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0-02 14:45:43

대명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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全国重点文物保护单位
중화인민공화국 국무원 공포
||
<nopad> 파일:Danfeng_Men.jpg
명칭 한국어 대명궁 국가유지공원
간체 大明宫国家遗址公园
번체 大明宮國家遺址公園
영어 Daming Palace National Heritage Park
분류 고유지
(古遗址)
시대
일련번호 1-0156-1-021
주소 중화인민공화국 산시성 시안시 신청구 즈창둥루584호
陕西省西安市新城区自强东路585号
등재 1961년
차수 제1차 전국중점문물보호단위
국가 지정 명승지 등급 AAAAA급

파일:external/image.hnol.net/201005191506594341-1956181.jpg
대명궁 복원 상상도

대명궁국가유지공원 공식 홈페이지
대명궁 관련 다큐멘터리
파일:external/www.chla.com.cn/20140731165643.jpg
대명궁 평면도
1. 개요2. 연혁3. 주요 건축
3.1. 궁성
3.1.1. 단봉문3.1.2. 현무문
3.2. 전조(前朝)
3.2.1. 함원전3.2.2. 선정전3.2.3. 자신전
3.3. 내정(內庭)
3.3.1. 태액지3.3.2. 인덕전3.3.3. 함량전
4. 세부 디테일5. 여담

1. 개요

당나라 시기 수도 장안에 건축된 궁전이다.

장안성이 처음 조성될 때의 정궁인 태극궁의 동쪽에 위치해 태극궁을 대내(大內)[1]라고 부른 것에 대비해 통칭 동내(東內)라고도 불렸다. 참고로 대명궁이 세워진 후에는 동내인 대명궁의 서쪽에 있다고 해서 태극궁서내(西內)라고 불렸다.

장안성(長安城) 동북쪽 용수원(龍首原)에 위치했다. 당나라의 정치 중심지였으며, 당시 세계적으로도 가장 규모가 큰 궁전 건축군이었다.[2] 여담으로 이시기는 동·서양 모두 역사적으로 건축이 상당히 큰 규모를 보여주던 시기였다.[3]

정월 대보름이면 이곳을 포함한 장안성 전역에서 '원소관등'(元宵觀燈)이라는 이름의 등불놀이 행사를 열었다는 기록이 있다. 또한 동아시아 각국의 사신들이 모이는 자리이기도 했다.

현재 남은 유적은 세계문화유산실크로드: 창안-톈산 회랑 도로망에 등재되어 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파일:유네스코 세계유산 로고(흰 배경).svg
이름 한국어 실크로드: 창안-톈산 회랑 도로망
영어 Silk Roads: [4]
프랑스어 Routes de la soie : [5]
국가·위치 중국,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등재유형 문화유산
등재연도 2014년
등재기준 (ii)[6], (iii)[7], (v)[8], (vi)[9]
지정번호 1442

2. 연혁

태종 정관 8년(634) 10월, 당태종은 태상황으로 지내던 부친 당고조가 더위를 피해 휴양할 수 있는 여름 궁전으로 영안궁(永安宫)을 짓기 시작했다. 1년 후인 정관 9년(635) 6월 25일, 영안궁을 사용할 예정이었던 태상황이 세상을 떠나면서 공사가 중단되었다가 궁궐의 이름을 대명궁으로 개칭하면서 같은 해에 공사가 재개되었다. 당태종은 대명궁을 창건한 후에도 황성 안에 있던 태극궁에서 거주했지만 고종 용삭 2년(662) 당고종이 대명궁을 대규모로 확장 공사하면서 봉래궁(蓬莱宫)으로 개칭하고는 이곳을 정궁으로 삼아 거처를 이어했다. 고종 함형 원년(670)에는 봉래궁에서 다시 함원궁(含元宫)으로 개칭했으며, 중종 신룡 원년(705)에서야 대명궁으로 명칭이 환원되었다. 당현종당헌종이 궁전을 중수해 전각을 증축하고 태액지를 준설했다.

당고종부터 시작해 당희종까지 17명의 황제가 234년 동안 거주한 당나라의 정궁이었으며, 주차(朱泚)와 황소(黃巢)가 여기서 황제를 자칭하기도 했다. 당말의 혼란기에 전화로 피해를 입기 시작한 대명궁은 소종 건녕 3년(896) 전소되었고, 이후 폐허로 방치되었다가 20세기 중반부터 발굴이 시작되어 1961년 중화인민공화국 전국중점문물보호단위에 지정되었다. 현재는 대명궁국가유지공원(大明宫国家遗址公园)이 되었으며, 2010년 대명궁의 정남문인 단봉문 자리에 단봉문유지박물관(丹凤门遗址博物馆)을 개장했다.

3. 주요 건축

3.1. 궁성

대명궁을 둘러싼 궁성의 길이는 동서 1.5km, 남북 2.5km로 총 7.6km이며 면적은 3.2㎢였고, 궁성에는 문이 9개가 있었다. 남쪽 궁성에는 정남문인 단봉문(丹凤门)이, 단봉문 서쪽에는 흥안문(兴安门)과 건복문(建福门)이, 단봉문 동쪽에는 망선문(望仙门)과 연정문(延政门)이 있었다. 북쪽 궁성에는 정북문인 현무문(玄武门)이, 현무문 바로 북쪽에는 중현문(重玄门)이, 현무문 서쪽과 동쪽에는 각각 은한문(银汉门)과 청소문(青霄门)이 있었다. 동쪽 궁성에는 좌은대문(左银台门)이, 서쪽 궁성에는 우은대문(右银台门)과 구선문(九仙门)이 있었다. 궁성의 정문인 단봉문만 5개의 문이 있었으며 나머지 문들은 모두 문이 3개였다.

3.1.1. 단봉문

단봉문(丹凤门)
파일:external/s-media-cache-ak0.pinimg.com/c3e6ed4ebf7c0173a58f3a68f796a3d1.jpg 파일:external/pic10.nipic.com/5352301_084430001494_2.jpg
단봉문 복원 상상도 단봉문유지박물관
단봉문은 대명궁의 정남문으로 길이 74.5m, 너비 33m이며 문루 아래로는 다섯 개의 문이 나 있다. 고종 용삭 2년(662)에 건설되었으며 숙종 지덕 2재(757) 때 명봉문(明凤门)으로 개칭되었다가 다시 단봉문으로 환원되었다. 조칙의 반포, 대사면령, 개원 등 국가의 중대사를 공표하던 곳이다. 태극궁의 정남문인 승천문(承天门) 남쪽으로 승천문가가 펼쳐진 것을 본떠 단봉문 남쪽에도 단봉문가가 조성되었는데, 승천문가는 태극궁이 장안성을 설계할 때부터 있던 것이라 방(坊)을 자르는 것과 같은 일을 할 필요가 없었지만 대명궁은 장안성이 완성된 후에 추가로 조영되었으므로 단봉문 남쪽에는 가도를 만들 공간이 없었다. 그래서 단봉문 남쪽에 있던 방 2개를 잘라 단봉문가를 냈고, 그 결과 광택방(光宅坊), 영창방(永昌坊), 익선방(翊善坊), 내정방(來庭坊)의 방 4개가 생겼다. 2010년 10월 1일, 단봉문터를 발굴 조사한 자리에 단봉문을 실물 크기의 철골 구조 모형으로 만들면서 (석재와 목재를 사용한 복원이 아니다!) 그 내부에 '단봉문유지박물관(丹凤门遗址博物馆)'을 개장했다.

3.1.2. 현무문

현무문(玄武门)
파일:external/www.sn.xinhuanet.com/xin_22309072911548902769032.jpg
현무문 복원 상상도[10]
현무문은 대명궁의 정북문으로, 문 바깥쪽에 겹성이 하나 더 있고, 그 겹성에 중현문(重玄门)이 나 있어서 다른 방위에 있는 문들과 달리 겹문 구조로 되어 있다.

참고로 당태종 이세민이 머물렀던 태극궁의 북문의 이름도 현무문인데, 태극궁의 현무문은 고조 무덕 9년(626) 7월 2일, 진왕 이세민이 친형제인 황태자 이건성과 제왕 이원길을 살해하고 권력을 장악한 현무문의 변이 일어난 장소이다.

3.2. 전조(前朝)

전조는 황제의 공식적인 업무와 국가적인 행사가 거행되던 의례용 공간이다. 이곳에는 함원전(含元殿), 선정전(宣政殿), 자신전(紫宸殿) 등 3조(三朝)의 대전이 있었다.

3.2.1. 함원전

함원전(含元殿)
파일:external/commondatastorage.googleapis.com/42317517.jpg 파일:external/static.panoramio.com/42608973.jpg
함원전 복원 상상도 함원전 유지
함원전은 대명궁의 정전(正殿)이자 전조 3전 중 첫 번째 전각으로 외조(外朝)라고도 한다. 단봉문에서 약 500m 뒤쪽에 위치해 있으며 전각의 기단부는 길이 70m, 너비 40m, 높이 15.6m이고 전각은 정면 11칸(67.33m)에 측면 4칸(29.5m)의 중첨무전정(重檐廡殿頂) 건물이다. 고종 용삭 3년(663)에 건축된 후 희종 광계 2년(886)에 전소되었으며 국가의 주요 대사가 거행되던 장소이다. 설날이나 동지에 조회를 보고 외국 사절을 접견하며, 황제의 즉위식을 비롯한 각종 궁정 의례, 개원이나 사면과 같은 특별한 행사가 열렸다. 함원전 앞에는 거대한 광장이 있어 군대의 열병식 등이 행해지기도 했다. 함원전을 중심에 두고 왼쪽에는 상란각(翔鸾阁)이, 오른쪽에는 서봉각(栖凤阁)이 용미도(龙尾道)로 연결되어 凹자 평면을 이룬다. 본격적인 발굴 조사가 진행되기 전에는 함원전 앞에 계단이 일자로 쭉 뻗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발굴 결과 계단은 기단부를 따라 양 옆으로 배치된 형태였다.[11]

이 함원전에서 고구려 마지막 왕 보장왕의 항복예식이 이루어졌으며[12], 신라 사신과 일본사신 사이에 이른 바 석차논쟁이 이루어졌다.[13] 다만 일본측의 일방적인 기록으로서 신뢰하긴 어렵다.

3.2.2. 선정전

선정전(宣政殿)
파일:external/pic.xoyo.com/20081019_f2307e1d4023e8425801U2viZdcaX56R.jpg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E5%A4%A7%E6%98%8E%E5%AE%AB%E2%80%94%E5%AE%A3%E6%94%BF%E6%AE%BF%E9%81%97%E5%9D%80.jpg
선정전 복원 상상도 선정전 유지
선정전은 함원전 북쪽에 있으며 대명궁의 전조 3전 중 두 번째 전각으로 중조(中朝)라고도 한다. 함원전을 나와 300m 북쪽으로 가면 선정문(宣政门)이 있고, 선정문을 지나면 선정전이 나온다. 전각의 기단부는 길이 70m, 너비 40m이다. 선정전을 둘러싼 행랑에는 여러 관청이 들어서 있었는데, 동쪽 행랑에는 문하성, 사관 등이 있었고 서쪽 행랑에는 중서성, 전중성 등이 있었다. 이곳은 황제가 평소에 정무를 처리하던 공간이어서 상조(常朝)라고도 했다. 매년 삭망(望朔)에 황제가 조회를 열고 황족 종실과 관련된 업무를 살폈으며, 과거 시험 때 전시(殿試)가 치러지기도 했다. 숙종 지덕 2재(757) 12월에는 태상황이 된 당현종이 이곳에서 당숙종에게 국새를 건네주기도 했다.

3.2.3. 자신전

자신전(紫宸殿)
파일:external/photo.hanyu.iciba.com/bk_805eb921bb697f782197560c72752f51_2jRRDv.jpg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E5%A4%A7%E6%98%8E%E5%AE%AB%E2%80%94%E7%B4%AB%E5%AE%B8%E6%AE%BF%E9%81%97%E5%9D%80.jpg
자신전 복원 상상도 자신전 유지
자신전은 선정전 북쪽에 있으며 대명궁의 전조 3전 중 세 번째 전각으로 내조(內朝)라고도 한다. 선정전을 나와 자신문(紫宸門 / 紫宸门)을 지나면 자신전이 위치해 있다. 정무를 마친 황제가 휴식을 취하는 공간이자 평소 생활하는 곳이었으며, 이곳을 출입할 수 있는 사람은 5품 이상의 관원에 한정되었는데 이러한 자격을 가진 사람들을 가리켜 '입각'(入閣)했다고 표현했다. 현재 자신전 유지에는 전각의 옛 모습을 유추할 수 있는 기둥, 서까래, 치미 등의 실물크기 모형과 함께 나무를 식수했다. 자신전 동편에는 욕당전(浴堂殿)과 온실전(温室殿)[14]이, 서편에는 연영전(延英殿)과 함상전(含象殿)이 대칭으로 마주보고 있었다.

3.3. 내정(內庭)

내정은 황제의 생활 공간으로, 주요 풍경구를 형성하는 호수 태액지(太液池)와 불교 사찰인 호국천왕사(护国天王寺) 및 도교 사원인 현원황제묘(玄元皇帝庙)를 비롯해 자신전(紫宸殿), 봉래전(蓬莱殿), 능기전(绫绮殿), 욕당전(浴堂殿), 선휘전(宣徽殿), 온실전(温室殿), 연영전(延英殿), 태화전(太和殿), 사정전(思政殿), 함상전(含象殿), 인덕전(麟德殿), 환주전(还周殿), 승환전(承欢殿), 명의전(明义殿), 습취전(拾翠殿), 선거전(仙居殿), 장안전(长安殿), 금란전(金銮殿), 주경전(珠镜殿), 청사전(清思殿), 대복전(大福殿), 삼청전(三清殿), 함빙전(含冰殿), 포마전(跑马殿), 승향전(承香殿), 장각전(长阁殿), 현무전(玄武殿), 자란전(紫兰殿), 함량전(含涼殿) 등의 전각이 있었다.

3.3.1. 태액지

태액지(太液池)
파일:external/i3.sinaimg.cn/U2190P28T3D2534571F326DT20090524000155.jpg 파일:external/static.panoramio.com/45905586.jpg
태액지 상상 복원도 태액지 유지
태액지는 대명궁 북쪽의 후원을 구성하는 호수로 면적 14만㎡, 수심 2~3m였다. 한때 봉래지(蓬莱池)라고 불리기도 했다. 호수 주변에는 정자와 누각이 늘어서 황실 가족들이 풍경을 감상하는 용도로 사용되었다.

3.3.2. 인덕전

인덕전(麟德殿)
파일:external/i1.sinaimg.cn/U2190P28T3D2534568F326DT20090523235815.jpg 파일:external/pic.izy.cn/62961.jpg
인덕전 복원 상상도 인덕전 유지
인덕전은 태액지 서쪽 고지대에 자리한, 중국 역사상 가장 큰 군체 건축으로 장방형 기단부의 길이는 동서 77m, 남북 130m이다. 인덕전은 하나의 단일한 전각이 아니라 정면 9칸에 측면 4칸인 전전(前殿), 정면 9칸에 측면 5칸인 중전(中殿)과 후전(後殿), 전전 좌우에 두 개의 정(亭), 중전 좌우에 욱의루(郁仪楼)와 결린루(結鄰樓 / 结邻楼) 및 경운각(景云阁), 전전 동쪽 행랑의 회경정(会庆亭), 후전의 장일각(障日閣 / 障日阁), 이들 전·정·루를 연결하는 행랑 등으로 이루어진 복잡한 평면 구조의 거대 건축군이었다.

3.3.3. 함량전

함량전(含涼殿)
파일:external/pic.baike.soso.com/20101005214205-880805685.jpg 파일:external/image7.club.sohu.net/bebb973fc6f659317965983496bd0bfb_820_820.jpg
함량전 복원 상상도 함량전 유지
함량전은 태액지 남쪽 언덕에 자리한 전각으로, 봉래전과 함께 자신전 북쪽에 있었다. 이곳은 무더운 여름에 황제와 황실 가족이 더위를 피하던 장소였으며, 고종 용삭 2년(662) 6월 22일 당예종이 이곳에서 태어나기도 했다.

4. 세부 디테일

파일:external/c2down.cyworld.co.kr/download?fid=64224c8d9a9ea0e898354e30bca403dd&name=141419836418428.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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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2004-11-16-lddlmfyt11.jpg

5. 여담

  • <뮬란>에 등장한 궁궐은 대명궁을 토대로 각색해서 등장했다. 작중에서의 시대 배경을 당나라에 맞췄다는 제작진의 언급도 있다.
  • 헝디엔에 있는 진 황궁 세트장은 진나라~한나라 건축양식보다 이쪽에 더 가깝다. 95부작 <삼국>은 낙양 황궁으로 진 황궁 세트에서 찍었는데, 오히려 예전에 찍은 84부작의 세트가 당시 양식에 가깝다.
  • 위 사진들은 2009년 5부작 드라마 <대명궁>의 이미지로 기존의 태극궁이 지형적으로 습한 곳이었기에 바로 옆에 궁전을 세운 것이었다.

[1] 특정 궁궐을 가리키는 명칭이 아니라, 임금이 거처하는 곳을 가리키는 일반명사이다.[2] 대명궁의 면적이 3.2㎢인데 동로마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의 면적이 12㎢이다.[3] 다만 대명궁은 전한의 미앙궁보단 작다. 사족을 달자면 한반도도 삼국시대가 건물의 규모가 컸다. 일본의 가장 큰 목조 건축인 도다이지 역시 당대인 745년에 처음 건축되었다.[4] the Routes Network of Chang'an-Tianshan Corridor[5] le réseau de routes du corridor de Chang’an-Tian-shan[6] 오랜 세월에 걸쳐 또는 세계의 일정 문화권 내에서 건축이나 기술 발전, 기념물 제작, 도시 계획이나 조경 디자인에 있어 인간 가치의 중요한 교환을 반영[7] 현존하거나 이미 사라진 문화적 전통이나 문명의 독보적 또는 적어도 특출한 증거일 것[8] 특히 번복할 수 없는 변화의 영향으로 취약해졌을 때 환경이나 인간의 상호 작용이나 문화를 대변하는 전통적 정주지나 육지·바다의 사용을 예증하는 대표 사례일 것[9] 사건이나 실존하는 전통, 사상이나 신조, 보편적 중요성이 탁월한 예술 및 문학작품과 직접 또는 가시적으로 연관될 것[10] 현무문(앞쪽)과 중현문(뒤쪽)[11] 발굴 이전에 만들어진 애니메이션 <뮬란>에서는 일자의 계단으로 고증했다.[12] https://brunch.co.kr/@xianstory/5[13] https://brunch.co.kr/@xianstory/6[14] 온실이라는 이름 때문에 이곳이 황제의 겨울 거처였을 가능성이 있지만 유지가 발견되지 않아 고고학적인 증명은 어려운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