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08 14:41:02

한국독립당(1963년)

대한민국의 민주당계·보수정당
(창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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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독립당
공식 명칭한국독립당
(韓國獨立黨)
창당일1963년 10월 30일
해산일1970년 1월 25일
(신민당)에 흡수 합당
당수 김학규
당 색
파랑색 (#113DA6)

1. 개요2. 역사3. 관련 문서4. 둘러보기

1. 개요

과거 한국독립당에 소속되어 있었던 대한민국 초기의 군인, 정치인이었던 김홍일제6대 국회의원 선거 직전에 재건한 당이다.

2. 역사

1963년 10월 30일에 창당되었다. 한국독립당의 역사를 감안한 작명이었으나, 세력이 미미한데다 누가 봐도 이름을 팔아 선거용으로 내세운 당이 자명했으므로 단 한 명의 당선자도 내지 못하다가, 1965년 보궐선거에서야 간신히 한 명의 국회의원을 배출하여 미약하나마 원내정당이 되었는데, 그 국회의원이 바로 김두한이었다.

그러나 김두한은 바로 한국독립당 내란음모 사건에 연루되어 감옥(서대문형무소)에서 구속재판을 받다가 다른 야당의 구명운동[1]으로 석방되어 불구속 재판을 받다가 무죄를 선고받아 누명을 벗었지만, 이미 감옥에서 여당과 정부에 큰 앙심을 품은 그는 무죄 선고를 받은지 2일만에 그보다 더 유명한 사건인 국회 오물 투척 사건을 일으켜[2] 파란만장한 정치 인생을 자기 손으로 마무리 해 버렸다.

결국 이후의 선거에서는 당선자를 못 내고 군소 정당으로 연명하다가 1970년 1월 25일 신민당에 흡수 합당되었다.

3. 관련 문서

4.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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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국회의결로 불구속 재판으로 바뀌게 되었다.[2] 무죄를 선고받고 2일만에 진짜 죄를 지은 셈이었다. 물론 국회에 똥물 뿌렸다고(...) 구속까지 해야 되나 싶지만, 당시 김두한은 오물을 뿌리기 전 박정희 정권의 문제점을 비난하는 연설을 했기에, 후에 박정희가 그의 연설 속기록을 읽고 크게 분노했다고 한다. 때문인지 김두한은 의원직을 사퇴한 뒤 다시 구속되어 수사받았는데, 그 과정에서 중정에 끌려가 심각한 고문을 당했다고 알려져있다. 이후 집행유예로 풀려나긴 해서 감옥에 오래 살지는 않았음에도 고문 때문에 후유증이 생겨, 한반도 역대급 싸움꾼으로 이름을 날리던 그가 사건 6년만에 50대의 젊은 나이로 사망하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