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10-29 10:41:14

포드 프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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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 ~ 현재
초대
케네소 랜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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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1944
2대
해피 챈들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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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1951
3대
포드 프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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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1~1965
4대
윌리엄 에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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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19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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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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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웨베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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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1989
7대
바트 지아마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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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 빈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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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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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드 셀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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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2015
10대
롭 맨프레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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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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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1840><colcolor=#fff> 파일:MLB 로고.svg 제3대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커미셔너
포드 크리스토퍼 프릭
Ford Christopher Frick
파일:Ford_Frick_at_1937_All-Star_Game_(cropped_and_adjusted).jpg
출생 1894년 12월 19일
미국 인디애나 와와카
사망 1978년 4월 8일 (향년 83세)
미국 뉴욕 브롱스빌
국적
[[미국|]][[틀:국기|]][[틀:국기|]]
학력 드포 대학교
경력 제11대 내셔널 리그 회장 (1934~1951)
제3대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커미셔너 (1951~1965)

1. 개요2. 생애
2.1. 내셔널 리그 회장 시절2.2.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커미셔너 시절
2.2.1. 로저 매리스의 61홈런 기록을 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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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의 스포츠 언론인 겸 체육 행정가로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의 3대 커미셔너를 지냈다.

이전에는 MLB를 구성하는 일원인 내셔널 리그 회장을 맡으면서 미국 야구 명예의 전당에 야구 박물관을 추가 건립하고, 메이저 리그 커시셔너로는 리그 확장을 그 규모를 키우는 공적을 세웠으나 후술할 로저 매리스 61홈런 기록 때의 대처로 인해 많은 비판을 받은 인물이다.

2. 생애

2.1. 내셔널 리그 회장 시절

1937년에는 미국 공산당의 기관지 역할을 했던 데일리 워커(Daily Worker)와의 인터뷰에서 야구에 인종을 이유로 선수를 차별하는 규칙은 없다고 밝히고, 오직 그 사람이 능력이 있고 좋은 습관이 있는지, 인격이 강한지만이 중요하다고 밝히는 등 이전 지도부들과 달리 흑인 등 타인종에 대해서도 상당히 열린 자세를 보였다.

한편 같은 해 평소 거친 화법과 모두까기로 유명한 디지 딘과 갈등했는데, 딘은 아랑곳하지 않고 프릭과 내셔널 리그를 계속해서 공개 비판했다. 이에 대해 화가 날대로 난 프릭은 딘에게 공식 사과를 하지 않으면 징계하겠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딘은 아랑곳하지 않고 오히려 프릭에게 사과하라며 올스타전 보이콧을 선언했다. 결국 딘이 속한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구단 차원에서 나서 대신 사과하고 딘은 올스타전에 나섰는데, 이 올스타전에서 얼 애버릴의 라인드라이브 타구를 맞고 치명적인 부상을 당하면서 선수 커리어가 크게 꺾였다. 전성기 시절의 딘을 생각하면 차라리 프릭과의 갈등이 계속되어 올스타전에 나서지 않았다면 하는 생각이 드는 일화.

2.2.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커미셔너 시절

2.2.1. 로저 매리스의 61홈런 기록을 두고

1961년 시즌에 뉴욕 양키스에서 미키 맨틀로저 매리스가 함께 엄청난 페이스로 홈런을 연일 때리면서 베이브 루스의 역사적인 단일 시즌 60홈런 기록에 도전하자 프릭 역시 리그 커미셔너로서 가만있을 수는 없는 상황이 되었다.

특히 매리스가 8월말 50홈런 고지를 돌파하면서 60홈런을 목전에 두자 프릭 커미셔너가 직접 나서 기자회견을 가졌는데, 매리스를 격려하기는커녕 "루스가 기록을 세웠던 154경기 기준으로 60홈런을 넘겨야 유효 기록으로 인정하겠다."고 선언했다. 당시 LA 에인절스텍사스 레인저스가 새롭게 가맹하면서 리그 경기 수가 현재와 같은 162경기로 늘었는데 이를 주도했던 커미셔너가 이걸 핑계 삼아 매리스의 기록을 깎아내리려고 공식적으로 발언한 셈이 되었다.

물론 프릭만의 생각은 아니었고, 당대에 루스의 기록을 신성화하는 경향이 강했던데다가 양키스의 프랜차이즈 스타인 맨틀이 아니라 이적생인 로저스가 최종적으로 기록에 도전하는 상황이 되다보니 정작 뉴욕 기자들조차 부정적인 의사를 표시하고 있었긴 했다. 하지만 프릭은 단순히 팬이나 기자가 아니라 리그 커미셔너였고, 공정한 기준을 유지해야할 프릭이 앞장서서 편파적인 주장을 하는건 결코 합리화될 수 없는 일이었다.

결국 이런 부담 때문인지 로저스의 홈런 생산 개수가 감소하면서 프릭이 세운 154경기 기준으로는 59홈런에 그쳤고, 157경기째에서 60호, 시즌 최종전인 162경기에서 61호를 때리면서 베이스 루스의 기록을 경신했다.

공은 다시 포드 프릭 커미셔너한테 돌아왔는데, 프릭은 기어이 매리스의 기록에 *(별)표를 남게 하는 추태를 보였다. 물론 프릭이 공식적으로 매리스의 기록을 공인 기록에서 빼라거나하는 식으로 지시한 사실은 없지만, 시즌 레코드북 등에 매리스의 홈런 기록에 "특별한 표시"를 남기라고 간접적으로 여기저기 요구한 것이 뒤에 밝혀졌다. 이걸 뉴욕 포스트 등 언론들이 받아들여 별표를 제안했고, 이를 묵인했다는 소리.#

이후에도 리그 차원에서는 법적으로 그런 지시를 한적이 없다고 부정한 뒤 매리스의 61호 홈런을 인정하냐는 질문에 대해, 답변을 거부하거나 루스의 60호와 매리스의 61호 모두 기록이다 같이 말꼬리를 돌리면서 빠져나가려고 했다. 다만 프릭의 의도와 달리 언론과 대중들의 매리스의 홈런 기록 경신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이 금방 사그라들면서 몇년이 지나자 매리스의 61호 홈런만을 공식 단일 시즌 최고 홈런으로 인정하고, 앞서 프릭 커미셔너와 언론들의 추태를 일종의 흑역사화하면서 없는 일처럼 취급하곤 했다.

결국 1994년 페이 빈센트 커미셔너가 공식적으로 매리스의 기록에서 별표를 '제거' 한다고 선언한 뒤에야 완전히 논란이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