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아파트 붕괴사고 | ||
<colbgcolor=#bc002d> 발생일 | 2014년 5월 13일 | |
발생 위치 | 평양시 평천구역 안산1동 | |
유형 | 붕괴 | |
원인 | 부실공사 | |
인명피해 | <colbgcolor=#bc002d> 사망 | 약 300명 (추정치) |
실종 | 불명 | |
부상 | ||
구조 | ||
재산 피해 | ||
동원현황 | 인원 | |
장비 |
[clearfix]
1. 개요
2014년 5월 13일 화요일 오후 4시 북한 평양시 평천구역 안산1동(대한민국 이북 5도 기준 평안남도 평양시 평천동 일원)에 위치한 23층 아파트 은정아파트가 무너진 사건. 와우 시민아파트 붕괴사고의 북한판이라고 할 수 있고 북한 출신 주성하 동아일보 기자는 광주 화정 아이파크 붕괴 사고와 매우 유사한 구석이 있다고도 평가했다.2. 전개
붕괴 닷새 전 사고 아파트의 모습. 건물 전체가 휘었음을 육안으로 볼 수 있다. 출처[1] |
붕괴된 은정아파트 자리에는 원래 7층짜리 소규모 아파트 3개동이 나란히 있었지만 투자자들은 그 중 가운데 아파트를 철거한 후 불과 1년 만에 아파트를 준공했고 다른 재건축 아파트와 마찬가지로 건물 내부 미장이 끝나자마자 입주가 시작되었다고 한다.[출처]
붕괴 당시 아파트 거주자들은 대부분 집을 배정 받은 철거민과 공사에 참여한 일부 간부들이었고[3] 아파트 후속 공사를 하느라 남아 있던 건설 부대 군인과 개별 가정에 의뢰를 받아 인테리어를 하던 건설 인부도 많이 죽었다고 한다.[출처] 이 사고로 300명 이상이 사망했으며 사고 발생 직후 인민보안성과 인민무력부가 동원되어 단 이틀 만에 사고 현장을 정리했다. 사고 발생하고 5일이 지나 2014년 5월 18일 조선중앙통신은 "살림집건설장에서 발생한 사고와 관련하여 책임일군들 유가족들에게 심심한 위로의 뜻을 표하고 수도시민들에게 사과"라는 기사를 게재하여 이례적으로 사건 발생을 알렸다![5] 당연히 사상자는 공개되지 않았다.
후속 조사에 따르면 당시 92세대가 입주해 있었는데, 북한에서는 시공사가 인테리어까지는 해주지 않기 때문에 입주 가정의 의뢰로 인테리어 중이던 인부들과 휴가를 내고 인테리어 공사 중이던 사람 등 대략 300여 명이 사망했다.[출처] 보도에 의하면 "주민들이 쓰고 살게 될 살림집 시공을 되는 대로 하고 그에 대한 감독 통제를 바로 하지 않은 일군들의 무책임한 처사"로 인하여 사고가 발생했으며 북한의 주장에 따르면 즉시 국가적인 비상대책기구를 발동하여 구호활동에 나섰다고 하는데, 수도에서 일어난 대형 참사에 손 놓고 있을 리는 없었으므로 구조의 효율성은 차치해도 즉각적으로 움직였음은 사실일 것이다.
5월 17일, 인민보안상 최부일[7], 평양시 책임비서 김수길, 선우형철 조선인민내무군 장령[8], 차희림 평양시인민위원회 위원장, 리영식 평천구역당위원회 책임비서가 공개적으로 주민과 유가족들에게 사죄를 하는 등 북한 정권 차원에서 꽤 이례적인 조치들이 취해졌는데 이곳은 다른 곳도 아니고 백두혈통을 오래 전부터 지지해 온 기본 군중이 모여 사는 평양이기 때문이다.[9] 심지어 그 중에서 좀 사는 지역에서 발생한 사고인 데다 알음알음 다 퍼진 만큼 억지로 입막음해 봤자 반발만 거세질 테니 차라리 빠른 사죄로 평양 민심을 다독이려는 의도로 보인다.[10]
다행인지 불행인지 아파트 시공 책임자는 아직 미분양된 집에 분양사무실을 차려놓았다가 변을 당했다.[출처] 도쿄신문의 보도에 의하면 아파트 붕괴 사고의 책임으로 공사를 총지휘한 인민군 7총국장은 직책에서 해임되고 정치범수용소로 직행했으며 설계와 시공 담당 기술자 4명은 총살당했다. 사망자가 500명 이상이라는 소문이 파다했다. #
3. 원인
더 어이없는 것은 아파트는 애초에 미완공이었지만 분양받은 입주민들이 인테리어를 위해 미리 들어가 살았다고 하며 상단에 있는 붕괴 5일 전 사진만 봐도 붕괴 직전에 찍은 사진처럼 보일 정도로 건물의 상태가 매우 부실하단 것을 알 수 있는데[17] 정상적인 상황이었으면 이 시점 한참 전에 모든 주민들이 대피하도록 해야 했을 것이다.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아파트가 수직으로 붕괴되었기에 붕괴된 아파트로부터 10m 떨어진 곳에 있던 7층 아파트 2개 동은 유리창이 파손되고 베란다가 손상되기는 했지만 그렇게까지 피해는 크지 않았다는 것이다.[출처]
4. 여파
5월 17일의 사과 모임에서 평양시당 책임비서 김수길은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이번 사고에 대하여 보고 받으시고 너무도 가슴이 아프시여 밤을 지새우시며 당과 국가, 군대의 책임일군들이 만사를 제쳐놓고 사고 현장에 나가 구조 전투를 지휘하도록 하시였을 뿐 아니라 피해를 하루 빨리 가시도록 구체적인 가르치심을 주시였다"면서 김정은이 만사 제쳐두고 이 사건을 처리했다고 주장했다. 사건 발생 이틀 후인 5월 15일 김정은이 간부들을 대동하고 만경봉팀과 소백수팀 사이의 남자 축구 경기를 관람했기 때문에 구라라는 주장이 있으나 그냥 기사를 대충 읽은 오독이며 김수길의 발언은 김정은이 그냥 마음이 아파서 잠을 못 잔 게 아니라 밤을 새워서 관련한 조치를 취해주었다는 것이고 이런 축구 관람 행사 역시 중요한 정치 행사이기 때문에 김정은이 이걸 관람했으니 자기 알 바 아니었다는 주장은 억측에 불과하다.사고 이후 '10월 10일 노동당 창건 기념일까지 무조건 본래 모습으로, 초강도 세기로 다시 지으라'는 김정은의 지시에 따라서 댐이나 교량공사에 사용되는 300마르카 이상의 특수 시멘트를 표준보다 많이 사용하여 붕괴로부터 단 넉 달 만에 기존 터에 기존 아파트와 똑같은 모습으로 복원시켜서 유족들에게 '원수님'의 '배려'이자 '선물'이라고 줬다. 아파트 이름 또한 김정은의 선물임을 기념하여 은정 아파트로 명명되었다. 입주가 완료된 상황이 아닌 데다 평일 낮에 벌어져서 일가족이 몰살당한 집은 거의 없었다. 그래서 대부분 피해가정이 한두 명이라도 살아 남았기 때문에 사건의 유족들이 거의 집을 받았으나 대부분이 집을 팔고 떠났다. 그도 그럴 것이, 가족이 죽은 장소에 가족이 죽은 건물과 완전히 똑같은 장소에서 살라는 건데 유족들 입장에서는 고문이 따로 없었을 것이다. 북한에서 최고존엄이 준 선물을 팔아버린다는 것은 상상도 못 할 일이지만 사정이 사정인지라 당에서도 묵인해 줬다는 소문이 있다. 그런데 사람이 300명이나 죽었는데 의외로 인기가 좋다는데 김정은의 직접 지시로 지었으니 어지간히 튼튼하게 했을 것이라는 생각과 '이미 액땜이 끝난 집'이라는 생각 때문이라고 한다.
일부에서는 사고 아파트가 최고위 간부들이 사는 곳이 아니라 일반 노동자들이 살던 곳이었을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당 간부들은 최신 건축 아파트는 날림 공사라는 걸 사전에 아주 잘 알아서 예전에 경제 사정이 좋을 때 지었던 20년 이상 된 아파트를 선호한다는 얘기도 있으나# 반대로 평양의 거주 지역은 대부분 20년 이내의 신축 건물이거나 50년 이상 된 6.25 전쟁 직후에 지어진 노후 건물이기 때문에 고급 아파트는 대부분 2000년대 이후에 건축 붐으로 만들어진 신축 건물이라는 얘기도 있다. 고급 아파트에 입주하기 위해서는 돈만 있어서는 안 되고 자금출처 조사를 회피할 수 있을 정도의 권력이나 뒷배가 없으면 힘들다.
박근혜 정부는 사고 발생 일주일 후인 2014년 5월 20일 대한적십자사 명의로 북한에 조의전통문을 보냈다.
지난 5월 13일 평안남도 평양시에서 발생한 사고로 인해 많은 인명피해가 발생한 것을 매우 안타깝게 생각하며 깊은 위로의 뜻을 전한다.
[1] 참고로 붕괴 한 달 전인 4월 7일 찍힌 사진은 적어도 건물의 기본 형태는 갖춘 모양이었다. 불과 한 달 만에 이 꼴에 이르렀다.[출처] <평양 자본주의 백과전서>, 주성하 작.[3] 나머지는 판매를 위해 내놓았지만 다 팔리지 않아 주인 없는 집도 일부 있었다고 한다.[출처] [5] 북한의 언론들은 내외적으로 자신들의 나라에서 일어나는 치부들을 알리는 것을 매우 꺼리기에 다른 나라라면 나라가 뒤집힐 사건조차 전혀 보도하지 않는다. 살인 등 강력범죄, 대규모 교통사고가 발생해도 이를 전혀 다루지 않는다. 이렇게 북한에서 은폐된 대표적인 사건사고가 박명식 장기적출 연쇄 살인사건과 개고청년역 열차 전복 사고, 단천시 여객열차 전복 사고이다. 룡천역 열차 폭발사고처럼 도저히 숨길 수 없을 정도로 아주 극단적인 사건사고만 언론에 보도한다.[출처] [7] 이 죄는 무엇으로도 보상할 수 없으며 용서받을 수 없다고 사과했다.[8] 건물 건설 담당자로서 평양 시민에게 머리 숙여 사과한다고 사과했다.[9] 김정은의 조부 김일성은 해방 초기에는 조만식 등에 밀렸으나 소련 등의 도움으로 북쪽에서 가장 큰 도시인 이 일대를 장악하여 세력을 키워 왔고 세습 후에도 지지 계층을 이주시키고 반대 계층은 추방시켜 이곳을 자신의 권력 보호의 발판으로 삼아 다른 지역과 달리 평양의 민심만큼은 예민하게 신경 쓴다. 특히 평천구역은 평양에서는 서울의 강남과 같은 부촌이자 상류층들의 거주 구역이기도 하다.[10] 저렇게 북한 고위층이 평양 주민들에게나마 공개적으로 사과한 경우는 이 사건을 제외하면 2009년 북한의 화폐개혁이 전부다. 그만큼 이 사건에 대한 분노가 컸다는 말.[출처] [12] 북한도 철근을 넣는 것이 원칙이지만 사실은 안에 철근을 세우지 않고 그냥 벽을 블록벽 형식으로 건물을 짓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언제 무너져도 이상할 게 없다. 오직 단층 건물로밖에 못 써먹는 블록벽 형식 건축공법으로 10층이 넘어가는 빌딩형 건물을 지으니 당연한 일이다. 참고로 미래과학자거리, 려명거리신도시를 위시한 평양의 신시가지들은 최고 지도자의 지시로 만든 곳이기에 어쨌든 철근은 넣고 짓는다.[13] 북한에서 사용되는 세기 단위. '스탬프, 표, 기호, 부호, 등급, 계급, 성질, 품질' 등을 의미하는 러시아어 단어 마르카(марка)에서 따 왔다. MPa(메가파스칼)의 북한식 용어라고 보면 된다.[14] 북한의 건설부대, 돌격대원들은 대개 무급으로 인한다.[15] 이는 다시 말해 아파트에 철근 하나 들어가지 않았다는 뜻이다.[출처] [17] 당장 육안으로만 봐도 건물이 문자 그대로 부풀어 있다.[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