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5-03-22 23:25:06

포수경

1. 개요2. 생애3. 논란4. 기타

1. 개요

蒲壽庚, ?~?
송말원초 시기의 아랍계 부호이다. 일명은 포수경(蒲受畊)이고, 호는 해운(海雲)이다.

2. 생애

생년 미상으로, 선조는 아라비아인 또는 페르시아인이라 한다. 6대조 포맹종(蒲孟宗)이 사천(四川)에서 광주(廣州)로 이사하여, 송 신종(神宗)의 상서좌승(尙書左丞)이 된 이후에 명문이 되었다. 아버지 포인빈(蒲仁賓) 때 천주(泉州)로 이사했고, 순우(淳祐)[1] 10년(1250년) 무렵 형 포수성(蒲壽成)과 함께 해적 토벌에 공을 세웠다.

함순[2] 10년(1274년), 해구가 천주를 습격했고, 관병은 이를 막아낼 힘이 없었다. 이에 포수경과 그의 형인 포수성은 자금을 내서 민단을 조직하여 해구를 격퇴한다. 그 공으로 포수경은 복건안무사(福建按撫使) 겸 연해도치제사(沿海都置制使)의 관직을 받아, 복건 지역의 병사, 민정의 요직을 맡는다.

1276년 남송 조정은 포수경을 복건,광초무사 총해박 겸 주시박(主市舶)에 임명하였고 동년 2월 원나라의 군대가 임안[3]을 함락시키고 사 태후가 각지에 항복하라는 조서를 내리자, 포수경도 그에 따라 투항하였다. 원나라는 포수경이 해상 업무에 익숙하고, 해상 선박을 많이 보유하고 있다는 것을 듣는다. 이에 총사령관 백안(伯顔)은 불백(不伯), 주청(周靑)을 보내 포수경, 포수성 형제를 초무하였고 포수경은 이에 투항한다.

포수경은 원에 투항한 후, 세조에게 중용된다.

지원14년(1277), 소용대장군(昭勇大將軍), 민광도제거복건광동시박사(閩廣都提擧福建廣東市舶事), 진국상장군(鎭國上將軍), 참지정사(參知政事)로 임명되었으며 강서행성(江西行省)을 책임지게 되었다.

1278년 3년 복건행성참지정사로 임명되었고 행중서성사어복주(行中書省事於福州), 진무빈해제군(鎭撫瀕海諸郡)으로 승진한다. 동년 팔월, 복건행성중서좌승, 진무빈해제군으로 임명된다.

1279년 애산 전투에 참전하여 남송 잔당을 없애는 데 기여한다.

1284년 8월에는 강회 등 외행성의 중서좌승 겸 천주분성 평장정사로 임명된다.

이후 그의 기록은 알 수 없다.

3. 논란

20세기의 연구자들은 모두 포수경이 아랍인이 한화된 후예라고 간주하였다.
포수경은 서역인이다.
고조우의 <독사방여기요((讀史方輿紀要)>

4. 기타

  • 송사원사에는 별도의 열전이 없고, 신원사에 그 열전이 있지만 몇 줄로 그의 행적이 소개되어 있다.
  • 원말명초 시기 포씨 일족은 멸족되었고 주원장은 명나라를 건국한 뒤 포씨 일족들을 탄압하였다. 주원장은 칙령을 반포하여, 천주의 포씨 일가 중 남은 자들은 모조리 군대에 가게 하여 영원히 군노(軍奴)로 삼아 이들을 군적에서 나오지 못하게 했고, 영원히 공부하여 관직에 나오지 못하게 한다. 포씨 일족의 여성들은 모두 교방사(敎坊司)에 넣어 대대로 창기(娼妓)나 노비가 되게 했다.
태조는 천하를 얻고, 송 말의 포수경, 황만석(黃萬石)의 자손을 치죄하여 관리가 될 수 없게 했다.
일지록
태조는 포씨성의 사람은 글공부를 해서 관직에 나갈 수 없게 했다.
민서
우리의 태조 황제는 천주 포수경, 공승부(孔勝夫)의 자손은 관직에 나가지 못하게 했다. 이는 그의 선조들이 원군을 도와 송을 멸망시킨 죄 때문이다.
송원통감


[1] 송 이종의 연호이다.[2] 송 도종의 연호이다.[3] 오늘날 절강성 항주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