에서는 소총부대, 돌격대, 산악부대, 후방지원부대 등으로 나뉘어지며, 모든 진영을 플레이할 수 있다. 보통 연합군보다 화력이 강하고, 또한 비주류적인 매력 때문에 은근히 인기 있는 진영. 그러나 서양유저들 대다수는 협상국을 더 좋아하는 건 어쩔 수 없는지라 만날 프랑스군, 영국군, 미군한테 털린다.

토이 솔져스에서도 등장하는데 독일군 전용 미션들이 있으며 그 미션들에서 독일군이 되어 영국군을 막아낼 수 있다. 참고로 1인칭 시점 게임이 아니라 3인칭 시점의 타워 디펜스 게임이다.

그 외에 컴퍼니 오브 히어로즈-1918 모드, Men of War의 모드 중 하나인 World War I에서도 등장한다.

원더우먼(영화)에서 주 악역으로 등장한다.

카이저라이히: 대전의 유산에서 1936년의 독일 제국군이 구현되어있다. 1차대전에서 독일 제국이 승리한 세계인 탓에 육해공 모두 세계 일류급으로 엄청난 규모를 자랑하지만 전체적으로 구식 교리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이며, 이는 게임상에서 온갖 디버프로 나타난다.


[1] 나중에 바이마르 공화국이 들어선 이후 '국가방위군(Reichswehr)'의 '육군(Reichsheer)'과 구별하기 위해 독일 제국 육군(Deutsches keiserliches Heer)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하지만 당대에는 "독일 육군"이라고 불렸다. 고조선도 당시에는 조선으로 불리다가 이성계가 나중에 건국한 조선과의 구분을 위해 후세들이 고조선으로 명명한 것과 같다고 볼 수 있다.[2] 독일 육군의 신병 훈련기간은 4주로 그렇게 긴 편은 아니었다. 2년 동안 훈련을 받았네 뭐네 하는 소리가 있는데, 독일군의 전체 군 복무기간은 기병, 기마포병 3년, 나머지는 2년이다. 신병교육기간이 2년이면 독일군은 훈련소 기간을 마치니 제대하는 괴상한 군대가 된다. 오히려 1차대전 전까지 모병제를 유지하면서 장기간의 훈련(무려 13개월동안 훈련받은 병사가 있다고 한다.)을 유지한 영국 육군의 질적 수준이 월등했다. 독일 제국군은 장교단과 부사관단의 정예화에 관심을 두었지 일반 병에게는 많은 것을 기대하지 않았다.[3] 예를 들어 작센 왕국 육군은 제국 육군 12군단, 뷔르템베르크 왕국 육군은 제국 육군 13군단, 바덴 대공국 육군은 제국 육군 14군단이 되는 식이었다.[4] 바이에른 왕국 육군은 평시 정규군 병력으로 바이에른 1군단~3군단의 3개 군단을 보유하고 있었으며, 이들 세 군단은 군단명 앞에 바이에른 왕국의 이름을 붙임으로서 독일 제국 육군 내의 다른 군단들과의 구분이 이루어지고 있었다.[5] '7월 31일에 도착한 러시아의 동원에 대한 문서를 확인하고 난 후, 몰트케와 베트만-홀벡은 모두 평화를 추구할 수 있는 가능성이 모두 사라진 것을 알게 된다. 결국 독일은 7월 31일 총동원령을 발동하고, 러시아에는 군사적인 조치를 중단할 것을 요구하였으며 만약 이에 응하지 않는다면 전쟁에 직면할 것이라는 최후통첩을 보낸다. 프랑스에게도 입장을 질문하였으나 프랑스는 자국의 이익에 부합되게 행동한다는 답을 남기며 군대를 동원하기 시작했고, 러시아는 답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독일은 8월 1일 러시아에 대한 전쟁을 선언한다.' 국방부 연사편찬연구소, 「군사」2014,9 47P[6] 보불전쟁에서 패전한 후 복수의 칼날을 갈며 한순간도 쉬지 않고 전쟁 준비를 하는 프랑스의 모습이다.[7] 원래 계획은 1918년 이후에 개전하게 될 것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8] 세르비아, 불가리아는 남슬라브족에 속하며 러시아는 이전부터 범슬라브주의를 명목으로 이들에 대한 영향력을 투사하여 발칸으로 진출하던 오스트리아-헝가리에 맞서고 있었다. 하지만 2차 발칸 전쟁에서 완전히 다굴을 맞은 불가리아를 저버렸고 불가리아에 대한 영향력을 상실하게 되었다. 보스니아는 1878년 베를린 회의에서 오스트리아-헝가리에 귀속된 상황이었고 마지막으로 러시아가 영향력을 유지하는 나라가 세르비아였다.[9] 예를 들면 스페인 독감으로 사람들이 떼죽음을 당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진짜인지 과장인지 반신반의하는 대화라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