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장문 배경
바다뱀 삼각주의 유랑민 집단에서 태어난 토비아스 펠릭스는 배척당하는 게 어떤 기분인지 일찌감치 깨우쳤다. 사람들은 그들의 이국적인 물건에 끌리면서도 기이한 전통 때문에 무시하기 일쑤였으며, 알록달록한 유랑민의 범선은 어디에 정박하든 환영받지 못했다. 어른들은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이라고 했지만, 토비아스는 사람들의 편견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러던 중 토비아스는 노름판이 벌어지는 천막에서 천부적 재능을 발견했다. 운과 기술이 필요한 모트휠이나 스태버스코치에서 처음 카드를 손에 쥐었을 때였다. 수년 전, 미신을 믿는 토비아스의 할아버지는 카드를 섞고 나누면서 점을 보는 방법을 가르쳤고, 고모는 상대의 습관을 통해 패를 파악하는 법을 알려 주었다. 두 가지 기술을 활용해 토비아스는 크라켄핸드 같은 큰돈이 걸린 판도 노련하게 지배했다. 심지어 한 벌 내의 카드 순서를 '느낌'으로 파악하고 각 카드가 누구에게 분배되는지도 알 수 있었다. 종종 속임수로 의심받기도 했지만, 정확히 어떤 속임수인지 아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토비아스에게 큰돈을 잃은 한 무리의 사내가 복수를 위해 한밤중에 찾아왔다. 싸구려 술에 취한 채로 곤봉을 들고 천막을 차례로 열어젖혔다. 방해하는 사람은 모두 때려눕혔다. 두려움에 휩싸인 토비아스는 어둠 속으로 도망쳤다. 동이 튼 후 돌아온 토비아스의 눈에 야영지를 해체하고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다만 누구도 토비아스를 쳐다보지 않았다. 자신의 안위만을 생각했던 토비아스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피해를 봤기 때문이었다. 토비아스는 애걸복걸했지만, 결국 추방되고 말았다. 세상이 무너지는 듯한 기분을 느끼며, 토비아스는 강둑에 서서 멀어지는 범선을 바라보았다. 남은 거라곤 할아버지가 남긴 낡은 카드 한 벌뿐이었다. 그 후로 토비아스는 성인이 될 때까지 떠돌이 생활을 했다. 노름판을 발견할 때마다 자신의 기이한 능력을 발휘해 굶어 죽지 않을 만큼만 돈을 벌었다. 그러면서 오만하고 건방지거나, 잔혹한 이들의 돈을 따는 재미를 알게 되었다. 물론 안전을 위해 몇 판 져 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러다가 한 노름판에서 말콤 그레이브즈라는 험악한 남자를 만났다. 서로에게서 동질감을 느낀 토비아스와 그레이브즈는 곧바로 손을 잡았다. 그리고 수년간 북동부 연안 도시를 휩쓸며 다양한 건수를 올렸다. 사기, 협잡, 강도질을 하며 토비아스는 자신의 능력이 점점 강해짐을 느꼈다. 그것은 단순한 도박사의 행운 이상이었다. 바다뱀 삼각주의 유랑민들은 원시 마법이나 카드점을 멀리했지만, 토비아스는 더더욱 위험한 방법을 통해 카드를 마음대로 다루려고 했다. 결국 무모한 한탕을 시도하다 일이 터지고 말았다. 그날 밤 정확히 무슨 일이 있었는지 두 사람 다 얘기하기를 꺼렸다. 다만 그레이브즈는 생포되고 토비아스와 다른 공범들은 도망쳤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었다. 토비아스는 그레이브즈를 구출하려고 했다가 실패하자, 새 출발을 위해 본명을 버리고 '트위스티드 페이트'라는 이름으로 개명했다. 그 후 트위스티드 페이트는 여러 노름판을 돌며 사기 행각을 벌였다. 다만 도움을 줄 동료가 없어 곤경에 빠지는 일도 잦았다. 감옥에 갇히는 일도 많았지만, 세상 어디에도 트위스티드 페이트를 가둘 수 있는 감옥은 없는 듯했다. 아침만 되면 조롱하듯이 카드 한 장만 남기고 흔적도 없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마침내 트위스티드 페이트는 빌지워터에서 그레이브즈와 맞닥뜨렸지만, 유력 선장들의 세력 다툼에 휘말려 다시 손을 잡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해적왕 갱플랭크가 사망하자 두 사람은 곧바로 화해하고 필트오버로 떠났다. 트위스티드 페이트는 옛 동료와 재회할 수 있어 기뻤다. 물론 신뢰를 회복하려면 한두 번, 아니 '열 번' 정도 다시 호흡을 맞춰 봐야 하겠지만. |
2. 더블 다운
반짝이는 행운 도박장에서 사람들은 트위스티드 페이트에게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사람들의 시선 속에는 부러움과 대리만족감도 있었지만 트위스티드 페이트가 빈털터리가 되기를 심술궂게 바라는 마음 또한 컸다. 주변을 둘러보지 않아도 올가미가 목을 서서히 죄어오는 것처럼 이상한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카드들이 경고하듯 파르르 떨렸다. 누군지 몰라도 추격자가 바짝 쫓아왔단 뜻이다. 어서 판을 접고 떠야 한다. 그러나 맞은편에 앉아 있는 남자를 박살낼 기회를 놓치기는 너무 아까웠다. 트위스티드 페이트는 상대를 향해 활짝 핀 꽃처럼 웃어 보였다. 광부들을 노예처럼 부리며 돈을 벌어들인 상인, 헨마였다. 헨마는 프렐요드 모피, 수제가죽, 빌지워터의 바다 부적 등 아주 비싼 것들을 몸에 두르고 있었다. 또한, 손에는 평범한 사람은 평생 구경도 하기 힘든 값어치의 금반지를 열 손가락 마디마디에 뽐내듯 끼고 있었다. 탁자 위에 수북이 쌓인 금은보화와 문서 더미 위로 수제 파이프의 향긋한 연기가 자욱하게 피어 올랐다. 트위스티드 페이트는 상인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헨마님 차례인 걸로 아는데요.” “이 쥐새끼 같은 놈, 규칙은 나도 알아.” 헨마가 말했다. 트위스티드 페이트는 문신이 새겨진 손가락으로 자신의 카드 뒷면에 소용돌이 모양을 끝없이 그려댔다. “화려한 손재주로 주의를 끄는 건가? 나한테 뭔가 얻어낼 생각은 꿈에도 하지 말라고.” “주의를 끌다뇨?” 트위스티드는 자신감 있고 세련된 몸짓으로 말했다. “맹세컨대 그런 저급한 수를 쓸 정도로 비열하진 않습니다.” “아니라고? 근데 왜 자꾸 눈을 굴리는 거지?” 헨마가 연기를 내뿜으며 손을 저었다. “똑똑히 들어. 나는 최고의 꾼들을 상대해왔다. 네놈들의 표정만 봐도 무슨 속셈인지 다 알아.” 트위스티드 페이트는 빈정거리며 카드를 섞었다. “나리가 예리하시다는 건 잘 알겠습니다.” 그리곤 모자를 벗어 연극배우처럼 인사를 했다. 트위스티드 페이트의 눈은 군중들 위로 한 바퀴 원을 그렸다. 늘 그렇듯 콩고물이라도 떨어질까 싶어 모여든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눈에 띄는 인물들이 있었다. 카드가 좀 전보다 더 심하게 떨렸다. 입안에서 구역질이 날 것처럼 쓴맛이 났다. 이건 곧 소동이 일어날 신호다. 도박장 한 구석, 안대를 한 남자와 붉은 머리 여자의 허리춤에 총이 얼핏 보였다. 트위스티드 페이트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내가 아는 사람들인가? 헨마의 재산을 지키는 자들인가? 헨마가 부하들을 데리고 왔으면 숨겨두지 않고 과시했을 거다. 그럼 현상금 사냥꾼이군. 손안의 카드가 쉬지 않고 떨고 있다. 트위스티드 페이트는 카드를 모아 탁자 위에 늘어놓았다. “표정 관리도 안 되나? 잃은 티가 너무 나잖아.” 헨마가 말했다. 모두를 깔보며 살아온 사람의 말투였다. “그렇다면 좀더 재미있게 해보실까요, 나리?” 트위스티드 페이트는 부채꼴 모양으로 카드를 펼쳤다. 추격자들이 가까워지고 있다. “판돈을 두 배로 올리시죠.” “네놈이 그만큼 걸 돈이나 있어?” 헨마가 의심스럽다는 듯 물었다. “얼마든지요.” 트위스티드 페이트는 헨마를 똑바로 바라보며 코트 주머니에서 두둑한 금화 주머니를 꺼냈다. “나리는요?” 헨마는 입맛을 다시며 재빨리 손짓했다. 뒤에 서 있던 하인이 돈주머니를 건넸다. 탁자 중간에 쌓여 있던 금은보화에 돈이 더해지자 구경꾼들이 나지막한 탄성을 질렀다. 지금 걸린 판돈보다 훨씬 적은 돈에도 수많은 목숨이 오갔으니까. “네 패를 먼저 보여라.” 헨마가 말했다. “그러죠.” 트위스티드 페이트가 카드를 뒤집는 순간. 현상금 사냥꾼들이 움직였다. 안대를 한 남자가 올가미를 던졌다. 여자는 쌍권총을 꺼내 들며 트위스티드 페이트의 이름을 외쳤다. 트위스티드 페이트는 발로 차 탁자를 뒤집었다. 공중에서 금화, 카드, 양피지가 눈송이처럼 흩날렸다. 쌍권총이 굉음을 내며 탁자에 주먹만 한 구멍을 냈다. 딸각 올가미가 채워지는 소리가 들렸다. 자욱한 연기로 한 치 앞도 볼 수 없었다. 비명이 잦아들고 연기가 걷혔을 때는 이미 트위스티드 페이트가 사라진 후였다. 카드와 종이쪼가리 사이에서 사람들은 금화를 찾아내려 혈안이 되어 있었다. 헨마가 벌떡 일어났다. 두리번거리더니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부서진 탁자 조각 사이로 손을 뒤적이던 헨마가 창백한 분노 속에서 외쳤다. “돈. 내 돈! 어디 갔어. 내 돈!” 어지럽게 흔들리는 행운 도박장의 빛 속에서 다섯 장의 카드가 펄럭이며 헨마 앞에 떨어졌다. 이기는 패였다. |
3. 총잡이와 도박꾼
해당 문서 참조 바람.4. 철부지들과 봄볼로니
그레이브즈/배경 참고.5. 구 배경
트위스티드 페이트는 부러운 남자다. 비록 가난한 집시 집안에서 태어나긴 했지만, 출신은 그에게 그 어떤 방해도 되지 않았다. 트위스티드 페이트는 데마시아와 녹서스의 불법 도박장을 넘나들며 카드 사기를 쳤고 큰 돈을 벌게 되었다. 게다가 운은 또 대단히 좋아서 위기가 코앞까지 다가온 상황에서도 어찌어찌 탈출할 수 있었다. 운이 따르지 않았다면 경찰의 수사망을 매번 그토록 유유히 빠져나갈 수 없었을 것이다. 돈도 많고 운도 좋고 남부러울 것이 없었던 그에게도 어릴 때부터 갈망하던 것이 있었다. 바로 마법 조종의 힘을 손에 넣는 것이었다. 불가능해 보이는 꿈을 품고 살아가던 어느 날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 자운에서 사람을 대상으로 마법 실험을 시행한다는 것이 아닌가? 트위스티드 페이트는 타고난 도박사답게 누구보다 먼저 실험 대상으로 자원하고 나섰다. 악명 높은 재비어 라스 박사의 실험체가 된다는 것은 그야말로 엄청난 도박이었다. 박사도, 실험대상도 그 어떤 것도 예상할 수 없었다. 모든 게 송두리째 바뀔지도, 바뀌지 않을지도, 최악의 경우엔 끔찍한 죽음을 맞이할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어떤 결과가 나오든 반드시 고통이 따르게 될 건 뻔했다. 하지만 이런 것쯤은 트위스티드 페이트에게 있어선 고난 축에도 끼지 않았다. 그는 마법의 힘에 대한 갈망으로 실험의 모진 고통을 전부 이겨냈다. 그러나 실험은 아무 효과도 없이 무의미하게 끝나버렸다. 트위스티드 페이트는 지독한 허탈함과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다. 길길이 날뛰면서 연구원들을 해치우려는 찰나, 그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실험실에서 수 킬로미터나 떨어진 곳으로 순식간에 이동해 버렸다. 행운의 여신이 또 한 번 자신의 편에 섰음을 깨달은 그는 교활한 미소를 지었다. 이제 트위스티드 페이트는 전쟁 학회에서 타고난 운과 난봉꾼다운 매력을 한껏 뽐내며 특히 도박꾼들에게 큰 사랑을 받고 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라스 박사와의 재회만은 극구 피하고 있지만, 트위스티드 페이트 자신도 박사와의 만남을 언제까지나 피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다른 이들에게 미래란 불확실한 것이지만, 트위스티드 페이트는 자신의 미래가 카드 속에 있다고 굳게 믿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