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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의학전문학교 본관 |
1. 개요
평양의학전문학교일람 참조
平壤醫學專門學校 (평양의학전문학교, 줄여서 평양의전)
1933년 조선총독부에 의해 의학전문학교로 인가된 구제전문학교이다. 당시 평남도립 평양의원에 부설되어있던 도립의학강습소를 모체로 창설되었다.
해방 이후 평양의과대학으로 개편되었다가, 김일성종합대학에 흡수되었다가 2019년 다시 평양의학대학으로 독립하였다.
2. 역사
2.1. 태동
1910년 한일합방 후 평양동인의원이 공립 평양자혜의원으로 개편되었다. 1923년 4월 평양자혜의원 내부에 의학강습소로 평남도립 의학강습소가 설치되었고, 1925년 4월 1일 평양자혜의원이 평남도립 평양의원으로 개편되며 의학강습소도 평남도립 평양의원 부속 의학강습소가 되었다.1926년 경성제국대학 의학부가 개강함에 따라 실습 병원이 사라진 경성의학전문학교가 이전한다는 소문이 돌아 각 도에서 유치전에 나섰고, 조선총독부 정무총감 유아사 구라헤이는 경성과 평양의 의학전문학교로 충분하다는 견해를 피력하여 평양의전 설립이 가시화 된다.
1929년 7월 총독부의 인가를 득한 평남도립 평양의학강습소는 4년제 의학전문학교에 준하는 의학교가 되었고, 조선내에 한정해 통용되는 의사 자격을 졸업생들에게 부여하기 시작했다.
2.2. 정립
1933년 3월 공립학교 관제 개정에 따라 조선총독부는 평안남도 도립 평양의학전문학교를 인가해 평양의학강습소를 의학전문학교로 승격시켰다.[1]교지는 풍경궁 부지 옆인 남정(南町)에 위치했으며, 1937년 본관 건물이 준공되었다. 1939년 당시의 통계에 의하면 교수는 28명, 학생은 365명으로 집계되고 있다. 1945년 광복 이전까지 14회 졸업생까지 배출했다.
2.3. 해방
1945년 8월 소련군정 당국에 접수된 평양의학전문학교에 평안남도 인민위원회는 1945년 10월에 정두현을 교장으로 초빙했으며, 1946년에는 정두현 교장 명의로 졸업장이 제15회 졸업생들에게 수여된다.이후 평양의전은 평양의과대학이 되었고, 그 학장인 정두현은 9명으로 구성된 종합대학창립준비위원회의 위원이 되어 1946년 10월 평양에 소재한 2개의 구제전문학교인 평양의학전문학교와 평양공업전문학교(舊대동공업전문학교)[2]를 모체로 창설된 김일성종합대학의 설립 작업을 주도한 후 초대 의학부장이 되었고, 평양의과대학은 김일성대 의학부가 되었다. 1948년에는 김일성종합대학 공학부가 평양공업대학(현 김책공대), 농학부가 사리원농업대학, 의학부가 평양의학대학으로 분리되었다. 2010년 다시 김일성대에 흡수되었다가 2019년 다시 평양의학대학으로 독립한 상태다. 사진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