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14 14:24:47

타테바야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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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uby(館林市, ruby=たてばやしし)]
타테바야시시 / Tatebayashi C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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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기(市旗)문장(紋章)}}}
기본 정보
국가일본
지방간토
도도부현군마현
면적60.97km²
인구75,023명[1]
시장(市長)다다 요시히로(多田善洋;
[[무소속(정치)|
무소속
]])
시의회 (18석)
의장(議長)노무라 세이조(野村晴三;
[[무소속(정치)|
무소속
]])
회파녹수클럽(緑水クラブ) (7석 / 39%)
공명당 (2석 / 11%)
일본 공산당 (2석 / 11%)
홍지회(虹志会) (2석 / 11%)
타테바야시 클럽 (2석 / 11%)
일심회(一心会) (2석 / 11%)
무소속 (1석 / 6%)
상징
시화철쭉(ヤマツツジ)
시목흑송(クロマツ)
시조흰뺨검둥오리(カルガモ)
홈페이지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800px-TsutsujiTatebayashi.jpg
츠츠지가오카

1. 개요2. 역사3. 교통
3.1. 철도3.2. 도로
4. 관광5. 기타

1. 개요

일본 군마현 동남부, 간토 지방의 정중앙에 위치한 시이다. 시청에서는 군마현 지도를 날아가는 학으로 빗대었고, 타테바야시시는 그 학의 머리 부분에 위치해 있다고 말하고 있다.

북쪽으로 와타라세가와(渡良瀬川), 메이와마치(明和町)를 사이에 두고 남쪽으로는 토네가와(利根川)라는 큰 강들이 흘러 조누마(城沼), 타타라누마(多々良沼), 콘도누마(近藤沼), 모린지누마(茂林寺沼) 등의 많은 늪들이 존재하며 풍부한 수자원과 자연환경으로 이루어져 있어 다양한 동물들의 서식지가 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봄이 되면 진달래, 붓꽃, 피안화 등등의 많은 꽃들이 핀다.

아사쿠사까지 약 70킬로미터로, 도호쿠 자동차도나 도부 철도를 이용하면 약 1시간 만에 갈 수 있으며 때문에 도쿄로 통근하는 사람이 많은 편이다. 또한 당일치기로 오는 사람들도 꽤 있다.

같은 현의 마에바시시도치기현우츠노미야시와는 약 50km 정도 떨어져 있다.

2. 역사

이곳에서도 조몬 시대 당시의 토기나 석기, 유적 등이 발굴되는 것을 보면 적어도 1만 년 전부터 사람이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또 고훈 시대에는 산노야마 고분이라는 유명한 고분이 있고, 시내에 적어도 60개 이상의 고분이 존재한다.

오래 전부터 오라군(邑楽郡)에 속하였고,[2] 헤이안 시대 초기에 만들어진 '엔기시키(延喜式)'에 의하면 원래 이곳은 '오하라키(ヲハラキ)' 또는 '오호하라키(オホハラキ)'라고 불렸던 것을 알 수 있다.[3]

가마쿠라 시대에 이르러서 이곳이 지배되기 시작하는데, 이 곳을 지배한 가문은 사누키 씨(佐貫氏) 일족이었다. 원래 이 사누키 씨는 가마쿠라 막부의 고케닌(御家人)[4]으로서 세력을 모으고 있었지만, 무로마치 시대에 이르러 모기 씨(舞木氏)가 두각을 보이고, 이후 아카이 씨(赤井氏)가 세력을 잡게 된다. 그리고 이 시기쯤 타테바야시라는 이름이 처음 등장하게 된다. 1471년, 막부와 우에스기 세력(上杉)이 아시카가 쇼(足利荘)와 사누키 쇼(佐貫荘)를 침공했고, 타테바야시 성을 둘러싸 치열한 공성전이 벌어지게 된다.

그러나 결국 우에스기 세력에 버틸 수가 없었는지 성이 그대로 함락되고, 나가오 씨(長尾氏)가 성주 역할을 맡게 된다. 이어서 호조 씨(北条氏)가 성주가 되고, 마지막으로 사카키바라 씨(榊原氏)로 영주가 바뀌어 10만 석의 타테바야시 번이 성립한다.

에도 시대, 타테뱌아시 성주는 도쿠가와 사천왕의 한 사람이었던 사카키바라 야스마사에 의해 정비되었고, 이후 성주는 사카키바라(榊原) → 마츠다이라(松平) (오규(大給)) → 도쿠가와(徳川) → 마츠다이라(松平) (오치(越智)) → 오타(太田) → 이노우에(井上) 순으로 바뀌다가 마지막으로 아키모토 씨(秋元氏)가 성주가 되었다. 참고로 이 가문들은 모두 도쿠가와 가와 관계가 깊은 가문들이다. 특히, 5대 쇼군 도쿠가와 츠나요시가 쇼군이 되기 전의 20년간, 타테바야시 성의 성주가 되었다는 것은 이 지역이 에도 막부의 중요한 거점이었다는 것을 시사한다.

이후 1871년폐번치현으로 인해, 타테바야시 번은 오라군 일원을 구역으로 삼는 타테바야시현(館林県)으로서 설치되었지만, 곧 도치기현으로 편입 당했다. 1876년 군마현으로 편입되면서 군마현 소속이 되었다. 당시에는 오라군 소속의 타테바야시마치(館林町)였다.

1907년 도부 철도가 개통하여 도시 발전의 한 축이 되었다. 동년 타테바야시역도 영업을 시작했다.

도부 철도가 개통함에 따라, 타테바야시는 경제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한다. 게다가, '조모의 곡창 지대'로써 불리던 오라군의 정중앙에 위치해 있는 덕분에 일찍이 근대 도시로써 형태를 갖추고, 메이지 말기에 오라군에서 혼자 2만 명을 넘을 정도로 인구가 늘어난다. 이후 다이쇼 시대를 거쳐 종전 후인 1954년 4월 1일 타테바야시마치(館林町), 사토야무라(郷谷村), 오시마무라(大島村), 아카바네무라(赤羽村), 로쿠고무라(六郷村), 미노야무라(三野谷村), 타타라무라(多々良村), 와타라세무라(渡瀬村)의 1정 7촌이 합병하여 타테바야시시(館林市)로 새 출발을 하게 된다.

2016년 동쪽으로 인접해 있는 이타쿠라마치(板倉町)와 합병 협의회를 설치했다.

3. 교통

3.1. 철도

타테바야시시의 철도역
철도회사 노선
도부 철도 파일:Tobu-TI.svg이세사키선 모린지마에역 - 타테바야시역 - 타타라역
파일:Tobu-TI.svg사노선 타테바야시역 - 와타라세역
파일:Tobu-TI.svg이세사키선 타테바야시역 - 나루시마역
굵게 표시 된 역은 환승이 가능한, 사실상 같은 곳이다.

3.2. 도로

4. 관광

  • 모린지누마, 조누마, 타타라누마, 콘도누마 - 타테바야시에서 유명한 늪들이다.
  • 군마현립 타테바야시 미술관 - 2001년 개관했다.
  • 모린지 - 가까운 곳에 모린지누마도 있다.
  • 군마현립 츠츠지가오카 공원 - 위 사진에 나온 곳이다. 말 그대로 수많은 진달래들이 심어져 있다.
  • 젠도지(善導寺) - 사카키바라 야스마사의 묘가 있다.

5. 기타

애니메이션 감독 하라 케이이치가 여기서 태어났다.

참고로 지금의 오라군은 타테바야시를 제외해도 10만 명이 조금 넘는 정도로, 만약 타테바야시가 오라군의 시정촌과 통째로 합병되면 인구가 17만 명을 넘겨 키류시, 시부카와시를 넘는 군마현 제 5의 도시가 될 것이다.


[1] 추계인구 2021년 8월 1일 기준.[2] 이 오라군은 최소 나라 시대부터 존재한 것으로 보인다.[3] 또한 이 기록에는 오라군의 옛 지명들도 기록되어 있다. 나가라(長柄), 히키타(疋田), 이케다(池田), 핫타(八田) 등등..[4] 쇼군과 주종 관계를 맺은 무사. 보디가드 같은 거라고 생각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