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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어: 太极宫 또는 大興宮(간체자: 大兴宫)
태극궁(대흥궁)의 모습.
1. 개요
'태극궁' 또는 '대흥궁'은 수나라 시기에 지어진 정궁이다.2. 역사와 특징
수 문제 시기인 582년부터 583년까지 장안성 북쪽에 궁성이 지어져 그 중심을 주변으로 북쪽에는 서내원(西內苑)이, 동쪽에는 황태자가 기거하는 동궁이 있었으며, 남쪽은 황성과 붙어있었고 서쪽에는 후궁들이 기거하는 액정궁(掖庭宫)이 있었다. 궁궐을 북쪽 가운데에 두고 남쪽에는 성문을 통해 도로(주작대로)와 잇는 방식은 위진남북조시대의 위(삼국시대)가 하는 방식이었는데, 북조 국가들은 유목민 특성상 궁성 북쪽에 궁을 짓는 등 북쪽 제일 끝에 궁을 둠으로써 수나라 역시 북방에서 시작했다보니 이 구조를 그대로 따랐다.처음에는 대흥궁이라고 불렸으나 당나라 시대부터 궁궐 이름이 태극궁으로 바뀌었다. 이 때는 대명궁 서쪽에 있었기에 '서내(西內)'로도 불렸다.
수나라와 당나라 전기부터 약 100년간 정치적 중심지였다.
이후 당 고종 때 대명궁으로 옮기면서 정치적 중심지는 아니었지만 여전히 당 황실 안에선 중요히 여긴 궁전 중 하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