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5-03-01 09:17:58

타케츠루 마사타카

<colbgcolor=#000><colcolor=#F0F8FF> 타케츠루 마사타카
竹鶴 政孝 | TAKETSURU MASATAKA
<nopad>파일:TAKETSURU MASATAKA.png
출생 1894년 6월 20일
히로시마현 타케하라
사망 1979년 8월 29일 (향년 85세)
국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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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력 글래스고 대학교 (응용화학과)
오사카고등공업학교 (양조학과)
경력 닛카 위스키(NIKKA WHISKY) 창립
고토부키야 위스키 증류소(KOTOBUKIYA WHISKY DISTILLERY) 건설
배우자 Jessie Roberta Cowan (1920-1961)

1. 개요2. 생애
2.1. 어린 시절과 스코틀랜드 유학
2.1.1. 출생 환경과 학창 시절2.1.2. 스코틀랜드 유학 생활2.1.3. 스코틀랜드인 여성 ‘리타’와의 만남
2.2. 위스키 사업의 시작과 닛카 창립
2.2.1. 셋쓰주조 퇴사와 고토부키야(현 산토리) 합류2.2.2. 홋카이도 요이치(余市)로의 독립
2.3. 코페이 증류기 도입과 미야기쿄 증류소 설립
2.3.1. 코페이 증류기(Coffey Still)의 도입2.3.2. 미야기쿄(宮城峡) 증류소 건설
2.4. 말년
3.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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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반드시 정통 일본 위스키를 만들어 내겠습니다.

日本で本物のウイスキーをつくりたい。

- 타케츠루 마사타카 (닛카 위스키 창립자)

일본기업인.

타케츠루 마사타카(竹鶴 政孝, 1894~1979)는 일본의 위스키 제조사인 닛카 위스키(NIKKA WHISKY)의 설립자이자, ‘일본 위스키의 아버지’로 불리는 그의 별칭에서도 알 수 있듯, 일본 위스키 산업의 기반을 닦은 선구자로 평가받는 인물이다.

그는 일본인 최초로 스코틀랜드에서 위스키 제조 기술을 배워 귀국한 뒤, 일본 최초의 위스키 증류소인 야마자키 증류소 건설을 주도했다. 이후 산토리에서 독립해 닛카 위스키를 창립하고 요이치 증류소, 미야기쿄 증류소 등을 건설하며 일본 위스키 산업을 발전시켰다.
특히 “좋은 위스키를 만드는 특별한 요령은 없습니다. 그저 자연을 공경하고 자연의 은혜를 기다리는 과정일 뿐입니다.” 라는 그의 신념은 닛카 위스키를 운영하는 데 있어 핵심 원동력이 되었다.

2. 생애

2.1. 어린 시절과 스코틀랜드 유학

2.1.1. 출생 환경과 학창 시절

1894년 히로시마현 다케하라 정(現 다케하라 시)에서 사케 양조를 가업으로 삼은 가문에서 태어났다.
파일:TAKETSURU_FAMILY.jpg
타케츠루 마사타카의 유년기

사케 양조장이 놀이 공간이었던 환경에서 자연스레 양조학에 흥미를 가지게 되어, 오사카 공업전문학교(現 오사카대학교)에서 양조학을 전공한다. 하지만 본인은 가업과는 별개로 당시 유행하던 일본식 양주[1]에 관심을 갖게 된다. 졸업 직전인 1916년, 당시 일본식 양주 제조의 1인자였던 셋쓰주조(摂津酒造)에 오사카 공업전문학교 선배의 추천을 통해 입사하며 주류 경력을 시작한다.

2.1.2. 스코틀랜드 유학 생활

1918년, 셋쓰주조가 일본 위스키 사업을 계획하게 된다. 당시 임원이었던 학교 선배의 추천과 타케츠루 마사타카를 눈여겨 본 셋쓰주조 사장의 결정으로 일본인 최초로 스코틀랜드 위스키 유학을 가게 된다. 글래스고 대학교와 로열 테크니컬 칼리지에 청강생으로 등록하여 화학을 전공했지만, 이론만으로는 위스키 제조 과정을 완전히 이해하기 어렵다고 판단해 직접 여러 증류소를 찾아다녔다. 스페이사이드의 롱몬(Longmorn) 증류소에서 몰트 위스키 제조 과정을 배웠다. 이어 보니스(Bo’ness) 지역 증류소에서 코페이 증류기를 활용한 그레인 위스키 생산 방식을 익혔다. 캠벨타운의 헤이즐번(Hazelburn) 증류소에서 몰트 위스키 제조뿐 아니라 블렌딩 기법까지 집중적으로 연구했다. 이때 작성한 기록이 이른바 ‘타케츠루 노트(Taketsuru Notes)’로 알려졌으며, 이후 일본 위스키 산업의 초석이 되었다.
파일:TAKETSURU_20S.jpg
20대 시절의 타케츠루

2.1.3. 스코틀랜드인 여성 ‘리타’와의 만남

1919년 여름 헤이즐번 증류소에서 기술을 익히던 중, 스코틀랜드 여성 리타(Jessie Roberta Cowan)를 만나 문학과 음악 등 공통된 관심사를 바탕으로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주변의 반대를 무릅쓰고 1920년 1월 결혼한 뒤, 같은 해 11월 아내와 함께 일본으로 귀국했다.
파일:TAKETSURU_RITA.jpg
타케츠루(좌), 리타(우)

2.2. 위스키 사업의 시작과 닛카 창립

2.2.1. 셋쓰주조 퇴사와 고토부키야(현 산토리) 합류

귀국 후, 셋쓰주조가 위스키 사업에서 손을 떼자 그는 잠시 화학교사로 일했으며, 아내 리타 또한 영어 교사로 생계를 도왔다. 그러던 중 1923년 6월, 토리이 신지로(鳥井信治郞)가 운영하는 ‘고토부키야(壽屋, 현 산토리)’에서 일본 최초의 위스키 증류소 설립에 대한 청사진을 제시하며, 그를 10년 근로 계약으로 영입했다.
타케츠루 마사타카는 공장장엔지니어로서 고토부키야의 위스키 증류소 건설 프로젝트를 총괄했다. 그는 오사카 지역에서 최적의 장소을 물색하고, 증류기를 일본에서 직접 제작하고 관련 법을 개정하는 등의 갖은 어려움을 극복하였다. 그리하여 1924년 11월, 일본 최초의 몰트 위스키 증류소인 야마자키 증류소가 건설되었다.
당초 그는 스코틀랜드와 유사한 기후 조건을 지닌 홋카이도 지역을 증류소 부지 검토 지역으로 추천했으나, 토리이 신지로가 “소비자에게 공장을 보여주지 않는 제품은 절대 커질 수 없다”라며 대도시 오사카와 가까운 야마자키 지역을 고집하며 의견을 관철하였다고 한다.

2.2.2. 홋카이도 요이치(余市)로의 독립

고토부키야와 10년 계약을 마친 뒤, 타케츠루 마사타카는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홋카이도로 이주한다. 그는 요이치가 스코틀랜드 하이랜드 지방을 연상시키는 서늘한 기후, 맑은 물, 자주 끼는 습한 안개 등 위스키 제조에 최적의 조건을 갖추었다고 판단했다.
그는 먼저 1934년 7월 ‘다이닛폰카주(大日本果汁) 주식회사’[2]를 설립하고, 같은 해 10월에 홋카이도 요이치에 증류소를 건설한다.
위스키가 숙성되기 전까지는 지역 사과를 이용한 주스, , 사이더 등을 판매했지만 큰 호응을 얻지 못해 재정난을 겪었고, 타케츠루 스스로도 이 시기를 “고난의 시기”라고 부를 정도로 어려움을 겪었다.
파일:TAKETSURU_APPLE.jpg
사과로 제품을 만들던 타케츠루

그러나 1940년 6월, 마침내 숙성된 위스키를 완성하였고 ‘닛카 위스키(NIKKA WHISKY)’라는 브랜드로 출시했다. ‘닛카(NIKKA)’는 회사 이름 ‘다이닛폰카주(大日本果汁)’에서 ‘닛(ニッ)’과 ‘카(カ)’를 따온 것이다.

2.3. 코페이 증류기 도입과 미야기쿄 증류소 설립

2.3.1. 코페이 증류기(Coffey Still)의 도입

당시 일본은 위스키 등급 분류 체계에 의거하여 몰트 원액 비율을 특정하고, 거기에 주정을 첨가하는 방식으로 위스키를 규정하고 있었다 이는 위스키 품질을 높이는 데 걸림돌이 되었고, 이를 개선하려 한 타케츠루는 주정에 쓰이는 알콜을 스코틀랜드와 마찬가지로 그레인 위스키를 사용하여 규정 내에서 최상의 블렌디드 위스키를 만들고자 했다.
아사히 맥주의 투자를 받아 1962~1963년 양자인 타케시와 함께 직접 스코틀랜드를 방문하여 코페이 증류기를 구매해 왔다. 이듬해인 1964년 11월, 니시노미야 공장에 코페이 증류기를 설치했고, 1965년 9월에는 일본 최초로 코페이 그레인 위스키를 블렌딩한 개선된 ‘블랙 닛카’를 출시한다.
파일:TAKETSURU_TAKESHI.jpg
양자 타케시(좌), 타케츠루(우)

2.3.2. 미야기쿄(宮城峡) 증류소 건설

1969년 5월, 미야기현 센다이 인근의 숲 속에 미야기쿄 증류소를 건설한다.
그는 요이치 증류소가 당시 스코틀랜드 하이랜드 지방의 묵직하고 스모키한 스타일의 몰트 위스키를 생산했기 때문에, 미야기쿄 증류소에서는 로우랜드 지방의 부드럽고 섬세한 스타일의 몰트 위스키를 생산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이로써 요이치 몰트, 미야기쿄 몰트, 코페이 증류기의 그레인 위스키를 블렌딩하여 스카치 위스키에 부합하는 수준의 일본 고유의 정통 위스키를 만들 수 있는 틀을 완성했다.

2.4. 말년

미야기쿄 증류소 건설 이후에도 타케츠루 마사타카는 닛카 위스키의 품질 관리와 신제품 개발에 꾸준히 힘썼으나, 1979년 폐렴 합병증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요이치의 아내 곁에 묻혀 영면에 들었다. 생전 그가 꿈꾸었던 순수한 몰트 위스키는 ‘퓨어 몰트’라는 이름으로 사후 5년 뒤인 1984년에 출시되었으며, 이후 그의 이름을 딴 ‘타케츠루 퓨어 몰트’ 제품군을 선보이며 닛카 위스키 역사에 타케츠루의 뜻을 기리고 있다.
파일:TAKETSURU_70S.jpg
말년의 타케츠루

3. 평가

타케츠루 마사타카의 생애는 곧 ‘일본 위스키의 역사’로 평가된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의 업적은 더욱 재조명되고 있으며, ‘좋은 위스키’에 대한 그의 신념과 헌신은 유산으로 남아, 오늘날 일본 위스키가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품질을 갖추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또한, 서양의 주류 문화와 동양의 주류 문화가 결합한 상징으로, 스코틀랜드인 아내 리타와의 결혼 생활 역시 일본 위스키 산업의 역사에서 상징적 의미를 갖는다. 그의 유산은 한 시대를 풍미한 역사이자, 후대에도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귀중한 자산으로 남아 있다.


[1] 위스키 맛을 따라한 술[2]닛카 위스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