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ki style="margin:-0px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 <colbgcolor=#ece5b6> 역사 | 수당시대 | 수말당초 |
정치 | 관롱집단 | 개원지치 | 무덕율령 | 황제(틀:역대 수 황제 | 틀:역대 당 황제(틀:역대 무주 황제)) | |
사법·치안 | 부병제(수나라군 | 당나라군) | 3성 6부제 | 추밀원(중국사) | 과거 제도 | 도독부 | 도호부(틀:당 6도호부) | 번진 | 절도사 | |
외교 | 백제-수나라 관계 | 틀:당나라의 대외관계 | |
행정구역 | 틀:수나라의 행정구역 | 틀:당나라의 행정구역 | |
경제 | 오수전 | 개원통보 | |
교통 | 대운하 | |
인물 | 당나라/인물 | |
문화 | 태극궁 | 자미궁 | 대명궁 | 당삼채 | |
기타 | 수나라의 대외전쟁 | 수말당초 주요 세력 | 수나라의 연호 | |
오대십국 · 송나라 · 명나라 · 청나라 · 중화민국 | 중화인민공화국 | }}}}}}}}} |
||<:><tablewidth=400px><table align=right><tablebgcolor=#FFFFFF><tablebordercolor=#CC0000><#CC0000><width=100> ||<-2><:><#CC0000> 전국중점문물보호단위
全国重点文物保护单位
중화인민공화국 국무원 공포 ||
全国重点文物保护单位
중화인민공화국 국무원 공포 ||
<nopad> | ||
명칭 | 한국어 | 대명궁 국가유지공원 |
간체 | 大明宫国家遗址公园 | |
번체 | 大明宮國家遺址公園 | |
영어 | Daming Palace National Heritage Park | |
분류 | 고유지 (古遗址) | |
시대 | 당 | |
일련번호 | 1-0156-1-021 | |
주소 | 중화인민공화국 산시성 시안시 신청구 즈창둥루584호 陕西省西安市新城区自强东路585号 | |
등재 | 1961년 | |
차수 | 제1차 전국중점문물보호단위 | |
국가 지정 명승지 등급 | AAAAA급 |
대명궁 복원 상상도 |
대명궁국가유지공원 공식 홈페이지
대명궁 관련 다큐멘터리
대명궁 평면도 |
1. 개요
당나라 시기 수도 장안에 건축된 궁전이다.장안성이 처음 조성될 때의 정궁인 태극궁의 동쪽에 위치해 태극궁을 대내(大內)[1]라고 부른 것에 대비해 통칭 동내(東內)라고도 불렸다. 참고로 대명궁이 세워진 후에는 동내인 대명궁의 서쪽에 있다고 해서 태극궁은 서내(西內)라고 불렸다.
장안성(長安城) 동북쪽 용수원(龍首原)에 위치했다. 당나라의 정치 중심지였으며, 당시 세계적으로도 가장 규모가 큰 궁전 건축군이었다.[2] 여담으로 이시기는 동·서양 모두 역사적으로 건축이 상당히 큰 규모를 보여주던 시기였다.[3]
정월 대보름이면 이곳을 포함한 장안성 전역에서 '원소관등'(元宵觀燈)이라는 이름의 등불놀이 행사를 열었다는 기록이 있다. 또한 동아시아 각국의 사신들이 모이는 자리이기도 했다.
현재 남은 유적은 세계문화유산인 실크로드: 창안-톈산 회랑 도로망에 등재되어 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 |||
이름 | 한국어 | 실크로드: 창안-톈산 회랑 도로망 | |
영어 | Silk Roads: [4] | ||
프랑스어 | Routes de la soie : [5] | ||
국가·위치 | 중국,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 ||
등재유형 | 문화유산 | ||
등재연도 | 2014년 | ||
등재기준 | (ii)[6], (iii)[7], (v)[8], (vi)[9] | ||
지정번호 | 1442 |
2. 연혁
태종 정관 8년(634) 10월, 당태종은 태상황으로 지내던 부친 당고조가 더위를 피해 휴양할 수 있는 여름 궁전으로 영안궁(永安宫)을 짓기 시작했다. 1년 후인 정관 9년(635) 6월 25일, 영안궁을 사용할 예정이었던 태상황이 세상을 떠나면서 공사가 중단되었다가 궁궐의 이름을 대명궁으로 개칭하면서 같은 해에 공사가 재개되었다. 당태종은 대명궁을 창건한 후에도 황성 안에 있던 태극궁에서 거주했지만 고종 용삭 2년(662) 당고종이 대명궁을 대규모로 확장 공사하면서 봉래궁(蓬莱宫)으로 개칭하고는 이곳을 정궁으로 삼아 거처를 이어했다. 고종 함형 원년(670)에는 봉래궁에서 다시 함원궁(含元宫)으로 개칭했으며, 중종 신룡 원년(705)에서야 대명궁으로 명칭이 환원되었다. 당현종과 당헌종이 궁전을 중수해 전각을 증축하고 태액지를 준설했다.당고종부터 시작해 당희종까지 17명의 황제가 234년 동안 거주한 당나라의 정궁이었으며, 주차(朱泚)와 황소(黃巢)가 여기서 황제를 자칭하기도 했다. 당말의 혼란기에 전화로 피해를 입기 시작한 대명궁은 소종 건녕 3년(896) 전소되었고, 이후 폐허로 방치되었다가 20세기 중반부터 발굴이 시작되어 1961년 중화인민공화국 전국중점문물보호단위에 지정되었다. 현재는 대명궁국가유지공원(大明宫国家遗址公园)이 되었으며, 2010년 대명궁의 정남문인 단봉문 자리에 단봉문유지박물관(丹凤门遗址博物馆)을 개장했다.
3. 주요 건축
3.1. 궁성
대명궁을 둘러싼 궁성의 길이는 동서 1.5km, 남북 2.5km로 총 7.6km이며 면적은 3.2㎢였고, 궁성에는 문이 9개가 있었다. 남쪽 궁성에는 정남문인 단봉문(丹凤门)이, 단봉문 서쪽에는 흥안문(兴安门)과 건복문(建福门)이, 단봉문 동쪽에는 망선문(望仙门)과 연정문(延政门)이 있었다. 북쪽 궁성에는 정북문인 현무문(玄武门)이, 현무문 바로 북쪽에는 중현문(重玄门)이, 현무문 서쪽과 동쪽에는 각각 은한문(银汉门)과 청소문(青霄门)이 있었다. 동쪽 궁성에는 좌은대문(左银台门)이, 서쪽 궁성에는 우은대문(右银台门)과 구선문(九仙门)이 있었다. 궁성의 정문인 단봉문만 5개의 문이 있었으며 나머지 문들은 모두 문이 3개였다.3.1.1. 단봉문
단봉문(丹凤门) | |
단봉문 복원 상상도 | 단봉문유지박물관 |
3.1.2. 현무문
현무문(玄武门) | |
현무문 복원 상상도[10] |
참고로 당태종 이세민이 머물렀던 태극궁의 북문의 이름도 현무문인데, 태극궁의 현무문은 고조 무덕 9년(626) 7월 2일, 진왕 이세민이 친형제인 황태자 이건성과 제왕 이원길을 살해하고 권력을 장악한 현무문의 변이 일어난 장소이다.
3.2. 전조(前朝)
전조는 황제의 공식적인 업무와 국가적인 행사가 거행되던 의례용 공간이다. 이곳에는 함원전(含元殿), 선정전(宣政殿), 자신전(紫宸殿) 등 3조(三朝)의 대전이 있었다.3.2.1. 함원전
함원전(含元殿) | |
함원전 복원 상상도 | 함원전 유지 |
이 함원전에서 고구려 마지막 왕 보장왕의 항복예식이 이루어졌으며[12], 신라 사신과 일본사신 사이에 이른 바 석차논쟁이 이루어졌다.[13] 다만 일본측의 일방적인 기록으로서 신뢰하긴 어렵다.
3.2.2. 선정전
선정전(宣政殿) | |
선정전 복원 상상도 | 선정전 유지 |
3.2.3. 자신전
자신전(紫宸殿) | |
자신전 복원 상상도 | 자신전 유지 |
3.3. 내정(內庭)
내정은 황제의 생활 공간으로, 주요 풍경구를 형성하는 호수 태액지(太液池)와 불교 사찰인 호국천왕사(护国天王寺) 및 도교 사원인 현원황제묘(玄元皇帝庙)를 비롯해 자신전(紫宸殿), 봉래전(蓬莱殿), 능기전(绫绮殿), 욕당전(浴堂殿), 선휘전(宣徽殿), 온실전(温室殿), 연영전(延英殿), 태화전(太和殿), 사정전(思政殿), 함상전(含象殿), 인덕전(麟德殿), 환주전(还周殿), 승환전(承欢殿), 명의전(明义殿), 습취전(拾翠殿), 선거전(仙居殿), 장안전(长安殿), 금란전(金銮殿), 주경전(珠镜殿), 청사전(清思殿), 대복전(大福殿), 삼청전(三清殿), 함빙전(含冰殿), 포마전(跑马殿), 승향전(承香殿), 장각전(长阁殿), 현무전(玄武殿), 자란전(紫兰殿), 함량전(含涼殿) 등의 전각이 있었다.3.3.1. 태액지
태액지(太液池) | |
태액지 상상 복원도 | 태액지 유지 |
3.3.2. 인덕전
인덕전(麟德殿) | |
인덕전 복원 상상도 | 인덕전 유지 |
3.3.3. 함량전
함량전(含涼殿) | |
함량전 복원 상상도 | 함량전 유지 |
4. 세부 디테일
5. 여담
- <뮬란>에 등장한 궁궐은 대명궁을 토대로 각색해서 등장했다. 작중에서의 시대 배경을 당나라에 맞췄다는 제작진의 언급도 있다.
- 헝디엔에 있는 진 황궁 세트장은 진나라~한나라 건축양식보다 이쪽에 더 가깝다. 95부작 <삼국>은 낙양 황궁으로 진 황궁 세트에서 찍었는데, 오히려 예전에 찍은 84부작의 세트가 당시 양식에 가깝다.
- 위 사진들은 2009년 5부작 드라마 <대명궁>의 이미지로 기존의 태극궁이 지형적으로 습한 곳이었기에 바로 옆에 궁전을 세운 것이었다.
[1] 특정 궁궐을 가리키는 명칭이 아니라, 임금이 거처하는 곳을 가리키는 일반명사이다.[2] 대명궁의 면적이 3.2㎢인데 동로마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의 면적이 12㎢이다.[3] 다만 대명궁은 전한의 미앙궁보단 작다. 사족을 달자면 한반도도 삼국시대가 건물의 규모가 컸다. 일본의 가장 큰 목조 건축인 도다이지 역시 당대인 745년에 처음 건축되었다.[4] the Routes Network of Chang'an-Tianshan Corridor[5] le réseau de routes du corridor de Chang’an-Tian-shan[6] 오랜 세월에 걸쳐 또는 세계의 일정 문화권 내에서 건축이나 기술 발전, 기념물 제작, 도시 계획이나 조경 디자인에 있어 인간 가치의 중요한 교환을 반영[7] 현존하거나 이미 사라진 문화적 전통이나 문명의 독보적 또는 적어도 특출한 증거일 것[8] 특히 번복할 수 없는 변화의 영향으로 취약해졌을 때 환경이나 인간의 상호 작용이나 문화를 대변하는 전통적 정주지나 육지·바다의 사용을 예증하는 대표 사례일 것[9] 사건이나 실존하는 전통, 사상이나 신조, 보편적 중요성이 탁월한 예술 및 문학작품과 직접 또는 가시적으로 연관될 것[10] 현무문(앞쪽)과 중현문(뒤쪽)[11] 발굴 이전에 만들어진 애니메이션 <뮬란>에서는 일자의 계단으로 고증했다.[12] https://brunch.co.kr/@xianstory/5[13] https://brunch.co.kr/@xianstory/6[14] 온실이라는 이름 때문에 이곳이 황제의 겨울 거처였을 가능성이 있지만 유지가 발견되지 않아 고고학적인 증명은 어려운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