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위 문서: 티베트 불교
1. 개요
티베트 불교에는 날란다 사원의 전통을 계승한 불교 교육 체계가 존재하는데, 이를 장춥람림(byang chub lam rim), 한역으로 보리도차제(菩提道次第)라고 한다. 이름을 풀이하면 '깨달음에 이르는 길에 매겨진 순서'라고 할 수 있다.불법(佛法)에는 완전하고 명료하게 의미를 드러낸 요의법(了義法)과 방편으로 설한 불요의법(不了義法)이 있다. 광대한 불법의 바다에서 대소승의 요의법만을 모아 간추린 요의법의 왕이 바로 《람림》이라고 할 수 있다.
《람림》에 의지하면 대승과 소승의 가르침을 모두 아우르면서도 헤매지 않고 수행이 가능하다. 밀교의 매우 깊은 가르침에 의지하여 한 생에 깨달을 수 있는지 여부도 《람림》의 내용을 얼마나 실천하느냐에 달려있다고 한다.
《람림》은 크게 예비수습, 삼사도(三士道), 지관(止觀) 수행으로 구성된다. 《람림》의 구성에 따라 수행 순서도 예비수습 → 하사도 → 중사도 → 상사도 → 샤마타(지止) → 비파샤나(관觀) 순을 따른다.[1]
초펠, 게시 소남,《티벳 스승들에게 깨달음의 길을 묻는다면》(개정판)
2. 연원
귀의의 대상인 삼보(三寶)를 나타낸 람림 전승의 촉싱(tshogs zhing)[2] |
수만 가지의 원만한 공덕으로 이루어진 몸[身]
무한한 중생의 희망을 채워주는 말씀[口]
모든 인식대상을 여실(如實)하게 보시는 마음[意]
석가 본존께 머리 숙여 예경하나이다.
비할 데 없는 설시자(說施者)의 최상의 아들
승자(勝者)의 모든 행에 책임을 지니며
무수한 세계에 화현(化現)하여 나투신
미륵보살과 문수보살께 예경하나이다.
매우 알기 어려운 승자의 어머님[3]
의도를 여실하게 주석하신 세계의 장엄이신
삼지(三地)[4]에 널리 명성을 떨치신
용수보살과 무착보살의 발에 예경하나이다.
두 대의 큰 마차[5]
심오한 견해와 광대한 행의 도(道)
틀림없고 완전한 요점을 요약한
요의법의 보고(寶庫)를 지닌 아띠샤께 예경하나이다.
광대한 모든 가르침을 보는 눈이며
행운아들이 해탈로 나아가는 최고의 입문이며
자비심으로 일으킨 수승한 방편을 행함으로써
밝게 비추시는 스승들께 예경하나이다.
《람림 예경문》(게셰 텐진 남카 譯)
무한한 중생의 희망을 채워주는 말씀[口]
모든 인식대상을 여실(如實)하게 보시는 마음[意]
석가 본존께 머리 숙여 예경하나이다.
비할 데 없는 설시자(說施者)의 최상의 아들
승자(勝者)의 모든 행에 책임을 지니며
무수한 세계에 화현(化現)하여 나투신
미륵보살과 문수보살께 예경하나이다.
매우 알기 어려운 승자의 어머님[3]
의도를 여실하게 주석하신 세계의 장엄이신
삼지(三地)[4]에 널리 명성을 떨치신
용수보살과 무착보살의 발에 예경하나이다.
두 대의 큰 마차[5]
심오한 견해와 광대한 행의 도(道)
틀림없고 완전한 요점을 요약한
요의법의 보고(寶庫)를 지닌 아띠샤께 예경하나이다.
광대한 모든 가르침을 보는 눈이며
행운아들이 해탈로 나아가는 최고의 입문이며
자비심으로 일으킨 수승한 방편을 행함으로써
밝게 비추시는 스승들께 예경하나이다.
《람림 예경문》(게셰 텐진 남카 譯)
《람림》전승은 석가모니불로부터 유래한 두 갈래 법맥을 계승하였다고 여겨진다. 여기서 두 법맥이란 석가모니불-미륵보살-아상가(무착)로 이어지는 도의 광대한 실천을 중시하는 법맥(rgya chen spyod brgyud)과, 석가모니불-문수보살-나가르주나(용수)로 이어지는 공성의 심오한 견해를 중시하는 법맥(zab mo lta brgyud)을 가리킨다.
인도의 스승 아티샤가 전자의 법맥은 스승 수와르나드비파의 다르마키르티(쎌링빠)(Skt. Suvarṇadvīpa Dharmakīrti, Tib. gser gling pa)[6]로부터, 후자의 법맥은 스승 비드야코킬라(릭빼쿠쥭)(Skt. Vidyākokila Tib. rig pa'i khu byug)[7]로부터 이어 받아 두 법맥을 통합하여《람림》이라는 하나의 큰 물결을 이루었다. 이에 관한 논서로 《보리도등론(Skt. bodhipathapradīpa, Tib. byang chub lam sgron)》이 있다.
아티샤가 두 법맥을 통합하여 하나의 큰 흐름을 형성하였지만, 이후 다시 '경을 자세하고 넓게 공부한 후 경에 의지해서 수행하는 자(까담 슝빠와)', '람림에 의지하여 수행하는 자(까담 람림빠)', '핵심적인 내용만 골라서 수행하는 자(까담 담악빠)'라는 세 갈래 법맥으로 나뉘어지게 된다. 이를 다시 신(新) 까담(까담 살마), 즉 겔룩의 개조(開祖)인 쫑카빠가 통합하여 《보리도차제광론(lam rim chen mo)》를 저술하였다. 이 외에도 《람림》과 관련한 여러 논서가 있다.
하사(下士)는 부지런히 방편을 닦아 항상 자신의 즐거움만을 추구하며 중사(中士)는 다만 괴로움의 소멸만을 희구할 뿐 즐거움은 희구하지 않으니, 괴로움의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상사(上士)는 항상 자신은 괴로워도 다른 이의 안락과 아울러 다른 이의 괴로움의 영원한 소멸을 부지런히 추구하니 다른 이의 괴로움을 자신의 것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아비달마구사론》(권오민 譯)
《아비달마구사론》(권오민 譯)
아티샤 이전 불교 논서들에서도 보리도차제의 맹아(萌芽)를 엿볼 수 있다. 가령 《구사론》, 《유가사지론》, 《보성론석》 등의 논서에는 보리도차제의 삼사도(三士道)와 유사한 수행자의 분류가 등장한다.
3. 특징
《보리도차제광론》에 따르면《람림》의 가르침에는 네 가지 큰 이익과 세 가지 특징이 있다.■《람림》의 네 가지 큰 이익
1) 부처님의 일체 교설에 모순이 없음을 알게 함.
2) 일체 교설을 진정한 가르침(요의법)으로 받아들이게 함.
3) 부처님의 견해를 속히 얻게 함.
4) 일체 죄업들이 저절로 소멸됨.[8]
■《람림》의 세 가지 큰 특징
1) 현교와 밀교의 일체 내용을 모두 담고 있음.
2) 마음을 다스리는 순서를 우선으로 설하고 있기 때문에 실천하기 매우 쉬움.
3) 용수와 무착의 교의에 정통한 두 스승(릭빼쿠쥭과 쎌링빠)의 비전을 보충하였기에 다른 어떤 가르침보다 특별함.
1) 부처님의 일체 교설에 모순이 없음을 알게 함.
2) 일체 교설을 진정한 가르침(요의법)으로 받아들이게 함.
3) 부처님의 견해를 속히 얻게 함.
4) 일체 죄업들이 저절로 소멸됨.[8]
■《람림》의 세 가지 큰 특징
1) 현교와 밀교의 일체 내용을 모두 담고 있음.
2) 마음을 다스리는 순서를 우선으로 설하고 있기 때문에 실천하기 매우 쉬움.
3) 용수와 무착의 교의에 정통한 두 스승(릭빼쿠쥭과 쎌링빠)의 비전을 보충하였기에 다른 어떤 가르침보다 특별함.
그 밖에 경론에서 말씀하신 도(道)에 어긋남이 없는 정도(正道)를 말하며, 그것에 부족함과 과함이 없고 수행 자체에 그 어떤 오류도 없다고 전해진다. 또한 상근기 중생만이 아니라 하근기, 중근기 등 각 근기의 모든 중생에게 도움을 주기 때문에 《람림》을 일체 교설의 문을 여는 열쇠와 같다고 비유한다.
제14대 달라이 라마는 《보리도차제론》에 대해 "《보리도차제론》은 반야, 중관, 인명(因明: 불교인식논리학)을 모두 공부한 자가 반야와 중관의 견해를 바탕으로 경론에서 말씀하신 수행 차제(次第)를 한 생애에 집중하여 수행할 수 있도록 그 방법을 체계화한 것이므로 우선 이 두 가지의 견해를 알지 못하면 보리도차제를 알 수 없다. 따라서 보리도차제를 배울 때에는 반야와 중관의 경론과 《보리도차제론》을 마치 어머니가 뱃속에 아이를 품고 있듯이 항상 함께 하여 배워야 한다."라고 말했다.
《보리도차제광론》 1권(개정판) (박은정 譯)
4. 《보리도차제광론》의 구성
4.1. 예비수습
헌신적인 제자의 전범(典範)인 제쭌 밀라레빠(Jetsun Milarepa) |
예비수습에서는 우선《람림》전승의 근간이 되는 《보리도등론》에 대하여 세 가지 방식으로 소개한다. 세 가지 방식이란 법을 설하는 자의 위대함, 법의 위대함, 그러한 법을 듣고 설하는 방법을 의미한다. 이와 같이 세 가지로 법을 설하는 방식은 비끄라마쉴라(Vikramasila) 사원의 방식을 따른 것이다.[9]
다음으로 본 가르침으로 제자를 인도하는 순서는 모든 도(道)의 근원인 선지식(善知識)을 의지하는 법과 그러한 선지식에 의지하여 어떻게 마음을 다스릴 것인가를 논하는 두 부분으로 구성된다.
■ 스승과 제자의 자격
마이트레야의 《대승장엄경론(Mahāyānasūtrālaṃkāra)》에서는 선지식의 요건을 10가지로 말하였다.
1) 계학: 자기 자신을 조복함.
2) 정학: 지(止, 샤마타)
3) 혜학: 인무아(人無我)의 지혜
4) 제자보다 뛰어난 공덕
5) 이타(利他)를 좋아하는 정진력
6) 교학: 경율론 삼장에 밝음.
7) 진여의 증득: 법무아(法無我)의 지혜
8) 언변이 좋음.
9) 중생에 대한 자애심: 사랑과 자비로 법을 설함.
10) 반복되는 설법을 싫어하지 않는 것.
10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한 선지식을 만나지 못하면 계정혜 삼학과 진여의 증득, 중생에 대한 자애심 등 5가지 조건을 갖춘 선지식을 찾아야 한다. 그마저도 찾지 못하면 두어가지 조건이라도 충족하는 선지식을 찾아야 한다.
아르야데바의 《사백론(Catuḥśataka)》에서는 제자의 조건 세 가지를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1) 치우치지 않는 마음(편견이 없음)
2) 지혜(지성)
3) 구도심(求道心)
제자는 《화엄경》에서 말하는 '아홉 가지 마음'[10]과 같은 신심(信心)과 공경심으로 신구의(身口意) 삼문(三門)을 다해 스승을 섬겨야 한다. 선지식 스승을 모시는 법은 마명(馬鳴, Aśvaghoṣa)의《사사오십송(事師五十頌, Gurupañcaśika)》 등 여러 경론에서 자세히 설명했다. 스승을 의지하는 수행법이 제대로 되면, 수행의 큰 문을 연 것과 같다. 이 때부터 제대로 수행의 길을 갈 수 있다.
■ 유가구족(有暇具足)
가만(暇滿)의 몸이란 수행에 장애가 되는 요소가 없고 수행에 필요한 조건을 갖춘 귀한 몸을 일컫는다.
팔유가(八有暇)는 수행할 수 없는 장애로부터 벗어나 여덟 가지 여유를 갖춘 것을 말한다.
(1) 지옥에 태어나지 않은 것.
(2) 아귀로 태어나지 않은 것.
(3) 축생으로 태어나지 않은 것.
(4) 오래 사는 신(장수천, 長壽天)으로 태어나지 않은 것.
(5) 부처의 가르침을 모르는 땅에 태어나지 않은 것.
(6) 부처의 존재를 모르는 시대에 태어나지 않은 것.
(7) 감각기관에 장애가 없는 것.
(8) 그룻된 견해를 품지 않은 것.
십구족(十具足, 혹은 십원만十圓滿)은 수행하기 위해 갖추어야 할 조건 열 가지를 갖추었음을 말한다.
(1) 인간으로 태어난 것.
(2) 불법(佛法)이 존재하는 땅에 태어난 것.
(3) 가르침을 이해하는 능력이 있는 것.
(4) 오역죄(五逆罪)를 범하지 않는 것.
(5) 신심(信心)을 갖춘 것.
(6) 부처가 세간에 존재하는 것.
(7) 정법(正法)이 설해지고 있는 것.
(8) 그 가르침이 현재까지 전해지고 있는 것.
(9) 그 가르침을 받는 것.
(10) 후원자, 시주자 등 주변의 도움을 받는 것.
앞의 다섯 가지 내부적인 조건을 자원만(自圓滿), 뒤의 다섯 가지 외부적인 조건을 타원만(他圓滿)이라고 한다.
마이트레야의 《대승장엄경론(Mahāyānasūtrālaṃkāra)》에서는 선지식의 요건을 10가지로 말하였다.
1) 계학: 자기 자신을 조복함.
2) 정학: 지(止, 샤마타)
3) 혜학: 인무아(人無我)의 지혜
4) 제자보다 뛰어난 공덕
5) 이타(利他)를 좋아하는 정진력
6) 교학: 경율론 삼장에 밝음.
7) 진여의 증득: 법무아(法無我)의 지혜
8) 언변이 좋음.
9) 중생에 대한 자애심: 사랑과 자비로 법을 설함.
10) 반복되는 설법을 싫어하지 않는 것.
10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한 선지식을 만나지 못하면 계정혜 삼학과 진여의 증득, 중생에 대한 자애심 등 5가지 조건을 갖춘 선지식을 찾아야 한다. 그마저도 찾지 못하면 두어가지 조건이라도 충족하는 선지식을 찾아야 한다.
아르야데바의 《사백론(Catuḥśataka)》에서는 제자의 조건 세 가지를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1) 치우치지 않는 마음(편견이 없음)
2) 지혜(지성)
3) 구도심(求道心)
제자는 《화엄경》에서 말하는 '아홉 가지 마음'[10]과 같은 신심(信心)과 공경심으로 신구의(身口意) 삼문(三門)을 다해 스승을 섬겨야 한다. 선지식 스승을 모시는 법은 마명(馬鳴, Aśvaghoṣa)의《사사오십송(事師五十頌, Gurupañcaśika)》 등 여러 경론에서 자세히 설명했다. 스승을 의지하는 수행법이 제대로 되면, 수행의 큰 문을 연 것과 같다. 이 때부터 제대로 수행의 길을 갈 수 있다.
■ 유가구족(有暇具足)
가만(暇滿)의 몸이란 수행에 장애가 되는 요소가 없고 수행에 필요한 조건을 갖춘 귀한 몸을 일컫는다.
팔유가(八有暇)는 수행할 수 없는 장애로부터 벗어나 여덟 가지 여유를 갖춘 것을 말한다.
(1) 지옥에 태어나지 않은 것.
(2) 아귀로 태어나지 않은 것.
(3) 축생으로 태어나지 않은 것.
(4) 오래 사는 신(장수천, 長壽天)으로 태어나지 않은 것.
(5) 부처의 가르침을 모르는 땅에 태어나지 않은 것.
(6) 부처의 존재를 모르는 시대에 태어나지 않은 것.
(7) 감각기관에 장애가 없는 것.
(8) 그룻된 견해를 품지 않은 것.
십구족(十具足, 혹은 십원만十圓滿)은 수행하기 위해 갖추어야 할 조건 열 가지를 갖추었음을 말한다.
(1) 인간으로 태어난 것.
(2) 불법(佛法)이 존재하는 땅에 태어난 것.
(3) 가르침을 이해하는 능력이 있는 것.
(4) 오역죄(五逆罪)를 범하지 않는 것.
(5) 신심(信心)을 갖춘 것.
(6) 부처가 세간에 존재하는 것.
(7) 정법(正法)이 설해지고 있는 것.
(8) 그 가르침이 현재까지 전해지고 있는 것.
(9) 그 가르침을 받는 것.
(10) 후원자, 시주자 등 주변의 도움을 받는 것.
앞의 다섯 가지 내부적인 조건을 자원만(自圓滿), 뒤의 다섯 가지 외부적인 조건을 타원만(他圓滿)이라고 한다.
4.1.1. 람림의 근간인《보리도등론》소개
《보리도등론》의 저자의 수승(殊勝)함, 법의 수승함, 법을 듣고 설하는 방법에 대한 《보리도차제광론》의 구성은 다음과 같다. 《보리도차제광론》 1권(개정판) (박은정 譯) 1. 법의 정통성에 허물이 없음을 보이는 저자의 수승함 1.1. 훌륭한 가문에서의 탄생 1.2. 그 생에 공덕을 갖추는 과정 1.2.1. 교법(敎法)을 두루 아는 교학의 덕을 갖추는 과정 1.2.2. 여법성취 증법(證法)의 덕을 갖추는 과정 1.2.2.1. 뛰어난 계학을 갖추다 1.2.2.1.1. 별해탈계를 구족하는 과정 1.2.2.1.2. 보살계를 갖추는 과정 1.2.2.1.3. 금강승계를 갖추는 과정 1.2.2.2. 두 가지 뛰어난 정학을 갖추다 1.2.2.2.1. 보편의 정학[共定學] 1.2.2.2.2. 특별한 정학[不共定學] 1.2.2.3. 뛰어난 혜학을 갖추다 1.2.2.3.1. 보편의 혜학[共慧學] 1.2.2.3.2. 특별한 혜학[不共慧學] 1.3. 불법(佛法)을 위한 행적 1.3.1. 인도에서의 행적 1.3.2. 티벳에서의 행적 2. 가르침을 귀하게 여기는 마음을 일으키는 법의 수승함 2.1. 모든 교법에 모순이 없음을 깨닫게 되는 이익 2.2. 부처의 모든 말을 참된 가르침으로 보게 되는 수승함 2.3. 부처의 뜻을 조속히 얻게 되는 수승함 2.4. 죄행이 저절로 소멸되는 수승함 3. 두 가지 수승함을 갖춘 법을 듣고 설하는 방법 3.1. 청문자(聽聞者)가 법을 듣는 법 3.1.1. 법을 듣는 공덕 3.1.2. 법과 설법자에 대한 공경 3.1.3. 청문법의 실제 3.2. 설법자(說法者)가 법을 설하는 법 3.2.1. 법을 설하는 공덕 사유하기 3.2.2. 부처와 법에 공경심 일으키기 3.2.3. 설법자의 마음가짐과 몸가짐 3.2.3.1. 마음가짐 3.2.3.2. 몸가짐 3.2.4. 법을 설할 대상과 법을 설하지 않아야 할 대상의 구별 3.3. 공통의 마지막 행법 |
4.1.2. 본 가르침으로 제자를 인도하는 순서
본 가르침으로 제자를 인도하는 순서에 관한 《보리도차제광론》의 구성은 다음과 같다. 《보리도차제광론》 1권(개정판) (박은정 譯) 1. 모든 도의 근원인 선지식을 의지하고 섬기는 법 1.1. 확신을 얻기 위한 상설(詳說) 1.1.1. 의지처인 선지식의 자격 1.1.2. 스승에 의지하는 제자의 자격 1.1.3. 제자가 스승을 섬기는 법 1.1.3.1. 마음으로 섬기는 법 1.1.3.1.1. 보편적으로 갖추어야 할 마음 1.1.3.1.2. 근본이 되는 신심의 함양 1.1.3.1.3. 스승의 은혜를 떠올려 공경심 일으키기 1.1.3.2. 행(行)으로 섬기는 법 1.1.4. 선지식을 섬기는 공덕[得] 1.1.5. 선지식을 섬기지 않는 해악[失] 1.1.6. 요결(了結) 1.2. 수행방식에 대한 약설(略說) 1.2.1. 수행방식의 실제 1.2.1.1. 정근(正勤) 시의 수행 1.2.1.1.1. 예비행 1.2.1.1.2. 본수행 1.2.1.1.3. 마지막 행 1.2.1.2. 비정근(非正勤) 시의 수행 1.2.2. 수행에 대한 사견(邪見)의 차단 2. 선지식을 섬기어 어떻게 마음을 닦을 것인가 2.1. 가만(暇滿)의 몸을 의미 있게 쓰기 위한 가르침 2.1.1. 가만의 몸이란 무엇인가 2.1.1.1. 팔유가(八有暇) 2.1.1.2. 십원만(十圓滿) 2.1.1.2.1. 내부적 원만함 2.1.1.2.2. 외부적 원만함 2.1.2. 가만의 몸이 지닌 뛰어난 가치 사유하기 2.1.3. 가만의 몸이 얻기 어려움 사유하기 2.2. 가만의 몸을 의미있게 쓰는 법 2.2.1. 보편적 도에 대한 이해 2.2.1.1. 일체교설이 세 근기의 도로 수렴되는 이치 2.2.1.2. 세 근기의 도를 순차적으로 이끄는 이유 2.2.1.2.1. 세 근기의 도를 통해 이끄는 의미 2.2.1.2.2. 그와 같은 차제대로 이끄는 이유 2.2.1.2.2.1. 실질적인 이유 2.2.1.2.2.2. 의의 |
4.2. 삼사도(三士道)
《람림》에서는 팔만대장경의 핵심을 모두 빠짐없이 취합한 후 수행의 순서에 맞춰 하사도(下士道), 중사도(中士道), 상사도(上士道)로 구성된 삼사도(三士道)로 정리하였다. 각 단계의 가르침은 이전 단계들의 가르침을 모두 포괄하므로 누적적이다.
1. 하사도
석가모니는 전문적인 수행이 어려운 일반 대중을 위해 보시(布施)하고 지계(持戒)하면 생천(生天)한다는 차제법문을 여러 번 설했다. 이처럼 다음 생에 인간, 천상과 같은 선취에 태어나고 지옥, 아귀, 축생 등 악도에 태어나지 않는 것이 하사도 수행의 목표이다. 이를 위해 예비수습의 가르침(법을 청하고 듣는 법, 스승을 섬기는 법 등)과 더불어 인신난득(人身難得: 사람 몸 얻기 어려움)[11], 제행무상(諸行無常: 죽음과 무상 사유), 윤회개고(輪廻皆苦: 삼악취三惡趣[12]의 고통[13]), 인과응보(因果應報: 인과에 대한 믿음), 귀의삼보(歸依三寶: 불ㆍ법ㆍ승 삼보에 귀의함) 등을 익히며 십선법(十善法)을 행하고 십악업(十惡業)을 멀리 한다.
"악업은 그 어떤 것도 짓지 말고, 선업은 원만히 행하라. 자기 마음을 완전히 교화하는 것. 이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이다."라는 칠불통게(七佛通偈)[14]의 가르침처럼, 선을 행하고 악을 멀리하는 하사도의 가르침은 모든 수행의 토대가 된다. 또한 그 과보로 증상생(增上生)[15]을 누릴 수 있고, 해탈성불의 결정승(決定勝)[16]을 목표로 하는 수행자들은 팔유가[17] 십구족[18](八有暇 十具足)같은 수행에 반드시 필요한 조건을 갖출 수 있다.
2. 중사도
아라한이 되어 수행자 개인의 해탈을 이루는 것이 수행의 목표이다. 이를 위해 하사도의 십선법을 갖춘 상태에서 교법(敎法)인 경율론(經律論) 삼장(三藏)을 배우고, 배운 바를 토대로 증법(證法)인 계정혜(戒定慧) 삼학(三學)을 수행하여 사성제, 팔정도, 십이연기 등을 익혀 윤회에서 벗어나 해탈을 이룬다.
3. 상사도
부처가 되어 일체 중생을 고통에서 구제하는 것이 수행의 목표이다. 이를 위해 하사도의 십선법, 중사도의 계정혜 삼학을 토대로 보살승을 수행한다. 보살승에는 반야승과 금강승 두 가지가 있다. 반야승(대승 현교)의 육바라밀(六婆羅蜜) 및 사섭법(四攝法)[19]과 금강승(대승 밀교)의 밀법(密法)을 수행하여 지혜와 방편을 갖춤으로써 원만한 부처의 과위(果位)에 이른다.
자신의 수행 동기가 진정 무엇인지 늘 자문(自問)하고 점검할 필요가 있다. 수행 동기에 따른 실천이 없다면 진정한 동기라고 할 수 없다. 가령 자신이 "보리심을 발하였다"고 말하면서 실제로는 정신적 행복보다 육체적 쾌락을 추구한다면, 일체 중생을 위한 수행은 커녕 이번 생을 위한 수행도 못하고 있는 셈이다.
이번 생을 위한 수행은 엄밀히 말해 선업(善業)은 될지언정 불법(佛法)이나 불교 수행이라고는 할 수 없다. 다음 생을 준비하는 하사도(下士道)부터 비로소 진정한 불법, 불교 수행이 된다. 하사도에서 이번 생은 버려야 할 법, 다음 생은 취해야 할 법으로 이번 생보다는 다음 생을 위해 수행해야 한다. 반면 중사도에 이르면 다음 생 또한 버려야 할 법이 되며 윤회로부터의 해탈이 취해야 할 법이 된다. 마지막으로 상사도에서는 자기 자신만의 해탈 역시 버려야 할 법이 되며 일체 중생의 해탈성불이 취해야 할 법이 된다.
하사도에서 악도의 고통과 선도의 행복을 사유하는 것은 현생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내생에 대한 관심을 갖게 하기 위함이다. 대부분의 중생은 오직 현생에만 집착할 뿐 해탈은 커녕 내생에 대한 관심조차 없는 경우가 많다. 하사도를 통해 현생에 집착하지 않고 내생에 관심을 갖게 되면 비로소 중사도를 수습할 수 있는 토대가 갖춰진 것이다. 중사도에서 윤회의 고통인 행고(行苦)를 사유하여 선도에 태어나는 것조차 본질은 고통이라는 사실을 자각하고, 이를 통해 윤회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해탈을 염원하는 마음 동기인 출리심을 일으키면 상사도를 수습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된다. 상사도에서는 다른 중생들 또한 나와 같은 고통을 겪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여 그들이 고통에서 벗어나기를 바라는 크나큰 연민의 마음인 대비심을 일으키고, 대비심을 원인으로 하여 일체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최상의 깨달음을 추구하는 마음 동기인 보리심을 일으키게 된다.
성불(成佛)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일체 중생을 이롭게 하는 원만한 이타행(利他行)이 목적이다. 성불하지 않으면 흠결 없이 원만구족한 이타행을 이룰 수 없다. |
《보리도차제광론》은 궁극적으로 보리심을 발하여 대승의 수행도인 상사도에 입문할 것을 권장한다. 하사도, 중사도도 상사도와 무관한 별도의 과정이 아니라, "상사도와 공통적인 도(道)로서의 하사도", "상사도와 공통적인 도로서의 중사도"로서 상사도 과정의 일부라고 볼 수 있다.
쫑카빠는 《보리도차제광론》에서 보리심을 발하여 대승에 입문해야 하는 당위성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아라한(성문승‧독각승)의 경지를 이루어도 궁극에는 대승(구경일승究竟一乘)에 들어가야 한다고 부처님께서 말씀하셨기에 지혜로운 이들은 처음부터 발보리심(發菩提心)으로 대승(大乘)에 들어가는 것이 마땅하다. 마명보살의 《섭바라밀다론(攝波羅密多論)》에서『일체중생의 뜻을 이루는 데 힘없는 두 가지 승(성문승‧독각승)을 완전히 버리고 처음부터 대승의 대자비의 가르침에 따라서 몸과 말과 생각을 번뇌의 허물 하나도 없이 오직 이타를 위하는 한 맛으로 들어가야 한다.』라고 했고,『행복과 불행의 모든 법은 꿈과 같음을 보고(모든 법이 무자성無自性이다), 무지(無知)의 허물로 떠돌고 있는 낮은 중생들을 볼 때 최상의 행인 이타의 기쁨 버리고 자신의 뜻을 위해 어떻게 정진할 수 있겠는가.』라고 말씀한 것과 같다."(게셰 소남 걜첸 譯)
■ 출리심과 보리심은 모순되는가?
처음에는 진정한 보리심을 내기 힘들지만 단계별 수행을 통해 세속에 대한 집착을 여의고 출리심(出離心)[20]과 대비심(大悲心)을 증장하면서 점차 진정한 보리심을 발하게 된다. 언뜻 생각하기엔 윤회계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출리심과 일체중생을 위해 윤회계에서 중생을 제도하고자 하는 보리심은 서로 충돌하는 듯 보인다.
그러나 나 자신이 진정으로 윤회의 고통을 인식하여 윤회를 벗어나고 싶어하는 마음이 생긴 후 다른 이들을 돌아보면, 나처럼 그들 또한 겪게 될 윤회의 고통에 대해서 참을 수 없는 연민의 마음이 자연스럽게 일어나게 된다. 즉 보리심은 달리 표현하면 자기 자신으로부터 일체 중생에 이르기까지 크나큰 대비심(大悲心)을 발하여 출리심을 확충(擴充)한 마음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는 주요 종교, 사상들에서 강조하는 보편적 법칙인 황금률의 실천이기도 하다.
출리심의 대상은 자기 자신이고 보리심의 대상은 타인이기 때문에 출리심과 보리심은 서로 모순되지 않는다. 보살 수행자는 자기 자신을 위해서라면 윤회에 대한 집착이 조금도 없지만, 다른 이를 위해서라면 윤회지(輪廻地)는 물론 지옥과 같은 악도(惡道)도 마다하지 않는다. 스스로 윤회에서 벗어나겠다는 출리심이 없다면 다른 중생을 윤회에서 벗어나게 하겠다는 보리심도 생길 수 없다. 마치 의사가 스스로 병을 싫어하지 않으면, 병에 걸린 환자를 치료하려는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 것과 같다.#
■ 보살은 윤회하는가?
보살은 크게 범부(凡夫)보살과 성자(聖者)보살로 나뉜다. 범부보살은 보리심을 발하여 보살도에 입문했지만 아직 공성을 현량(現量)으로 인식하지 못한 자량도, 가행도의 보살을 가리키며, 성자보살은 공성을 현량으로 인식한 견도 이상의 보살을 가리킨다.
범부보살의 경우 중생을 구제하겠다는 서원(誓願)의 힘 뿐 아니라 업과 번뇌의 타력(他力)에 의해서도 윤회지(輪廻地)에 머물게 된다. 이와 달리 성자보살은 업과 번뇌의 힘에서 벗어났을 뿐 아니라,[21] 별도의 발원이나 서원도 요구받지 않고 자유자재하게 윤회지를 머물고 나올 수 있다. 이들 성자보살은 중생과 인연이 있는 곳에 화신(化身)을 나투어 중생을 제도한다.
아라한, 벽지불, 대력(大力)보살은 업과 번뇌의 타력으로 인한 윤회에서 벗어났기 때문에《승만경》에서는 그들이 받는 죽음을 윤회 내에서 범부 중생들이 경험하는 일반적인 죽음과 구별하여 ‘부사의변역(不思議變易, acintya-pāriṇāmikī)'이라고 표현하였다. 흔히 전자를 분단생사(分段生死), 후자를 변역생사(變易生死)로 칭하기도 한다.
■ 무여열반과 유여열반
소승학파와 대승학파의 무여열반(無餘涅槃), 유여열반(有餘涅槃)의 정의가 서로 다르다.
소승은 오온의 몸(=물질+정신)을 기준으로
① 번뇌를 모두 소멸했지만 과거 업과 번뇌로 인한 몸은 남아있는 유여열반과
② 번뇌와 몸 둘 다 아무것도 없는 경지[회신멸지灰身滅智]에 든 무여열반으로 나눈다
대승의 중관학파는 공성을 현량(現量)으로 인식하는 성자(聖者)의 등지(等至)를 기준으로 아래 둘로 나눈다.
① 근본지根本智(무여열반) → ② 후득지後得智(유여열반)
여기서 '여(餘)'='남은 것'이란 자성(自性)으로 현현하는 것,[22] 주관과 객관의 이원적(二元的) 모습을 가리킨다. 중관학파에서는 공성삼매에서 모든 차별상이 사라지고 근본지로 오직 공성만을 인식하는 것을 무여열반, 삼매에서 나와 후득지를 통해 자성으로 현현함을 인식하는 것을 유여열반이라고 한다.
소승 유부(有部)의 경우 무여열반에 들면 의식의 흐름(心相續)은 단절된다고 본다. 그러나 나가르주나는 《육십송여리론》에서 오온의 소멸이 곧 열반이라는 소승의 주장을 비판하면서, 진실로/자성으로 존재하는 발생과 소멸은 없으며[無生無滅] 그러한 일체법의 실상(實相), 즉 공성을 깨달을 때 비로소 열반에 든다고 말했다. 또한 제14대 달라이 라마는 "만약 유부의 주장대로 의식이 단절된다면, 사람이 성취할 것으로 무여열반을 세우지 못하는 모순이 있게 된다. 즉, 사람에게 무여열반이 존재하지 않고, 무여열반을 증득할 때는 사람이 없는 것이 되므로 이것은 옳지 않다."고 말했다.
제14대 달라이라마,《달라이라마의 보리도등론》(양승규 譯)
유부에서도 열반은 마음/의식의 특성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열반을 얻었을 때 의식이 사라진다면 의식의 특성인 열반도 있을 수 없으므로 스스로의 교리에도 모순된다. '의식의 특성으로서의 열반'이 있을 수 없는 '회신멸지(灰身滅智)'가 열반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다르마끼르띠는 《석량론》에서 의식의 흐름이 단절될 수 없음에 대해 논증했다. 의식 자체의 연속성에 의해 이전 찰나의 의식이 조건이 되어 다음 찰나의 의식이 발생하는 식으로 매 찰나의 의식들이 발생하며, 의식이 없는 물질이 의식을 대체할 수 없기 때문에 의식의 흐름을 방해하는 원인은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열반 이후에도 번뇌와 대치하는 청정한 의식의 흐름은 단절되지 않고 이어진다.
■ 구경삼승과 구경일승
중관학파에서는 아라한이나 벽지불도 최종적으로 보리심을 발한 보살이 되어 번뇌장(煩惱障) 뿐만 아니라 소지장(所知障)까지 제거하고 부처를 이룬다고 본다. 모든 중생은 동일한 불성(佛性)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법화경》 등의 경전에 의거한 이러한 견해를 구경일승(究竟一乘)이라 한다. 이와는 달리 《해심밀경》 등의 경전에 의거하여 성문승, 연각승, 보살승 수행자들의 종성(種姓)이 각각 다르고, 한 번 얻은 과위(果位)는 바뀔 수 없다고 보는 견해를 구경삼승(究竟三乘)이라고 한다.
소승학파와 대승의 유식학파에서는 구경삼승을 주장한다. 각자의 인연에 따라 성문, 연각, 보살의 길을 따르며 모든 중생이 성불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또 그럴 필요도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대승의 중관학파에서는 구경일승을 말하기에 모든 중생이 반드시 성불의 길을 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중생마다 각자의 종성을 가지고 있더라도 그것은 일시적이다. 만일 성문승의 종성을 가졌더라도 성문승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더욱 향상하여 보살승으로 나아가 성불할 수 있고 반드시 그렇게 된다는 것이 구경일승에서 설하는 바이다.
성문의 아라한이나 연각의 벽지불 같은 경지를 추구하여도 구경일승의 교리에 따라 언젠가는 성불할 것이므로 굳이 당장 보리심을 낼 필요가 없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외도(外道)가 비상비비상처정(非想非非想處定)같은 무색계정(無色界定)을 추구한 결과 수 대겁(大劫) 동안 선정삼매에 드는 것처럼, 아라한이나 벽지불 역시 열반하여 공성(空性) 삼매에 들게 되면 언제 삼매에서 벗어날지 알 수 없으며 그만큼 성불은 미뤄질 뿐이다.[23]
고통받는 중생을 외면하고 홀로 삼매락(三昧樂)을 즐기는 것이 옳지 않음은 성문아라한이나 연각아라한 스스로도 인지하고는 있지만, 삼매의 즐거움이 너무나 강력하여 혼자 힘으로는 쉽게 벗어날 수 없다. 다행히 전생에 인연이 있던 부처가 도움을 주면 삼매에서 깨어날 수도 있으나, 그렇지 못한 경우 단 한 명의 중생도 구제하지 못한 채 마치 깊은 잠에 든 것처럼 수 대겁 이상의 시간이 무의미하게 흘러가버리고 만다. 때문에 대승의 반야승과 금강승 법을 만난 매우 소중한 기회를 놓치지 말고 발심(발보리심)하여 보살도를 수행해야 한다고 대승의 선지식들은 말한다.
처음에는 진정한 보리심을 내기 힘들지만 단계별 수행을 통해 세속에 대한 집착을 여의고 출리심(出離心)[20]과 대비심(大悲心)을 증장하면서 점차 진정한 보리심을 발하게 된다. 언뜻 생각하기엔 윤회계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출리심과 일체중생을 위해 윤회계에서 중생을 제도하고자 하는 보리심은 서로 충돌하는 듯 보인다.
그러나 나 자신이 진정으로 윤회의 고통을 인식하여 윤회를 벗어나고 싶어하는 마음이 생긴 후 다른 이들을 돌아보면, 나처럼 그들 또한 겪게 될 윤회의 고통에 대해서 참을 수 없는 연민의 마음이 자연스럽게 일어나게 된다. 즉 보리심은 달리 표현하면 자기 자신으로부터 일체 중생에 이르기까지 크나큰 대비심(大悲心)을 발하여 출리심을 확충(擴充)한 마음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는 주요 종교, 사상들에서 강조하는 보편적 법칙인 황금률의 실천이기도 하다.
출리심의 대상은 자기 자신이고 보리심의 대상은 타인이기 때문에 출리심과 보리심은 서로 모순되지 않는다. 보살 수행자는 자기 자신을 위해서라면 윤회에 대한 집착이 조금도 없지만, 다른 이를 위해서라면 윤회지(輪廻地)는 물론 지옥과 같은 악도(惡道)도 마다하지 않는다. 스스로 윤회에서 벗어나겠다는 출리심이 없다면 다른 중생을 윤회에서 벗어나게 하겠다는 보리심도 생길 수 없다. 마치 의사가 스스로 병을 싫어하지 않으면, 병에 걸린 환자를 치료하려는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 것과 같다.#
■ 보살은 윤회하는가?
보살은 크게 범부(凡夫)보살과 성자(聖者)보살로 나뉜다. 범부보살은 보리심을 발하여 보살도에 입문했지만 아직 공성을 현량(現量)으로 인식하지 못한 자량도, 가행도의 보살을 가리키며, 성자보살은 공성을 현량으로 인식한 견도 이상의 보살을 가리킨다.
범부보살의 경우 중생을 구제하겠다는 서원(誓願)의 힘 뿐 아니라 업과 번뇌의 타력(他力)에 의해서도 윤회지(輪廻地)에 머물게 된다. 이와 달리 성자보살은 업과 번뇌의 힘에서 벗어났을 뿐 아니라,[21] 별도의 발원이나 서원도 요구받지 않고 자유자재하게 윤회지를 머물고 나올 수 있다. 이들 성자보살은 중생과 인연이 있는 곳에 화신(化身)을 나투어 중생을 제도한다.
아라한, 벽지불, 대력(大力)보살은 업과 번뇌의 타력으로 인한 윤회에서 벗어났기 때문에《승만경》에서는 그들이 받는 죽음을 윤회 내에서 범부 중생들이 경험하는 일반적인 죽음과 구별하여 ‘부사의변역(不思議變易, acintya-pāriṇāmikī)'이라고 표현하였다. 흔히 전자를 분단생사(分段生死), 후자를 변역생사(變易生死)로 칭하기도 한다.
■ 무여열반과 유여열반
소승학파와 대승학파의 무여열반(無餘涅槃), 유여열반(有餘涅槃)의 정의가 서로 다르다.
소승은 오온의 몸(=물질+정신)을 기준으로
① 번뇌를 모두 소멸했지만 과거 업과 번뇌로 인한 몸은 남아있는 유여열반과
② 번뇌와 몸 둘 다 아무것도 없는 경지[회신멸지灰身滅智]에 든 무여열반으로 나눈다
대승의 중관학파는 공성을 현량(現量)으로 인식하는 성자(聖者)의 등지(等至)를 기준으로 아래 둘로 나눈다.
① 근본지根本智(무여열반) → ② 후득지後得智(유여열반)
여기서 '여(餘)'='남은 것'이란 자성(自性)으로 현현하는 것,[22] 주관과 객관의 이원적(二元的) 모습을 가리킨다. 중관학파에서는 공성삼매에서 모든 차별상이 사라지고 근본지로 오직 공성만을 인식하는 것을 무여열반, 삼매에서 나와 후득지를 통해 자성으로 현현함을 인식하는 것을 유여열반이라고 한다.
소승 유부(有部)의 경우 무여열반에 들면 의식의 흐름(心相續)은 단절된다고 본다. 그러나 나가르주나는 《육십송여리론》에서 오온의 소멸이 곧 열반이라는 소승의 주장을 비판하면서, 진실로/자성으로 존재하는 발생과 소멸은 없으며[無生無滅] 그러한 일체법의 실상(實相), 즉 공성을 깨달을 때 비로소 열반에 든다고 말했다. 또한 제14대 달라이 라마는 "만약 유부의 주장대로 의식이 단절된다면, 사람이 성취할 것으로 무여열반을 세우지 못하는 모순이 있게 된다. 즉, 사람에게 무여열반이 존재하지 않고, 무여열반을 증득할 때는 사람이 없는 것이 되므로 이것은 옳지 않다."고 말했다.
제14대 달라이라마,《달라이라마의 보리도등론》(양승규 譯)
유부에서도 열반은 마음/의식의 특성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열반을 얻었을 때 의식이 사라진다면 의식의 특성인 열반도 있을 수 없으므로 스스로의 교리에도 모순된다. '의식의 특성으로서의 열반'이 있을 수 없는 '회신멸지(灰身滅智)'가 열반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다르마끼르띠는 《석량론》에서 의식의 흐름이 단절될 수 없음에 대해 논증했다. 의식 자체의 연속성에 의해 이전 찰나의 의식이 조건이 되어 다음 찰나의 의식이 발생하는 식으로 매 찰나의 의식들이 발생하며, 의식이 없는 물질이 의식을 대체할 수 없기 때문에 의식의 흐름을 방해하는 원인은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열반 이후에도 번뇌와 대치하는 청정한 의식의 흐름은 단절되지 않고 이어진다.
■ 구경삼승과 구경일승
중관학파에서는 아라한이나 벽지불도 최종적으로 보리심을 발한 보살이 되어 번뇌장(煩惱障) 뿐만 아니라 소지장(所知障)까지 제거하고 부처를 이룬다고 본다. 모든 중생은 동일한 불성(佛性)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법화경》 등의 경전에 의거한 이러한 견해를 구경일승(究竟一乘)이라 한다. 이와는 달리 《해심밀경》 등의 경전에 의거하여 성문승, 연각승, 보살승 수행자들의 종성(種姓)이 각각 다르고, 한 번 얻은 과위(果位)는 바뀔 수 없다고 보는 견해를 구경삼승(究竟三乘)이라고 한다.
소승학파와 대승의 유식학파에서는 구경삼승을 주장한다. 각자의 인연에 따라 성문, 연각, 보살의 길을 따르며 모든 중생이 성불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또 그럴 필요도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대승의 중관학파에서는 구경일승을 말하기에 모든 중생이 반드시 성불의 길을 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중생마다 각자의 종성을 가지고 있더라도 그것은 일시적이다. 만일 성문승의 종성을 가졌더라도 성문승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더욱 향상하여 보살승으로 나아가 성불할 수 있고 반드시 그렇게 된다는 것이 구경일승에서 설하는 바이다.
성문의 아라한이나 연각의 벽지불 같은 경지를 추구하여도 구경일승의 교리에 따라 언젠가는 성불할 것이므로 굳이 당장 보리심을 낼 필요가 없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외도(外道)가 비상비비상처정(非想非非想處定)같은 무색계정(無色界定)을 추구한 결과 수 대겁(大劫) 동안 선정삼매에 드는 것처럼, 아라한이나 벽지불 역시 열반하여 공성(空性) 삼매에 들게 되면 언제 삼매에서 벗어날지 알 수 없으며 그만큼 성불은 미뤄질 뿐이다.[23]
고통받는 중생을 외면하고 홀로 삼매락(三昧樂)을 즐기는 것이 옳지 않음은 성문아라한이나 연각아라한 스스로도 인지하고는 있지만, 삼매의 즐거움이 너무나 강력하여 혼자 힘으로는 쉽게 벗어날 수 없다. 다행히 전생에 인연이 있던 부처가 도움을 주면 삼매에서 깨어날 수도 있으나, 그렇지 못한 경우 단 한 명의 중생도 구제하지 못한 채 마치 깊은 잠에 든 것처럼 수 대겁 이상의 시간이 무의미하게 흘러가버리고 만다. 때문에 대승의 반야승과 금강승 법을 만난 매우 소중한 기회를 놓치지 말고 발심(발보리심)하여 보살도를 수행해야 한다고 대승의 선지식들은 말한다.
4.2.1. 하사도
하사도에 관한 《보리도차제광론》의 구성은 다음과 같다. 《보리도차제광론》2권(박은정 譯) 1. 하근기의 도로써 마음을 닦는 법의 실제 1.1. 내생을 구하는 마음 일으키기 1.1.1. 죽음을 떠올려 이생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사유하기 1.1.1.1. 죽음의 무상함을 관(觀)하지 않는 허물 1.1.1.2. 죽음의 무상관을 닦는 이익 1.1.1.3. 가져야 할 죽음의 두려움 1.1.1.4. 죽음의 무상함을 사유하는 방법 1.1.1.4.1. 첫 번째 근본 사유: 나는 반드시 죽는다 1.1.1.4.1.1. 죽음은 어떤 것으로도 막을 수 없다 1.1.1.4.1.2. 명은 늘지 않고 끊임없이 줄어가므로 반드시 죽게 된다 1.1.1.4.1.3. 살아 있는 동안에도 법을 행할 시간이 없이 죽게 된다 1.1.1.4.2. 두 번째 근본 사유: 죽음이 언제 찾아올지 알 수 없다. 1.1.1.4.2.1. 정해져 있지 않은 남섬부주 인간의 수명 1.1.1.4.2.2. 죽음의 조건은 많고 삶의 조건이 적음 1.1.1.4.2.3. 몸이 유약하여 언제 죽을지 알 수 없음 1.1.1.4.3. 세 번째 근본 사유: 죽을 때는 법 이외에 어떤 것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1.1.2. 내생에 태어날 선취(善趣)의 행복과 악도(惡道)의 고통 사유하기 1.1.2.1. 악도의 고통 사유하기 1.1.2.1.1. 지옥의 고통 1.1.2.1.1.1. 중생대지옥 1.1.2.1.1.2. 근변지옥 1.1.2.1.1.3. 한랭지옥 1.1.2.1.1.4. 독일지옥 1.1.2.1.2. 축생의 고통 1.1.2.1.3. 아귀의 고통 1.1.2.1. 선취의 행복 사유하기 1.2. 내생에서의 행복을 이루는 방편 1.2.1. 불도로 들어가는 문 삼귀의 1.2.1.1. 귀의의 원인 1.2.1.2. 귀의처 1.2.1.3. 귀의의 과정 1.2.1.3.1. 삼보의 덕을 아는 것 1.2.1.3.2. 삼보 각각의 차이를 아는 것 1.2.1.3.3. 삼보를 귀의처로 받아들이는 것 1.2.1.3.4. 다른 대상을 귀의처로 하지 않고 오직 삼보에 귀의하는 것 1.2.1.4. 귀의에 따른 실천[行] 1.2.1.4.1. 섭결택분의 가르침 1.2.1.4.2. 선지식의 전승에서 비롯된 가르침 1.2.1.4.2.1. 개별적 실천 1.2.1.4.2.1.1. 하지 않아야 할 것 1.2.1.4.2.1.2. 해야 할 것 1.2.1.4.2.2. 보편적 실천 1.2.2. 모든 행복의 근원인 인과를 믿는 신심(信心) 일으키기 1.2.2.1. 인과의 보편적 사유 1.2.2.1.1. 보편적 사유의 실제: 인과의 보편적 특징 1.2.2.1.2. 선업과 불선업에 대한 사유: 선과 불선의 개별적 특징 1.2.2.1.2.1. 주된 열 가지 업도(十業道) 1.2.2.1.2.2. 업과 과보 1.2.2.1.2.2.1. 악업과 그 과보 1.2.2.1.2.2.1.1. 불선의 업도(악업도) 1.2.2.1.2.2.1.2. 경중의 차이 1.2.2.1.2.2.1.2.1. 열 가지 업도의 경중 1.2.2.1.2.2.1.2.2. 그밖에 업력이 큰 경우 1.2.2.1.2.2.1.3. 악업의 과보 1.2.2.1.2.2.2. 선업과 그 과보를 사유하기 1.2.2.1.2.2.2.1. 선업 1.2.2.1.2.2.2.2. 선업의 과보 1.2.2.1.2.2.3. 기타 업의 분류 1.2.2.1.2.2.3.1. 인업과 만업 1.2.2.1.2.2.3.2. 정수업과 부정수업 1.2.2.2. 인과에 대한 특별한 사유 1.2.2.2.1. 이숙의 공덕 1.2.2.2.2. 이숙의 결과 1.2.2.2.3. 이숙의 원인 1.2.2.3. 인과의 사유에 따른 실천 1.2.2.3.1. 개요 1.2.2.3.2. 사력(四力)으로 업을 정화하는 법 2. 하근기 의요(意樂)가 일어난 경계 3. 하근기 도에 대한 사견의 차단 |
4.2.2. 중사도
중사도에 관한 《보리도차제광론》의 구성은 다음과 같다. 《보리도차제광론》2권(박은정 譯) 1. 중근기 의요(意樂) 수행의 실제 1.1. 중근기 의요: 해탈을 희구(希求)하는 마음 1.2. 중근기 의요를 일으키는 방법 1.2.1. 고(苦)ㆍ집(集)을 통한 사유 1.2.1.2. 고제(苦諦): 윤회의 해악 1.2.1.2.1. 사제(四諦)에서 고제를 가장 먼저 설하신 뜻은 무엇인가 1.2.1.2.2. 고통관(苦痛觀)의 실제 1.2.1.2.2.1. 윤회의 보편적 고통 사유하기 1.2.1.2.2.1.1. 팔고 1.2.1.2.2.1.2. 육고 1.2.1.2.2.1.3. 삼고 1.2.1.2.2.2. 윤회의 개별적 고통 사유하기 1.2.1.2. 집제(集諦)를 통해 윤회하는 과정 사유하기 1.2.1.2.1. 번뇌가 생기는 이치 1.2.1.2.1.1. 번뇌란 무엇인가 1.2.1.2.1.2. 번뇌가 생기는 과정 1.2.1.2.1.3. 번뇌의 원인 1.2.1.2.1.4. 번뇌의 해악 1.2.1.2.2. 번뇌가 업을 쌓는 과정 1.2.1.2.2.1. 쌓게 되는 업은 무엇인가 1.2.1.2.2.2. 어떻게 업을 쌓게 되는가 1.2.1.2.3. 죽음과 생을 받는 방식 1.2.1.2.3.1. 죽음의 원인 1.2.1.2.3.2. 죽음의 마음 1.2.1.2.3.3. 몸의 온기가 사라지는 순서 1.2.1.2.3.4. 죽음 후 중음의 형성 1.2.1.2.3.5. 죽음 후 생유에서 생을 받는 방식 1.2.2. 십이연기(十二緣起)를 통한 사유 1.2.2.1. 십이지(十二支) 1.2.2.2. 십이지의 네 범주 1.2.2.3. 몇 생이 소요되는가 1.2.2.4. 요결 2. 중근기 의요의 경계 3. 중근기 도차제에 대한 사견의 차단 4. 해탈도 4.1. 어떠한 몸으로 벗어나는가 4.2. 어떠한 도로써 벗어나는가 4.2.1. 삼학(三學)의 법수(法數) 4.2.2. 순서의 의미 4.2.3. 삼학의 본질 |
4.2.3. 상사도
상사도에 관한 《보리도차제광론》의 구성은 다음과 같다. 《The Great Treatise on the Stages of the Path to Enlightenment (Volume 2)》 《Steps on the Path to Enlightenment: A Commentary on Tsongkhapa's Lamrim Chenmo, Volume 3: The Way of the Bodhisattva》 1. 보리심만이 대승의 입문(入門)임을 설명함 2. 보리심을 일으키는 법 2.1. 보리심을 어떤 인(因)에 의지해서 일으키는가 2.2. 보리심을 닦는 차제(次第) 2.1.1. 아띠샤의 전승에 의한 칠종인과법(七種因果法)으로 보리심 닦기 2.1.2. 샨티데바의 전승에 의한 자타교환법(自他交換法)으로 보리심 닦기 2.3. 보리심이 일어남의 척도 2.4. 의궤(儀軌)를 통해 보리심을 지니는 법 2.4.1. 아직 받지 않은 보리심계(보살계)를 받는 법 2.4.2. 이미 받은 보리심계를 쇠퇴하지 않게 지니는 법 2.4.3. 쇠퇴한 보리심계를 회복시키는 법 3. 보리심을 일으키고 나서 보살행을 실천하는 법 3.1. 보리심을 일으키고 나서 보살행을 실천해야 하는 이유 3.2. 방편과 지혜 중 어느 하나만으로는 성불할 수 없는 이유 3.3. 실제적인 보살행의 차제(육바라밀행을 하는 순서)에 대한 설명 3.3.1. 일반적인 대승(반야승)에 대해 배우는 방법 3.3.1.1. 보살행에 대해 배우고자 하는 마음 일으키기 3.3.1.2. 보살행을 배우고자 하는 마음을 일으킨 후 보리심계 받기 3.3.1.3. 보리심계를 받고 보살행을 실천하는 방법 3.3.1.3.1. 배워야 할 바인 육바라밀행(六波羅蜜行) 3.3.1.3.2. 육바라밀행에 모든 보살행이 포함되는 이치 3.3.1.3.3. 보살행을 배우는 차제 3.3.1.3.3.1. 보살의 일반적인 육바라밀행을 배우는 방법 3.3.1.3.3.1.1. 자신을 부처로 성숙시키는 육바라밀행을 배우기 3.3.1.3.3.1.1.1. 보시바라밀을 행하는 방법 3.3.1.3.3.1.1.2. 지계바라밀을 행하는 방법 3.3.1.3.3.1.1.3. 인욕바라밀을 행하는 방법 3.3.1.3.3.1.1.4. 정진바라밀을 행하는 방법 3.3.1.3.3.1.1.5. 선정바라밀을 행하는 방법 3.3.1.3.3.1.1.6. 지혜바라밀을 행하는 방법 3.3.1.3.3.1.2. 남의 마음을 성숙시키는 사섭법(四攝法)을 배우기 |
4.3. 샤마타와 비파샤나
집중명상 단계를 묘사한 샤마타도(zhi gnas dpe ris, 止圖)[24] |
티베트 불교에서 전승되는 기본적인 명상 방법은 샤마타(shamatha)와 비파샤나(vipashyana)[25]이다. 티베트어로 샤마타는 '평화롭게 머묾'이란 뜻의 시녜(zhi gnas), 비파샤나는 '더 나아가서 봄', '더 뛰어나게 봄'이란 뜻의 학통(lhag mthong)이라고 번역되며, 한자어로는 지(止)와 관(觀)이라고 한다. 비록 불교 전통마다 구체적인 의미와 실천에 차이는 있지만, 샤마타와 비파샤나는 거의 모든 불교 전통이 공유하는 가장 보편적인 불교 명상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대승지관의 전통은 티베트 불교 외에는 거의 단절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한문문화권에서 대승교학은 교학의 이해로만 그치고 실천으로 증험되기 힘든 상황이다. 그러나 유식, 중관과 같은 교학은 수습하여 증득하지 않으면 본질을 체득하기 어렵다. 이런 점에서 대승지관의 전통을 다시 정립하는 것은 중요하다. 대승의 정신에 입각한 지관수행은 남방의 위빠사나와는 의미가 다르기 때문이다.
양승규, 《티벳의 지관 수행 체계 연구》
《보리도차제광론》에서 다루는 지관쌍운(止觀雙運)의 수행론 중 샤마타에 대한 설명은 《해심밀경》,《수신대승경》,《성보운경》, 《대반열반경》, 《월등경》, 《정섭법경》, 《삼매왕경》,《보살장경》,《보적경》,《힐례벌다문경》,《현재제불현주삼매왕경》,《샴부띠속》등의 경전과 《반야바라밀다교수론》,《수습차제》,《경장엄론》,《보살지론》,《집학론》,《입보살행론》,《성문지론》,《중관심론》,《구사론》,《구사론석》,《보리도등론》,《보리도등론석》,《변중변론》,《변중변론석》,《오지론》,《유가사지론》,《현관장엄론》,《참회찬》,《불정석》,《아비달마집학론》,《반야섭송》,《유식삼십론석》,《섭결택분》,《찬응찬론》 등의 논서를 전거로 삼았다.
《성문지》(안성두 譯)
《유가사지론》(안성두, 이영진, 원과, 운산 譯)
비파샤나에 대한 설명은 《무진혜경》,《삼매왕경》,《보살장경》,《해심밀경》,《수신대승경》,《입일체불경지혜광명장엄경》,《반야경》,《대보적경》 등의 경전과 《중론》,《회쟁론》,《회쟁론석》,《칠십공성론》,《육십송여리론》,《육십송여리론석》,《출세간찬》,《중관광명론》,《명구론》,《입중론》,《입중론석》,《보만론》,《불호론》,《현관장엄론현의론》,《입보살행론》,《수습차제》,《사백론석》,《집량론》,《석량론》,《반야등론》,《관금대소》,《분별치연론》,《구사론》 등의 논서를 전거로 삼았다.
전거로 삼은 문헌들에서 알 수 있듯, 《보리도차제광론》의 지관 수행은 유식 계열의 선정론(禪定論)에 기반한 집중명상(Skt. sthāpyabhāvanā, Tib. 'jog sgom)과 중관(특히 귀류논증중관) 계열의 공성(空性) 논증에 기반한 분석명상(Skt. vicārabhāvanā, Tib. dpyad sgom)으로 구성된다. 이는 《보리도차제광론》의 수행론에 큰 영향을 준 《수습차제》와 마찬가지로 지와 관, 방편과 반야를 함께 수습하는 대승지관의 전통을 계승한 것이다.
《까말라씰라의 수습차제 연구》
《까말라실라의 수행의 단계》
《달라이 라마, 수행을 말하다》
《보리도차제광론》〈비파샤나품〉은 《보리도차제약론(lam rim 'bring po)》〈비파샤나품〉, 《정리해(rigs pa’ i rgya mtsho)》[26], 《의취선명(dgongs pa rab gsal)》[27], 《선설장론(legs bshad snying po)》[28]과 함께 쫑카빠의 중관사상을 알 수 있는 대표적인 다섯 종의 저작으로 손꼽힌다.
쫑카빠의 전기에 따르면, 원래 쫑카빠는 《보리도차제광론》의 〈샤마타품〉까지만 저술하고 〈비파샤나품〉은 저술할 의도가 없었다고 한다. 내용이 심오하고 이해하기 어려워 중생들에게 이익을 줄 수 없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 때 문수보살이 쫑카빠 앞에 현신하여 "비록 최상의 이익은 줄 수 없을지라도 중등(中等)의 이익은 줄 수 있으니 〈비파샤나품〉을 마저 저술하라"고 독려했다고 한다. "중등의 이익"이란 비록 모든 중생이 〈비파샤나품〉을 보고 이해할 수는 없을지라도 다수의 중생들이 〈비파샤나품〉을 보고 공성에 대한 바른 견해를 얻을 수 있으며, 만약 〈비파샤나품〉을 짓지 않으면 최하등의 이익도 줄 수 없음을 의미한다.
4.3.1. 샤마타
샤마타에 관한 《보리도차제광론》의 구성은 다음과 같다. 《The Great Treatise on the Stages of the Path to Enlightenment(Volume 3)》 《Steps on the Path to Enlightenment: A Commentary on Tsongkhapa's Lamrim Chenmo, Volume 4: Samatha》 F2. 특히 선정바라밀과 지혜바라밀을 배우는 방법 G1. 샤마타와 비파샤나를 닦는 이득 G2. 모든 삼매[선정]는 샤마타와 비파샤나에 포함됨 G3. 샤마타와 비파샤나의 정의 G4. 샤마타와 비파샤나를 함께 닦아야 하는 이유 G5. 샤마타를 먼저 닦고 비파샤나를 닦는 순서가 결정되어 있는 이치 G6. (샤마타와 비파샤나의) 각각을 배우는 방법 H1. 샤마타를 닦는 방법 I1. 샤마타를 이루기 위해 갖추어야 할 조건 J1. 적당한 장소에 머물기 J2. 욕심을 줄이기 J3. 만족할 줄 알기 J4. (불필요한) 많은 일을 완전히 버리기 J5. 계율을 청정하게 지키기 J6. 욕심 등의 분별(번뇌)를 완전히 버리기 I2. [샤마타의] 조건들을 갖추어 실제 샤마타를 익히는 방법 J1. 샤마타의 예비수행 J2. 본격적으로 샤마타 닦기 K1. 샤마타를 닦는 몸의 자세 K2. 실제로 샤마타를 닦는 순서 L1. 허물 없는 선정을 닦는 방법 M1. 마음을 대상에 머물기 전에 어떻게 하는가 L2. 허물 없는 선정에 의지해서 구주심(九住心)을 일으키는 순서M2. 마음을 대상에 머물 때 어떻게 하는가 N1. 마음을 어디에 두는가의 선정의 대상을 인식하기 M3. 마음을 대상에 머물고 난 뒤에 어떻게 하는가O1. 일반적인[보편적인] 선정의 대상에 대한 인식 N2. 이러한 선정의 대상에 마음을 두고 집중하는 방법P1. 일반적인 선정의 대상 O2. 여기에서 말하는 선정에 대한 인식Q1. 충족(充足)의 대상[편만소연(遍滿所緣)] P2. 어떤 사람에게 어떤 대상을 가르쳐야 하는가R1. 유분별의 영상 Q2. 행위[行]에 따라 다스리는 대상[정행소연(淨行所緣)]R2. 무분별의 영상 R3. 사물(존재, 법)의 한계 R4. 목적을 성취하는 대상 R1. 부정(不淨): 탐욕의 대치(對治) Q3. 지자(智者)의 대상[선교소연(善巧所緣)]R2. 자비(慈悲): 성냄의 대치 R3. 연기(緣起): 무지의 대치 R4. 계(界)의 자세한 구별: 아만(我慢)의 대치 R5. 호흡: 분별의 대치 R1. 온(蘊)에 대해 아는 것 Q4. 번뇌를 완전히 다스리는 대상[정혹소연(淨惑所緣)]R2. 계(界)에 대해 아는 것 R3. 처(處)에 대해 아는 것 R4. 연기(緣起)에 대해 아는 것 R5. 처비처(處非處: 이치에 맞는 것과 맞지 않는 것)에 대해 아는 것 R1. 번뇌를 일시적으로 차단하는 대상 R2. 번뇌를 완전히 제거하는 대상 P3. 선정의 대상과 동일한 개념을 가르치기 O1. 허물없는 바른 주장을 세우기 O2. 허물이 있는 잘못된 주장을 막기 O3. 선정에 든 시간의 길이 N1. 혼침과 도거가 일어날 때 어떻게 해야 하는가 O1. 혼침과 도거를 인식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대치법을 실천하는 것 N2. 혼침과 도거가 일어나지 않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가P1. 혼침∙도거의 정의 O2. 혼침과 도거를 인식하고도 없애려고 정진하지 않는 것에 대해 대치법 을 실천하는 것P2. 혼침과 도거에 대해 정지(正知: 알아차림)를 일으키는 방법 P1. 혼침과 도거를 없애려는 마음[思]을 인식하고 혼침과 도거를 막는 방법 P2. 혼침과 도거가 생기는 근본 원인 M1. 구주심이 생기는 실제적 순서 M2. 구주심을 여섯 가지 힘(六力)으로 일으키는 방법 M3. 구주심에 네 가지 작의(四作意)가 있는 이치 I3. 수행을 통한 샤마타 성취의 척도[기준] J1. 샤마타를 성취한 것과 성취하지 못한 것의 경계 제시 K1. 샤마타를 성취한 것의 실제적인 의미 J2. 샤마타에 의지한 도를 닦는 일반적인 방법K2. 샤마타를 얻은 증거[작의(作意)를 갖춘 표시]와 그에 대한 의심의 제거 L1. 샤마타를 성취한 증거 L2. 샤마타의 성취에 대한 의문을 막는 것 J3. 특히 세간의 도로 나아가는 방법 K1. [하지의] 거칠고 [상지의] 적정한 상(相)의 도[세간도]로 가기 전에 샤마타를 얻어야 하는 것 K2. 샤마타에 의지해서 욕계의 집착에서 벗어나는 방법 |
4.3.2. 비파샤나
비파샤나에 관한 《보리도차제광론》의 구성은 다음과 같다. 《The Great Treatise on the Stages of the Path to Enlightenment(Volume 3)》 《Steps on the Path to Enlightenment: A Commentary on Tsongkhapa's Lamrim Chenmo. Volume 5: Insight》 H2. 비파샤나를 배우는 방법 I1. 비파샤나를 닦기 위해 먼저 갖추어야 할 조건들 J1. 요의경과 불요의경을 확실하게 구분[식별]하기 I2. 비파샤나의 분류[구별]J2. [공성에 대한] 용수보살의 뜻을 어떻게 해석하는가 J3. 공성의 견해를 확실하게 가지는 방식 K1. 공성[진여]에 들어가는 순서 K2. 실제로 진실[공성]을 결택(決擇)하기[확실하게 설명함] L1. [자성(自性이나 아(我) 등] 논리로 부정(否定)할 대상을 바르게 인식하기 M1. 부정할 대상[所破]을 바르게 잘 인식해야 하는 이유 L2. 중관 귀류논증과 자립논증 중 무엇으로 논리로 부정할 대상을 논파 할 것인가M2. 부정할 대상을 바르게 인식하지 않고 반박하는 다른 주장을 막기 N1. 부정 대상을 지나치게 많이[넓게] 더 부정하는 경우 M3. 자기[귀류논증 중관학파] 주장이 부정할 대상을 인식하는 방법O1. [지나치게 더 많이 부정하는] 상대방의 주장을 말하기 N2. 부정 대상을 지나치게 적게[좁게] 덜 부정하는 경우O2. 상대방의 주장이 틀렸음을 보여주기 P1. 그 주장이 중관학파의 특징과 모순됨을 보여주기 Q1. 중관학파의 [공통적이 아닌] 특징을 인식하기 P2. 자신[중관학파]의 주장이 상대의 논파로 반박될 수 없음을 보여주기Q2. 그 주장이 이러한 중관학파의 특징과 모순됨을 보여주기 Q3. 중관학파는 상대에게 어떻게 대답하는가 Q1. 논리[正理: 공성을 대상으로 삼는 논리]적인 분석을 견딜 수 있는지 없는 지를 살필[분석함]으로써 부정하여 반박할 수 없음 Q2. 양(量: 바른 인식)으로 성립하는지 하지 않는지를 살핌[분석함]으로써 부정하여 반박할 수 없음 Q3. 네 가지 측면(四句: 자생自生, 타생他生, 공생共生, 무인생無因生)으로 생기는지 아닌지를 살핌[분석함]으로써 부정하여 반박할 수 없음 Q4. 사물이 있다, 없다 등 네 가지 측면(四句: 유有, 무無, 유무 둘 다인 것, 유무 둘 다 아닌 것)을 부정하는 것이 [자기 주장에] 해가 되지 않음 N1. 부정 대상을 실제로 확인하기 N2. 다른 부정 대상에 제한을 추가할 때 N3. 부정 대상에 "궁극적"이라는 제한을 추가할지 여부 M1. 자립논증 중관학파와 귀류논증 중관학파의 차이를 구분하기 L3. 그 부정 대상을 막음[論破]에 의지해서 [두 학파의 견해를 통해서] 심상속에 공성의 바른 견해가 생기는 방법[이 논파에 의지해서 바른 견해를 일깨우는 방법]N1. 상대의 주장을 막기 M2. 이 둘 중에 어느 파를 따라 공성의 견해를 일으켜야 하는가O1. 자립논증 중관학파와 귀류논증 중관학파의 차이에 대해 상대의 주장을 말하기 N2. 자기의 주장을 세우기O2. 상대의 네 가지 주장을 막기 P1. 첫 번째 주장을 막기 P2. 두 번째 주장을 막기 P3. 세 번째 주장을 막기 P4. 네 번째 주장을 막기 O1. 자속(自續: 실재성)을 논리로 바르게 끊기 P1. 근본인 유법(有法)을 불성립한 종(宗)의 오류가 있는 것(논의 대상이 없으면 논할 이유가 없어지는 것) O2. 이 논파가 자기에게 부동(不同: 똑같이 되돌아 올 수 없는 것)한 이치Q1. 상대의 주장을 말하기 P2. 그 오류로 종인(宗因: 유효한 논거)또한 불성립하게 되는 것(그 허물로 상대가 말한 어떤 이유 또한 옮지 않은 것)Q2. 그것을 막기 R1. 뜻이 옳지 않은 것 R2. 예를 드는 것과 같지 않는 것 M1. 보특가라무아[인무아人無我]를 결택하는 것 N1. 아(我)의 무자성(無自性)을 바르게 결택하는 것 M2. 법의 무아[법무아法無我]를 결택하는 것O1. 비유를 세우기 N2. 아(我: 나)가 무자성이기에 아소(我所: 나의 것) 또한 무자성임을 바르게 결택하는 것P1. 수레가 무자성이며 거짓으로 존재하는 것 설명 O2. 이 비유를 실제 의미와 연결하는 것P2. 수레가 무자성이며 거짓으로 존재하는 것에 대해 쟁론 끊기 P3. 이름만으로 존재하는 방식[가립으로 존재하는 방식] P4. 수레에 대한 관찰에 의해 속히 바른 견해를 얻을 수 있는 이득 P1. 무자성의 이치를 의미와 연결하기 Q1. 아(我)와 온(蘊)[나와 나의 오온]이 동일한 자성임을 막기 P2. 이름만으로 성립되는 이치를 의미와 연결하기Q2. 아와 온이 다른 자성임을 막기 Q3. 아와 온이 동일하거나 다른 자성임을 막음으로 남은 다섯 가지의 주장 또한 막게 되는 것 N3. 이 논리들을 다른 곳에 연결하는 이치 N4. 이 논리들을 의지해서 보특가라가 신기루같이 알게 하는 도리 M3. 이 두 무아의 견해를 익힘으로 두 장애(번뇌장, 소지장) 없애는 도리 I3. 비파샤나를 닦고 익히는 방법 J1. 비파샤나에 대한 상대의 주장을 막는 것 I4. 비파샤나 성취의 척도[비파샤나를 얼마나 이루었는지의 정도]K1. 첫 번째 주장을 막기 J2. 비파샤나에 대한 자기의 주장을 세우기K2. 두 번째 주장을 막기 K3. 세 번째 주장을 막기 K4. 네 번째 주장을 막기 K1. 집중명상과 분석명상 두 가지 다 필요한 이유 K2. 두가지 다 필요한 이유에 대한 쟁론 끊기 K3. 샤마타와 비파샤나 수행하는 법의 요점을 간략하게 설명 H3. 샤마타와 비파샤나를 함께 닦는 방법 |
4.4. 금강승에 입문함
람림 전승의 문헌들은 대개 반야승(현교)에 관한 내용을 중점적으로 서술한 후 말미에 금강승(밀교)에 관해 간략히 서술하는 형식으로 구성되는 경우가 많다. 람림에서 가르치는 출리심, 보리심, 공성을 인식하는 지혜 등의 모든 가르침은 반야승과 금강승의 공통된 가르침이며, 그러한 공통의 기반이 잘 갖춰진 수행자가 더욱 큰 보리심을 일으켜 짧게는 한 생에도 성불이 가능한 금강승에 입문하게 된다.금강승 수행자는 반야승에서 요구하는 것보다 더욱 큰 스승에 대한 믿음과 헌신을 바탕으로 금강승의 스승에게서 관정, 구전, 구결과 금강승계를 받고 소작 탄트라, 행 탄트라, 요가 탄트라 등 하위 3부 탄트라의 유상(有相)요가, 무상(無相)요가와 무상(無上)요가 탄트라의 생기차제, 원만차제를 수습한다. 자세한 내용은 티베트 불교/금강승(밀교)를 참조할 것.
금강승의 가르침을 체계적으로 서술한 논서로는 쫑카빠의 《비밀도차제대론(sngags rim chen mo)》 등이 있다.
특별히 금강승(金剛乘)을 배우는 방법이다.
이와 같이 현밀(顯密) 두 가지에 공통된 길을 수행한 후에 의심할 것 없이 밀주(密咒)에 들어가야 한다.
왜냐하면, 이 길은 다른 법에 비하여 가장 희귀하고 속히 두 자량(資糧)을 원만히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일 이 길에 들어가려고 한다면 《도거론(道炬論)》에서 말한 대로 먼저 스승을 공경하고 그의 가르침대로 수행하는 등으로써 스승을 기쁘게 하는 것인데, 이것은 앞에서 말한 것이지만 특별히 더 잘해야 되기에, 그 논에서 말한 최하의 덕상(德相)을 갖춘 자가 이처럼 해야 한다.
그 다음에, 먼저 청정한 속부(續部)에서 말한 관정(灌頂)으로써 심신의 상속을 성숙시키고, 다음으로 그때에 받은 서원과 율의를 듣고 알아차려 지켜야 한다.[...]
이와 같이 서원과 계율을 지키는 자가 다라니의 길을 수행할 수 있다면, 우선 속부에 의거하여 말한 생기(生起) 단계인 원만존륜(圓滿尊輪)을 닦아야만 한다.[...]
그 다음에 원만 단계를 속부에 의거해서 말하는 것을 수행해야 한다. 단 첫 번째의 단계를 무시하고 뒷부분만을 집중하여 닦음은 도의 일부분만을 수습하는 것이니, 이것은 속부와 이의 주석서를 저술한 지자(智者)들이 인가(印可)한 것이 아니다.[29]
그러므로 무상유가(無上揄伽)에서 원만한 도체(道體)의 두 단계의 종요(宗要)에 도달해야 한다.[...]
이와 같은 방법을 배울 수 있다면, 현밀이승(顯密二乘)을 모두 포괄하는 일체 종요를 공부하는 원만한 도체(道體)가 되기에 가만을 얻는 의의를 갖추게 되며, 부처의 가르침인 큰 보배를 자타(自他)의 상속에서 더욱 넓게 빛낼 수 있게 된다.
《보리도차제광론》
《깨달음에 이르는 길》(청전 譯)
이와 같이 현밀(顯密) 두 가지에 공통된 길을 수행한 후에 의심할 것 없이 밀주(密咒)에 들어가야 한다.
왜냐하면, 이 길은 다른 법에 비하여 가장 희귀하고 속히 두 자량(資糧)을 원만히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일 이 길에 들어가려고 한다면 《도거론(道炬論)》에서 말한 대로 먼저 스승을 공경하고 그의 가르침대로 수행하는 등으로써 스승을 기쁘게 하는 것인데, 이것은 앞에서 말한 것이지만 특별히 더 잘해야 되기에, 그 논에서 말한 최하의 덕상(德相)을 갖춘 자가 이처럼 해야 한다.
그 다음에, 먼저 청정한 속부(續部)에서 말한 관정(灌頂)으로써 심신의 상속을 성숙시키고, 다음으로 그때에 받은 서원과 율의를 듣고 알아차려 지켜야 한다.[...]
이와 같이 서원과 계율을 지키는 자가 다라니의 길을 수행할 수 있다면, 우선 속부에 의거하여 말한 생기(生起) 단계인 원만존륜(圓滿尊輪)을 닦아야만 한다.[...]
그 다음에 원만 단계를 속부에 의거해서 말하는 것을 수행해야 한다. 단 첫 번째의 단계를 무시하고 뒷부분만을 집중하여 닦음은 도의 일부분만을 수습하는 것이니, 이것은 속부와 이의 주석서를 저술한 지자(智者)들이 인가(印可)한 것이 아니다.[29]
그러므로 무상유가(無上揄伽)에서 원만한 도체(道體)의 두 단계의 종요(宗要)에 도달해야 한다.[...]
이와 같은 방법을 배울 수 있다면, 현밀이승(顯密二乘)을 모두 포괄하는 일체 종요를 공부하는 원만한 도체(道體)가 되기에 가만을 얻는 의의를 갖추게 되며, 부처의 가르침인 큰 보배를 자타(自他)의 상속에서 더욱 넓게 빛낼 수 있게 된다.
《보리도차제광론》
《깨달음에 이르는 길》(청전 譯)
5. 관련 영상
게셰 소남 걜첸, 2020 서울국제불교박람회 명상웹컨퍼런스《람림》강연 영상 1부, 2부 |
게셰 소남 걜첸, 대한불교진흥원 헬로붓다 아카데미 "뿌리는 같아도 다른 꽃이 핀다" 《티베트 불교의 과거와 현재》 《티베트 불교의 대표 가르침 보리도차제광론》 《쫑카빠 대사의 도의 세 가지 핵심》 |
제9대 캄툴 린포체(본 법문), 켄뽀 아왕 상뽀(보충 법문), 《해탈장엄론 법문》[30] |
6. 관련 서적
《람림》과 관련된 가장 대표적인 문헌으로 아띠샤의 《보리도등론(Skt. bodhipathapradīpa, Tib. byang chub lam sgron)》과 이에 관한 쫑카빠의 주석인 《보리도차제광론(lam rim chen mo)》을 들 수 있다.겔룩의 《람림》관련 8대 논서인 《람림 티첸 걔(ལམ་རིམ་ཁྲིད་ཆེན་བཅོ་བརྒྱད་ནི།)》는 다음과 같다.
- 제 쫑카빠의 대·중·소 『람림』 3가지
『람림 첸모(བྱང་ཆུབ་ལམ་རིམ་ཆེན་མོ།)』
『람림 딩뽀(ལམ་རིམ་འབྲིང་པོ།)』
『람림 냠구르(ལམ་རིམ་ཉམས་འགུར།)』 - 제3대 달라이 라마 쏘남 갸초의 『람림 세르슌마(ལམ་རིམ་གསེར་ཞུན་མ།)』
- 제5대 달라이 라마 롭상 갸초의 『람림 잠뺄섈룽(ལམ་རིམ་འཇམ་དཔལ་ཞལ་ལུང།)』
- 빤첸 롭상최겐의 『람림 데람(ལམ་རིམ་བདེ་ལམ།)』
- 제쭌 롭상예셰의 『람림 뉴르람(ལམ་རིམ་མྱུར་ལམ།)』
- 닥뽀 나왕닥빠의 『람림 렉쑹닝쿠(ལམ་རིམ་ལེགས་གསུང་ཉིང་ཁུ།)』
8대 논서에 10종의 논서를 추가하여 람림 18대 논서를 선별하는 경우도 있다.
아티샤의 까담 전승은 겔룩 뿐만 아니라 티벳의 모든 종파에 영향을 끼쳤다. 각 종파의 관련 문헌은 람림 혹은 람림의 하위 분류인 땐림(bsTan Rim, 修學次第)으로 분류된다. 대표적인 문헌으로 닝마의 《공덕보장론(yon tan mdzod)》, 《보현상사언교(kun bzang bla ma'i zhal lung)》, 까규의 《감뽀빠의 네 가지 법(dwags po chos bzhi)》, 《해탈장엄론(dwags po thar rgyan, or dam chos yid bzhin nor bu rin po che'i rgyan) 》, 사캬의 《네 가지 집착에서 벗어남(zhen pa bzhi bral) 》, 《창밀의론(thub pa'i dgongs pa rab tu ga sal ba)》 등이 있다.
David Jackson, 《Tibrtan Literature》<The bsTan rim ("Stages of the Doctrine") and Similar Graded Expositions of the Bodhisattva's Path>
현생에 집착하면 법의 수행자가 아니다.
윤회에 집착하면 출리(出離)가 아니다.
이기(利己)에 집착하면 보리심이 아니다.
집착함이 일어나면 [올바른] 견해가 아니다.
《네 가지 집착에서 벗어남(ཞེན་པ་བཞི་བྲལ་)》[31] (자홍 譯) #
- 문수보살이 사첸 꿍가 닝뽀(sa chen kun dga' snying po) 에게 전해준 짧은 게송
윤회에 집착하면 출리(出離)가 아니다.
이기(利己)에 집착하면 보리심이 아니다.
집착함이 일어나면 [올바른] 견해가 아니다.
《네 가지 집착에서 벗어남(ཞེན་པ་བཞི་བྲལ་)》[31] (자홍 譯) #
- 문수보살이 사첸 꿍가 닝뽀(sa chen kun dga' snying po) 에게 전해준 짧은 게송
국내에 번역된 관련 서적들은 다음과 같다.
(※일부 서적은 절판된 점 참고 바람)
#아티샤
#까말라쉴라
#겔룩
- 《람림 첸모(보리도차제광론)》
- 《보리도차제광론》 1권(예비수습편) 2023년 개정판, 2권(하근기와 중근기편) : 전5권으로 구성된 완역본 출간 예정.
- 《깨달음에 이르는 길》 : 완역본.
- 《보리도 차제》 : 완역본.
- 《보리도에 이르는 차제 넓게 설한 것이 여기에 있다》 : <비파샤나품> 제외.
- 《람림 딩뽀(보리도차제중론)》
- 《람림 냠구르(보리도차제약론)》
- 《람림 세르슌마》
- 《람림 데람》
- 《람기 쪼오 남 쑴(삼종요도)》
- 《쫑카빠 대사의 위대한 가르침》
- 《티벳 스승들의 수행 이야기》
- 《문수사리에게 깨달음에 이르는 세 가지 길을 듣다》
- 《티벳 스승들에게 깨달음의 길을 묻는다면(증보판)》
- 《쫑카빠의 도의 세 가지 핵심》
- 《마음을 다스리는 보살의 수행법》
- 《도해 쫑카빠 대사 람림, 깨달음의 길을 말하다》
- 《욘땐 실귤마(공덕의 근원)》
- 《람림 쌰르곰(보리도차제의 요지 마음으로 수습하기)》
- 《람림 남돌 락짱(손 안의 해탈)》[34]
- 《티벳 스승들에게 깨달음의 길을 묻는다면(증보판)》 : 2021년 개정증보판(초펠 편역ㆍ게시 소남 걀첸 증보).
- 《깨달음으로 가는 올바른 순서(개정판)》 : 2023년 개정판.
- 《손 안에 있는 해탈과 중관의 열쇠》
- 《도해 쫑카빠 대사 람림, 깨달음의 길을 말하다》
- 《깨달음의 길》
- 《티베트불교 수행의 설계도》
- 《티베트 불교문화》
- 《꺕쑴(삼귀의에 대한 가르침)》
#까규
#닝마
- 《꾼상 라매 섈룽(보현상사언교)》
- 《마지막 그림자가 사라지기 전에》
- 《궁극의 행복》
- 《티베트 지혜의 서》
- 《대원만 정도 광명》1권, 2권, 3권, 4권, 5권
#사캬
#조낭
[1] 샤마타, 비파샤나는 상사도의 선정바라밀, 지혜바라밀을 더욱 자세히 설명한 것이다.[2] '복전(福田)', 혹은 '자량전(資糧田)'이란 뜻의 티베트어. 관상(觀想), 예배, 공양 등을 하여 공덕 자량을 쌓을 수 있는 대상이므로 복전(자량전)이라 한다. 복전은 법맥의 직간접적인 스승과 삼보(三寶) 등으로 구성되며, 세부적인 구성은 법맥과 전승마다 차이가 있다.[3] 모든 바가완(Bhagavān: 세존世尊, 박가범薄伽梵 등으로 번역되는 붓다의 칭호 중 하나)의 어머니인 반야바라밀을 가리킨다. 반야바라밀은 모든 붓다를 발생시키는 원인이므로 불모(佛母)에 비유된다. 즉 이 게송에서는 《반야경》의 뜻을 여실히 밝힌 용수와 무착을 찬탄하고 있다. 용수는 《중론》 등의 논서를 통해《반야경》에서 직접적으로 설해진 심오한 공성의 견해를 밝혔고, 무착은 《현관장엄론》 등의 논서를 통해 《반야경》에서 간접적으로 설해진 광대한 행(行)의 도(道)를 밝혔다고 여겨진다.[4] 삼지(Skt. bhūmi-traya, Tib. sa gsum, 三地)는 세 가지 층위의 세계, 곧 다끼니(dakini) 등 천신(天神)들이 사는 땅 위의 세계, 인간들이 사는 땅의 세계, 나가(naga)들이 사는 땅 밑의 세계를 의미한다.[5] '두 대의 큰 마차(shing rta gnyis)' 혹은 '대승의 스승인 두 대의 큰 마차(theg chen gyi slob dpon shing rta gnyis)'는 용수와 무착을 가리킨다. 옛날에 사람들이 더이상 왕래하지 않아 풀이 무성하게 자라고 사라진 길을 다시 복원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큰 마차가 그 위를 지나가서 길을 내는 것이었다. 이와 같이 석가모니불의 입멸(入滅) 이후 잊혀졌던 중관과 유식의 전승을 용수가《중관이취육론》을 저술하고 무착이 《대승아비달마집론》, 《섭대승론》, 《유가사지론》 등을 저술하여 사라진 길을 새롭게 내듯이 복원시켰기 때문에, 용수와 무착을 큰 마차에 비유하는 것이다. 대승의 큰 마차는 용수와 무착 둘 뿐이며 제3의 마차는 없다. 큰 마차의 비유에서 알 수 있듯 전통적으로 대승불교도들은 대승이 석가모니 재세시부터 존재하던 석가모니의 친설(親說)이었으며, 석가모니의 입멸 후 잠시 쇠퇴하였으나 용수와 무착 등 대승 논사들에 의해 다시금 복원되었다는 역사적 인식을 갖고 있었다.[6] 티베트어로 쎌링빠는 '쎌링 출신 사람'이란 뜻이다. 쎌링은 '황금섬'이란 뜻을 갖고 있으며, 산스크리트어로는 수와르나부미(Suvarṇabhūmi) 혹은 수와르나드비파(Suvarṇadvīpa)라고 한다. 수와르나부미 혹은 수와르나드비파의 정확한 위치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미얀마 남부, 말레이 반도, 수마트라, 자바에 이르는 동남아 일대 도서해안지역으로 추정되며, 인도로부터 동쪽에 위치한 지역들을 가리키는 명칭으로 쓰인다.
즉 쎌링빠는 10세기 당시 대승불교가 흥성했던 스리위자야(Srivijaya) 왕조의 인물로, 산스크리트어 본명이 다르마키르티(Dharmakīrti)이기 때문에 통상 '수와르나드비파의 다르마키르티(Suvarṇadvīpa Dharmakīrti)'라고 일컬어진다(인명학을 발전시킨 다르마키르티와는 동명이인이다). 수와르나드비파의 다르마키르티는 유식학파였으며 아티샤, 라트나카라샨티(Ratnākaraśānti), 즈냐나슈리미트라(Jñānaśrīmitra), 라트나키르티(Ratnakīrti)같은 주요 후기 대승불교 학자들의 스승이었다. 아티샤에게는 보리심의 법맥인 로종(blo sbyong)을 전수했다고 알려져 있다.[7] 비드야코킬라(Vidyākokila)는 찬드라키르티(Candrakīrti)의 제자이자 아티샤에게 중관 법맥을 전수한 스승으로 알려져 있다. 티베트어로는 '릭빼쿠쥭'이란 이름으로 의역된다.[8] 《람림》을 의지하면 스승에 대한 잘못된 견해나 그 죄를 사유함으로써 자연스럽게 이러한 죄업이 소멸된다. 또한 무상에 대하여 배움으로써 이번 생에 대한 집착이 없어지고, 보리심을 일으키는 것에 대해 생각함으로써 이기심으로 생긴 죄업이 없어지고 무아를 생각함으로써 아집까지도 없애는 등 지은 죄가 저절로 소멸되는 위대함이 갖추어져 있다고 한다.[9] 나란다(Nalanda) 사원의 경우에는 스승의 '말의 청정함', 제자의 '마음의 청정함', 설하는 '법의 청정함'이란 세 가지 방식으로 법을 설한다.[10] 효자와 같은 마음, 금강석과 같은 마음, 대지와 같은 마음, 산과 같은 마음, 종과 같은 마음, 청소부와 같은 마음, 버팀목과 같은 마음, 충견과 같은 마음, 배(船)와 같은 마음[11] '맹구우목(盲龜遇木)'이란 비유에서 알 수 있듯 불교의 업설(業說)에 따르면 인간으로 태어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중생은 무수히 많은 악업을 짓고 선업은 적게 행하여 인간이나 천상에 태어나기 매우 어렵고 지옥, 아귀, 축생 등 삼악도에 떨어지는 것은 쉽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신난득'은 인간으로 태어난 귀한 기회를 놓치지 말고 수행정진하라는 가르침이다.[12] 불교의 세계관인 육도 중에 악업으로 인해 환생하는 지옥, 아귀, 축생을 지칭함[13] 불교적 관점에서 윤회에 속한 어떠한 것도 모두 본질은 고통이지만 하사도에서는 특별히 윤회의 고통 중 삼악취의 고통을 중점적으로 다룬다. 하사도를 수행하여 삼악취가 아닌 인간과 천신으로 태어나도 그것은 일시적인 행복일 뿐 결국 고통으로 귀결되기에 윤회로부터의 영원한 해탈을 추구하게 되는 것은 하사도가 아닌 중사도에서 중점적으로 다루게 된다.[14] 티베트어 칠불통게는 한역(漢譯) 칠불통게와 대체적으로 일치하지만 뉘앙스가 약간 다르다. 또한 한역 칠불통게는 제목 그대로 과거칠불이 공통적으로 설한 게송으로 알려져 있지만, 티베트에는 과거칠불들이 각각 설한 일곱 개의 서로 다른 게송들이 전해지며 그 중 한 게송이 한역 칠불통게 내용에 해당하는 게송이다.[15] 일시적인 행복으로서 지옥, 아귀, 축생 등 삼악도를 벗어나 인간, 천신의 몸을 받음.[16] 궁극적인 행복으로서 '영원한 행복'인 윤회에서 벗어나는 해탈과, '완전한 행복'인 중생구제를 위해 일체종지를 이루는 성불을 의미함.[17] 팔유가(八有暇)는 수행할 수 없는 장애로부터 벗어나 여덟 가지 여유를 갖춘 것을 말한다. (1) 지옥에 태어나지 않은 것. (2) 아귀로 태어나지 않은 것. (3) 축생으로 태어나지 않은 것. (4) 오래 사는 신(장수천, 長壽天)으로 태어나지 않은 것 (5) 부처님의 가르침을 모르는 땅에 태어나지 않은 것. (6) 부처님의 존재를 모르는 시대에 태어나지 않은 것. (7) 감각기관에 장애가 없는 것. (8) 그룻된 견해를 품지 않은 것.[18] 십구족(十具足, 혹은 십원만十圓滿)은 수행하기 위해 갖추어야 할 조건 열 가지를 갖추었음을 말한다. (1) 인간으로 태어난 것. (2) 불법(佛法)이 존재하는 땅에 태어난 것. (3) 가르침을 이해하는 능력이 있는 것. (4) 오역죄(五逆罪)를 범하지 않는 것. (5) 신심을 갖춘 것. (6)부처님께서 세간에 존재하는 것. (7) 정법(正法)이 설해지고 있는 것. (8) 그 가르침이 현재까지 전해지고 있는 것. (9) 그 가르침을 받는 것. (10) 후원자, 시주자 등 주변의 도움을 받는 것. 앞의 다섯 가지 내부적인 조건을 자원만(自圓滿), 뒤의 다섯 가지 외부적인 조건을 타원만(他圓滿)이라고 한다.[19] 사섭법(四攝法)은 다른 중생을 섭수(攝受)하는 네 가지 법을 말한다. 섭수란 자비로 거두어 보살피고 그 마음을 성숙시킴을 뜻한다. 네 가지 법이란 보시(布施), 애어(愛語), 이행(利行), 동사(同事)를 일컫는다. 보시섭은 육바라밀의 보시바라밀과 같은 의미이다. 애어섭은 바라밀을 대중에게 가르치는 것이다. 이행섭은 대중들이 바라밀과 같은 가르침을 받아들이고 실천하게 돕는 것이다. 동사섭은 본인 또한 대중들과 함께 바라밀을 실천하는 것이다.[20] 고성제(苦聖諦), 특히 행고(行苦)를 절감하고 진정으로 윤회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마음. 통상적인 염세주의와는 구분해야 한다. 불교에서의 출리심은 윤회의 본질이 고통이라는 사실을 깊게 사유하여 그 결과 세속적 욕망 대신 윤회로부터의 해탈을 추구하게 되는 마음이다.[21] 견도 이상의 성자보살은 업과 번뇌를 아직 완전히 제거하지는 못했지만, 그것을 대치(對治)할 수 있는 힘이 있기 때문에 업과 번뇌의 타력에 의한 생을 받지 않는 것이 가능하다.[22] '자성으로 현현한다'는 말은 일체법이 각각의 차별상으로 인식된다는 뜻이다.[23] 《법화경》, 《승만경》, 《현관장엄론》 등 대승경론에서는 반열반 이후에도 아라한의 심상속(心相續)은 계속 이어지며, 의생신(意生身)을 갖고, 색구경천 정토에 머물며, 공성삼매 속에 있고 적절한 때 부처가 아라한을 삼매에서 벗어나게 하여 보살도를 행하도록 인도한다고 설명한다.[24] 샤마타를 성취하는 과정인 구종심주(sems gnas pa’i thabs dgu, 九種心住)를 코끼리 길들이기에 비유한 티베트의 전통 회화 양식이다.[25] 산스크리트어이다. 팔리어로는 사마타(samatha), 위빠사나(vipassana)라고 한다.[26] 《중론》의 주석서[27] 《입중론》의 주석서[28] 유식학파와 중관학파의 관점에서 각각 교상판석(敎相判釋)한 논서[29] 생기차제를 무시하고 원만차제만을 수습해서는 안된다는 점을 강조하는 내용이다.[30] 《해탈장엄론》은 밀라레빠의 수제자이자 닥뽀 까규 전승의 창시자인 감뽀빠의 저작이다. 아티샤의 까담 전승과 까규의 마하무드라 전승을 결합시킨 역작으로 평가되며, 티베트인이 지은 최초의 람림 문헌으로 분류되기도 한다.[31] 2015년 사캬의 법왕인 제41대 사캬 티진이 방한하여 관련 법문을 설하였다. 네 가지 집착에서 벗어나라 (상) 네 가지 집착에서 벗어나라 (하)[32] 해당 번역서 제목은 《보리도차제약론》이지만,대개 《보리도차제중론》이란 제목으로 번역되는 경우가 많다.[33] 파봉카 린뽀체의 《손 안의 해탈(ལམ་རིམ་རྣམ་གྲོལ་ལག་བཅངས།)》에 따르면 석가모니 부처 당시에는 ‘룽균(구전口傳, ལུང་རྒྱུན་)’만 있었으나 후대 사람들이 구전만으로는 이해할 수가 없어서 ‘티균(광해廣解, ཁྲིད་རྒྱུན་)’이 나타났고, 티균은 다시 ‘쎼티(བཤད་ཁྲིད་)’, ‘마르티(དམར་ཁྲིད་)’, '냠티(ཉམས་ཁྲིད་)’, '뇽티(མྱོང་ཁྲིད་)'로 나뉘어졌다고 한다. 그 중 '마르티'는 의술이 뛰어난 의사가 시체를 해부하여 제자에게 오장육부가 무엇인지 직접 보여주듯 게송과 문장의 핵심을 직접 일러주는 주석 전통을 의미한다.[34] 한국어역은 완역이 아닌 편역인 경우가 많다. 완역된 영역본으로는 《Liberation in the Palm of Your Hand: A Concise Discourse on the Path to Enlightenment》가 있다.
즉 쎌링빠는 10세기 당시 대승불교가 흥성했던 스리위자야(Srivijaya) 왕조의 인물로, 산스크리트어 본명이 다르마키르티(Dharmakīrti)이기 때문에 통상 '수와르나드비파의 다르마키르티(Suvarṇadvīpa Dharmakīrti)'라고 일컬어진다(인명학을 발전시킨 다르마키르티와는 동명이인이다). 수와르나드비파의 다르마키르티는 유식학파였으며 아티샤, 라트나카라샨티(Ratnākaraśānti), 즈냐나슈리미트라(Jñānaśrīmitra), 라트나키르티(Ratnakīrti)같은 주요 후기 대승불교 학자들의 스승이었다. 아티샤에게는 보리심의 법맥인 로종(blo sbyong)을 전수했다고 알려져 있다.[7] 비드야코킬라(Vidyākokila)는 찬드라키르티(Candrakīrti)의 제자이자 아티샤에게 중관 법맥을 전수한 스승으로 알려져 있다. 티베트어로는 '릭빼쿠쥭'이란 이름으로 의역된다.[8] 《람림》을 의지하면 스승에 대한 잘못된 견해나 그 죄를 사유함으로써 자연스럽게 이러한 죄업이 소멸된다. 또한 무상에 대하여 배움으로써 이번 생에 대한 집착이 없어지고, 보리심을 일으키는 것에 대해 생각함으로써 이기심으로 생긴 죄업이 없어지고 무아를 생각함으로써 아집까지도 없애는 등 지은 죄가 저절로 소멸되는 위대함이 갖추어져 있다고 한다.[9] 나란다(Nalanda) 사원의 경우에는 스승의 '말의 청정함', 제자의 '마음의 청정함', 설하는 '법의 청정함'이란 세 가지 방식으로 법을 설한다.[10] 효자와 같은 마음, 금강석과 같은 마음, 대지와 같은 마음, 산과 같은 마음, 종과 같은 마음, 청소부와 같은 마음, 버팀목과 같은 마음, 충견과 같은 마음, 배(船)와 같은 마음[11] '맹구우목(盲龜遇木)'이란 비유에서 알 수 있듯 불교의 업설(業說)에 따르면 인간으로 태어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중생은 무수히 많은 악업을 짓고 선업은 적게 행하여 인간이나 천상에 태어나기 매우 어렵고 지옥, 아귀, 축생 등 삼악도에 떨어지는 것은 쉽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신난득'은 인간으로 태어난 귀한 기회를 놓치지 말고 수행정진하라는 가르침이다.[12] 불교의 세계관인 육도 중에 악업으로 인해 환생하는 지옥, 아귀, 축생을 지칭함[13] 불교적 관점에서 윤회에 속한 어떠한 것도 모두 본질은 고통이지만 하사도에서는 특별히 윤회의 고통 중 삼악취의 고통을 중점적으로 다룬다. 하사도를 수행하여 삼악취가 아닌 인간과 천신으로 태어나도 그것은 일시적인 행복일 뿐 결국 고통으로 귀결되기에 윤회로부터의 영원한 해탈을 추구하게 되는 것은 하사도가 아닌 중사도에서 중점적으로 다루게 된다.[14] 티베트어 칠불통게는 한역(漢譯) 칠불통게와 대체적으로 일치하지만 뉘앙스가 약간 다르다. 또한 한역 칠불통게는 제목 그대로 과거칠불이 공통적으로 설한 게송으로 알려져 있지만, 티베트에는 과거칠불들이 각각 설한 일곱 개의 서로 다른 게송들이 전해지며 그 중 한 게송이 한역 칠불통게 내용에 해당하는 게송이다.[15] 일시적인 행복으로서 지옥, 아귀, 축생 등 삼악도를 벗어나 인간, 천신의 몸을 받음.[16] 궁극적인 행복으로서 '영원한 행복'인 윤회에서 벗어나는 해탈과, '완전한 행복'인 중생구제를 위해 일체종지를 이루는 성불을 의미함.[17] 팔유가(八有暇)는 수행할 수 없는 장애로부터 벗어나 여덟 가지 여유를 갖춘 것을 말한다. (1) 지옥에 태어나지 않은 것. (2) 아귀로 태어나지 않은 것. (3) 축생으로 태어나지 않은 것. (4) 오래 사는 신(장수천, 長壽天)으로 태어나지 않은 것 (5) 부처님의 가르침을 모르는 땅에 태어나지 않은 것. (6) 부처님의 존재를 모르는 시대에 태어나지 않은 것. (7) 감각기관에 장애가 없는 것. (8) 그룻된 견해를 품지 않은 것.[18] 십구족(十具足, 혹은 십원만十圓滿)은 수행하기 위해 갖추어야 할 조건 열 가지를 갖추었음을 말한다. (1) 인간으로 태어난 것. (2) 불법(佛法)이 존재하는 땅에 태어난 것. (3) 가르침을 이해하는 능력이 있는 것. (4) 오역죄(五逆罪)를 범하지 않는 것. (5) 신심을 갖춘 것. (6)부처님께서 세간에 존재하는 것. (7) 정법(正法)이 설해지고 있는 것. (8) 그 가르침이 현재까지 전해지고 있는 것. (9) 그 가르침을 받는 것. (10) 후원자, 시주자 등 주변의 도움을 받는 것. 앞의 다섯 가지 내부적인 조건을 자원만(自圓滿), 뒤의 다섯 가지 외부적인 조건을 타원만(他圓滿)이라고 한다.[19] 사섭법(四攝法)은 다른 중생을 섭수(攝受)하는 네 가지 법을 말한다. 섭수란 자비로 거두어 보살피고 그 마음을 성숙시킴을 뜻한다. 네 가지 법이란 보시(布施), 애어(愛語), 이행(利行), 동사(同事)를 일컫는다. 보시섭은 육바라밀의 보시바라밀과 같은 의미이다. 애어섭은 바라밀을 대중에게 가르치는 것이다. 이행섭은 대중들이 바라밀과 같은 가르침을 받아들이고 실천하게 돕는 것이다. 동사섭은 본인 또한 대중들과 함께 바라밀을 실천하는 것이다.[20] 고성제(苦聖諦), 특히 행고(行苦)를 절감하고 진정으로 윤회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마음. 통상적인 염세주의와는 구분해야 한다. 불교에서의 출리심은 윤회의 본질이 고통이라는 사실을 깊게 사유하여 그 결과 세속적 욕망 대신 윤회로부터의 해탈을 추구하게 되는 마음이다.[21] 견도 이상의 성자보살은 업과 번뇌를 아직 완전히 제거하지는 못했지만, 그것을 대치(對治)할 수 있는 힘이 있기 때문에 업과 번뇌의 타력에 의한 생을 받지 않는 것이 가능하다.[22] '자성으로 현현한다'는 말은 일체법이 각각의 차별상으로 인식된다는 뜻이다.[23] 《법화경》, 《승만경》, 《현관장엄론》 등 대승경론에서는 반열반 이후에도 아라한의 심상속(心相續)은 계속 이어지며, 의생신(意生身)을 갖고, 색구경천 정토에 머물며, 공성삼매 속에 있고 적절한 때 부처가 아라한을 삼매에서 벗어나게 하여 보살도를 행하도록 인도한다고 설명한다.[24] 샤마타를 성취하는 과정인 구종심주(sems gnas pa’i thabs dgu, 九種心住)를 코끼리 길들이기에 비유한 티베트의 전통 회화 양식이다.[25] 산스크리트어이다. 팔리어로는 사마타(samatha), 위빠사나(vipassana)라고 한다.[26] 《중론》의 주석서[27] 《입중론》의 주석서[28] 유식학파와 중관학파의 관점에서 각각 교상판석(敎相判釋)한 논서[29] 생기차제를 무시하고 원만차제만을 수습해서는 안된다는 점을 강조하는 내용이다.[30] 《해탈장엄론》은 밀라레빠의 수제자이자 닥뽀 까규 전승의 창시자인 감뽀빠의 저작이다. 아티샤의 까담 전승과 까규의 마하무드라 전승을 결합시킨 역작으로 평가되며, 티베트인이 지은 최초의 람림 문헌으로 분류되기도 한다.[31] 2015년 사캬의 법왕인 제41대 사캬 티진이 방한하여 관련 법문을 설하였다. 네 가지 집착에서 벗어나라 (상) 네 가지 집착에서 벗어나라 (하)[32] 해당 번역서 제목은 《보리도차제약론》이지만,대개 《보리도차제중론》이란 제목으로 번역되는 경우가 많다.[33] 파봉카 린뽀체의 《손 안의 해탈(ལམ་རིམ་རྣམ་གྲོལ་ལག་བཅངས།)》에 따르면 석가모니 부처 당시에는 ‘룽균(구전口傳, ལུང་རྒྱུན་)’만 있었으나 후대 사람들이 구전만으로는 이해할 수가 없어서 ‘티균(광해廣解, ཁྲིད་རྒྱུན་)’이 나타났고, 티균은 다시 ‘쎼티(བཤད་ཁྲིད་)’, ‘마르티(དམར་ཁྲིད་)’, '냠티(ཉམས་ཁྲིད་)’, '뇽티(མྱོང་ཁྲིད་)'로 나뉘어졌다고 한다. 그 중 '마르티'는 의술이 뛰어난 의사가 시체를 해부하여 제자에게 오장육부가 무엇인지 직접 보여주듯 게송과 문장의 핵심을 직접 일러주는 주석 전통을 의미한다.[34] 한국어역은 완역이 아닌 편역인 경우가 많다. 완역된 영역본으로는 《Liberation in the Palm of Your Hand: A Concise Discourse on the Path to Enlightenment》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