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3-03 18:41:03

브레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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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역사3. 사회
3.1. 인구3.2. 정치3.3. 경제
4. 관광5. 행정 구역6. 대학교7. 여담

[clearfix]

1. 개요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RathausDomBuergerschaft-01.jpg
브레멘 시청(좌측)과 브레멘 대성당(중앙), 브레멘 주의회 건물(우측)의 모습[1]
Freie Hansestadt Bremen, 브레멘 자유 한자 시

독일 북부의 도시주.

2. 역사

브레멘 일대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구석기 시대부터로 추정한다. 빙하기가 한창이던 기원전 1만 2,000년 무렵 만들어진 원시인들의 유적지가 발굴되었기 때문이다. 아우구스투스가 추진한 게르만족 정복 시도로 잠시나마 브레멘 일대가 로마의 영역에 들어왔던 적이 있지만,[2] 토이토부르크 전투의 참패 이후 로마군이 라인강으로 국경을 물렀기에 로마화는 이루어지지 못했다. 한편 2세기에 프톨레마이오스가 작성한 유럽 지도에는 지금의 브레멘 위치에 게르만족 영역지가 있는데, 일부에서는 이를 근거로 이 때부터 브레멘이 존재해왔다고 주장하기도 하지만 명확한 근거가 있는 것은 아니라 대다수 학자들의 반응은 회의적이다.

3~4세기 무렵에는 작센족이 이곳으로 이주했으며, 중세 이후에는 프랑크 왕국의 영역에 포함되었다. 프랑크 왕국이 비기독교화 게르만족에게 기독교를 전파하면서 8세기 후반 이 지역 최초로 주교가 파견되어 주교좌 도시를 건설했는데, 이것이 현재 브레멘의 직접적인 시초이다.[3] 오늘날 브레멘이 사용하는 열쇠 모양 시 문장도 지역 주교좌 및 주교도시 문장을 그대로 이어 온 것이다. 그러다가 10세기 무렵부터는 베저 강의 수운을 이용하여 노르웨이, 네덜란드, 잉글랜드와 무역을 하면서 부를 쌓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부를 바탕으로 주교에게서 화폐주조권을 인정받았으며, 결국엔 바르바로사(Barbarossa) 프리드리히 1세에게도 제국자유도시(Freie und Reichsstädte)로 지정받으면서 여러 특권들을 누렸다. 이러한 특권에는 브레멘 주교를 포함한 영주들로부터 브레멘 시내의 재산권을 보호받는 것이나 브레멘으로 도망쳐 온 농노의 신변상 자유를 인정하는 것 등이 있었는데, 중세 독일의 속담 '도시의 공기는 자유롭다(Stadtluft macht frei)'가 바로 여기서 유래했다. 제국자유도시가 된 이후로도 브레멘 주교의 영향력은 여전히 강했지만, 13세기 한자동맹 가입은 브레멘 도시공동체에 날개를 달아주었고, 막대한 부를 자랑하는 브레멘은 완전한 자치를 누릴 수 있었다.[4]

이렇게 잘 나가던 브레멘의 기세를 꺾어버린 것은 17세기 유럽의 종교개혁이었다. 종교개혁30년 전쟁 시기 브레멘은 상인답게 전쟁을 피하고자 중립을 선포하고는 막대한 부를 이용해 중립을 지키기 위한 용병까지 고용하면서 어떻게든 전쟁을 피하려고 했다.[5] 그러나 베저 강 하구라는 지정학적 요소와 무역으로 쌓아올린 막대한 부는 개신교와 가톨릭 진영 모두에게 매혹적인 요소였고, 덴마크, 프로이센, 스웨덴, 합스부르크 등 다양한 세력이 브레멘을 놓고 충돌하였다. 특히 스웨덴과는 공성전까지 벌였으나, 브레멘으로서는 다행히 점령만은 피했다. 하지만 스웨덴이 포위를 푸는 조건으로 내세운, 브레멘을 둘러싸는 각종 요새의 해체와 제국의회(Reichstag)로의 대표 파견 금지를 허용하면서 최전성기의 위상을 더는 누리지 못하게 됐다. 베스트팔렌조약으로 스웨덴에 속하게 되었으나, 대북방전쟁으로 스웨덴이 패권을 상실하면서 1720년에 하노버 선제후국의 영토가 되었다.

그후로도 무난하게 지내던 브레멘을 뒤흔든 것은 나폴레옹 전쟁이었다. 1811년 나폴레옹이 브레멘을 점령하면서 프랑스의 속국이 되었다가 나폴레옹의 몰락과 더불어 빈 회의에서 다시금 자유도시로의 권리를 인정받고 독일 연방의 일원이 되었다. 1817년 독일 최초의 증기선이 이곳에서 발명되면서 산업혁명과 시너지 효과를 내어 베저 강의 수운을 이용한 운송업이 폭발적으로 번성하기 시작하였고, 1827년에는 해운업을 좀 더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하노버 왕국으로부터 베저 강에서 북해로 빠지는 항구 일대를 사들였다. 이것이 바로 브레머하펜(Bremerhaven). 그 이후로도 쭈욱 이어져 현대 독일 국내에서 유일하게 월경지가 있는 주가 되었다.[6]

이후 미국과의 항로를 개척하여 신세계와의 무역이 활발해지면서 경제는 다시 활기를 되찾았다. 이때 유명 해운회사인 North German Lloyd(NDL)가 1857년에 설립되었다. NDL은 이후 함부르크의 해운사인 Hamburg-American Line(HAPAG)과 합병하여 지금의 하파그로이드(Hapag-Lloyd)가 되었다. 그리고 브레멘은 독일뿐만 아니라 중앙 유럽 내륙국에서 미국으로 이민 가는 사람들이 많이 거쳐가던 곳이기도 했다. 그래서 브레머하펜에는 이민박물관이 있어 이곳을 거쳐간 사람들의 목록도 확인할 수 있다. 독일계 미국인들은 여기에서 자신들의 조상의 발자취를 체험하기도 한다.

상업과 공업의 발달로 도시는 상인과 노동자로 북적였고, 그래서 독일 사회민주당과 진보자유민주주의 정당들은 브레멘에서 엄청난 지지를 받았다. 마지막 제국의회 선거에서도 사민당이 53.4%, 그외 진보자유민주주의정당들이 총합 41.4%의 득표를 하였다. 심지어 1933년 이후 국가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독일 정부를 완전히 장악한 다음에 치루어진 조작투표에서조차 나치당의 브레멘 내 득표율은 32.7%밖에 되지 못했다. 이에 나치 정권은 브레멘 주의회를 강제 해산시키고 자기네 인물들로 주정부를 채워넣었다. 당연히 나치의 집권 이후 미국과의 무역은 중단되었지만, 나치 독일은 이곳을 해군도시로 삼고 잠수함도 건조하였다. 당연히 영국은 제2차 세계 대전 중 브레멘을 군수도시로 지정하고 대대적인 폭격을 가했다. 나치 정권에 가장 반대한 곳인데도 결국 나치 탓에 온갖 피해는 다 입은 셈이다.

이후 독일이 제2차 세계 대전에서 패전하면서 미영불소로 4분할 된 독일의 영역 가운데, 점령지가 내륙에 국한된 미국이 항구를 확보하기 위해 브레멘을 미군 점령지로 삼았다. 물론 이는 그전까지 미국과 활발히 무역하던 도시라는 점도 작용했다. 그래서 미국 점령지 중에서 브레멘은 월경지가 되었다.

서독이 성립된 이후 브레멘은 다시 기존 지위를 인정받아 니더작센주의 일부가 아닌 16개 주 중 하나가 되었다. 이는 초대 주총리가 된 빌헬름 카이젠(사민당)이 니더작센으로 강제통합되는 것을 막기 위해 브레멘에서 초당적인 합의를 이끌어내 나치가 집권하기 전 민주주의 체제를 복원하였기에 가능하였다. 브레멘의 시청사는 다행히 폭격을 피해서 지금도 독일에서 원본 그대로 남은 가장 오래된 시청사로 남았다. 브레멘은 독일의 전후 경제 성장과 더불어 해운과 조선업, 제조업으로 경제를 회복하였다.

그러나 급격한 경제 성장으로 인해 시민 다수가 교외지역인 니더작센주로 이주하면서 브레멘의 시재정이 점점 줄어들었고, 1970년대 오일쇼크가 터지고 독일의 중공업 쇠퇴와 맞물려 조선소들이 문을 닫으면서 위기가 닥쳤다. 이에 시는 재정 및 산업구조 개선에 공을 들였고, 현재 브레멘 경제는 해운업과 항공부품제조산업, 자동차부품제조산업, IT산업이 주를 이루고 있다. 다만, 맥주양조장인 벡스(Beck's)를 제외하면 독일을 대표할 만한 중견기업도 없고, 전반적인 서비스업 발전도 느리며, 인구변화도 정체 상황이라서 여전히 문제가 많다는 지적이 있다.

2020년 기준으로 브레멘 인구의 1/3이 이민배경이 있는 사람일 정도로 독일에서 이민자가 가장 많은 지역이 되었다.

3. 사회

3.1. 인구

브레멘주의 인구는 2022년 기준 약 68만 명으로, 이 중 대다수인 56만명 이상이 브레멘시에 몰려있다. 절정기였던 1960년대 후반의 60만 명에 비하면 약간 줄어든 수치이다. 또한 브레멘시에서 외국인 인구가 약 25% 가량의 지분을 차지하는데, 이들 중 다수는 튀르키예인이다. 또한 독일 제국 시기에는 폴란드에서 일자리를 찾아 폴란드인들이 브레멘을 많이 왔었는데[7] 냉전 종결 이후 다시금 폴란드 인들이 브레멘에 정착하고 있다. 덧붙여서 전통적으로 공업과 운수업이 발달한 도시였던만큼, 계층상 노동자가 다수를 차지하는 지역이기도 하다.

3.2. 정치

파일:브레멘 주의회 로고.png
브레멘 주의회의 원내 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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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립여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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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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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파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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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민주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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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민주당
5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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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적
84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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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기했듯 노동자가 많은 도시인만큼 19세기 후반 이후로 독일 사회민주당의 아성과도 같은 곳이었다.[8] 1946년 이후로 70년 동안 단 한 번도 독일 사회민주당은 주의회에서 여당 자리를 내준 적이 없다. 2015년 주의회 선거에서도 독일 사회민주당독일 기독교민주연합보다 거의 두 배 가까운 지지율[9]을 보여주면서 두터운 지지를 재확인했다. 그러다 2019년 브레멘 주의회 선거에 처음으로 사회민주당이 기민련보다 적은 의석수를 가지는 결과가 나왔는데, 물론 녹색당과 좌파당에게 의석이 유출되어서 일어난 현상으로 사회민주당은 녹색당 및 좌파당과 연정하여 시장직과 여당 자리를 수성해냈다.

녹색당이 가장 먼저 의회에 진출한 곳이기도 하다. 1979년 결성한 '브레멘 녹색후보자 연합'이 시초이고, 1980년에 '녹색당'으로 이름을 바꾸며 전국정당이 된다.

주의회 선거 때마다 브레머하펜에서만 출마해서 매번 1명씩 당선시키는 ‘분노한 시민들’이라는 지역정당이 있었다. 지지율이 그리 높지 않음에도 당선될 수 있는 이유는 브레멘 선거법에 따라 브레멘시 또는 브레머하펜에서 득표율 5%를 찍으면 의석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해당 정당은 2023년 주의회 선거에서 독일을 위한 대안의 부재 속에 9.4%를 득표해 10석을 얻으며 역대 최대 성적을 올렸지만, 선거 직후 '동맹 독일(Bündnis Deutschland)'이라는 정당에 흡수되며 사라졌다.

다른 주의회들은 임기가 5년이지만, 브레멘은 4년이다.

독일 연방의회 지역구는 2석으로 브레멘 북부와 브레머하펜을 합쳐서 1석, 브레멘 남부 1석이다. 비례대표는 3석으로 총 5석을 선출한다.

3.3. 경제

전통적으로는 해운업이 발달한 곳으로, 독일에서 함부르크에 이은 두번째 규모의 해항이다. 이를 바탕으로 중공업이 발달하여 에어버스의 주요 민항, 군수 부품 공장과 메르세데스-벤츠 승용차 라인이 입지하고 있다. 이외에 각종 주류산업 및 노르트제(Nordsee)[10]와 같은 외식업체들도 많다. 외식업체는 아니지만 독일 맥주 브랜드 중 몇 안되는 세계적인 규모의 벡스도 브레멘 연고의 맥주회사이며 양조장도 상당한 규모로 존재한다.

독일에서 소득 수준은 평균 이상으로 높지만 반대로 실업률 또한 16개 주 중에 가장 높은 것이 문제이다. 2024년 초 기준 10.6%로 독일 평균(5.7%)은 물론 구 동독 지역(7.8%)보다도 높다.

4. 관광

5. 행정 구역

파일:브레멘 주장.svg
브레멘의 행정 구역
파일:브레멘시 문장.svg
브레멘
파일:브레머하펜 문장.svg
브레머하펜


브레멘은 도시주이지만 다른 주들과는 다르게 하위 2개의 구에 도시권을 부여하여 시(Stadtgemeinde)라고 부른다.

브레멘시와 브레멘에서 북쪽으로 멀리 떨어진 브레머하펜(Bremerhaven)을 하위 행정구역으로 두고 있다. 브레머하펜은 브레멘 도시주에 속해 있지만 니더작센주를 사이에 끼고 있는 월경지이다. 두 지역은 베저 강으로 연결된다.

6. 대학교

브레멘에는 네개의 공립대학교가 존재한다. 브레멘 대학교, 브레멘 응용과학대학교, 브레멘 예술대학교(Hochschule für Künste)와 브레머하펜 단과대학(Hochschule Bremerhaven)이 그것이다.

7. 여담

  • 독일 도시들이 다 그렇듯이 구도심에 중세-근대 풍의 예쁜 건물들이 많다. 마르크트플라츠(Marktplatz)의 브레멘 시청은 세계문화유산. 시청사광장에는 도시를 수호하는 롤란트 기사상이 있다. 그 옆에는 그림 형제의 동화 브레멘 음악대 석상도 있다.
  • 축구팀으로 SV 베르더 브레멘이 자리잡고 있다.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바이에른 뮌헨의 독주를 견제하면서 유럽대항전에서 준수한 성적을 내고 리그와 포칼 2관왕을 차지할 정도로 분데스리가에서 강한 팀이었지만 셀링클럽의 한계를 못 이기고 2010년대부터는 부진하여 중하위권을 맴돌다가 2017년 플로리안 코펠트 감독이 부임하면서 중위권으로 반등하며 다시 성적이 상승하는듯 했다. 그러나 2019-20 시즌 16위로 승강플레이오프에 내몰리더니 2020-21시즌 마지막 10경기 승점 1점이라는 극심한 부진으로 40년만에 2.분데스리가로 강등되고 말았다.[11]
  • ICE 1의 76편성에 이 도시의 이름이 붙어 있다.
  • 대항해시대 온라인에서는 처음엔 없었지만, 그로닝겐과 함께 확장하면서 추가된 도시 중 하나이다. 처음 생길 때는 교역품이 모피, 밀, 맥주, 소금 등이어서 북해의 다른 도시들에 비해 계륵에 가까웠다.[12] 패치를 통해 투자시 민들레와 면 원단이 나오면서 중요성은 올라간 편.
  • 유럽의 역사적인 도시들이 으레 그렇듯 길이 조금 중구난방이며 특히 중세시대 느낌을 잘 보존한 구도심 부근은 더 한데 시청 맞은편에 위치한 여행정보센터를 방문해서 지도를 구비하여 지도와 함께 여행하면 더욱 직관적으로 여행 할 수 있고, 굽이진 골목 하나하나 다 영화나 그림같은 곳이므로 시간이 있다면 지도를 보고 대략적인 동선만 숙지한채 이리저리 걸으면서 골목길 하나하나 둘러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 유명한 동화 브레멘 음악대의 배경이다. 정작 주인공인 동물들은 브레멘으로 가기로 했다가 중간에 눌러앉는 바람에 안 갔다는 게 함정.

[1] 현재의 브레멘 주의회 건물이 있는 자리는 과거 브레멘 주식거래소가 있던 곳으로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파괴되었다. 브레멘은 독일의 총 16개 연방주 중 도시주인 3개 주 중 한 곳이다.[2] 엘베 강까지 약 20년 동안 로마가 지배했던 적이 있다. 물론 완벽한 지배가 아니라 주요 거점과 교통로에만 로마의 힘이 미치는 정도.[3] 고대 말에도 이미 많은 로마 안팎의 게르만족이 기독교화되었으나, 로마하고는 거리가 떨어져 있던 부족들은 여전히 게르만 신화를 믿고 있었고, 이는 나중에 카롤루스 대제가 정복전쟁과 강압적 동화정책을 정당화하는 근거로도 활용되었다.[4] 도시, 자유도시, 코뮌 문서 등에서도 언급되지만, 원래 유럽에서 전통적으로 도시와 주교는 밀접한 관계를 맺었다. 도시 단위로 새 주교구가 설립되거나 반대로 주교구가 설립되면서 새 도시를 만들었고, 초기에는 주교가 도시 영주로서 세속 영주로부터 도시민을 보호하고는 하였다. 하지만 상업과 도시가 발전하면서 이러한 구조는 오히려 도시민에게 장애가 되었고, 차츰 주교로부터 해방되기를 꾀하였다. 이는 금융, 유통, 생산 등 교회나 세속귀족은 담당하지 못하는 경제 영역에서의 기능들에 힘입은 것이었다. 그래서 오히려 막대한 자금을 융자받는 영주들이 도시공동체의 눈치를 살피는 경우도 있었고, 브레멘시와 브레멘 주교도 거기서 예외가 아니었다.[5] 다만 브레멘 자체는 종교개혁에 호응해 프로테스탄트로 개종한 세력이 다수였을 뿐만 아니라 특히 독일 개혁교회의 중요한 기원이 된 곳이었다. 그래서 중립이었는데도 함부르크나 북유럽 세력 등 다수가 루터교에 가담한 주변 지역 사이에서는 눈엣가시 취급을 받았다.[6] 바덴뷔르템베르크주도 스위스에 월경지가 있지만, 이 경우에는 아예 국경이므로 논외.[7] 다만 이는 브레멘 뿐만이 아니라 당시 독일 산업지역 일대의 공통적인 특징이었다.[8] 이는 다른 도시주인 함부르크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난 현상이다. 다만 함부르크에서는 보수당인 독일 기독교민주연합에서 중도적인 후보를 내놓고 자유민주당이나 동맹 90/녹색당과 연정하는 식으로하여 시장직에 당선된 사례들이 있다.[9] 독일 사회민주당이 38%인데 독일 기독교민주연합은 20%. 다만 의석은 사민당이 30석, 기민련이 20석을 확보했다.[10] 해산물 패스트푸드 레스토랑 체인이다. 도이체반 역에 많이 입점해 있어 여행자들에게는 친숙할 듯.[11] 잠시나마 라이벌 함부르크 SV의 분데스리가 최다 참가시즌 기록을 갱신하기도 했으나 강등당하면서 2021-22 시즌을 기준으로 바이에른 뮌헨과 공동으로 최다시즌이 됐다.[12] 가구를 만들 수 있는 대장장이가 있지만 위치가 애매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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