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2-27 01:26:29

요이치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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닛카 위스키 홋카이도 공장 요이치 증류소

파일:Yoichi_cs.gif
컨트리 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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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uby(余市町, ruby=よいちちょう)]
요이치초 / Yoichi Town
파일:Yoichi_flag.png파일:Yoichi_logo.png
정기(町旗)문장(紋章)
기본 정보
국가일본
지방홋카이도
도도부현홋카이도 시리베시 종합진흥국
면적140.59km²
인구18,356명[1]
정장(町長)사이토 게이스케(齊藤啓輔;
[[무소속(정치)|
무소속
]])
정의회 (18석)
의장(議長)나카이 도시오(中井寿夫;
[[무소속(정치)|
무소속
]])
회파명정회(明政会) (6석 / 33%)
일본 공산당 의원단 (3석 / 17%)
요이치 미래 (3석 / 17%)
공명당 (2석 / 10%)
무소속 (3석 / 17%)
결원[2] (1석 / 6%)
상징
정화사과꽃(リンゴの花)
정목사과나무(リンゴ)
정조갈매기(カモメ)
정어은어(アユ)
홈페이지

1. 개요2. 역사3. 관광지4. 교통5.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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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일본 홋카이도 시리베시 종합진흥국 북부에 위치한 정(町)이다. 오타루시 서쪽에 인접해있다.

샤코탄 반도(積丹半島) 입구에 위치하며 동해와 접하고 있다. 동부의 케나시야마(毛無山)・다이토잔(大登山)・코토잔(小登山), 남부의 겐푸쿠야마(元服山), 서쪽의 텐구다케(天狗岳)・유나이다케(湯内岳) 등이 권역을 둘러싸고있다. 해안도로를 따라 서쪽으로 후루비라초, 동쪽으로 오타루시와 연결되어 있으며 남서쪽 평야는 니키초, 남동쪽 고개는 아카이가와무라로 이어진다. 시가지는 요이치가와(余市川) 하구를 중심으로 형성되어있으며, 해안을 따라 토요하마(豊浜), 토미사와(富沢) 등의 주거지가 있다. 권역의 6~70%는 산지이며, 주거지를 제외하면 대부분 농경지나 과수원이다.

'요이치'라는 지명은 에도 시대부터 쓰였으며, 与市로 쓰기도 했다. 유래에 대해 여러 가지 설이 있는데, 아이누어로 '온천이 있는 곳'을 뜻하는 '유세오치', '눈이 아찔하다'는 뜻의 '이요치', '그것이 많이 있는 곳'을 뜻하는 '이오치(or 이요치)' 등이 거론된다. 참고로 '그것'을 뜻하는 '이'는 혹은 신성시되는 , 등을 직접 부르기 꺼려서 대명사로 칭하는 것이다.

영국(스코틀랜드)의 이스트던바턴셔[3]와 자매결연을, 나라현 고조시, 후쿠시마현 아이즈와카마츠시와 교류관계를 맺고 있다.

2. 역사

조몬 시대부터 사람이 살았던 것으로 보이며, 그 흔적이 후곳페 동굴(フゴッペ洞窟) 등에 남아있다.

한편 이곳에 있던 아이누 마을(코탄; コタン)은 니시에조치(西蝦夷地)[4] 최대 규모였다. 이들을 요이치아이누(ヨイチアイヌ)라고 따로 부르기도 하는데, 다른 지방의 아이누 전승에도 꽤나 큰 세력으로 등장할 정도였다. 1457년 코샤마인의 봉기에 참가하기도 했다.[5] 코샤마인 봉기가 진압되고 난 후 마츠마에 번의 영향력 하에 들어간 것으로 보이며, 1599년에는 초대 번주인 마츠마에 요시히로(松前慶広)가 요이치가와 서안을 카미요이치바쇼(上ヨイチ場所), 동안을 시모요이치바쇼(下ヨイチ場所)로 명명하고 가신들에게 관리를 맡겼다.[6] 한편 요이치아이누도 1669년에 샤쿠샤인 봉기에 참가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어느 정도 세력기반은 유지하고 있던 것으로 보인다. 그 후 1809년에는 막부령에 의해 이와나이로 가는 육로가 만들어졌으며, 1857년에는 이를 오타루까지 연장한다.

1869년에 바쇼청부제가 폐지되면서 개척사 소속 하마나카 출장소(浜中出張所)가 설치되어 관리가 파견되었다. 1871년에는 보신 전쟁에서 털린 아이즈 번사(藩士)들이 일부 이주했고, 1875년에는 개척사가 미국에서 들여온 사과나무 묘목을 농가에 배부했다. 1900년에 1급정촌제가 시행되어 11개 정촌이 합병하여 요이치초가 탄생하였고, 1902년에는 홋카이도 철도에 의해 철도선(現 하코다테 본선)이 부설되고 요이치역이 개업하면서 하코다테오타루로의 접근성이 대폭 향상되었다.

산업 면에서는 야마다무라(山田村)에 도호쿠제국대학 농학부 부속 과수원(1912년)과 은어 인공부화장(1921년)이, 하마나카(浜中)에 홋카이도수산시험장이 들어서면서 1차 산업기술 중심 마을의 모습이 갖춰졌다. 특히 과수원에서의 사과 생산이 활발하여 1934년에는 대일본과즙(大日本果汁) 주식회사가 세워져 사과주스, 사과젤리, 사과와인 등을 판매하기 시작했다.[7] 한편 1933년에는 요이치항의 늘어나는 화물량을 처리하고자 요이치 임항궤도(余市臨港軌道)가 부설되었는데, 화물량이나 여객량이 철도를 요할 정도는 아니었기 때문에 1940년에 철거되었다.

전후 1963년에는 해안선 전체가 니세코샤코탄오타루 해안 국정공원(ニセコ積丹小樽海岸国定公園)으로 지정되었으며, 1969년에는 홋카이 소란 마츠리(北海ソーラン祭り)가 처음 열렸다. 이렇듯 한때 번성했던 곳이었으나, 1980년 이후 인구감소가 지속되어 2014년에 총무성에 의해 과소지역(過疎地域)으로 지정되었다.

3. 관광지

  • 닛카 위스키 홋카이도 공장 요이치 증류소(ニッカウヰスキー北海道工場余市蒸溜所)(홈페이지, 위치(구글 지도))
    • 닛카 위스키가 시작된 증류소. 아직도 전통적인 석탄직화증류(石炭直火蒸溜)방식으로 위스키를 만들고 있다. 건물 일부가 홋카이도유산, 국가등록유형문화재, 근대화산업유산으로 지정되어있다.
    • 개인견학과 단체견학 모두 가능하다. 위스키 공정 일부를 직접 볼 수도 있고, 시음도 가능하다. (단 운전자, 임산부, 미성년자 등에게는 소프트드링크가 제공된다.)
    • 전날 12시까지 인터넷으로 예약해야 한다.[8] 09:00~17:00까지 견학 가능하나, 접수 마감 시간은 15:30이다. 연말연시(12/25~1/7)에는 휴무한다.
    • 견학요금은 무료이다.
    • JR 요이치역에서 한 블록 떨어져 있다. 도보로 2분 정도 걸린다.
  • 촛대바위(ローソク岩)(위치(구글 지도))
    • 토요하마(豊浜) 앞바다에 있는 높이 45m의 바위. 샤코탄 반도의 상징과도 같은 곳이다. 원래는 더 굵고 둥글었으나 1940년에 쓰나미를 맞고 반쪽이 되었다.
    • 전설로는 500년 전에 젊은 어부가 바다의 여신에게 받은 투구와 검을 갖고 마물을 퇴치하러 갔는데, 돌아오지 못하고 투구와 검만 바다 위로 떠올라 바위가 된 것이라고 한다. 이와 별개로 아이누들은 바위를 '카무이 이카시'(カムイ・イカシ), 즉 남신(男神)으로서 숭배했다. 이유는 뭐... 그래서인지 여성이 바위에 올라가면 물고기가 잡히지 않게 된다고 하여 금지했다.
    • JR 요이치역에서 홋카이도츄오버스 샤코탄선(積丹線)을 타고 시오미초(潮見町) 정류장에서 내리면 있는 시마도마리 어항(島泊漁港)에서 볼 수 있다. 원래는 국도 229호가 촛대바위 바로 앞에 있는 타키노마노미사키(滝ノ澗ノ岬) 바로 앞까지 이어졌으나 1997년에 경로상에 있던 제2시라이토터널(第2白糸トンネル)이 붕괴되어 우회 터널이 개통되면서 바다쪽 길은 막혔다.
  • 시리파미사키(シリパ岬)(위치(구글 지도))0
    • 해발 296m의 시리파산(尻場山; シリパ山)이 바다와 만나는 곳에 있는 절벽. 유래가 된 아이누어의 '시르파'(Sir-pa)는 '바다로 튀어나온 산의 머리'라는 뜻이다.
    • 절벽 아래 바다쪽 부분에는 동굴이 있는데, 이곳에 얽힌 전설이 있다. 아내를 잃고 상심에 빠진 채 하루하루를 보내던 젊은 어부가 있었는데, 어느날 물고기를 잡고 돌아오는 길에 시리파미사키 절벽 밑에서 죽었을 터인 아내가 김을 캐고 있는 것으로 보고 놀라 배로 다가갔더니, 아내는 동굴 안으로 도망가 숨어버렸다. 남자는 아내가 그리웠던 나머지 동굴로 따라들어갔는데, 거기에는 망자들만이 사는 부락이 있었다. 그곳에 있던 노인이 어부에게 "여기는 아직 네가 올 곳이 아니다. 빨리 돌아가라."고 호통을 쳐 어부는 쫓기듯 집으로 돌아와버렸다. 그러나 어부는 그 날 이후 정신이 나가버린 듯 하게 되어 일도 하지 않다가 죽어버리고 말았다. 원래도 그 동굴은 마을에서도 두려워하는 곳이었으나, 이 일 이후 '오만루파로', 즉 '저승의 입구'로 불리게 되어 아무도 가까이 가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물론 실제로는 길이 20m 짜리 보통 바다동굴이다. 수면 밑은 또 어떨 지 모르겠지만
    • JR 요이치역에서 홋카이도츄오버스 요이치선(余市線) 혹은 샤코탄선(積丹線)을 타고 토미사와8초메(富沢8丁目) 정류장에서 내려서 북쪽으로 쭉 가다가 요이치 신사(余市神社)를 지나 오르막을 올라가다 보면 주차장이 보이는데, 거기서부터 1시간 정도 등산을 해야 한다. 특히 해안쪽 루트는 일부 구간이 해안절벽을 따라가므로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
    • 여행가서까지 등산하기를 원하지 않는다면(...) 그냥 해질녘에 요이치 시가지에서 바닷가로 나가서 감상하는 방법도 있다.
  • 홋카이 소란 마츠리(北海ソーラン祭り)
    • 매년 7월에 열리는 축제. 소란부시 발상지로서 문화의 계승과 마을의 발전을 기원하는 의미에서 1969년부터 매년 열리고 있다.[9]
    • 지역주민들이 추는 소란오도리(ソーラン踊り), 후네다시(船山車)를 끌고 국도변을 행진하는 모습, 불꽃놀이 등을 볼 수 있다.

4. 교통

JR 홋카이도 하코다테 본선요이치역이 속한다. 2031년에 연장되는 홋카이도 신칸센이 지나갈 예정이지만 역은 없다. 홋카이도 신칸센이 개업하면 요이치역은 폐역되고 오타루역으로 이어지는 버스가 대체 투입될 예정이다.

고속도로는 시리베시자동차도가 지나며, 국도는 5번, 229번이 지나간다. 미치노에키는 스페이스 애플 요이치(スペース・アップルよいち)가 있다.

5. 기타

우주 비행사 모리 마모루가 이곳 출신이다. 그래서인지 국도 휴게소 옆에 "스페이스 돔"이라는 이름의 우주 박물관이 있다.


[1] 주민기본대장 2020년 9월 30일 기준.[2] 요시다 히로카즈(吉田浩一) 정의원이 강제추행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아 의원직 상실 에라이 #[3] 아무래도 두 고장 모두 위스키로 유명하며 이 곳을 위스키의 고장으로 만든 마사타카 타케츠루가 스코틀랜드에서 공부하고 위스키 공부를 이스트던바턴셔 지역 내의 증류소에서 위스키 제조를 배웠다는 점이 큰 역할을 한 듯 하다.[4] 홋카이도를 오시마 반도와 시레토코를 잇는 긴 선으로 나눌 때, 북서쪽 절반을 이름[5] 코샤마인 봉기가 하코다테부터 요이치, 무카와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곳에서 일어나긴 했다.[6] 이러한 제도를 바쇼청부제(場所請負制)라고 부르는데, 농사가 거의 불가능했던 홋카이도의 사정상 다른 번들처럼 고쿠다카(石高) 기반의 봉록을 지급하지 못하는 대신, 바쇼(場所)를 설치하고 그곳에서의 교역권과 어로권을 주는 형태로 봉록을 지급했던 마츠마에 번 고유의 제도였다.[7] 다만 과즙 100% 주스밖에 팔지 않아서 판매량은 저조했다고 한다. 이를 타개하고자 1940년부터 위스키를 만들어 팔기 시작했는데[10], 이것이 지금의 닛카 위스키로 이어진다.[8] 2019년에는 예약 없이 현장 매표로 바로 입장 가능했다. 아마 코로나로 인한 방문객 감소 때문에 확실한 수요를 가늠하기 위한 조치인 것으로 보인다.[9] 단 2020년은 코로나로 인해 취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