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color=#fff><colbgcolor=#0047a0> 초명 | 한정문(韓正文) |
본관 | 청주 한씨[1] |
출생 | 1900년 8월 10일 |
평안북도 의주부 광성면 신의주동 (現 평안북도 신의주시) | |
사망 | 1922년[2] 10월 23일[3] |
중화민국 봉천성 동변도 유하현 야저구 (現 중국 지린성 퉁화시 류허현 예주거우) | |
묘소 | 중국 지린성 퉁화시 류허현 싼위안푸조선족진 |
상훈 |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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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2. 생애
1900년 8월 10일 평안북도 의주부 광성면 신의주동(現 신의주시)에서 아버지 한치복(韓致福, 1850. 10. 5 ~ ?. 9. 27)과 어머니 하동 정씨(1872. 4. 6 ~ ?)[4] 사이에서 5형제 중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1919년 3.1 운동 이후 중화민국 봉천성에 망명한 뒤 서로군정서 예하 의용군에 입대했고, 주로 동변도(東邊道) 유하현(柳河縣) 삼원보(三源堡)[5] 일대에서 활동했다. 그러던 1922년 10월 23일 제7중대장 서리 김우권(金宇權)의 부하로서 동지 12명과 함께 유하현[6] 현성(縣城) 방면으로 향하던 중 야저구(野猪溝)[7]에 있던 김교성(金敎成)의 집을 지날 즈음, 일본 제국 경찰 코모토(河本)가 배후에서 조종하던 중국 산림대(山林隊) 400여명의 기습 공격을 받아 부사(副士) 김하성(金河成), 참사(參士) 왕유박(王瑜璞), 대원 전명근(田明根)·김관학(金寬學) 등과 함께 그 자리에서 전사, 순국했다.
1977년 2월 28일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독립운동 공적을 인정받아 대통령표창이 추서되었고,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