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0-03 19:54:06

털사 인종 학살

털사 인종 폭동에서 넘어옴
주의. 사건·사고 관련 내용을 설명합니다.

사건 사고 관련 서술 규정을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1. 개요2. 상세3. 같이 보기

1. 개요

Tulsa Race Massacre[1]

전간기이던 1921년 5월 31일에서 6월 1일까지 미국 오클라호마 주 털사에서 벌어진 폭동으로, 미국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폭동이었다는 말을 듣고 있다. 제1차 세계 대전 승전 이후 경제적으로 승승장구하던 당시 미국 사회의 인종 인식의 모습들 중 하나와 그림자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기도 하며 흑인 대이동이 시작되며 남부를 떠나 북부나 서부 또는 동부로 이주하기 시작한 미국 흑인들이 겪은 최악의 사태다.

2. 상세

오클라호마 주는 19세기 초 미국이 인디언 준주(Indian Territory)로 지정한 땅으로, 원래는 미국 정부가 원주민들을 이 곳으로 쫓아내고 모여 살게 한 지역이어서 상대적으로 백인의 이주가 늦게 일어났고 1907년에야 46번째 주로 뒤늦게 승격되었다. 그래서 미국 남부 지방에 사회적, 그리고 법적으로 만연했던 흑인 차별을 피해 많은 흑인이 비교적 인종차별에서 자유로운 오클라호마 주로 와서 살았고 특히 오클라호마 주 경제가 석유 관련 사업으로 급격히 성장하면서 털사의 그린우드(Greenwood) 구역은 '블랙 월 스트리트'라고도 불리며 경제적으로 성공한 흑인 중산층이 많이 생겼다. 당시 전미에서 흑인 부자들이 제일 많은 동네가 여기였고 흑인 백만장자들도 이 동네에 많이 거주했다.

1920년대 인종차별이 극심한 분위기에서, 이렇게 성공한 흑인들을 본 주변 백인들은 열등감이 폭발했고, 이것이 사건의 발단이 되었다.

털사 폭동 이전에도 1차대전 종전 후 시카고를 비롯해 미국의 여러 도시에서 흑인 이주민을 혐오 대상으로 한 폭동이 빈발했는데 털사에서의 폭동은 딕 로랜드라는 이름의 19세 흑인 남성이 엘리베이터에서 백인 여성을 성폭행하려고 했다는 소문으로 촉발되었다.

당시 엘레베이터에 탄 이들이 이 흑인 구두닦이와 백인 여성밖에 없어서 정확한 제3자 증언은 없으나 두 사람의 증언을 종합해 보아도 흑인 구두닦이는 아주 무고했다. 왜냐하면 당시 두 사람은 엘리베이터에 타고 있었는데 엘리베이터가 흔들려 남자가 실수로 여자에 손을 댄 것이었는데 (그러니까 안 넘어지려고) 그 여자가 순간 소리를 지르자 주변 백인들이 딕에게 성폭행 혐의를 덮어씌웠기 때문이다. 이 남자가 백인들로부터 끔찍한 고문을 받는 걸 본 백인 여자는 딕이 무고하다며 제발 풀어주라고 호소했지만 이들은 그녀의 말을 들어 주지 않았다.

당사자는 무죄를 주장하였고 그를 보호하려 다른 수십명의 흑인들이 재판장에 모였으나 KKK 단원 등 백인 우월주의자를 비롯한 수백 명의 백인들이 몰려나와 흑인들의 가게와 주택에 불을 지르고 수십에서 수백 명에 이르는 흑인들을 집단 린치 및 살해했다. 심지어 발명된 지 20년도 채 되지 않은 비행기를 이용한 폭격까지 있었다고 한다.[2]

린치당하거나 살해당한 흑인들은 중산층 이상이었고 부자들도 많았다. 블랙 월스트릿이라고 불리던 흑인 최고 부자 동네는 전소되고 말았다. 이전에 일어난 인종 폭동은 백인 우월주의를 포함해서 주로 흑인 동네와 백인 동네의 일자리 갈등으로 인해 촉발되었지만 이 폭동은 빈부 갈등과 인종 문제가 뒤섞인 사건이었다.

이로 인하여 약 800여명이 병원에 입원하였으며 6000여명의 흑인들이 구류되었다. 그리고 이 사건을 주도하고 시행한 백인들은 단 한명도 법의 심판을 받지 않았다.

당시 공식 통계에 따르면 36명이 사망했다고 했지만 2001년 발표된 재조사 결과에 따르면 흑인만 100명에서 300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었다. 또한 이 재조사 결과는 털사 시가 백인 폭도들과 결탁하여 흑인들을 공격했으며 이들의 후손에게 사과 및 배상을 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2019년에는 사건 당시 희생된 흑인들의 유해가 집단으로 매장된 현장이 발굴되었다. 2020년에는 손해배상 소송을 청구했지만, 2024년 6월에 최종적으로 기각된 것이다.#

미국 흑인들의 마음 속 깊은 곳까지 상처를 남겼으며 흑인 폭동에서 일어나는 약탈이나 폭력사태를 지적하면 반대로 털사에서 있었던 일을 생각하라며 백인을 죽이는 대신 상점을 불지르고 약탈하는 것에서 그치는 것을 다행으로 여기라면서 반론하기도 한다. 차별을 다루는 흑인 문학이나 영화에서는 반드시 거론되는 사건이다. 하지만 백인 사회에서는 많이 잊혀진 사건이라 왓치맨 드라마 때문에 알았다고 하는 사람도 많다.

미국 드라마 왓치맨의 중요한 소재로 나온다. 1화에 학살 장면이 그려졌으며 배경은 털사이고 후디드 저스티스와 연관되어있다.

2021년 6월 1일 사건 100주년을 맞아 조 바이든이 현장을 방문했다. 오클라호마주 민주당은 이를 기억하는 논평을 냈지만 공화당 인사들은 대체로 침묵했다. 링컨이 공화당 출신이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아이러니하다.

3. 같이 보기



[1] 이 참혹한 사건의 정식 명칭이다. 영어 위키백과에도 이 이름으로 문서가 등록되어 있으며 "털사 인종 학살"이라는 뜻이다. 2년 전에 일어났던 다른 인종 폭동 (백인 폭동)들은 모두 race riot으로 불린다. 이 사건이 얼마나 충격적이고 참혹했는지를 보여주는 대목.[2] 1차대전이 막 끝난 시기라서 비행기가 아주 없었던 건 아니다.[3] 털사 인종 폭동과 거의 유사한 사건.[4] 백인들이 흑인이 자기들의 일자리를 위협한다고 흑인들을 학살한 사건.[5] 흑인 남자가 백인 여자를 강간했다는 헛소문을 빌미로 흑인들을 학살한 사건.[6] 백인 노동자가 흑인들에게 공격당했다는 헛소문 때문에 일어난 폭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