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0-14 23:28:35

코시나카 시로

파일:코시나카시로프로필.webp
링네임 越中 詩郎
サムライ シロー[1]
본명 越中 詩郎
생년월일 1958년 9월 3일 ([age(1958-09-03)]세)
출신지
[[일본|]][[틀:국기|]][[틀:국기|]] 도쿄도 고토구
신장 185cm
체중 105kg
별명 侍戦士[2]
孤高の侍[3]
ド演歌ファイター[4]
エッチューさん[5]
유형 테크니션 + 올라운더
주요 커리어 NWA 인터내셔널 태그팀 챔피언 1회
AJPW 루 테즈 컵 리그 우승 (1983년)
IWGP 주니어 헤비웨이트 챔피언 3회
IWGP 태그팀 챔피언 3회
TOP OF THE SUPER Jr. 우승 (1988년)
NJPW 뉴 이어즈 태그팀 토너먼트 우승 (1990년)
NJPW 원 나잇 태그팀 토너먼트 우승 (1996년)
WAR 월드 6인 태그팀 챔피언 1회
KO-D 태그팀 챔피언 1회
피니쉬 무브 힙어택
사무라이 파워밤
사무라이 드리이버 '84[6]
월중식 재패니즈 레그롤 클러치
저먼 수플렉스
드래곤 수플렉스
머슬 버스터
파일드라이버
카와즈오토시[7]
테마곡 SAMURAI
FORTUNE
バイオレント・サタデーのテーマ

1. 개요2. 커리어3. 기타4. 둘러보기

1. 개요

일본프로레슬러.

2. 커리어

초등학교 시절 당시 TV로 본 프로레슬링 경기를 통해 충돌의 박력에 아이 마음에 압도되었고, 중학교때 전일본 프로레슬링을 보고 프로레슬링 팬이 되었다.

고등학교 졸업 후 전기공사 관련 회사에 취직해도 프로레슬러의 꿈은 포기할 수 없어 고등학교 시절 야구부 감독으로부터 레슬링 감독을 통해 자이언트 바바를 소개받고 견습을 거쳐 1978년 7월 전일본 프로레슬링에 입문한다.[8] 훈련기간 중에는 점보 츠루타에게 훈련을 받아 수동을 매일 500개 가까이 잡고 기초 팔굽혀펴기나 스쿼트를 해냈다.[9] 입문을 정식으로 인정받고 데뷔전을 가지며 소노다 카즈하루와 경기를 갖지만 패한다. 1개월이나 2개월 경과했을 무렵, 당시 순업으로 매일같이 개최된 배틀로얄에 출전하고, 모모타 요시히로로부터 슈즈를 빌려 출전한 이 배틀로얄에서는, 단지 얻어맞고 내동댕이쳐졌을 뿐이었다,

줄곧 싱글 연패를 하다가 1981년 2월 19일에 벌어진 경기에서 입문한지 늦은 고토 마사지를 상대로 승리를 거두며 연패에서 탈출한다.

전일본 프로레슬링에서 활동하던 중 멕시코 원정을 가게되면서 링네임을 사무라이 시로로 활동했었고, 사카구치 세이지의 권유로 신일본 프로레슬링으로 이적한다.[10] 아직까지 챔피언 벨트 한번 따보지 못한 코시나카 시로는 1986년에 코브라를 상대로 승리를 거둬 IWGP 주니어 헤비웨이트 챔피언에 등극한다. 이후로 타카다 노부히코와 대립을 형성하며 패해 챔피언 벨트를 뺏기다가 재도전해 탈환하며 통산 2회를 기록한다.

1987년에 공석이 된 태그팀 챔피언 자리를 두고 무토 케이지와 팀을 이뤄 리그에 출전해 결승전에서 타카다 노부히코 & 마에다 아키라를 상대로 승리를 거두며 새로운 IWGP 태그팀 챔피언에 오른다.

신일본 프로레슬링에서 활동하면서 해외에서도 경기를 가지고, 다른 단체들과도 잠시 연을 맺는다.

2003년 1월에 신일본 프로레슬링과의 계약만료로 인헤 퇴단하고, 그 후로도 FA 신분으로 신일븐 프로레슬링을 포함해서 전일본 프로레슬링에서도 경기를 갖는다.

WJ에서도 경기를 갖고, 프로레슬링 NOAH, ZERO-1에서도 활동하다가 2007년에 멕시코의 CMLL에서도 경기를 가진다. FA 신분이라 일본에 있는 프로레슬링 단체에는 어디에든 출연이 가능했고, DDT 프로레슬링에서 6인 태그팀 챔피언 경력을 만든 후로는 챔피언 벨트를 따내지 못하고 다닌다.

그 후 레슬링 돈타쿠 2022에서 타카기 신고, BUSHI와 팀을 이뤄 스즈키 군(잭 세이버 주니어, 타이치, 타카 미치노쿠) 태그팀 경기를 치르기로 한 후지나미 타츠미가 코로나 19로 인해 출전이 불가능 해지면서 그를 대신해 출전하여 경기장에 나오는데 63세의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정정한 모습 및 노익장의 면모를 보이는데 경기는 타카기가 허를 찔려 패배하였다. 경기 후 같은 팀 선수들 및 관중들의 호응을 받고 퇴장하였다.

2022년 12월 1일, 드라디션에서 DRAGON EXPO 1971이라는 명칭으로 후지나미 타츠미 데뷔 50주년 흥행 경기를 하는데 본인도 출연하여 AKIRA, 신자키 진세이와 함께 모치즈키 마사아키, 타카이와 타츠히토, 다나카 마사토를 상대하여 다시 한번 정정한 모습을 보이고 경기 또한 승리하였다. 경기 후 관중의 호응을 받고 퇴장하였다.

2024년 8월 24일에 전일본 프로레슬링에서 코시나카 시로의 데뷔 45주년 기념 대회가 열리면서 코시나카 시로는 아오야기 유마 & 타구치 류스케 & 마시모 켄고와 팀을 이뤄 스와마 & 아시노 쇼타로 & 타치바나 세이고 & 쿠로시오TOKYO재팬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고, 경기 후 몇몇레슬러들이 등장해 코시나카 시로를 축하해준다.

3. 기타

  • 자이언트 바바 & 소노다 카즈하루(하루 소노다) & 사카구치 세이지의 제자이다.
  • 중학교 시절에는 음악에도 열중하고 있었지만, 곡 만들기에 필요한 좋은 아이디어가 나오지 않아 음악의 길은 단념했다.
  • 고등학교 시절에는 야구부에 들어가 2년째는 퍼스트, 3년째는 포수와 레귤러가 되어도 고시엔에 갈 수 없었고, 야구는 단체 경기라서 코시나카 시로는 자기 혼자 경기를 치러 스스로 경기를 책임지는 것을 하고 싶다는 월중의 지향에는 부합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 다인실 시절에 별로 좋아하지 않는 술에 어울려 술에 취해 날뛰는 동료들과 같은 장소에 있게 되었고, 몸집을 키우기 위해 선배의 명령으로 여관 밥통을 무리하게 먹은 것 등 스케줄도 가혹해 심할 때 히로시마 흥행이 끝난 다음날 아키타 링에 오르기도 했다. 데뷔하고 나서라고는 하지만 탈영하고 싶은 일이 몇 번이나 있어, 역의 홈에서 '이동의 전철을 기다릴 때에, 도쿄로 도망가면 얼마나 편할까'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지만 도망치자마자 발견될 것이 뻔했기 때문에 실제로는 탈주에 이르지 못했다고 했다.
  • 점보 츠루타가 퇴숙사했을 당시에 선배의 상당수가 해외원정을 가버려 선배들로부터 기숙사를 정리해 달라는 말을 들었고,그 월중에도 잠시동안 목표없이 자이언트 바바를 따라다녔는데 체중 100㎏에 달하면 해외원정을 보내주겠다고 자이언트 바바로부터 약속받고 그를 향해 정진했다.
  • 프로레슬러 중에서는 양식이 있는 상식인으로 알려져 있다.

4. 둘러보기

파일:프로레슬링 옵저버 로고.png레슬링 옵저버 선정 5성 경기 [★]
1987년
3월 20일
신일본 프로레슬링
스프링 플레어 업
IWGP 태그팀 챔피언십 결정 도전자 결정전
무토 케이지 & 코시나카 시로(O) vs 마에다 아키라 & 타카다 노부히코(X)
파일:프로레스대상 로고.svg 도쿄 스포츠 프로레슬링 대상 노력상
이시카와 타카시
마에다 아키라
애니멀 하마구치
(1981)
후지와라 요시아키
코시나카 시로
(1982)
후치 마사노부
타카다 노부히코
(1983)
도쿄 스포츠 프로레슬링 대상 최우수 태그팀 상
학용 콤비
(점보 츠루타 & 텐류 겐이치로)
(1983 & 1985)
월경 태그
(타카다 노부히코 & 코시나카 시로)
(1986)
류겐포
(텐류 겐이치로 & 아슈라 하라)
(1987)
초세대군
(미사와 미츠하루 & 카와다 토시아키)
(1991)
반선수회동맹
(사이토 아키토시, 키무라 켄고,
아오야기 마사시, 코시나카 시로)
(1992)
초세대군
(코바시 켄타 & 미사와 미츠하루)
(1993 & 1994)


[1] 사무라이 시로[2] 사무라이 전사[3] 고고한 사무라이[4] 도엔카 파이터. 당시 신일본 프로레슬링 TV 중계 담당 아나운서인 후루타치 이치로(피셔맨즈 수플렉스의 이름을 붙인 사람이기도 하다.)가 붙인 별명으로, 후루타치는 당시 코시나카의 라이벌이었던 타카다 노부히코에 대해선 타카다의 상쾌하고 세련된 이미지에서 뜻은 좀 불명이지만 '청춘의 에스페란사'라고 불렀던 반면, 생김새나 기술이나 조금 투박하지만 마음에 와닿는 싸움을 하던 코시나카에게는 구수한 이미지의 '엔카'를 붙여 '도엔카 파이터'라는 별명을 캐치프레이즈로 밀어줬다.[5] 엣츄 씨. '越中'라는 성씨는 '코시나카'라고도 읽을 수 있고 '엣츄'라고 읽을 수도 있어서 생긴 별명이다.[6] 변형 피셔맨 버스터.[7] 河津落とし. 자신의 오른발을 상대방의 왼발에 걸고 어깨를 잡아 뒤로 넘어뜨리는 기술. 개구리 떨구기라고도 하며 러시안 레그스윕과 거의 유사하다.(설정상 러시안 레그스윕이 카와즈오토시에서 파생된 기술이라고 한다.) 역도산이 루 테즈의 백드롭에 대항하기 위해 개발했다는 기술로 코시나카 시로는 이 기술을 자이언트 바바로부터 전수받았다.[8] 야구부 감독과 상의하기로 결심했을 때는 '못할 것이다'라고 도장에의 소개를 거부당한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 생각을 털어놓자 감독도 과거 프로레슬러 지망생이었기 때문에 꿈을 응원해 주었다.[9] 혹독한 연습이었지만 모처럼 감독에게 소개받은 앞으로 내던질 수는 없어 평생의 일이라고 생각하고 가족의 반대를 무릅쓰고 뛰어든 이상 해내기로 했다고 한다.[10] 1985년 당시에 같이 원정갔던 미사와 미츠하루는 바바의 호출로 일본에 복귀하며 1990년까지 타이거 마스크로 활약하게 된다.[★] 밑줄이 승리자. 다자간 매치의 경우 이름 옆 (O)가 핀폴자, (X)가 피핀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