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9-28 18:52:19

해리 큐얼

해리 큐얼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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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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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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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의 축구 감독
파일:1709668814723.jpg
<colbgcolor=#eeeeee><colcolor=#000000> 이름 해리 큐얼
Harry Kewell
본명 해럴드 큐얼
Harold Kewell[1]
출생 1978년 9월 22일 ([age(1978-09-22)]세)
호주 뉴사우스웨일스주 시드니
국적
[[호주|]][[틀:국기|]][[틀:국기|]]
|
[[영국|]][[틀:국기|]][[틀:국기|]] (
[[잉글랜드|]][[틀:국기|]][[틀:국기|]])
신체 180cm, 체중 78kg
주발 왼발
직업 축구 선수 (윙어[2] / 은퇴)
축구 감독
소속 <colbgcolor=#eeeeee><colcolor=#000000> 유스 마르코니 스탤리언스 FC (1990~1993)
리즈 유나이티드 FC (1993~1996)
프로 리즈 유나이티드 FC (1996~2003)
리버풀 FC (2003~2008)
갈라타사라이 SK (2008~2011)
멜버른 빅토리 FC (2011~2012)
알 가라파 SC (2013)
멜버른 하트 FC (2013~2014)
지도자 왓포드 FC U-21 (2015~2017)
크롤리 타운 FC (2017~2018)
노츠 카운티 FC (2018)
올덤 애슬레틱 AFC (2020~2021)
바닛 FC (2021~2022)
셀틱 FC (2022~2023 / 코치)
요코하마 F. 마리노스 (2024)
국가대표 58경기 17골 (호주 / 1996~2012)
SNS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1. 개요2. 선수 경력
2.1. 클럽 경력2.2. 국가대표 경력
3. 플레이 스타일4. 지도자 경력5. 기록
5.1. 대회 기록5.2. 개인 수상5.3. 개인 기록
6. 해리 큐얼에 대한 언사7.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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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호주축구 선수 출신 감독

2000년대 초반 프리미어 리그를 풍미했던 레프트 윙어 중 한 명. 리즈 시절에는 왼발을 기가 막히게 잘 써 오즈의 마법사라는 별명을 가질 정도였다.

호주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 중 하나로 꼽히며 드리블 돌파 능력과 날카로운 왼발 킥을 주무기로 삼았다. 국내에는 라보나 킥 강의 영상으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한때 시한부 인생임에도 축구를 그만두지 않은 엄청난 열정의 소유자로도 알려져 있었다.[3]

2. 선수 경력

2.1. 클럽 경력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해리 큐얼/클럽 경력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2.2. 국가대표 경력

파일:external/static.guim.co.uk/HarryKewellRobertCianfloneGetty460.jpg

1996년 4월 24일 칠레를 상대로 데뷔했으며 데뷔했을 당시 호주 국가 대표팀 역대 3번째 최연소 선수였다. 2012년까지 56경기에 나서 17골을 기록했으며 주요 대회로는 1997 컨페드컵, 2006 독일 월드컵, 2007 아시안컵, 2010 남아공 월드컵, 2011 아시안컵에 참가한 바 있다.

1997년 1996 OFC 네이션스컵 우승팀 자격으로 참가한 컨페드컵에서 호주는 조별리그를 2위로 통과했고 큐얼은 4강 우루과이를 상대로 골든골을 기록하며 팀의 결승행에 기여했다. 그러나 결승전에서 호나우두, 호마리우에게 쌍으로 해트트릭을 얻어맞으며 0-6으로 대패하는 것을 막지는 못했다.

1997년 11월, 키웰은 이란과의 1998 월드컵 지역예선 대륙간 플레이오프 경기 1차전에서. 테헤란의 아자디 스타디움의 약 10명의 관중 앞에서 선제골을 넣었으나 이란은 호다다드 아지지가 동점골을 넣어서 1-1 무승부로 끝났다.

멜버른 크리켓 그라운드에서 열린 호주 축구 사상 당시 기록적인 85,513명의 관중들 앞에서 이란과의 월드컵 대륙간 플레이오프 2차전에서 큐얼은 두 번째 골을 넣으며 승기를 잡았나 싶었더니 이란은 반격하여 카림 바게리, 호다다드 아지지에게 두 개의 골을 허용하며 경기를 2-2로 마무리하고 원정 다득점 원칙에 의하여 호주는 월드컵 진출이 좌절되었다.
파일:2504306.jpg
이 당시 이란은 큐얼과 비두카를 좌절시키고 극적으로 월드컵에 진출하였다.

4년후 2002 월드컵 지역예선 대륙간 플레이오프에서 우루과이와 만나게 되었는데 멜버른에서 열린 1차전에서는 호주가 우루과이를 1-0으로 이겼으나 몬테비데오에서 열린 2차전 에서는 3-0으로 패배하며 탈락하며 또 그렇게 월드컵이 좌절되었다.

2003년 2월, 호주는 영국을 뒤흔들 헤드라인을 장식했는데. 업튼 파크[4]에서 벌어진 잉글랜드와 A매치에서 2번째골을 넣었고 3-1로 이겼다.

2004 OFC 네이션스컵 솔로몬 제도와의 결승전 2차전에 출전하여. 전반 8분 만에 득점하며 6-0으로 우승하였다.

2006 월드컵 지역예선 대륙간 플레이오프에서는 4년전 플레이오프에 이어서 또 우루과이와를 만나게 되었으며 [5]2차전에서 첫 키커로 승부차기를 결정지으며 호주의 32년 만의 월드컵 진출에 공헌했다. 대회 본선에서 큐얼은 조별리그 최종전인 크로아티아전에서 동점골을 넣으며 호주의 16강행을 주도했으나 정작 16강 이탈리아전에서는 부상 때문에 팀의 패배를 바라봐야만 했다.

2007년 아시안컵에서 큐얼은 조별 리그 최종전 태국을 상대로 골을 넣으며 4-0 대승에 기여했으나 일본과의 8강전에서 첫 번째 승부차기 키커로 나서 실축하며 패배의 원흉이 되었다.

소속팀에서 입은 부상의 여파로 인해 2010년 월드컵 첫 경기인 독일전에 큐얼은 결장했고 팀은 0-4로 대패했다. 팀 케이힐이 그 경기에서 퇴장당하면서 큐얼은 가나전에서 선발 출전했으나 24분 만에 골문 앞에서 핸드볼 파울로 인해 다이렉트 퇴장당했고(...) 세르비아전에도 결장했다. 큐얼은 고의가 아니며 팔이 아닌 가슴에 맞았다고 항의했지만 판정은 바뀌지 않았다. 호주는 가나에 골득실차에 밀려 조별 리그 탈락.

2011년 아시안컵에서 큐얼은 케이힐과 투톱을 이루며 출장했고, 조별리그 인도전 골, 8강 이라크전 헤더 결승골, 4강 우즈베키스탄전 골 등 총 3골을 기록했다. 호주는 결승전까지 진출했으나 큐얼은 일본을 상대로 득점하지 못했고 결국 연장 후반 이충성에게 결승골을 얻어맞고 준우승을 기록했다. 이 대회에서 큐얼은 대회 베스트 XI에 선정되었다.

큐얼은 2012년 사우디아라비아를 상대로 월드컵 예선전에 참가해 골을 넣었다. 이 경기 이후 큐얼은 더 이상 대표팀의 유니폼을 입고 출전할 수 없었고, 현역 은퇴를 했기 때문에, 이 경기는 큐얼의 국가 대표팀 마지막 경기가 되었다.

3. 플레이 스타일


재치 있는 개인기와 엄청난 스피드를 지녔고 왼쪽 크로스 패스는 엄청난 정확도와 날카로움을 지녔다. 득점력과 프리킥 능력도 준수했다. 당시까지만 해도 사커루의 돌격대장 역할을 맡아주기도 했고, 긱스의 후계자 소리를 들을 정도로 왼쪽 측면에서 날카로운 모습을 보였다. 수려한 외모 덕분에 한국인 한정 좌베컴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더러 있었다.

하지만 리버풀 FC 이적 이후 잦은 부상으로 인해 리즈 시절에 보여줬던 스피드가 완전히 죽어버렸고, 그러다보니 리버풀에서는 왼쪽에서 드리블링은 시도하지만 부족한 피지컬 때문에 제대로 측면을 돌파하지 못하는 계륵 같은 윙어였다. 물론 가끔 그날이 올 때는 예외

그러나 터키 리그의 갈라타시라이에서는 예전의 날카로운 모습을 많이 보여주며 알토란 같은 활약을 펼쳐 주었다. 호주 A리그 이적 이후 아시아에는 왼쪽 측면 대신 중앙에서 공격형 미드필더처럼 움직이면서 특유의 탈압박과 패스로 경기를 잘 풀어갔다.

4. 지도자 경력

현역 은퇴 이후 큐얼은 유소년 구단에서 일하며 UEFA A급 지도자 라이선스를 취득했다. 2015년, 왓포드 FC의 21세 이하 구단 감독에 선임돼서 2017년까지 있었다.

이후 크롤리 타운 FC의 감독이었다가 2018년 8월 31일노츠 카운티 FC의 감독으로 이직했다. 첫 경기는 9월 4일에 있었던 그림스비 타운 FC전이었는데 2:1로 졌다. 이후 부임한 지 석 달째인 11월 13일에 경질됐다.

최근 리버풀 대표로 레전드 매치에 얼굴을 자주 드러내고 있다.

2020년 8월 2일, 올덤 애슬레틱 감독으로 선임됐다. 2021년 3월 8일 사임했다.

2022년 6월 18일, 같은 호주 출신 감독인 엔지 포스테코글루 감독이 이끄는 셀틱 FC의 코치진에 합류했다.

2023년 12월 31일, 상하이 하이강으로 떠난 케빈 머스캣의 뒤를 이어 요코하마 F. 마리노스의 새 감독으로 선임됐다. 부임 초반에는 선수 활용에 어려움을 겪으며 많은 비판을 받았지만 그와중에 2024년 2월, 방콕 유나이티드 FC를 연장 끝에 꺾고 AFC 챔피언스 리그 8강 진출을 일궈냈다.

3월 6일, ACL 8강 1차전 최강희 감독이 이끄는 산둥 타이산 원정에서 2:1로 승리했고, 홈에서도 1:0으로 승리하면서 합산스코어 3:1로 4강 진출을 이끌었다. 요코하마 역사상 첫 ACL 4강 진출이다.

하지만 이후 작년까지만 해도 상위권 경쟁을 했던 요코하마를 이끌고 J리그에서 연패를 기록하고 중하위권에 머무르며 많은 비판을 받았고, 결국 2024년 7월 16일에 경질되었다. 이후 존 허친슨 코치가 감독 대행을 맡게 되었다. #

5. 기록

5.1. 대회 기록

  • 호주 U-20 축구 국가대표팀
    • OFC U-17 챔피언십: 1997

5.2. 개인 수상

5.3. 개인 기록

6. 해리 큐얼에 대한 언사

미국 유학시절 영국 SKY SPORTS 방송을 많이 봤는데 해리 큐얼의 인기가 대단했어요. 창의적이고 파괴적인 드리블을 하면서 잉글랜드스러운 이른바 리즈의 젊은 아이돌 크랙이 바로 해리 큐얼이었어요. 큐얼과 비두카가 있었던 그 리즈는 전설적인 시절이었는데 레알 마드리드AC밀란이건 어느팀과 대결을 해도 좋은 승부를 했습니다.
한준희 #
윙어로써 갖춰야 할 능력을 대부분 지닌 선수였다. 유려한 드리블을 지니고 있었고 스피드도 준수했다. 킥도 정확하여 박스 안으로 쇄도하는 공격수들에게 완벽한 기회를 제공했다. 부상만이 아쉬운 선수였다.
STN SPORTS #
그의 수준에 맞는 선수와 동기부여가 주위의 모든 팀원을 들어올린다. 그는 세계 적인 선수다.
그레이엄 아놀드 #
그가 골을 넣어 내가 득점한 것처럼 너무 기쁘고 나에게 해리는 확실히 제가 함께 뛰었던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이다.
마크 비두카[9]
측면에 건강한 그가 있으면 안필드에 완전 새로운 선수가 있는 거 같다.
제이미 캐러거 #
내가 리즈에 있을때 큐얼과 룸메였는데 그와 긱스가 영국에서 오랫동안 뛴 최고의 왼쪽 윙어라고 생각한다. 나는 해리와 아주 잘 지냈고 잘되는 날에는 그를 멈출 수 없었다.
이언 하트 #
그가 젊은 선수들에게 유산을 남기고 프로의 삶을 보여주었기 때문에 성공했다.
존 반트 스킵[10]

7. 여담

  • 한때 '자가 면역성 간염'이라는 희귀병에 걸려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음에도 축구를 그만두지 않은 것으로 많은 연민을 샀다. 그러나 이는 와전된 이야기인데 우선 큐얼이 자가면역성 간염이라는 병에 걸린 것은 맞다. 그러나 시한부 인생은 아니다. 큐얼이 이 병에 걸린 것을 발견했을 당시에는 초기였고 꾸준히 약물 치료를 받으면 별 문제 없이 살 수 있는 상태였다. 즉, 이 병은 만성 질환의 형태라는 것.
  • 한때 이 선수가 한국에 알려질 때 Kewell이라는 철자를 Ke-well로 끓어서 '해리 키웰'이라고 부르게 되고 그쪽이 먼저 익숙해졌다. 하지만 영미권에서 그를 부르는 실제 발음은 키웰이 아닌 Kew-ell로 끊은 '큐얼'에 가깝다. 해설을 들어보자. 마이클 오언이 오웬(O-wen)이 아니라 오언(Ow-en)인 것처럼 큐얼도 키웰(Ke-well)이 아니라 큐얼(Kew-ell)이다. 그래서 피파에서 히어로로 출시됐을때 피파 온라인은 큐얼, 모바일은 키웰로 출시됐다.
  • 왼발을 잘 사용해서 별명이 '오즈의 마법사'였다. 리즈 유나이티드 시절 그가 해결사 역할을 했다.
  • 마음의 소리의 작가 조석이 가장 좋아하는 축구 선수다. 212화 내가 축구선수가 된다면에서 언급. 다만 해리 큐얼을 아는 사람이 많지 않아서 좋아하는 선수를 물어보면 대충 적당히 둘러대며 유명한 선수 이름을 댄다고 한다.

[1] /ˈhærəld ˈkjuːəl/[2] 세컨드 스트라이커, 공격형 미드필더를 소화하기도 했다.[3] 다만 이는 사실이 아니며 자세한 내용은 후술.[4] 지금은 역사속으로 사라진 웨스트햄 유나이티드 홈구장[5] 이때까지 호주는 OFC 소속이었기 때문에 아시아 지역예선 플레이오프 승자 자격이 아닌 오세아니아 지역예선 1위팀 자격으로 이전 플레이 오프에서 이란,우루과이를 만났다. 당시 아시아 플레이오프 승자는 바레인이었고, 바레인은 북중미의 트리니다드토바고를 만나 패했다.[6] PL 35라운드 셰필드 웬즈데이전 골[7] 2022년은 사상 첫 호주의 A매치가 1922년 더니딘에서 시작된 지 100년이 되는 해#[8] 1998-99시즌#[9] 2006 FIFA 독일 월드컵 조별리그 3차전 크로아티아전이 끝나고 #[10] 당시 멜버른 하츠 감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