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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아랍어 طرفاية베르베르어 ⵟⵔⴼⴰⵢⴰ
영어,스페인어 Tarfaya
모로코 남부의 도시. 엘아이운에서 북쪽으로 80km, 탄탄에서 서남쪽으로 180km 떨어진 해안에 위치한다. 인구 약 8천의 소도시지만, 스페인령 모로코 시기 카보 주비 식민지의 중심지이던 비야 벤스였다.
동남쪽으로 20km 떨어진 세브카 타흐는 해발 -55m의 저지대인데, 1877년 스코틀랜드의 학자 도널드 맥켄지는 이곳을 통해 바닷물을 끌어와 사하라 사막을 다시 내해로 만들자는 제안을 하기도 하였다.
2. 역사
스페인령 모로코의 남부를 이루는 주디 곶의 타르파야
16세기 스페인 인들이 동쪽 50km 지점의 석호 연안에 산타 크루즈 델라 마르 페케냐 요새를 세웠는데, 1524년 사드 왕조에게 축출되었다. 이후 요새의 위치를 망각한 스페인 인들은 1860년 스페인-모로코 전쟁 후 체결한 와드 라스 조약으로 술탄에게서 옛 요새 지역의 할양 약속을 받아내었고, 1877년 (원 위치에서 북쪽으로 400km 가량 떨어진) 이프니 지역으로 단정지었다.
2.1. 근현대
썰물 때가 되면 육지와 이어지는 카사 델 마르
알라위 왕조가 쇠퇴하던 19세기 무렵 일대는 사실상 무주지였다. 그러던 1882년 영국인들이 타르파야 해안을 장악하고 해안에 요새를 세워 포트 빅토리아라 명명하였다. 이에 현지 사흐라위 인들은 알라위 술탄 하산 1세에게 개입을 요청하였고, 1888년 3월 공격을 가하여 수비대장을 죽이고 두 병사에 중상을 입혔다. 결국 영국은 협상을 통해 해당 거점을 하산 1세에게 매각하고 철수하였다. 그리고 1912년, 협상을 통해 스페인은 프랑스에게서 드라 강 남쪽을 할양받아 카보 주비 식민지를 세웠다.
스페인 지배기 비야 벤스 세워진 도시는 탄탄과 함께 카보 주비의 주요 도시 중 하나였다. 1927-28년에 프랑스 작가 생택쥐페리가 이곳에서 머물며 비행 소포를 전달하는 조종사로 일하였다. 이후 그는 타르파야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어린왕자를 집필하였다. 40여년간 스페인령 사하라에 속하던 일대는 1958년 이프니 전쟁에서 이프니 배후지와 함께 모로코에 환원되었다. 독립 후 1975년 11월에는 35만명이 동원된 녹색행군이 이곳에서 시작되었다. 2014년에는 아프리카 최대의 풍력 발전 단지가 세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