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5:59:50

KT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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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F
KT Freetel | 케이티에프
파일:KTF 로고.svg
<colbgcolor=#07B285><colcolor=#ffffff> 기업명 정식: 주식회사 케이티프리텔
영어: KT Freetel Co., Ltd.[1]
설립일 1997년 1월 3일
해산일 2009년 6월 1일
주소 서울특별시 송파구 올림픽로 269 (신천동)[2]
업종명 무선 및 위성 통신업
상장여부 상장폐지
기업규모 대기업
후신 KT
상장시장 코스닥시장 (1999년 ~ 2004년)
유가증권시장 (2004년 ~ 2009년)
종목코드 032390

1. 개요2. 상세3. 2등의 역사4. 역대 대표이사5. 역대 슬로건6. Korea Team Fighting7. 마케팅8. 스포츠

[clearfix]

1. 개요

KTF는 한국통신에서 분사된 이동통신사로, 등기상의 사명은 ‘한국통신프리텔’ → ‘케이티프리텔’이었으나 일반적인 기업명은 약칭인 ‘KTF’[3]로 통용되었다.[4] CDMA(2G) 서비스를 시작한 5개 회사 중 하나였다.[5]

파일:한국통신프리텔 로고.svg

통합 이전의 브랜드는 PCS 016 - ⓝ016이었으며, 회사 이름은 민영화 이전에는 한국통신프리텔이었고, 로고도 한국통신과 동일했다. 민영화 직전인 2001년 5월 1일 한국통신엠닷컴과 통합하고 KTF로 상호를 변경했다.

010 통합 이전의 국번은 한국통신프리텔은 016, 한국통신엠닷컴(한솔엠닷컴)은 018이었으며, 양사 합병 이후 양 번호는 2012년 1월 3일 KT가 2G 서비스를 종료할 때까지 유지됐다.

존속 당시 홈페이지 도메인은 ‘www.ktf.co.kr’, ‘www.ktfmembers.com’[6] 이었다.

2. 상세

파일:PCS 016 로고.svg 파일:ⓝ016 로고.svg
PCS 016 (1997~1999) ⓝ016 (1999~2001)
Personal Network Service
1996년부터 한국통신정보통신부로부터 개인휴대통신(PCS) 사업권을 얻어 '한국통신프리텔(주)'이라는 이름의 자회사로 출범시켰으며, 1997년 1월에 정식 설립되어 본사를 서울 서소문동 정안빌딩으로 했다. 그해 8월부터 'PCS 016' 시범서비스를 실시하고 10월에 정식 서비스를 실시했다. 1998년 10월 세계 최단기간인 1년 만에 총 가입자 2백만 명을 기록하여 업계 2위를 차지했고, 자체 휴대폰 브랜드 '버디'를 판매했다.[7] 1999년 8월 25일에 브랜드를 'ⓝ016'으로 바꾸고 무선인터넷 서비스 '퍼스넷'을 탄생시켰고, 휴대폰 '네온'도 출시했다.

동년 12월부터 코스닥시장에 등록한 뒤 서울 송파구 키노에 'ⓝ016 멀티존'을 열었고, 2000년에 10~20대 전용서비스 'Na'를 런칭한 후 서울 로데오거리에 '나지트' 1호점을 여는 한편, 한솔엠닷컴을 인수하면서 SK텔레콤에 이은 20년째 업계 2위가 되었으며, 2001년 양사 무선인터넷 서비스를 합병해 '매직엔'을 탄생 후 한국통신엠닷컴과 합병한 뒤 상호를 '(주)케이티프리텔'로 바꾸었다. 동시에 기존의 ⓝ016 마케팅을 중단하고 KTF로 브랜드를 통일했다. 2001년 말에 단말기 부문을 KTF테크놀로지스로 분사하고 2002년에 세계 최초로 IMT-2000 서비스 'fimm'을 출시한 뒤 업계 최초로 제주 마라도에서 이동전화서비스를 개시하였으며, 이듬해에 KT아이컴을 합병했다. 심지어 인도네시아 휴대폰 회사인 모바일-8 사와 지분출자 계약을 맺었다. 2004년 한국증권거래소에 주식상장하고 2005년 12월에는 일본 NTT 도코모와 자본제휴를 맺었다.

모기업인 KT가 일찍부터 네스팟 브랜드로 노트북PDA를 위한 와이파이 존을 서비스했기 때문에 2000년대 초반 PDA폰이 막 출시될때 SK텔레콤에서 출시된 일반 소비자용 제품들이 Wi-Fi를 제거당한 고자스러운 PDA폰들이었지만[8], KTF용은 Wi-Fi가 멀쩡히 들어가 있어서 환영을 받았다.

대주주로는 모회사인 KT 외에 일본NTT 도코모가 있었다. NTT 도코모는 KT와 합병 이후로도 KT의 주요 대주주인데, 합병하면서 교환사채를 발행해서 그렇다. 이렇게 합병 이후에도 KT와 NTT가 협력관계에 있기 때문에 위피해제 이후 NTT도코모에서 발매했던 제품들도 수입이 되고 있으며[9], 국내에서 철수했던 노키아의 단말기를 다시 들여온 곳도 KTF.[10]

아직까지도 오래된 건물이라면 벽에 KTF 간판이 붙어있는 걸 볼 수 있다. 일체형 간판이 대다수이다.[11] 정작 가보면 오랫동안 빈 사무실이거나 주거공간으로 바뀌어 입주 중인 곳이 대다수.

타 이동통신사에 비해 KT CDMA 서비스 종료를 일찌감치 서두른 모습을 보였다. 이는 차세대 네트워크 (LTE) 운용을 위함이었으며, KTF에서 사용 중인 주파수를 KT LTE 로 서비스를 제공할 계획이었기 때문에 LTE 서비스를 시작하려면 CDMA 서비스를 종료해야만 가능하게 됐다. KTF에서 사용 중인 1.8GHz 대역 주파수는 전세계에서 LTE로 가장 많이 사용되는 주파수이다. 때문에 이 주파수로 LTE 서비스를 시행한다면 자동로밍이 원활하게 가능하게 되고 지원되는 국가가 상당히 많아지게 되며, 해외 LTE 스마트폰도 간편하게 호환되어 쉽게 이용할 수 있게 되는 등 네트워크 호환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다. 반대로 한국에 방문하는 외국인이 KT LTE에 접속할 수 있어 서비스 제공과 접속료 수익을 얻을 수 있게 된다. 그 뿐만 아니라 LTE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별도의 주파수 임대료 절약과 유지비에 비해 수익성이 낮은 2G 서비스를 종료하여 기지국 관리, 보수 비용을 아낄 수 있이며, 010 식별번호 통합 효과까지 얻을 수 있으니 KT 입장에선 엄청난 효과를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서비스를 빨리 정리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2008년 후반부터 KTF 휴대폰 출시가 전면 중단되었다. SK텔레콤과 LG 텔레콤 CDMA 기종 신규 휴대폰이 출시되었지만, KT 기종으로는 출시되지 않았으며, 3G 휴대폰만 활발하게 출시하였다. 2009년부터 신규가입이 중단되어 KTF 휴대폰 재고가 있어도 모두 회수조치 되었으며, 전산망에 KTF 신규 휴대폰 등록이 제한되었다. 2010년부터 KTF 중고폰 개통 및 기변 불가 조치가 내려졌다. 사용하지 않는 KTF 휴대폰을 가져가서 개통할 수 없으며, 휴대폰 도난, 파손되어 중고 KTF 휴대폰으로 기기변경을 신청해도 불가능하게 되었다.

2010년부터 통화품질 불량 접수를 더 이상 받지 않았다. 신규 개설 도로 (철도) 구간에 기지국을 설치하지 않거나, 새롭게 건축된 건물 내부 불통지역도 더 이상 손을 쓰지 않았다.[12] 반면 SK텔레콤과 LG U+ CDMA 휴대폰은 이때도 출시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었다.

꾸준히 CDMA 서비스를 홀대하여 고객들을 줄여나가 2011년 6월 30일까지 서비스를 종료하여 SK텔레콤과 LG U+와 함께 LTE 서비스를 시작하려고 했으나 KTF 이용자들의 반발과 아직까지 많은 이용자가 남아있어 방송통신위원회에서 서비스 종료를 불허하여 KT가 계획한 LTE 개시와 CDMA 서비스 종료가 미뤄졌다. 그리고 이용자를 더 많이 줄여 2011년 9월 30일 두 번째 서비스 종료를 신청하였으나 잔존 가입자들이 아직까지 많이 남았고, 서비스 종료 보상 대책도 부족하다는 사유로 종료 승인을 얻지 못하였다.

드디어 KTF 가입자가 KT 전체 가입자 1% 미만으로 떨어져 2011년 12월 8일 방송통신위원회에서 서비스 종료 승인을 얻었으나 잔존 가입자 추가 소송으로 인해 또 다시 연기되다가 KT가 역소송에 승소하여 2012년 1월에서야 단계적으로 서비스를 종료하였다.

구체적인 종료 시기는 다음과 같다.

이로서 2012년 3월 19일 오후 11시, 전국의 모든 KT CDMA 기지국의 전원이 내려졌고[14], 이렇게 KTF 서비스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서비스 종료 지역 시기를 보면 SK텔레콤과 LG U+ CDMA 종료 지역 순서와 반대인 것을 볼 수 있다. 이용자가 적은 군 단위 지역이 먼저 종료되고, 인구가 가장 많은 서울이 가장 늦게 서비스를 종료하는 게 상식적인 순서이겠으나, 그 반대로 서울부터 서비스를 종료하여 군 단위 지역을 가장 늦게 종료하였다. 그 이유는 앞서 말했듯 CDMA에 사용되는 주파수를 LTE 로 사용하기 위하여 서울부터 LTE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함이며, 2012년 1월 서울 지역 서비스가 종료되자마자 서울에서 KT LTE 서비스가 시작되었다. 타사에 비해 무려 6개월이나 늦게 LTE 서비스를 시작한 KT로선 급할 수밖에 없는 현실.

3. 2등의 역사

2001년 회사통합으로 이동통신 시장에서 2위 자리에 오른 KTF는, 예나 지금이나 2등을 유지 중이다. 애시당초 1등인 SK텔레콤넘사벽이었기 때문이다.[15] 문제는 KTF가 손댄 e스포츠조차 SKT에 밀렸다는 것.

파일:SHOW 로고.svg

만년 2등 자리를 유지하던 KTF는 2003년부터 3G(WCDMA) 사업을 시작하면서 반전의 기회를 잡으려 했다. 2005년 현대-기아자동차와 제휴해 텔레매틱스 서비스 '모젠'을 개시하고 같은 해 모바일게임 '지팡'과 음원서비스 '도시락'을 개설했으며, 2007년 3월부터 2G 시절에 자주 쓰던 KTF라는 브랜드는 거의 묻어버린 채 SHOW라는 브랜드를 내세워 파격적인 광고 물량 공세를 하였으며, 3G의 전국망을 가장 먼저 구축하여 "3G는 KTF가 SK텔레콤보다 낫다더라" 라는 이미지를 만드는 데 성공하였다.

로고는 물론 2위의 이미지를 모두 씻어낼 겸 번호 브랜드를 없애고자 010 번호 통합에 매우 적극적이었으며, 심지어 3G 서비스 시작과 동시에 2G 단말기 수급을 중단하고 CDMA 기지국 관리 및 구축을 줄이면서 많은 고객들이 3G로 전환하는 현상과 함께 타 이동통신사로 떠나는 등 기존 번호를 중요시 여기는 고객들에게 적잖은 불편함이 있었다.[16]

그리고 결과적으로 SK텔레콤의 넘사벽을 넘지 못하였다. 3G에 한정해서 봐도 여전히 시장점유율 2위였다. 사실 그 점유율마저도 3년여간 수백만 명의 2G 가입자를 3G로 전환시킨 결과인데, 2008년 하반기 이후로는 2G 단말기를 출시하지 않았으니 어쩔 수 없이 대부분의 가입자가 3G로 전환할 수밖에 없었다. 반면, SK텔레콤에는 2011년 7월 기준으로 800만 명이 넘는 2G가입자가 남아 있다. 사실, SK텔레콤의 생각대로 T도 이에 뒤지지 않을 만큼 유명 브랜드였다.

결국 2009년 6월 1일 KT와 합병하면서, KTF는 사라질 때까지 2등을 벗어나지 못하였고, KT는 2020년 현재에도 무선 이동통신 시장에선 2등을 차지한다. 심지어 LTE 초창기 땐 서비스 개시가 늦어지는 바람에 LG U+에 밀려 3위까지 떨어진 적도 있었다. 물론 금세 2위 자리를 탈환했다.

하지만 이 당시 통합 후폭풍은 꽤 강해서, 합병 떡밥이 돌기 시작할 때부터 SK텔레콤은 하나로텔레콤의 이름을 SK브로드밴드로 고쳐가면서 브랜드 통일화 작업을 강하게 밀고 있고, LG역시 통신 계열사 삼총사인 LG텔레콤, LG데이콤, LG파워콤의 통합을 시도해 결국 승인이 받아내어 통합LG텔레콤이라는 임시체제를 거친 다음에 LG유플러스로 전환을 완료했다.

파일:1ERNwRD.jpg

KTF의 로고가 KT 로고에 F를 덧붙인 것이라 합병 당시 F만 떼어내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하지만 한 달도 안 돼서 KT 로고가 바뀌며 나머지 부분도 결국 교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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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역대 대표이사

  • 이상철 (1996 ~ 2000)
  • 이용경 (2000 ~ 2002[17])
  • 이경준 (2002 ~ 2003)
  • 남중수 (2003 ~ 2005)
  • 조영주 (2005 ~ 2009)

5. 역대 슬로건

  • Personal Network Service (1997~2001)
  • First in Mobile (2001~2004)
  • Have a good time (2004~2009)[18]
  • 쇼를 하라 (2007~2008)
  • 쇼하고 살자 (2008~2009)

6. Korea Team Fighting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KTF는 월드컵 공식후원 이동통신사였다. 이때 KTF는 KTF의 약자를 따서 Korea Team Fighting라는 구호로 홍보를 진행하였다.

하지만 SK텔레콤붉은악마와 후원계약을 맺고 '붉은악마 마케팅', 즉 그 유명한 응원박수 대~한민국! 짝짝짝짝짝을 광고해버리는 바람에 오히려 더 쏠쏠한 재미를 보았다. 이 때문에 사람들이 월드컵 공식 후원사가 SK텔레콤인 줄 아는 사람이 다수일 정도로 마케팅에 실패했다. 월드컵 당시 광고에는 이영애안성기가 출연하고, 조수미 노래가 배경음악으로 사용됐다.

어쨌든, KTF측에서 Korea Team Fighting이라는 구호를 내걸며 회사 홍보에 활용한 덕분에 KTF가 저것의 약자인 줄 아는 사람이 꽤 많았다.

이때 KTF의 후원을 받는 응원단도 조직되었는데 그 이름도 KTF 이름을 응용한 Korea Team Fighting이었다. 붉은악마의 '대한민국'과는 다른 박자와 '코리아팀 파이팅'이라고 외치는 구호도 사용했다. 그러나 마케팅을 위해 급조한 응원단이란 한계를 넘지 못하고 이듬해부터 소리소문없이 사라졌다. 다만 응원박수 자체는 남아있다가, 이후 국뽕비트라는 유행을 타며 사람들 기억에 남게 된다.

7. 마케팅

PCS 016 시절엔 인기배우 고소영신현준을 기용했고, ⓝ016 때는 가수 이정현조성모를 기용하기도 했다. KTF 때에 들어서는 대배우 안성기강수연이 전속 모델이었으며, '넥타이청바지는 평등하다'라는 내용의 CF가 유명했다. 박웅현 씨가 제작한 광고다. 양복 정장 차림에 자동차를 타고 가던 중년 신사가, 청바지 차림에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고 가는 청년을 보고 못마땅하게 여기며 지나간다. 그런데 사장실에 서류를 들고 찾아갔더니 그 청년이 바로 사장이라는 반전. 2003년에는 fimm 광고에 '문화대통령' 서태지를 기용한 바 있었으며, fimm에서도 서태지의 <인터넷전쟁> 리레코딩 버전 및 <Watch Out> 뮤직비디오를 각각 공개했다.

SHOW 시절의 마케팅은 해당 문서 참고.

8. 스포츠

1999년에 'ⓝ016 프로게임단'을 창단해 대기업으로서 최초로 e스포츠에 발을 디뎠고, 2001년부터 'KTF 매직엔스'로 거듭났다. 2004년에 부산 코리아텐더 맥스텐도 인수해 '부산 KTF 매직윙스'로 바꿔 농구에도 손을 뻗기도 했으며, 이는 합병 이후에 수원 KT 소닉붐kt 롤스터로 유지된다.


[1] 한국통신프리텔 시절에는 Korea Telecom Freetel Co., Ltd.[2]신천동 롯데캐슬골드.[3] Korea Telecom Freetel.[4] 요금고지서 등에는 (주)케이티프리텔로 표기되어 있었다.[5] 나머지 4개는 SK텔레콤, 신세기통신, LG텔레콤, 한솔PCS.[6] 현재 접속 시 중국 카지노성인 사이트로 연결된다.[7] 생산은 현대전자가 했다.[8] 정작 기업용에는 Wi-Fi가 멀쩡히 들어간 경우도 있었다.[9] 예로는 LG전자 옵티머스 GK 가 있다. 일본판 옵티머스 G Pro 를 KT 에서 단독으로 들여온 것이다.[10] 단, 독점공급 계약은 아니었다. SK텔레콤에서도 출시할 예정이었지만, 출시를 포기했다. 반대로 SK텔레콤 2G 모델이었던 모토로라 레이저도 KTF를 통해 3G 모델이 출시될 예정이었지만, SK텔레콤의 압력 때문인지 출시되지 못했다.[11] 높은 확률로 LG U+의 과거 명칭이었던 LG Telecom의 로고도 볼 수 있다.[12] 실제로 2010년 KTX 경부고속선 2단계 구간(동대구 ~ 신경주 ~ 울산 ~ 부산)이 개통되었는데, 이 구간에선 KTF 휴대폰만 불통되는 곳이 굉장히 많았다. 또한 새롭게 건축된 건물에도 중계기 설치를 하지 않아 승강기와 방 안에선 불통되어 건물 밖으로 나가거나 창문 쪽에서만 이용이 가능했다.[13] 2012년 새롭게 시로 승격된 당진시와, 2012년 하반기 출범예정인 세종특별자치시 편입예정지역 포함.[14] 당초 발표한 계획은 오전 10시 종료이나 이용자 보호를 위해 실 종료시점은 늦춰졌다고 한다.[15] 다만 Fimm 240요금제는 june 250요금제보다 좋았다. Fimm 240 요금제는 무료패킷을 150MB로 제공하며 june 250은 약 78MB를 제공했다. 물론 둘 다 프로모션 기간일 땐 무제한이었지만.[16] 당시에는 01X 번호 비율이 많았고, 스마트폰 시대가 아니다 보니 3G의 특징인 무선인터넷이나 영상통화보단 음성전화에 치중되어 있던 시절이다. 따라서 010 번호를 바꾸면서까지 3G를 사용할 의미가 없었다. 반대로 010 번호를 사용 중인 고객은 굳이 성능이 떨어진 2G를 사용할 필요는 없었지만, 고객의 시각으로 봤을 땐 기업의 기준으로만 운용한다는 모습으로 비춰질 수밖에 없었다.[17] 2001년까지 한국통신엠닷컴 사장직 겸임.[18] 2007년부터 2009년 5월까지는 기업 슬로건으로만 사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