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작중 행적
757화에서 처음 등장하였다. 그의 글을 보고 법가로서의 능력에 감탄한 영정이 그를 맞이하기 위해 이신과 등을 외교 사절로 한나라에 보내 만나게 된다. 말을 더듬는 버릇이 있으며 병사로 분장하고 이신에게 접근해 대화를 시도한다. 하지만, 대화가 안된다고 그냥 가버리고 나중에 관복 차림을 입고 정체를 밝힌 채로 한왕 앞에 대령한다.한비자가 그 자리에서 진나라가 빌어먹을 나라라고 말하자 외교사절로 같이 온 개억이 진나라를 지금 빌어먹을 나라라고 욕했냐고 따진다. 그러자, 그렇다고 인정하면서 진나라는 그 이하다. 똥 이하 오물 이하 나라라고 덧붙여 욕한다. 개억이 '지금 한나라가 진나라에게 전쟁하자고 하는 거냐'고 분통하며 따지지만 그런 말로 흥분하지 말라며 진나라는 중화통일 타령하면서 결국 전쟁을 벌이려고 한다고 깐다. 이신은 정이 그럴 놈이 아니라고 하지만 한나라 대신들은 당연히 영정이 누군지 몰라 아리송한 반응을 보여 진왕이라고 수정하며 반론하지만 한비자는 진왕에 대하여 부정적으로 반응한다. 법이라는 건 기본적으로 사람을 믿지 못하기에 생긴, '성악설'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인데 지금 진왕은 '성선설'을 믿는 정이 두터운 자로 보이기 때문에 언젠가는 둘 사이에서 반드시 파탄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이후 이신과 사람의 본성에 대한 성선설과 성악설에 대한 문답을 계속하다 이신으로부터 '사람의 본질은 불'이라는 이야기와 법을 통해 사람을 바꿀 수 있다고 한비자야말로 '성선설'이 아니냐고 이신으로부터 이야기를 듣는다. 자신을 성선설로 취급하는 이신을에 어이 없어하면서도 그 대답이 마음에 들었는지 이신의 친구인 진왕에게도 흥미가 생겼다고 말하며 진으로 건너 가게 된다. 진으로 초빙되어 진왕과 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나 한비자는 근본을 잘못 보고 있으면 반드시 썩게 된다며 '성악설'을 주장하고 진왕은 사람을 믿는 걸 본질로 하는 것을 바꿀 생각 없다는 태도를 견지하여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한다. 이후 이야기는 진과 조, 한이 얽힌 간자와 첩보전의 이야기로 흘러가게 된다.
아무튼, 이렇게 하여 진나라로 오지만, 이중간자로 활동하는 요가에 대하여 알게되고 이를 이사에게 말한다. 하지만, 요가에 의하여 허무하게 독살을 당하고 만다. 이사는 요가가 이중간자로 환기를 죽게 한 걸 알고도 아무런 정보도 보내지 않았다는 한비의 말을 생각하며 분노해 요가를 끔살로 처벌할 생각으로 그와 말을 나누지만, 요가는 자신에 대하여 눈치빠르게 알아차린 한비를 제거한 것뿐이고 자신은 조나라 정계로 깊숙히 뿌리내며 조나라를 흔드는 중이라 아직 죽으면 안된다, 진나라의 대륙통일을 위해선 내가 필요하다고 하여 이사는 한비가 생전에 경고한 요가라는 인물에 대한 무서움을 느끼며 그를 용서한다.
2. 해석
작품 외적인 관점에서 한비와 이신의 성선, 성악 문답을 보면 묘하게 작가가 본작의 영정 캐릭터에 대한 비판을 의식한 것처럼 보인다. 법과 형벌로서 가혹하게 백성들을 다스린 인간불신자에 가까운 역사 속의 진시황을, '사람은 빛이다'라는 좋든 나쁘든 유명한 대사로 집약될 수 있을 정도로 인간 예찬론자에 이상주의자에 가까운 영정이란 캐릭터로 미화하고 있다는 것은 예전부터 이 만화에 대해 꾸준히 지적되고 있었던 부분이다. 만화 속 캐릭터 한비자는 어디까지나 역시 같은 만화 세계관의 영정이라는 캐릭터의 어긋난 점이나 모순을 비판하고 있는 것이기는 하지만, 작품 밖의 독자의 눈으로 보면 묘하게 실제 역사 속의 진시황과 만화 킹덤의 영정 사이의 괴리에 대해 떠올리게 된다. 작중에서 한비자는 '성악설'을 영정에게 강변하고 반면 영정은 '사람은 빛이다'를 바꿀 생각은 없다고 딱 잘라서 이야기하는데, '실제 진시황은 이랬다.'고 작품을 비판하는 사람들과 '내 만화 속의 영정 캐릭터는 이런 캐릭터다.'라고 말하는 작가의 입장 표명에 대한 은유로도 보이기도 한다. 작중에서도 영정은 역사와는 달리 성군의 성품을 드러내기도 하고.한비자가 사실은 '성선론자'가 아니냐는 이신의 지적 또한, 실제 역사 상의 한비의 사상이 얼핏 보면 사람을 믿지 않는 것처럼 보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역사의 발전과 진보를 믿는' 측면이 있다고 평가받고 있다는 점을 고려해서 작가가 그려낸 것으로 보인다.
법가는 인간을 법과 술을 통해 제어하거나 더 나아갈 수 있다고 믿는 사상임을 감안하면 작가의 해석 또한 옳다. 대중적인 인식은 진나라의 실패 사례만 피상적으로 보고 엄벌주의일 것이라 여기지만 그렇지 않다. 이 작품의 패턴 상 궁극적으로 주인공 측인 진나라의 편을 들어주는 전개로 갈 수밖에 없지만, 한비자 파트는 작가가 자신의 작품에 대한 비평과 역사 해석에 대한 비판을 의식하여 나름의 킹덤 식 재해석을 그려냈다.
2.1. 아쉬운 점
다만, 부족한 부분이 없다고는 할 수 없는데 상단의 긍정적인 해석도 '당신도 인간을 믿기에 법이라는 수단을 놓지 않은 것 아니냐' 라는 이신의 대사에서 유추해 작품 외적으로 해석한 것이다. 실제로 작중에서 직접 한비자가 말한 대사들을 살펴보면 '진나라는 개똥 이하의 나쁜 나라' 라는 비하. 그리고 이신에게 던진 '인간은 선한가, 악한가','인간의 본질은 무엇인가' 라는 물음이 끝이다. 한비자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를 보여주기 위함이 아니라면 굳이 한비자를 등장시킬 필요가 없다.실제로 법가 사상은 치열한 난세라는 혼란 속에서 국가를 어떻게 경영할 것인지 고찰하고 연구하는 제왕학의 일종이다. 한비자 이전의 유명한 법가론자는 상앙과 신불해가 대표적. 인간의 본성이 호오의 영역인지에 대해서는 아주 기초적인 전제 조건이며, 거기서 더 나아가 고차원적이고 구체적인 통치론을 연구하는 경영학인 것이다. 특히 작중에서도 여불위보다 앞선 명재상으로서 언급된 바가 있는 상앙의 개혁론과 통치 작법에 대해서는 『상군서(商君書)』를 통해 알려져 있는데 그 내용은 어떻게 하면 한 나라를 철저한 전쟁 기계로 만들 수 있을지에 대해 말하고 있다.[1]
그런 가혹하고 냉혹한 법가를 연구하고 재정립하는 학자로서 유명한 인물이 바로 한비자다. 그는 법을 어떻게 운영해서 공평하게 적용할지 구체적인 방법론과 비전이 없는 영정에게 자신의 부족한 점을 깨닫게 해줄 인물이었을 것이다. #1#2 그런데 누구라도 할 수 있는 이야기만 막연하게 늘어놓다가 돌연사했다. 실제로 작중에서 보여준 모습은 그러한 기대에 한참 못 미치는 모자란 모습이 끝이다. 이럴 거면 한비자가 아니라 다른 가상 인물을 갖다 놔도 차이가 없으니 굳이 등장할 이유가 없었다.
또한 작가는 한비자와 이사의 스승인 순자를 법가로 묘사하고 있는데 이는 고증 오류다. 실제로 순자는 오히려 예(禮)와 인(仁)을 통한 왕도 정치를 추구하고 패도에 의한 통치를 멀리 하는 정석적인 유학자에 가까웠다. 물론 현실과는 달리 킹덤 세계관에서는 법가라고 생각하면 이해 못 할 것도 없지만, 그런 언급은 없었으니 오류라고 할 수 있다. 이사와 한비자는 실제로 순자의 제자이기도 했는데, 스승인 순자는 성악설을 주장한 인물로서 대중에게 유명한 인물이다보니 작가는 당연히 순자도 법가일 거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큰 이벤트의 결말은 역사 기록을 언급하며 자신의 스토리를 정당화 하는 데에 사용하고, 실제 역사와 다름을 묘사해야하는 부분에서는 대충 넘기는 등 자기가 필요할 때만 역사 기록을 가져다 쓰는 작가의 무신경한 인식이 다시금 드러나는 대목이다.
물론 이는 어디까지나 법가를 진지하게 접근한다면 그렇다는 가정이며, 킹덤 세계관 속의 한비자는 그럴만한 인물이 아닐 수도 있다. 다만 작가가 조금만 신경 썼으면 퀄리티를 더 잘 챙길 수도 있었을 부분을 알맹이 없는 막연한 소리만 늘어놓다가 소모시킨 것은 아쉬운 부분이다.
3. 여담
이 만화에서는 '문인 이사나 적국이라 할 수 있는 진나라 사람들, 왕후귀족들 등 작중 모든 인물이 전부 이름인 것마냥 '한비자(한비 선생)'라고 불러대는 것은 몰입을 저해하는 심각한 고증 오류가 맞다. '자(子)'란 후대의 사람들이 '선생'과 같은 존칭의 의미로 붙이는 개념이다. 그러니 살아있는 동안에는 당연히 본명인 '한비'로 불리는 것이 고증에 맞다. 이사의 회상을 보면 어린 시절에 한비라고 본명을 제대로 부른 것을 보면, '자' 를 살아있는 동안에도 붙일 수 있다는 독자적 설정 때문일 가능성도 없다. 아무래도 한비자라는 명칭이 공자, 노자처럼 고유명사처럼 굳어진 감이 있어서 작가가 독자에게 친숙한 명칭을 그냥 사용했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사기』의 기록을 작중에 언급하는 역사물로서는 조금만 알아봐도 금방 알 수 있는 부분을 넘긴 작가의 무신경한 부분이 드러난다고 볼 수 있다.대중적인 인식은 '법가=성악설' 이고 작중에서도 한비자가 선악론만 논하는 모습을 통해 이런 인식이 드러난다. 순자는 성악설을 주장했고 한비자가 그의 제자이며 법가 사상가로서 유명하다보니 이런 인식이 만연하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출발점이자 가장 기초적인 전제 조건에 불과하고 실제로는 오두편, 현학편, 고분편을 저술하여 어떻게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 것인지 구체적인 방법론에 많은 지면을 할해한 인물이다.
작중 영정은 왕후장상을 가리지 않고 모두에게 공평한 법을 적용하는 법치국가를 주장한다. 연이어 이사가 '법이란 소원이다' 라며 통해 법가란 시대의 요구를 대국적인 관점에서 관찰하고 이를 반영하는 수단이란 말을 했다. 다만, 춘추전국시대의 법치와 현대와 그 결이 서로 다르다는 점에서 이런 표현들은 오류라고 할 수 있다. 작품의 배경인 고대 중국에서 지배계층이 내세우는 법이란 모든 요소요소를 철저하게 군왕의 통제하는 도구였지 그들의 요구를 반영한다는 발생은 근현대에 와서야 논의되는 발상에 가깝다. 창평군이 호적을 재정비해 전 신민의 병사화를 꾀하자고 하자 창문군이 새삼스럽게 갑자기 '가혹한 군국주의' 운운하는 것도 그렇고 시대와 배경에 어긋나는 표현들이 많다.
더 자세한 내용은 한비자와 순자, 법가, 법치 문서 참조.
[1] 상군서에서는 상업을 철저하게 관(官)에 의해서만 통제될 수 있게 틀어막고, 기본적인 품팔이 행위마저 금지당한 백성들이 살아남기 위해 농삿일에만 집중할 수 밖에 없도록 만들라고 말하고 있다. 더불어 일체의 음악과 자유로운 복장까지 통제하여 문화 생활을 금하여 마음의 여유도 빼앗고, 사유 재산을 개인이 많이 쌓을 수 없도록 원시적 누진세를 적용해 철퇴를 때렸다. 이렇게 전쟁만이 살 길이라는 상황을 만들어 백성들의 마음에 여유를 없애 스스로 희생을 자처하게 만드는 아주 가혹한 통치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