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1-25 14:01:52

크리스 베어드

크리스 베어드의 역임 직책
{{{#!folding [ 펼치기 · 접기 ] 더비 카운티 FC 역대 주장
리차드 키오
(2013~2015)
크리스 베어드
(2015)
리차드 키오
(2016~2018)
}}} ||
파일:Baird_Profile_1.jpg
이름 크리스 베어드
Chris Baird
본명 크리스토퍼 패트릭 베어드
Christopher Patrick Baird
출생 1982년 2월 25일 ([age(1982-02-25)]세) /
영국 북아일랜드 앤트림 주 라샤킨
국적
[[북아일랜드|]][[틀:국기|]][[틀:국기|]]
신체 185cm
포지션 수비수[1]
소속 선수 밸리미나 유나이티드 FC ( ~1998 / 유스)
사우스햄튼 FC (1998~2001 / 유스)
사우스햄튼 FC (2001~2007)
월솔 FC (2003 / 임대)
왓퍼드 FC (2004 / 유스)
풀럼 FC (2007~2013)
레딩 FC (2013~2014)
번리 FC (2014)
웨스트 브로미치 알비온 (2014~2015)
더비 카운티 (2015~2018)
풀럼 FC (2016 / 임대)
국가대표 파일:북아일랜드 축구 국가대표팀 로고.svg 79경기 (북아일랜드 / 2003~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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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파일:Baird_Fullham_1.jpg

북아일랜드의 前 축구선수.

2000년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무대에서 오랜기간 활약하며 경쟁력을 발휘해온 북아일랜드 출신 수비수였다. 비록 화려하거나 눈에 띄지는 않았으나 수준급의 수비력, 성실한 플레이와 함께 무엇보다 수비 전 지역을 포함하여 수비형 미드필더와 중앙 미드필더까지 소화가능한 범용성이 그의 대표적인 장점이었으며 전술적인 이해도가 뛰어나 많은 감독들이 선호했던 선수였다.

2. 클럽 경력

2.1. 사우스햄튼 FC

베어드는 북아일랜드의 라샤킨 출신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지역 유스팀을 거친 뒤 수많은 명선수를 배출한 사우스햄튼 FC 아카데미에 입단한다. 그는 2002년에 프로 계약을 채결했고 이듬해 3월 22일, 아스톤 빌라전에 데이비드 프루톤 대신 교체 투입되며 1군 데뷔전을 치루게 된다. 이후 2경기 더 출전한 베어드는 2003년 5월 17일, 아스날과의 잉글랜드 결승전에서는 깜짝 선발출전을 한다. 비록 팀은 0:1로 패했으나 베어드는 어린 나이 답지 않게 큰 경기에서도 쫄지 않고 패기넘치는 수비를 선보이며 팬들이 뽑은 소튼 Man of the Match에 선정되기도 했다.

그러나 아직은 경험이 일천했던 베어드는 당장 레귤러 멤버로 자리 잡을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고, 월솔 FC왓포드 FC로 두 차례 임대를 통해 프로 무대 경험을 쌓는다. 2004-05 시즌을 앞두고 베어드는 새 감독인 폴 스터록 아래에서 출전 기회를 보장 받지 못한다면 팀을 떠나겠다고 선언한다. 그럼에도 7월 1일, 팀과 재계약을 맺었고 감독의 1군 보장 약속에도 불구하고 스웨덴에서 열리는 프리시즌 스쿼드에 제외된다. 결국 다시 왓포드로 이적할 예정이었지만 새 감독인 해리 레드냅의 반대로 인해 무산되었고 시즌 내내 베어드는 1군 무대에 볼 수 없었다. 그리고 팀은 2부리그로 강등당한다.

출전 보장을 받지 못한 베어드는 임대를 통해서라도 출전 경험을 쌓고 싶다며 레드냅 감독에게 피력했으나 거절됐고 그가 포츠머스 FC 감독의 지휘봉을 잡고 나서야 베어드는 정기적인 경기출전을 할 수 있었다. 2006-07 시즌에는 첫 풀타임 시즌을 완벽하게 마무리했다. 그리고 그의 활약상을 본 프리미어리그의 풀럼 FC이 250만 파운드를 제의했으나 거절당한다. 이에 그는 이적 요청서를 제출하며 이적 의지를 피력했고 결국 밀당끝에 350만 파운드의 이적료로 풀럼에 합류한다.

2.2. 풀럼 FC

팀에 합류한 베어드는 대표팀 시절 감독과 선수로 인연을 맺었던 로리 산체스의 신뢰를 듬뿍받으며 초반에는 주전으로 활약한다. 그러나 은사 산체스의 경질 이후 로이 호지슨이 부임하고 나서부터는 부상과 경쟁에서 밀리며 2008년 2월 9일, 26라운드 미들즈브러전 이후 단 한경기도 나오지 못했다. 시즌을 마치고 레인저스 FC와 이적링크가 떴으나 실제로 성사되지는 않았다.

2009-10 시즌을 앞두고 베어드는 기존의 34번에서 6번으로 등번호를 변경했다. 또한 호지슨 감독이 그의 다재다능함을 이끌어내며 시즌 내내 여러 포지션에서 활약할 기회를 주었다. 존 페인실이 부상으로 빠질 시에는 라이트백으로, 브레데 항엘란이나 에런 휴스의 부재시에는 센터백으로 출전했으며 때에 따라서는 수비형 미드필더로 출전하며 만능 유틸리티맨으로 정기적인 출전 기회를 쌓아갔다. 그는 어느 위치에 뛰든 간에 백퍼센트 역량을 발휘하였고 유럽대장전 무대에서 상승세를 이끄는 주역으로 거듭난다. 급기야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와의 UEFA 컵 결승전에서는 페인실을 밀어내고 라이트백으로 출전하기도 했다. 몰론 팀은 연장 접전끝에 1:2로 패하며 아쉽게 준우승에 물렀다.

다음 시즌에도 베어드는 전천후 플레이어로 많은 기회를 받았지만 이듬해 마틴 욜이 부임한 이후 라이트백 자리에는 아일랜드 대표팀의 스티븐 켈리를 신임하게 되면서 그의 입지에도 위기가 오기 시작한다. 그러나 다재다능함을 바탕으로 여전히 땜방용으로는 훌륭한 자원이었기 때문에 로테이션 멤버로 활약할 수 있었다. 2012-13 시즌에도 상황은 마찬가지였고 중앙 미드필더, 라이트백을 오가며 로테이션 멤버로 뛰다가 시즌 종료 후 팀에서 방출되었다.

2.3. 레딩 FC

2013년 9월 20일, 풀럼에서 방출된 베어드는 레딩 FC와 2014년 1월까지 유효한 단기계약을 맺었다. 그리고 바로 다음 날 더비 카운티와의 리그전에 선발로 출전하며 첫 경기를 가졌다. 11월 9일 퀸즈 파크 레인저스전에서는 어시스트까지 기록한다. 그러나 몇주 뒤 발목 부상으로 전력에서 이탈했고 2014년 1월 20일, 계약만료로 팀을 떠났다.

2.4. 번리 FC

그는 팀에서 나온지 2달만에 번리 FC와 이번 시즌 종료까지 계약한다. 계약 채결 이틀 뒤, 찰튼 애슬레틱전에 라이트백으로 선발 출전하여 3:0 완승을 이끌며 기분 좋게 데뷔전을 마쳤다. 경기 후 가진 인터뷰에서 오랜만에 실전경기를 뛴 탓에 피곤했지만 승리를 거둠으로서 행복했고 피치에 복귀한 것도 정말 기쁘다고 말했다. 이후 베어드는 많은 경기를 출전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팀의 1부리그 승격에 부분적으로 기여했다.

2.5. 웨스트 브로미치 알비온

잔류를 원하던 번리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베어드는 베테랑을 필요로 했던 프리미어리그의 WBA에 입단한다. 시즌 초중반까지는 부상과 주전 경쟁에서 밀린 이유로 많은 출전 기회를 잡지는 못했지만 후반기부터는 여러 포지션을 소화하면서 경기 수를 늘려갔고 마지막 4경기동안에는 수비형 미드필더로 출전하기도 했다. 시즌 종료 후 팀은 베어드를 방출한다고 발표한다.

2.6. 더비 카운티

2015년 6월, 웨스트 브롬을 떠난 후 베어드는 EFL 챔피언십더비 카운티와 2년 계약을 채결한다.

그는 새로 부임한 폴 클레멘트의 신임을 받으며 기존의 리차드 키오 대신 주장으로 선임되었다. 베어드를 주장으로 선임한 이유에 대해 클레멘트 감독은 책임감과 훌륭한 자질을 가졌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러한 전폭적인 신임에도 불구하고 고질적인 부상이 다시 한번 발목을 잡았고 복귀 후에도 경쟁에서 밀리며 하반기에는 친정팀인 풀럼으로 임대를 다녀오기도 하였다.

더비에서의 두번째 시즌에는 모처럼 부상없이 건강하게 시즌을 보내며 리그 33경기에 출전하였다. 이후 2017-18 시즌에도 라이트백과 레프트백, 센터백을 오가며 활약했고 시즌 종료 후 은퇴를 선언했다.

3. 국가대표 경력

2003년 6월 2일, 이탈리아와 친선경기에서 데뷔전을 치룬 베어드는 오랫동안 대표팀의 일원으로 함께했다. 그러나 팀의 아쉬운 행보로 34살에 참가한 UEFA 유로 2016이 유일한 국제 메이저대회였다. 폴란드와의 1차전에서 선발 출전한 이후에는 쭉 벤치를 지켰고 대회 후 국가대표 은퇴를 선언했다.


[1] 주 포지션은 센터백이지만 풀백, 수비형 미드필더, 중앙 미드필더도 가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