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 토머스 그레이 Thomas Gray | |
생몰년도 | 미상 ~ 1367년 10월에서 1369년 10월 22일 사이 | |
출생지 | 잉글랜드 왕국 노섬벌랜드주 히튼 성 | |
사망지 | 잉글랜드 왕국 노섬벌랜드 주 히튼 성 | |
아버지 | 토머스 그레이 | |
어머니 | 아그레스 드 발레스 | |
아내 | 마거릿 드 프레스펜 | |
자녀 | 토머스, 엘리자베스, 아그네스, 조앤 | |
직위 | 히튼의 기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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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잉글랜드 왕국의 귀족, 군인. 백년전쟁 시기 스코틀랜드와 프랑스 전선에서 활약했으며, 연대기 <스칼라크로니카(Scalacronica)>를 집필했다.2. 생애
노섬벌랜드의 히튼 성에서 기사 토머스 그레이와 아그네스 드 발레스의 아들로 출생했다. 출생년도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1310년대일 것으로 추정된다. 그레이 가문은 노르망디 기사로 윌리엄 1세의 잉글랜드 정복 전쟁에 참여한 안체틸 드 그레이를 기원으로 하며, 대대로 노섬벌랜드 지방에 거주했다. 아버지 토머스 그레이는 에드워드 1세와 에드워드 2세 치세에 벌어진 잉글랜드-스코틀랜드 전쟁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1297년 5월 라나크 성벽 인근에서 벌어진 윌리엄 월레스와의 전투에서 거의 죽을 뻔했지만 살아남았다. 1303년 5월 멜로즈 수도원에서 스코틀랜드군에 사로잡혔다가 이듬해 봄 석방된 후 스털링 성 공방전에 참여해 그곳에 갇혀 있던 헨리 드 보몽을 구원했으며, 1314년 6월 23일 배넉번 전투에 참전했다가 생포된 후 몸값을 지불하고 풀려났다. 이후 1319년부터 1331년 까지 노햄 성의 보안관과 수비대장을 역임했다.이렇듯 아버지가 스코틀랜드와의 전쟁에서 종횡무진했기에, 그는 잉글랜드 왕실의 총애를 일찍부터 받아 일찍이 기사 작위를 받았다. 1332년 8월 에드워드 발리올을 스코틀랜드 국왕에 옹립하기 위한 잉글랜드 귀족들의 계획에 참여해 8월 12일 더플린 무어 전투에서 스코틀랜드군을 격파하고 에드워드 발리올을 스코틀랜드 국왕에 옹립했다. 1338년 6월 제1대 솔즈베리 백작 윌리엄 몬타구와 함께 플란데런 원정에 나섰고, 1340년에 다시 스코틀랜드 전선에서 복무했다. 1344년 3월 충실한 봉사에 대한 봉사로 노섬벌랜드에 있는 미들 마스트 미들턴 영지의 관리인으로 임명되었다. 1345년 1월 8일 노햄 성의 사령관으로 선임되었고, 4월 10일에 복무의 대가로 히튼 영지를 수여받고 그곳에 있던 성을 재건했다.
1345년 플란데런에서 슬로이스를 상대로 한 원정에 참여했지만 실패로 돌아갔고, 1346년 10월 네빌스 크로스 전투의 승리에 기여한 뒤 잉글랜드 국왕 에드워드 3세로부터 개인적인 감사 편지를 받았다. 1353년 10월 30일 스코틀랜드와의 휴전이 끝난 뒤 잉글랜드-스코틀랜드 국경을 지키는 임무를 맡았다. 1355년 8월 네스빗 무어 전투에서 스코틀랜드군에 패배해 생포되어 에든버러 성에 갇혔고, 1356년 11월 25일 에드워드 3세에게 편지를 보내 몸값 마련을 위한 도움을 요청했다. 1357년 8월 15일에 풀려난 뒤 1359년 8월 흑태자 에드워드와 함께 프랑스 원정에 나섰다. 1367년 10월 스코틀랜드 국경 감시관에 선임되었다. 1369년 10월 22일 이전에 사망했다.
3. 스칼라크로니카(Scalacronica)
토머스 그레이의 연대기 스칼라크로니카(Scalacronica)는 다섯 부분으로 구성된 역사서로, 앵글로-노르만어로 작성되었다. 이 책은 트로이 시대부터 1363년까지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역사 사건을 다뤘다. 연대기 이름은 아마도 점등을 뜻하는 라틴어 스칼라(Scala) 또는 저자의 가족 성인 그레이('사다리')의 라틴어 번역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그는 1356년부터 이 작품을 집필하기 시작했고, 에든버러 성에서 포로 생활을 할 때도 계속 집필해 1363년경에 완성했다.그는 서문에서 라틴어, 앵글로-노르만어, 고대 영어로 된 산문과 운율이 있는 연대기를 쭉 읽어보면서 역사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으며, 이들 책을 잘 정리해 잉글랜드 역사를 다루기로 마음먹었다고 밝혔다. 스칼라크로니카는 6세기에 집필된 현자 길다의 연대기 <브리튼의 파괴에 관하여>, 8세기 가경자 베데의 <교회 역사>, 12세기 몬머스의 제프리의 <브리튼 왕의 역사>와 옥스퍼드의 월터의 <아서 왕 연대기>, 1312년 헤민버그의 월터의 <잉글랜드 왕들의 행적>, 1347년 라눌프 히그덴의 <폴리크로니콘>, 14세기 중반 타인머스의 존의 <황금 역사>, 그리고 오터번의 토머스의 <잃어버린 연대기>를 기반으로 삼았다. 스칼라크로니카는 플랜태저넷 왕조가 트로이로부터 계승했다는 이론을 일관되게 추구했으며, 스코틀랜드, 웨일스 등지에 대한 잉글랜드 국왕의 역사적 권리를 강조했다.
스칼라크로니카는 작가가 아버지의 이야기와 자신의 목격담을 바탕으로 한 에드워드 1세, 에드워드 2세, 에드워드 3세 통치 기간을 다룬 섹션에서 가장 가치가 높다는 평을 받는다. 특히 1355년부터 1361년까지 프랑스에서의 군사 작전을 매우 자세히 설명한다. 이 책은 1363년 스코틀랜드 국왕 데이비드 2세와 마거릿 드러먼드가 결혼하는 대목에서 마무리된다.
4. 가족
- 마거릿 드 프레스펜: 노섬벌랜드 기사 윌리엄 드 프레스펜의 딸이자 상속녀.
- 토머스 그레이(1359 ~ 1400): 제4대 모브레이 남작 존 모브레이의 딸이며 초대 노퍽 공작 토머스 모브레이의 누이인 조앤 모브레이의 남편.
- 엘리자베스 그레이(? ~ 1412): 제4대 남작 필립 다시의 부인.
- 아그네스 그레이(? ~ 1420): 움프라빌 남작 토머스 움프라빌의 부인.
- 조앤 그레이(? ~ 1434): 존 히튼과 초혼, 랄프 드 크롬웰과 재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