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3-21 14:54:32

톰 힉스

톰 힉스의 역임 직책
{{{#!folding [ 펼치기 · 접기 ] 리버풀 FC 회장 · 구단주
데이비드 무어스
(1991~2007)
톰 힉스 & 조지 질레트 주니어
(2007~2010)
마틴 브러튼 경
(2010)
}}} ||
파일:tomhicksusa.jpg
<colbgcolor=#c52033,#222222><colcolor=white> 이름 톰 힉스
Thomas Hicks
출생 1946년 2월 7일 ([age(1946-02-07)]세)
텍사스주 포트 아서
국적
[[미국|]][[틀:국기|]][[틀:국기|]]
학력 하버드 대학교 (재무학 / 학사)
서던 캘리포니아 대학교 (경영학 / 석사)
직업 사업가
경력 댈러스 스타스 구단주 (1995~2011)
텍사스 레인저스 구단주 (1998~2010)
리버풀 FC 구단주 (2007~2010)
재산 10억 달러(2009년 포브스 기준)
1. 소개2. 경력3. 구단주 경력4.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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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톰 힉스는 NHL 댈러스 스타스, MLB 텍사스 레인저스, EPL 리버풀 FC의 前 구단주이다. 그는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업가로, 2009년 《포브스》에 의하면 현재 자산은 10억 달러로 추정된다.

2. 경력

힉스는 1946년 2월 7일 휴스턴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존 힉스는 라디오 방송국의 오너였다. 이후 퍼스트 내셔널 뱅크 오스틴 벤처 캐피탈 그룹을 인수해 각종 청량 음료들을 제조하였고, 1984년 동업자 로버트 하스와 함께 힉스 & 하스 그룹을 창립했다.

1989년에는 은행가 존 뮤즈와 함께 공동 투자 회사, 힉스 뮤즈 테이트 퍼스트(비르 전직 프루덴셜 증권) 등을 설립하였고, 회사, 생명 보험 회사, 생명 파트너 그룹 등을 포함한 초기 투자로 2억 5000만 달러를 벌어들였다. 1991년 모건 스탠리의 찰스 테이트, 퍼스트 보스턴의 잭 프러스트와 동업자가 되어 1989년부터 2004년까지 회장을 지냈다.

그는 2004년 3월 힉스 뮤즈의 회장 직에서 물러난 뒤 그만의 벤처 기업을 세웠으니 바로 '힉스 홀딩스'다. 그는 스포츠 산업에 좀더 집중했고 TV 사업에도 뛰어들어 막대한 수익을 거두었으며 중국, 아르헨티나 등에도 자사를 설립하고 부동산 사업을 실행에 옮겼다. 또한, 힉스는 자원 에너지 협회를 설립하고 가스와 석유 산업에도 뛰어들었다. 그의 아들 토머스 힉스 주니어는 이 협회의 보드진으로서 활동하고 있다.

힉스는 정치 쪽에서도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텍사스에 토지를 기증해 톰 힉스 초등학교를 설립하는 등 자선 사업도 펼치고 있다.

3. 구단주 경력

3.1. 댈러스 스타스 시절

1995년 12월, 힉스는 NHL의 댈러스 스타스를 인수하고 팀의 구단주로 취임했다. 힉스는 스타스의 회장이 되었고 NHL 협회의 임원을 겸했다. 그는 아메리칸 에어라인스 센터[1]를 건설하는 사업을 위해 장기적인 계획을 수립, 댈러스 스타스를 통해 홍보효과를 누리고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힉스의 구단 운영하에, 스타스는 디비전 우승 7회, NHL 서부컨퍼런스 우승 2회, 프레지던트컵 2회 우승을 거뒀다. 또한 1998-1999 시즌에는 스탠리 컵에서 우승을 거머쥐었다.

3.2. 텍사스 레인저스 시절

1998년 6월, 힉스는 MLB텍사스 레인저스를 인수했다. 그가 운영하던 시절의 레인저스는 1998년과 1999년에 2년 연속으로 아메리칸리그 서부지구 1위를 차지했다. 팀이 창단된 지 30여 년이 지난 상황에서 드디어 우승을 바라볼 수 있는 위치에 놓였고, 힉스는 레인저스의 월드 시리즈 우승을 위해 투자를 했다. 박찬호5년 6500만 달러에 계약하는 등 많은 선수를 영입했지만 결과를 내지는 못했다.

3.3. 리버풀 FC 시절

2007년 데이비드 무어[2]로부터 리버풀을 인수하면서 조지 질레트 주니어와 함께 프리미어리그 리버풀 FC의 공동 구단주로 취임했다. 그러나 불안정한 재정 안정성과 막장 운영으로 무수한 질타를 받으며 리버풀 역사상 최악의 구단주로 등극했다.

질레트와 힉스는 2007년 2월, 외부 자본을 원하고 있던 리버풀의 지분 98%를 단번에 매입하면서 리버풀 역사상 최초의 외국계 자본가로써 구단을 경영하게 되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후계자들과도 함께 리버풀의 미래를 계획하겠다며 장기적인 운영에 자신감을 내비치는 등 자신들의 재정적 안정성을 강조하며 구단 인수에 성공했다. 3년 넘게 인수자를 구하고 있던 리버풀의 이사회 또한 이들의 발언을 신뢰하며 구단을 넘겨줬지만 이는 새빨간 사기극에 불과했다.

질레트와 힉스가 리버풀 인수에 근접하자 그들의 실상을 알고 있던 재계 언론 및 기업들이 우려를 표했지만[3], 그들은 기자들을 불러모아 60일 내에 신구장 건설 공사를 시작하겠다며 자극적인 공약들을 내세웠고, 축구계에서는 초보 경영임에도 불구하고 미국 스포츠에서의 운영 경력을 내걸며 이사화의 눈과 귀를 막았다. 그러나 힉스는 실제로 1999년 브라질의 크루제이루 ECSC 코린치안스를 소유하기 위해 파트너십을 채결했다가 법정 문제와 재정 문제를 연발하며 신구장 건설 공약을 이행하지도 못한채 축구계에서 쫒겨난 전적이 있었고, 이 역사는 슬프게도 리버풀에서 또 반복되게 되었다.

구단의 지분을 대규모로 매입하며 우수한 자본을 과시했던 그들의 실상은 비참했다. 처음에는 일이 잘돌아가는 듯 했다. 그들은 2007년 첫 여름 이적시장에서 라파엘 베니테즈가 선수 보강을 요청하자, 20m 파운드의 클럽 레코드로 페르난도 토레스를 사왔으며, 라이언 바벨, 요시 베나윤, 루카스 레이바, 안드레이 보로닌 등에 과감한 투자를 감행했다. 하지만 선수 보강에 들어간 돈은 그들의 주머니에서 나오는 돈이 아니었다. 그들의 자본금은 모두 대출에서 나온 것이었다. 그들은 스코틀랜드 왕립은행과 와코비아에서 350m 파운드를 대출받았고, 이 모든 부채는 리버풀 구단 장부에 기록되는 구조였다. 심지어 당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며 리버풀은 엄청난 이자를 부담하게 되었고, 그들의 만행은 점차 수면 위로 드러나게되었다.

당시 베니테즈 감독은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는 것을 알았고, 결국 질레트와 힉스에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그러자 질레트와 힉스는 2008년 1월 베니테즈를 해임하려고 시도했다. 이에 그들은 베니테즈를 경질하고 위르겐 클린스만을 데려오려고 시도했는데, 이 시도가 들통나자 "우리는 베니테즈가 레알 마드리드나 언론에서 링크가 난 다른 클럽으로 떠날 것을 대비하여 보험 차 클린스만과 접촉한 것이다."라며 졸렬한 변명을 내세웠다. 그 이후 이적자금을 주지 않아 베니테즈는 스쿼드를 정리한 자금으로 선수들을 영입해야 했으며, 그로인해 주전과, 서브의 갭이 매우 심해졌고 이는 리버풀이 빅4 상대전적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점했으면서도 리그 우승을 차지하지 못한 결정적 원인이 되었다, 게다가 2007-08시즌 사비 알론소가 부진하자 베니테즈는 가레스 배리를 영입하려 했지만 질레트와 힉스의 자금은 실체를 드러냈고, 결국 미드필더가 두텁지 않았음에도 어쩔수없이 알론소를 매물로 내놓아야했다. 이후 대체자 배리 영입도 실패로 돌아갔고 알론소도 잃으며 리버풀의 스쿼드에도 균열이 일어나게 된다. 더군다나 그들이 애초에 약속한 신구장 스탠리 파크는 진행조차 되지 않고 있었다.

이후 '스피릿 오브 샹클리(SOS)'라고 불리는 리버풀 현지의 서포터즈 대표 단체가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고 힉스와 질레트의 퇴출을 요구하는 행진 시위를 계획, 실시하기에 이르렀다. 그들은 '거짓말쟁이 미국놈들은 떠나라!(yank liar$ out!)'이라는 표어 아래 약 4,000명이 모여 서포터 주둔지로부터 경기장까지 시위를 진행했다. 질레트는 행진 시위가 있기 직전 실제로 SOS의 대표자를 만나 짧게 회담을 나누었으나, 그 자리에서도 그는 클럽의 재정 기반이 안전하며 은행의 신용위기로 신구장 건설이 지연될 뿐이라며 변명으로 일관했다. 결국 클럽 내외부에서 엄청난 반발과 비판 여론이 일게 되었다.

그리고 2008년 5월, 엄청난 비판 여론 앞에 힉스와 질레트는 심지어 서로 틀어지기 시작했다. 막장 운영의 끝에 서로 다툼까지 벌이는 촌극에 의해 신구장 공사비 300m 파운드는 모금 될리가 만무했고, 약속했던 기간은 커녕 1년 넘게 계획은 방치되었다. 심지어 공사조차 하지 못한 부지, 디자인, 법률 및 관리 비용으로 35m 파운드가 낭비되었다. 실제 2008년 3월, 질레트는 리버풀 지분의 98%를 DIC에 매각하려고 했으나 갈등에 의해 힉스의 반대로 무산되기도 했다. 구단이 재정적 암흑 속으로 빠져들어가자 팬들은 점점 더 거세게 항의하기 시작했다. 서포터즈 단체들은 리버풀 역사상 최악의 위기라며 거세게 구단주들에게 반발했으며, 베니테즈가 잘못된 운영과 망가진 재정 속에서도 힘들게 일하고 있다며[4] 상황의 위태함을 알렸다. 팬들은 이러한 항의를 힉스의 아들, 토머스 힉스 주니어에게 직접 편지로 전달하기도 했는데, 보드진에서 경영에 참여하고 있던 힉스의 아들은 "Idiot, b**** me, f*** face, go to hell, i'm sick of you"라는 답장을 보내 사태에 기름을 들이 부었고 전 세계 리버풀 팬들의 엄청난 분노를 폭발시켰다. 결국 이 여파로 힉스의 아들은 해고 당했고 상황은 최악의 국면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결국 2010년 4월 16일, 전 세계 리버풀 팬들의 불타는 비난과 분노에 못이긴 질레트와 힉스는 구단을 매각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그들은 적어도 자신들이 인수했던 금액의 3배 가격으로 구단을 판매할 것이라고 선언했고, 가능하면 4배 가격으로 받기를 희망한다고 덧붙였다. 이들이 리버풀을 인수할 당시 들였던 돈은 2억 1890만 파운드였으니 매각 가격을 6억 파운드에서 8억 파운드로 매긴 셈이다. 리버풀이 아무리 명문 구단이라지만 어느 누구도 빚을 안고 있던 리버풀을 이 엄청난 가격을 들여가며 인수하려 하지 않았다. 이에 더 이상 재정 위기를 지속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린 리버풀의 보드진은 질레트와 힉스가 구단을 부당하게 운영하고 있다며 영국 법원에 두 사람의 구단주 자격을 박탈해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힉스와 질레트는 그들을 "회사 자산을 약탈하려는 자들"이라고 묘사하며 리버풀이 탐욕자들에 의해 진이 빠지고 있다고 적반하장으로 구단 보드진을 비난하는 충격적인 추태를 부리기에 이르렀다.

결국 이후 브리티시 에어웨이즈의 회장 마틴 브러튼 경이 리버풀의 임시 구단 회장으로 지명되어 사태를 중재했으며, 2010년 10월, 리버풀 보드진은 인수 의사를 밝힌 존 헨리펜웨이 스포츠 그룹[5]에게 구단을 넘겨주기로 결정했다. 그러자 힉스와 질레트는 보드진이 자신의 의향은 전혀 반영하지 않고 인수자를 멋대로 정했다며 그들을 해고하겠다고 밝혔다. 당시 또 다른 인수 희망자로 싱가포르 사업가 피터 림이 있었는데 피터 림이 더 많은 인수금을 제시하여 힉스와 질레트의 입장에서는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었기 때문. 그러자 리버풀 보드진은 FSG가 인수자로 훨씬 합리적이고 즉각 해고는 부당하다며 법원에 소송을 걸었다. 당시 리버풀은 톰 힉스, 조지 질레트의 엉성한 팀 운영으로 인해 빚이 천정부지로 쌓인 상황에다가 인수 국면으로 정상적인 운영이 이뤄지지 못하면서 제때에 인수자를 구하지 못하면 파산까지 이어질 위기에 몰려있었다. 다행히 10월 15일 법정이 리버풀 보드진의 손을 들어줬고 리버풀은 3억 파운드에 매각되어 끔찍했던 질힉을 벗어나 FSG 체제로 넘어갈 수 있었다.

그리고 이후 힉스가 리버풀을 넘겨주려고 했던 피터 림은 발렌시아 CF를 인수하였는데, 이후 최악의 막장 운영 행보를 보였고 이에 힉스의 경악스러운 안목이 또 한 번 드러나게 되었다. 리버풀은 질레트와 힉스 체제를 벗어나 FSG 아래에서 다시금 구단의 전성기를 이룩하게 되었고, 질레트와 힉스는 리버풀 역대 최악의 구단주를 넘어 프리미어 리그 역사상 가장 무능하고 졸렬한 자본가로 역사에 남게 되었다. 현재까지 힉스는 탐욕과 거짓으로 점철된 사악한 인성, 본인의 안위만을 챙기는 멍청하고 졸속한 운영, 부끄러움을 모르고 끝까지 경악스러운 행보로 일관한 후안무치의 집합체로 평가받는다.

4. 같이 보기

{{{#!wiki style="margin: -10px -10px"<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d00027><tablebgcolor=#d00027> 파일:리버풀 FC 로고.svg리버풀 FC
회장 · 구단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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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 0 -10px -5px"
{{{#ffffff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555555,#aaaaaa
순서 국적 이름 기간 비고
초대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존 하울딩 1892~1896 구단 창립자
2대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윌리엄 하울딩 1896~1904
3대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에드윈 베리 1904~1909 새 이사회 구성
4대 파일:아일랜드 국기.svg 존 맥케나 1909~1913 최초의 감독 출신 회장
최초의 외국인 회장
5대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존 애스버리 1913~1917
6대 파일:아일랜드 국기.svg 존 맥케나 1917~1919 최초의 중임 회장
7대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윌리엄 윌리엄스 1919~1924
8대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리차드 마틴데일 1924~1926 재임 중 타계
9대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토마스 크롬튼 1926~1932
10대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왈터 카트라이트 1932~1935
11대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윌리엄 해롭 1935~1941
12대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리차드 마틴데일 주니어 1941~1944
13대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W. H. 맥코넬 1944~1947 재임 중 타계
14대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스텐리 윌리엄스 1947~1950
15대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조지 리차즈 1950~1953
16대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윌리엄 해롭 1953~1956 중임/재임 중 타계
17대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T. V. 윌리엄스 1956~1964
18대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시드니 리크스 1964~1967 새 이사회 구성
19대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해롤드 카트라이트 1967~1969
20대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허버트 로버트 1944~1947 재임 중 타계
21대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존 스미스 1973~1990 최장 기간 재임 회장
22대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노엘 화이트 1990~1991
23대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데이비드 무어스 1991~2007
24대 파일:미국 국기.svg 톰 힉스 & 조지 질레트 주니어 2007~2010 최초의 공동 구단주
최초의 미국인 구단주
25대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마틴 브러튼 경 2010 구단 매각을 위한 임시 구단주
26대 파일:미국 국기.svg 존 헨리 2010~
참고 사항
* 리버풀 FC의 회장은 구단 이사회가 선출하는 최고직이었으나, 데이비드 무어스 이후 구단 지분 과반 이상을 소유해 구단주로 명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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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NBA 댈러스 매버릭스와 공동 사용.[2] 1991년 이후 리버풀의 최대 주주였다.[3] 특히 두바이 인터네셔널 캐피탈은 질레트와 힉스가 구단을 매입할 만한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고 일찍이 판단하기도 했다.[4] 실제로 구단이 재정적으로 최악의 상황에 빠져들어가는 와중에도 베니테즈는 2008-09 시즌 리그 타이틀 경쟁을 해냈으며, 챔피언스 리그 16강에서 레알 마드리드를 압도하며 격파하는 호성적을 보여줬다.[5] 당시 이름은 New England Sports Ventures(NESV)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