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2-29 02:49:53

한정도

<colcolor=#fff><colbgcolor=#0047a0> 초명 한정문(韓正文)
본관 청주 한씨[1]
출생 1900년 8월 10일
평안북도 의주부 광성면 신의주동
(現 평안북도 신의주시)
사망 1922년[2] 10월 23일[3] (향년 22세)
중화민국 봉천성 동변도 유하현 야저구
(現 중국 지린성 퉁화시 류허현 예주거우)
묘소 중국 지린성 퉁화시 류허현 싼위안푸조선족진
상훈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

1. 개요2. 생애

1. 개요

대한민국독립유공자.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2. 생애

1900년 8월 10일 평안북도 의주부 광성면 신의주동(現 신의주시)에서 아버지 한치복(韓致福, 1850. 10. 5 ~ ?. 9. 27)과 어머니 하동 정씨(1872. 4. 6 ~ ?)[4] 사이에서 5형제 중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1919년 3.1 운동 이후 중화민국 봉천성에 망명한 뒤 서로군정서 예하 의용군에 입대했고, 주로 동변도(東邊道) 유하현(柳河縣) 삼원보(三源堡)[5] 일대에서 활동했다. 그러던 1922년 10월 23일 제7중대장 서리 김우권(金宇權)의 부하로서 동지 12명과 함께 유하현[6] 현성(縣城) 방면으로 향하던 중 야저구(野猪溝)[7]에 있던 김교성(金敎成)의 집을 지날 즈음, 일본 제국 경찰 코모토(河本)가 배후에서 조종하던 중국 산림대(山林隊) 400여명의 기습 공격을 받아 부사(副士) 김하성(金河成), 참사(參士) 왕유박(王瑜璞), 대원 전명근(田明根)·김관학(金寬學) 등과 함께 그 자리에서 전사, 순국했다.

1977년 2월 28일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독립운동 공적을 인정받아 대통령표창이 추서되었고,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1] 충성공파(忠成公派) 36세 정(正) 항렬.[2] 청주한씨제7교대동족보 2권 1262쪽에는 1920년에 사망한 것으로 등재돼 있다.[3] 음력 9월 4일.[4] 정도원(鄭道源)의 딸이다.[5]중화인민공화국 지린성 퉁화시 류허현(柳河縣) 싼위안푸조선족진(三源浦朝鮮族鎭).[6]중화인민공화국 지린성 퉁화시(通化市) 류허현(柳河縣).[7]중화인민공화국 지린성 퉁화시 류허현(柳河縣) 안커우진(安口鎭) 예주거우(野猪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