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헨리 안드레스 버제빈(Henry Andres Burgevine, 1836년 ~ 1865년)은 청나라 말기 태평천국의 난 당시 상승군으로 활동한 미국의 군인으로, 중국 이름은 바이지웬(白齊文)이다.2. 생애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주 채플힐에서 1836년 태어났으며 아버지는 프랑스 해군에 복무했던 미국인이었다고 한다. 청나라에 와서 상하이를 거점으로 활동하던 용병이자 의용군이었던 상승군의 전신이었던 서양인으로 구성된 용병단인 양창대에 가입하여 초대 지휘관 프레드릭 타운센드 워드의 지휘 아래 부지휘관으로써 태평천국과의 전투에 참전했다. 초대 사령관이었던 프레드릭 타운센드 워드가 자계 전투에서 전사하자, 이후 상승군의 2대 지휘관이 되었다.그와 청나라 관리들과의 관계는 매우 좋지 않았다고 한다.[1] 결국 도원(道員)[2] 인 양방(楊坊)을 구타하고 군자금 4만여 원을 도박 및 범죄 행위 목적으로 빼앗았다가 강소순무였던 이홍장에 의해 상승군 지휘관직에서 해임되었다.[3] 결국 1863년 7월 격노한 그는 일부 서양 용병들과 함께 태평천국군에 투신했다. 그리고 당시 소주를 수비하고 있던 모왕 담송광으로부터 병사의 교련을 맡게 되었다. 버제빈은 본래 독립된 군을 이끌 것을 기대하고 있었지만, 실제로는 소수의 병력밖에 주어지지 않았다. 실망하고 있던 터에 전황은 악화되었고, 10월에 상승군의 3대 지휘관인 찰스 조지 고든에게로 다시 투항했다.
이후 상하이에 돌아온 뒤 미국 영사에 의해 일본에 호송되어 재입국이 금지되었다. 1864년 2월에 상하이에 돌아왔지만, 미국 영사에 의해 다시금 일본에 돌려보내졌다. 1865년, 장주에 자리를 잡고 있던 시왕 이세현에게 합류하려고 했지만, 도중에 샤먼에서 체포되었다. 청나라 관리는 호송 도중에 그를 익사시켰지만, 미국 측의 항의가 두려워 불의의 사고였다고 발표했다.
3. 지휘관으로서의 평가
초기 상승군의 양창대 시절 자신의 지휘관이자 미군 군사 고문 프레드릭 타운센드 워드나 이후 중국인 자원병 체제로 전환되어 자신의 후임으로 임명된 영국군 군사 고문이자 3대 지휘관인 찰스 조지 고든에 비하면 지휘관으로서의 기본 자세와 직무 자질이 심각하게 갖춰져 있지 않은, 윌리엄 워커 및 여타 필리버스터들과 마찬가지로 패악질과 현지 책임자 무시, 타락한 행보의 끝만을 보여줬던 전형적인 양아치이자 국제 범죄자에 불과했다.찰스 조지 고든 항목에서도 서술되었듯이 고든은 인종을 가리지 않고 모두에게 동등하게 동료애와 전우애를 서로 다지고 이상적인 인류애의 표본을 보였고 자신이 협상을 하여 무고한 백성들이었던 태평천국군 항복 병력을 자신의 동의 없이 몰래 처형해버린 이홍장의 학살 행위와 함풍제의 청조 말기의 권위주의적, 부패한 면모들을 크게 비난 및 비판하였고 자국과 동맹국의 제국주의적, 팽창주의적, 식민지배적 행보들도 거침없이 까버리고 비판하던 이상주의자이자 자유주의자였으며 워드 역시 노예제 폐지를 전적으로 지지했고 중국인, 흑인 등의 유색인종에게도 허울 없이 대하고 동등하게 대해주는 행보를 보인 자유주의자였고 자신의 역량을 아낌없이 투자해 태평천국에 맞섰지만[4][5] 버제빈은 이들의 반도 못 따라가는 행보를 보임으로써 영원히 2류 밑바닥 양아치 인생에 머물렀으며 결국 청나라의 미움을 사 중국에서 살해당하는 운명을 맞이하게 되었다.
[1] 굽시니스트의 만화 본격 한중일 세계사 만화 2권 "태평천국 라이징" 편에서 이 과정이 자세히 묘사된다. 애초부터 사기꾼과 범죄자 기질이 있었던 듯 싹수가 처음부터 노랬다고 하며, 초대 지휘관 워드와의 사상적인 마찰이 심했다고 한다. 대표적으로 워드가 남부연합 지지자라는 찌라시(거짓 소문)을 믿어 워드에게 남부연합 가입을 일방적으로 권유하였다고 하며, 워드가 자계 전투에서 전사하고 2대 지휘관으로써 중국인 자원병 중심으로 개편된 상승군을 이끌어야만 했으나, 애초부터 미 해군 출신 군사 고문이자 초대 지휘관이자 용병술이 뛰어났던 워드와는 달리 군사적 재능도 없던 그가 군사적인 전략전술을 수립하는 일을 할 수 있을 리 만무했다. 따라서 대놓고 상하이 현성 내에서 인신매매나 약탈 등의 수익성 전쟁 범죄를 대놓고 하는 쓰레기짓을 일삼았다고 하며, 상승군의 패퇴가 거듭되는 와중에도 도박장을 전전하는 등의 위법 행위를 일삼았다고 한다.[2] 청나라 때 한 성(省) 각 부처의 장관이나 또는 각 부·현(府·縣)의 행정을 감찰하는 관리이다.[3] 버제빈의 거듭되는 범죄 행위에 분노한 이홍장은 상하이 현성의 미국 영사관에 버제빈의 범법 행위를 고발하게 되며, 버제빈 측에서도 부당 계약 및 봉급 지급 미납의 이유를 들어 이홍장을 맞고소한다. 이후 버제빈의 범법 행위를 청과 공동 조사 끝에 파악한 미 영사관 측은 이홍장의 손을 들어주며 버제빈에게 귀국 권고 조치를 내린다. 사실상의 나라 망신 그만하고 본국으로 돌아와 자숙하라는 의미였다.[4] 다만, 프레드릭 타운센드 워드 본인은 참 아이러니하게도 중앙아메리카에서 온갖 민폐짓을 일삼던 같은 미국인이자 또라이 백인 우월주의자였으며 후에 니카라과의 국가수반이 된 광인인 윌리엄 워커의 용병단에서 잠시 근무한 전적이 있었다. 그런데도 자유주의, 평등주의를 신봉했던 본인은 워커의 심한 인종차별주의의 광기에 물들지 않은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5] 어쩌면 워드 역시 워커의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을 자신이 직접 식민지배해 제국으로 만들어 미국의 괴뢰국화시키겠다는 계획 없는 명백한 운명론에 기반한 광폭한 미친 행보에 대해 큰 반감과 환멸을 가졌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