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10-20 22:51:26

토마알렉상드르 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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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omas-Alexandre Dumas
1762년 출생 - 1806년 사망.
1. 개요2. 생애3. 평가4. 기타

1. 개요

프랑스의 군인. 서구 최초의 비(非)백인 사단장이자 프랑스의 대문호 알렉상드르 뒤마의 아버지이다.

2. 생애

프랑스의 오래된 후작 집안의 아들인 아버지 앙투안 뒤마와 아프리카 흑인 노예 출신인 어머니 마리의 사이에서 태어났다. 즉 흑백혼혈.

아버지는 폴란드 왕위 계승 전쟁에 참여해 혁혁한 공훈을 세워 대령까지 진급했지만 이후 군을 전역하고 카리브해의 프랑스 식민지인 생도맹그[1]로 왔고, 이때 노예였던 마리를 거금을 주고 샀다. 둘은 토마알렉상드르 뒤마를 포함해 네 명의 자식을 봤다.

1776년 가족들과 함께 프랑스로 왔던 토마알렉상드르는 군에 입대했다. 흑인 혼혈이라 쉽게 출세하진 못했지만 능력을 발휘해 프랑스 혁명 전쟁에서 공을 세우며[2] 이름을 알렸고 나중엔 혼혈인으로 이루어진 검은 군단의 부사령관, 서부 피레네 군대 사령관, 알프스 군대 사령관 등 점차 요직을 맡았다.

이집트 원정에도 참여했던 그는 호레이쇼 넬슨의 프랑스 원정 함대 공격으로 인해 제때 탈출하지 못했다가 나중에야 간신히 배를 구해 탈출을 시도한다. 하지만 폭풍우 때문에 배가 침몰했고 어찌어찌 간신히 살아남은 그였지만 도착한 곳은 프랑스와 전쟁 중이던 나폴리 왕국. 당연히 나폴리 왕국은 그를 투옥했고 프랑스에 보석금을 요구했지만 나폴레옹과의 불화가 있었기 때문에 프랑스는 보상금을 거절, 풀려나지 못했다. 아내가 재산을 써가며 사방팔방 로비 활동을 벌인 덕에 조아킴 뮈라가 이끄는 원정군이 왔을 때 풀려나게 된다.

하지만 투옥 기간 동안 지병을 가지게 되고 나폴레옹과 사이가 좋지 않다는 이유로 군인 연금도 제대로 못받던 그는 시름시름 앓다가 프랑스로 돌아온지 얼마 되지 않아 세상을 떠난다. 이 때문에 알렉상드르 뒤마의 모든 작품에서 나폴레옹은 매우 부정적으로 그려지게 되며[3], 그의 유명 작품들의 주인공들은 아버지를 최종 모델로 한 것이 많다. 더불어 알렉상드르 뒤마는 아버지가 죽었을때 겨우 4살밖에 안되었지만 30여년이 지난 뒤에도 그 순간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고 한다. 뒤마의 회고에 따르면, 아버지가 죽고 난뒤 하느님이 아버지를 데려가셨다는 어른들의 말을 듣고는 아버지의 총을 들고선 천국으로 가서 아버지를 내게서 데려간 하느님을 죽여버리겠다고 얘기했다고 한다.[4]

3. 평가

뛰어난 군인이었던지라 프랑스 개선문 남쪽 벽에 이름이 새겨져 있다.

그는 서구권에서 세계 최초의 비 백인 사단장이다. 서양사 최초의 흑인 장군은 러시아의 대문호 푸쉬킨의 외증조부였던 아브람 페트로비치 간니발로써 이 사람은 1730년대에 소장 계급을 달았다. 소장 계급을 달았지만 총독으로 부임하여 사단급 이상 부대를 지휘한 적은 없으니 뒤마가 최초의 사단장인 건 사실이다.

그가 사단장이 된 것은 서구 사회에서 꽤 큰 의미를 갖는다. 간니발은 여러 대륙을 다스리는 다민족 제국 러시아의 군주에 대해 주군과 가신이란 봉건적 문맥에서 인정을 받아 장군이 되었는데, 사실 이런 비슷한 경우는 이미 근세에 전례가 많았다. 전시대 포르투갈, 스페인 왕들은 종종 콩고 왕족이나 피정복 원주민 귀족 자제들을 개종시키고 왕의 하인으로 궁정에서 키우면서 대외적으로 "봐라. 우리나라 힘이 이렇게 쌔서 저 멀리서 온 인종이 다른 사람들도 우리 백성이다~"란 식으로 걸어다니는 선전거리로 살다가 적당한 귀족작위 받고 은퇴하는 등 비백인 출신 귀족, 상류층 자체는 이미 전례가 꽤 많았다. 그러나 이 사람들은 전부 근대사회 이전 봉건제의 특수한 관계에서 생긴 '예외적인 개개인'에 불과했다.

반면 토마알렉상드르 뒤마는 진짜 정직하게 군경력을 통해 사회의 대중들과 정직하게 경쟁하면서, 유럽 역사상 최초의 근대 민족주의적 공화주의 체제가 형성되는 시대에 자기 실력으로 소수인종 출신 인물이 사단장까지 해냈기 때문에 의미가 더 크다.

2021년 4월에 그의 동상이 다시 세워진다는 뉴스가 나왔다. 제2차 세계 대전 시기 나치 독일에 의해 사라진 그의 동상이 프랑스 파리 17구에 다시 세워질 것이라고 한다. 2020년 에두아르 필리프 총리는 "4공화국, 그 다음 5공화국이 뒤마 장군의 동상을 재건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깊이 실망했습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후 아버지 뒤마의 동상은 파리 평의회에 의해 카를린 루빈 노엘 의원의 요청에 의해 승인되었다. 이후 동상 재건의 국가 동의를 2020년 12월에 받았다고 한다.#

4. 기타

  • 2013년에 전기인 『The black count(검은 백작)』이 발표되었고 퓰리처상까지 수상했다. 한국에는 "검은 몽테크리스토"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어 나와 있다.


[1] 지금은 아이티의 일부다.[2] 외국을 상대로 한 전투 뿐만 아니라 내전이었던 방데 전쟁의 진압도 맡았다.[3] 대 뒤마의 대표작인 몽테크리스토 백작의 경우 주인공의 아군 측에 나폴레옹파가 많긴 하지만, 근원적으로 주인공이 억울한 옥살이로 개고생을 하게 만든 것은 그가 전달받은 나폴레옹의 편지 때문이었다.[4] Black Count의 Prologue Part 1 챕터에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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