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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해군의 변천사 | ||||||||
프로이센 해군 | → | 황립 해군 | → | 국가해군 | → | 전쟁해군 | → | 독일 해군 |
<colcolor=#000> 황립 해군 Kaiserliche Marine | Imperial Navy | ||
해군기 | ||
주요 사건 | ||
1871년 창군 1898년 함대법 제정 및 키아우초우 획득 1901년 의화단 전쟁 참전 1905년 제1차 모로코 위기 1911년 제2차 모로코 위기 1914년 제1차 세계 대전 참전 1919년 해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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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Kaiserliche Marine, 즉 황립 해군은 독일 제국의 해군이다. 북독일 연방, 그 중에서도 프로이센 왕국의 해군을 계승한다. 1880년대부터 대대적으로 확장하며 20세기 초에는 세계 2위의 거대한 해상 전력을 보유했다. 그러나 1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영국 해군의 봉쇄를 뚫지 못하였고, 제국 멸망과 함께 해체되었다. 바이마르 공화국의 국가해군(Reichsmarine)이 이들을 계승한다.2. 역사
독일 제국 해군의 시초는 1867년에 창설된 ′연방해군′이었다. 사실상 해군력이 전무했으며 독일 연방시절의 가맹국들이 보유했던 해군력이 다수를 이뤘다. 하지만 명목상 프로이센 왕국 왕립 해군의 후신인 탓에 프로이센군과 동일한 규정이 채택되었으며 독립된 군사 조직이라는 헌법 규정에도 불구하고 1888년까지 육군 장교들의 지휘를 받아야 했다.1872년, 킬에서 제국 해군 사관학교가 설립된 데 이어 '기계정비단'이 설립되고 1873년에는 '의료단' 1879년에는 '어뢰공병대'가 창설되어 기본적인 해군 구색을 갖추기 시작했다. 그리고 1872년 부터 함대를 현대화 하기 위해 10년 계획으로 총 2억 2천만 금마르크가 투자되어 8척의 장갑호위함, 20척의 경초계함, 7척의 모니터함,2척의 수상포대, 6척의 식민지통보함[1], 18척의 건보트, 28척의 어뢰정을 배치하겠다는 계획을 세운다. 해당 전력 증강 금액의 4분의 1은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에서 패전한 프랑스가 지불한 배상금에서 충당했다.
1883년 시점에서 독일 제국 해군은 7척의 장갑호위함과 4척의 장갑초계함으로 다른 해군 열강들에 비해 매우 빈약한 해군력을 지녔다. 이는 독일 제국 해군의 1차적 목표가 프랑스, 러시아 제국 등 해군 열강으로부터의 해안 방어였기 때문이었다. 1887년이 되어서 2개의 어뢰정 사단을 편성했고, 킬 운하를 개통함으로써 북해와 발트해에 따로 떨어져있던 독일 제국의 함대가 서로 교통할 수 있게 되는 이점을 지니게 되었다.
독일 제국 해군이 본격적으로 해군 강국으로 팽창되게 된 시점은 빌헬름 2세 때부터였다. 그는 자국을 영국과 프랑스와 동급인 세계 열강으로 키우고자 하는 야심을 품고 있었고 그러기 위해서는 해외에서의 식민지 건설을 추진하고 이를 수반할 막강한 해군력이 필요했다. 그러나 육군의 건설까지 상당부분 희생하면서까지 해군을 야심차게 증강하고자 하는 빌헬름 2세의 계획은 소 몰트케, 슐리펜, 발더제 등의 육군 출신 군 수뇌부의 강한 반발에 부딪히게 되었다. 그러자 빌헬름 2세는 해군 증강을 점진적으로 추진하는 방향으로 선회해 반발을 무마할 수 있었다.
1889년, 독일에 해군 내각이 설립되어 육군 내각과 동일한 수준의 힘을 지닐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1890년부터 1894년까지 독일 최초의 전드레드노트급 전함인 브란덴부르크급 전함 4척이 건조된 데 이어서 1895년부터 1901년까지 카이저 프리드리히 3세급 전함 5척이 건조되면서 독일 해군의 규모는 커져갔다. 또한 해군 원수인 알프레트 폰 티르피츠 제국해군청 해군 장관의 뛰어난 정치력과 더불어 빌헬름 2세의 동생이자 해군 원수인 하인리히 폰 프로이센[2]이 해군 감찰관[3]이 되며 독일 제국군 내 해군의 위상이 매우 높아진다.
순양함 전력도 한층 강화되었다. 1892년에는 독일 해군 최초로 3축 프로펠러를 장착한 방호순양함 카이제린 아우구스타[4]이 취역했고, 이어서 빅토리아 루이제급 방호순양함 5척이 1899년까지 전력화되었다. 그리고 1897년에는 독일 해군 최초의 장갑순양함 퓌르스트 비스마르크가 진수되었다.
이러한 해군 증강을 법적으로 정당화시키는데 크게 공헌한 인물은 앞서 설명한 알프레트 폰 티르피츠 제독이었다. 그는 의회를 설득해 해군 증강을 뒷받침하는 법안들을 통과시켰으며, 1898년에 통과된 최초의 해군 법안은 1904년까지 건조될 전함 19척, 8척의 장갑순양함, 12척의 대형순양함,30척의 경순양함에 대한 정비를 승인하며, 무기한으로 해당 배들을 25년마다 교체할 수 있도록 규정되었다. 또한, 1900년에 통과된 해군 법안은 38척의 전함, 20척의 장갑순양함, 38척의 방호순양함을 할당하도록 했다. 그런데 이 법안에 전반적인 비용 제한이 설정되지 않았다. 그런데 세금으로 충당되는 기존 재정으로는 도저히 진행할 수 없는 계획이었고 독일 제국은 해당 계획을 삭감하기 보다는 막대한 부채로 해결했다.
이러한 과정에 힘입어 독일 제국 해군은 프랑스 해군과 러시아 제국 해군을 뛰어넘을 수준으로 막강한 해군력을 지니게 되었다.[5] 그러나 티르피츠 제독은 만족하지 않았다. 그의 최종 목표는 당대 세계 최강의 영국 해군을 격파하는 것이었다.
2.1. 함대 협회
#독일 제국은 전국민적 차원에서 해군 증강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고, 이런 분위기와 열망을 따라서 1890년대에 함대협회라는 민간단체가 설립되었다. '해군 협회'와 더불어 철강 산업 노동자, 조선소 노동자, 은행원들에 조직된 이 민간단체들은 순식간에 백만이 넘는 회원과 수천개의 지부를 거느린 거대 단체가 되었다. 이들은 주요 지역에서 모금 활동을 전개해 해군에 건함 자금을 조달했으며, 100 마르크 지폐에 전함을 그리거나 건조된 전함이 그려진 엽서를 발행하고 세일러복을 하나의 유행하는 패션으로 정착시켜 대대적인 홍보에 나섰다. 심지어 샴페인에 전함 건조를 위한 특별세까지 부과할 지경이었다.
3. 건함 경쟁
이러한 초당적-전국민적 호응에 힘입어 독일은 1899년부터 1904년 까지 비텔스바흐급 전함 5척을 건조한 데 이어서 브라운슈바이크급 전함 5척이 1901년 부터 1906년까지 건조되었다. 그리고 1908년까지 5척이 건조된 도이칠란트급 전함은 브라운슈바이크급보다 더 향상된 장갑을 지닐 수 있었다.장갑순양함 부분에서도 1900년에 개선형 프린츠 하이드리히가 건조된데 이어 프린츠 아달베르트급 2척,룬급 2척이 1906년까지 건조되었다. 1907년부터 1908년의 기간 동안에는 이보다 개선된 장갑순양함인 샤른호르스트와 그나이제나우가 취역했다. 브레멘급 경순양함 8척이 1907년까지 건조되었고, 독일 해군 최초로 가스터빈을 탑재한 순양함 뤼벡이 1905년에 취역했다.
문제는 이때 영국 해군이 당대 모든 전함들을 그대로 구식으로 만들어버릴 정도의 혁신을 지닌 드레드노트급 전함을 실전배치해 버렸다.
이때 독일인들은 크게 낙담하게 되었다. 드레드노트의 등장으로 독일 제국 해군의 목표였던 영국 해군 전력의 2/3까지 따라잡는건 사실상 실패로 돌아갔을 뿐더러 기존에 건조한 해군 전력으로는 신형 전함들을 연달아 배치할 영국 해군과 대등한 전투를 벌일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영국에 본격적으로 대응하기에는 이미 재정의 60%를 군비에 지출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영국 해군에 본격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선 육군 증강을 희생하면서까지 천문학적인 자금을 지불해야만 했다. 거기에다가 관련 인프라 확장까지 수반한다면 그보다 더 어마어마한 돈이 들게 되었다. 그럼에도 해군 증강에 대한 정부와 전국민적 열망이라는 등쌀에 못이긴 독일 의회는 킬 운하 확장 및 매년 드레드노트급 전함 2척, 순양전함 1척을 건조한다는 내용의 보완법을 통과시켰고, 자그마치 9억 4천만 마르크가 할당되었다.[6]
1907년부터 독일 해군은 본격적인 드레드노트급 전함인 나사우급 전함 4척을 건조하기 시작했으며, 1909년부터는 헬골란트급 전함 4척, 카이저급 전함 5척, 쾨니히급 전함 4척, 바이에른급 전함 2척까지 건조하였다. 순양전함은 1908년에 독일 최초의 순양전함 폰데어탄을 건조하기 시작하면서 몰트케급 순양전함 2척, 순양전함 자이틀리츠, 데어플링어급 순양전함 3척, 경순양함은 1906년부터 드레스덴급 경순양함 2척, 콜베르크급 경순양함 4척. 마그데부르크급 경순양함 4척, 카를스루에급 경순양함 2척, 그라우덴츠급 경순양함 2척, 경순양함 엘빙, 경순양함 필라우를 건조하였다. 또한 신무기인 잠수함 개발에 착수하여 1906년 독일 최초의 U보트 U-1을 시작으로 1914년까지 총 48척이 건조되었으며, 독일의 해군 전력은 영국의 60% 수준 까지 필척하게 되는 수준으로 이어졌다. 이는 티르피츠 제독이 예산을 더 쏟아부으면서 계속 건함 수가 더 확장되도록 유도했기 때문이었다.
4. 몰락
하지만 영국 역시 독일의 급격한 해군 증강에 대항하여 해군 전력을 증강하기 시작하였고 그렇게 두 나라가 건함 경쟁을 벌이는 동안 매년 막대한 예산이 말그대로 허공에 뿌려졌다. 1907년 독일 제국은 건함 예산을 비롯해서 해군 유지비로 2억 9천만 마르크를 소모하였고 다음해인 1908년에는 3억 4700만 마르크를 소모하였다. 이는 동년 독일 제국 전체 예산의 24%에 달했으며 의회에서는 5억 마르크의 적자를 볼 것이라는 예상까지 나왔다. 결국 건함 경쟁으로 소모된 비용으로 인해 1914년까지 독일 제국은 무려 10억 마르크의 부채가 늘어났다. 또 독일과 건함 경쟁을 벌이는 영국은 성능 면에서 우월한 신형 전함을 뽑아내면서도 기술 혁신을 통해 독일에 비해 훨씬 저렴한 가격으로 전함을 뽑아냈다. 총체적으로 볼 때 독일 배가 영국 배에 비해 30% 정도 더 비싼 수준이었다.급격하게 늘어나는 재정 적자에 의회에서 해군력 증강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으며 현장에서도 재원과 승조원 부족으로 불만이 터져나왔다. 그러거나 말거나 티르피츠와 해군은 건함 경쟁을 계속하며 의회에 인원과 예산 증강을 요구했다. 결국 1912년 총선에서 군사적 팽창주의에 반대하는 사민당이 승리하면서 전체 예산에서 해군이 차지하는 비중이 1911년 35%에서 1913년 25%로 줄기 시작했다.[7] 결국 티르피츠는 1913년에 영국이 원하는 비율에 만족한다고 선언하면서 건함 경쟁은 영국의 우위로 끝났으나, 영국도 재정적으로 여유로운 상황은 아니었다.
그리고 이렇게 비싼 돈을 들여서 세계 2위 수준으로 뛰어오른 독일 해군은 정작 제1차 세계 대전이 벌어지자 막강한 해군이라는 환상이 무참히 깨지게 된다. 독일 해군은 영국 해군과 맞붙을 때마다 잇달아 참패했으며, 결국 독일 해군은 주력을 함부로 소모하지 않기 위해 항구에 대부분의 전력을 보존하는 현존함대전략을 취하게 된다. 유틀란트 해전에서 영국의 전함 몇 척을 격침시키는 큰 승리를 거머쥐기도 했으며, 무제한 잠수함 작전으로 영국 해군에 큰 피해를 입히긴 했지만 근본적으로 제해권을 영국으로부터 가져오는데는 실패했으며 특히 후자의 경우는 미국이 협상국 편으로 참전하게 만드는 결정적 계기를 만들게 되어 독일 제국의 몰락만 앞당기게 되었다.
반면, 러시아 제국 해군을 상대할 시 독일 제국 해군은 우위의 전력을 지니긴 했다.[8] 1917년 리가에서 벌어진 해전에서 쾨니히급 전함이 러시아 제국 해군의 전드레드노트급 전함 슬라바를 격침시키는 큰 피해도 입히기도 했지만, 이미 협상국 측의 해군력은 독일을 압도하고 있었고 따라서 이는 거의 무의미한 승리였다.
1918년, 패전 직전에 몰린 독일 수뇌부는 최후의 발악으로 자국 해군에 대한 출항 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이는 자살에 가까운 명령이라는 건 말단 수병 조차도 아는 사실이었고 독일 수뇌부에 대한 분노를 품게 된 독일 해군 수병들은 킬 군항에서 반란을 일으키게 되었다! 이는 전국적인 혁명으로 확산되었고 결국 빌헬름 2세는 자기가 야심차게 양성한 그 해군에 의해 네덜란드로 쫒겨나게 되는 운명을 맞이하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제1차 세계 대전은 독일의 패배로 끝났고, 독일 제국은 멸망했다.
1919년, 상당부분 전력이 온전히 보존된 독일 제국 해군의 전력들을 두고 영국과 프랑스를 위시로 한 열강들은 입맛을 다시고 있었다. 이 전력들을 배상함으로 넘겨받으면 전쟁 때문에 이루지 못한 해군 전력 증강을 단번에 해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9] 그런데 영국 해군에 억류된 채 이동중이던 거대한 독일의 대양함대가 스캐퍼플로 해상에서 급작스럽게 가라앉기 시작했다. 열강들의 의도를 눈치챈 루트비히 폰 로이터 제독이 적국들에게 자국의 함선들을 넘겨주지 않겠다는 의도로 자침 작전을 수행했기 때문이었다. 그 결과 전함 11척과 순양전함 5척, 순양함 5척, 구축함 50척이 동시에 자침해 세계 2위의 독일 제국 해군은 완전히 소멸했다. 그리고 바이마르 공화국의 경제 혼란에 이어 대공황으로 인해 남아있던 전력마저 온전히 유지할 수 없는 구닥다리 폐품 처지가 되어버렸고, 독일 제국 해군이 그동안 쌓아 올렸던 설계 인프라와 숙련공들도 완전히 소실해버렸다.
그 여파는 현대까지 미치게 되었다. 나치 독일의 크릭스마리네는 당장 독일 제국 해군의 소멸의 영향을 받아 제대로 된 규모의 대형함과 중소형 전투함들을 육성하지 못해 주로 U보트로 통상파괴전을 벌이는 수준에 머물다 결국 연합국으로부터 제해권을 빼앗는데 실패했으며 냉전시대의 독일 연방군은 최전선에서 소련 주도 바르샤바 조약군 주력 부대를 방어해야 하는 역할을 맡았기 때문에 육군과 공군, 해군 항공대 위주로 전력이 증강되어 해군의 수상함과 잠수함 전력은 대양에서 소련 해군과 정면으로 전투를 수행할 수 없었다.[10][11] 그리고 현대의 독일 해군은 군축의 여파로 인해 큰 전투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으며, 경항공모함이나 이지스 구축함은 커녕 바덴-뷔르템베르크급 호위함이라는 희대의 깡통배를 배출하고 있는 형국이다.
5. 매체에서
1차 대전의 주역이었던 육군에 비하면, 매체에서의 등장은 극히 드문 편이다.라파예트 비행대를 다룬 영화인 라파예트에서는 이들 소속의 비행선 폭격대가 등장하며, 이들을 막기 위해 비행대원이 자폭 충돌을 감행한다.
원더우먼에선 스티브 트레버를 찾다가 우연히 데미스키라에 당도한다. 그러나 배가 알 수 없는 이유로 좌초되고, 상륙한 병력들은 아마존 여전사들과 교전하다가 전멸한다.
멸망한 짐승들의 바다에선 크릭스마리네 소속 유보트가 심해에 가라앉아 버린 이들의 유산을 잠시 마주친다. 평소 전함을 구닥다리로 폄하하기 바빴던 유보트 대원들도 숙연해지는 게 압권.
SMS 엠덴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 엠덴의 남자들은 칭다오에서 주둔하고 있던 독일 제국 해군의 시점으로 전개되는데, 전쟁 당시의 카이저마리네가 어떤 고난을 겪었는지 엿볼 수 있다. [12]
북경의 55일에선 독일 제국 해군 소속의 해병대가 연합군의 일원으로 등장한다.
6. 관련 문서
독일 제국 해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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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선 | 틀:1차 세계대전/독일군 함선 | ||
관련 인물 | 알프레트 폰 티르피츠 | 빌헬름 2세 | 아달베르트 폰 프로이센 | 막시밀리안 폰 슈페 | 후고 폰 폴 | 라인하르트 셰어 | 프란츠 폰 히퍼 | 루트비히 폰 로이터 | 헤닝 폰 홀첸도르프 | 알베르트 빌헬름 하인리히 | 헬무트 폰 뮈케 | ||
작전 | 무제한 잠수함 작전 | 인도양 통상파괴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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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수함 U-Boote | U보트 | ||
항공모함 | |||
경순양함 Kleiner Kreuzer | 코모란급, 클라스 플레밍급, 카이제린 아우구스타, 빅토리아 루이제급 | ||
헬라, 가젤급, 브레멘급, 쾨니히스베르크급(1905), 드레스덴급, 노틸러스급, 콜베르크급, 마그데부르크급, 카를스루에급, 그라우덴츠급, 필라우급, 비스바덴급, 쾨니히스베르크급(1915), 브루머급, 쾰른급 | |||
대형순양함 Großer Kreuzer | 퓌르스트 비스마르크, 프린츠 하인리히, 프린츠 아달베르트급, 론급, 샤른호르스트급, 블뤼허 | ||
폰 데어 탄급, 몰트케급, 자이틀리츠급, 데어플링어급, | |||
전열함/ 대형전열함 Linienschiffe/ Großlinienschiffe | 브란덴부르크급, 카이저 프리드리히 3세급, 비텔스바흐급, 브라운슈바이크급, 도이칠란트급 | ||
나사우급, 헬골란트급, 카이저급, 쾨니히급 | |||
바이에른급, | |||
기타 | 지아들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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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본국과 식민지간 연락 및 경비 임무 등에 종사하는 함정을 일컫는다.[2] 형이었던 빌헬름 2세와는 다르게 군사적 역량이 뛰어난 인물[3] 독일 제국 해군의 전반적인 운영, 훈련과 장비 상태를 최종 감독하고, 해군 내 전략적 조언과 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핵심적 직위이다.[4] 실험적 성격도 강해서 단 1척밖에 건조되지 않았다.[5] 당대 프랑스 해군은 청년학파의 영향으로 볼품없는 연안해군으로 전락했으며, 러시아 해군은 독일 해군보다 더 많은 전투함을 뽑을 수 있는 국력도 되지 않았고 러시아 해군의 자랑거리였던 발트 함대도 러일전쟁으로 날려먹으면서 타격도 컸다.[6] 여기에 각종 어뢰정과 순양함을 건조하는 비용까지 합하면 당시 독일 제국 총생산의 30%~40%가 해군에 집중되었다.[7] 물론 이것은 유럽에서 조만간 벌어진 대규모 지상전의 분위기가 무르익으면서 예산이 육군 쪽으로 돌려진 측면도 있었다.[8] 러일전쟁 당시 이미 주력이 크게 박살난 상황이기도 했었고, 러시아 제국 내부 사정으로 인해 해군 전력 증강도 다른 열강들에 비해 지지부진했다.[9] 특히 건함 계획이 엎어진 프랑스 입장에서는 독일 군함을 넘겨받으면 확실히 이득이었다. 반면 13.5인치 이상의 공방능력을 갖춘 슈퍼 드레드노트급 전함이 득실거리던 영국 입장에서는 바이에른급을 제외하면 그리 아쉽지는 않은 전력이었다.[10] 서독 해군의 주 목표는 나토 해군 보조 또는 2선급의 소련 발트함대 저지였다.[11] 또한, 덴마크가 존재하는 덕에 독일은 더 이상 대양으로 진출할 필요성이 없어지게 되었다.[12] 갑작스러운 카이저의 전쟁 선포 및 본국 귀환 명령으로 식민지는 일본 제국을 비롯한 적국들에게 점령당하고, 영국 해군 때문에 바닷길은 막혀있고, 어찌해서 땅을 밟아도 귀환해야 할 조국은 하필 유럽 대륙 한가운데에 있어서 죽어라 행군해야 하는, 말 그대로 총체적 난국이 뭔지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