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톨레도 강'이란, 히스파니아의 톨레도 일대를 중심으로한 고업지대에서 만들어졌으며, 이베리아 반도 및 지중해 연안을 비롯한 남유럽 일대에서 각종 재료로 쓰인 단조 강(鋼)을 말한다.이 산업 덕분에 톨레도는 수도를 마드리드로 천도하기 전까지 수도였다.
잉글랜드 왕국의 강철의 수준이 헨리 8세 시절에 '랄프 호게(Ralf Hogge)'[1]가 개발한 철제 컬버린[2]이 양산 및 운용된 수준의 제련 기술을 발전시키면서, '톨레도 강'은 유명세에서 밀려나게 되었다.
2. 역사
톨레도의 기술자들은 강철의 최종적 품질을 결정짓는 열처리(담금질 & 뜨임) 기술이 뛰어났고, 무엇보다 그 공정들이 표준화되어있었다. 몇몇 소수 장인들의 감과 경험에 의존하는 것보다 기술을 표준화하는 것이 품질의 상향 평준화에 유리했다. 단적인 예로 시계가 없던 시절에 담금질 시간을 정확히 맞추기 위해 '담금질 시간에 박자가 맞춰진 표준화된 기도문'을 운용했다고 한다.콩키스타도르들이 아메리카 대륙에서 압도적인 전력 차를 헤쳐 나가거나 오히려 정복을 할 수 있었던 것도 사실 '사이드 소드 + 톨레도 강 흉갑 + 톨레도 강 방패'로 무장한 로델레로의 위력이 탄환과 탄약 수급 및 운송이 불안정한 머스킷, 컬버린보다 더 컸다.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대부분 흑요석 무기 등의 석제 무장을 사용했고, 전금속제 무기는 사실상 본 적도 없어 강철 검의 대응법을 몰라서 검을 막을 만한 방어구도 거의 입지 않았은 상태였다.
2.1. 무기
톨레도 강은 고대부터 품질 좋은 강철 주괴의 생산 및 도검 등의 병장기 제작으로 유명했다.2.1.1. 글라디우스
고대 로마군에서 '글라디우스 + 스쿠툼' 조합으로 구성된 테스투도 전술이 대표적으로 유명하다.한손검로써 잘 알려진 글라디우스라는 말은 고대 라틴어로 '검'을 의미하는 일반 명사이다.
원래는 '글라디우스 히스파니엔시스(Gladius Hispaniensis)', 즉 '히스파니아제 검'도 톨레도산 강철로 만들어졌고, 이 기원은 산이 많은 이베리아 반도 사람들이 사용하던 톨레도산 곧은 군용 강철 양날검이었다.
원래 로마의 본거지인 이탈리아 반도는 철광석이 풍부한 곳이 아니었다. 로마 초기, 이탈리아 반도 북부 갈리아치살피나(알프스 산맥 남쪽 및 동쪽 지역)와 투스카니, 엘바 섬과 사르디니아 섬에서 철광석을 채취했었다.
포에니 전쟁 전까지 이베리아 반도를 지배했던 카르타고에도, 이 검을 사용한 이베리아 용병들이 있었다. 그들을 통해 역시 이탈리아의 산악지대에 걸쳐 웅거한 에트루리아와 삼니움에게 전래되고, 다시 에트루리아의 영향을 받은 로마에도 이 칼이 병기로 사용된 것으로 추측된다. 포에니 전쟁 승리 이후에는 갈리아트란살피나(프랑스 남부 지역)와 이베리아 반도로 뻗어나갔다.
톨레도 강 이외에 유명한 강철의 경우, '노리쿰(Noricu) 지역(현재의 오스트리아, 슬로베니아)'에서 '노릭 강철'이라는 의미인 '칼립스 노리쿠스' 등의 강철이 유명했었다.
2.1.2. 스파타
밀집형 방진으로 구성된 전술이 한계에 도달하자, '스파타 + 케트라투스' 조합이 유명해졌다.스파타는 에스파다의 어원으로도 유명하다.
2.1.3. 사이드 소드
톨레도산 블레이드를 수입한 다음에 힐트를 따로 조립해서 사이드 소드를 완성하는 것이 유명하였으며, 그 다음로는 졸링겐산 블레이드가 유명했다.'브로드 소드 + 타지' 조합의로 구성된 하이랜드 차지 전술이 유명하다.
2.2. 방어구
톨레도 강 방어구는 고대 로마 시대부터 잉글랜드의 산업 혁명 이전까지 최고의 명품으로 호평받았다.투구로는 모리용(Morion)이 유명하다.
톨레도 강에 비해 다마스쿠스 강은 방어구로써는 유연성이 떨어지며 경도가 너무 높아서 취성이 적지 않다는 평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