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수엘라의 1996년생 야구선수에 대한 내용은 호세 무히카(야구선수) 문서 참고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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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35년 5월 20일 ([age(1935-05-20)]세) | ||
우루과이 몬테비데오주 몬테비데오 | |||
국적 | [[우루과이| ]][[틀:국기| ]][[틀:국기| ]] | ||
재임기간 | 제40대 대통령 | ||
2010년 3월 1일 ~ 2015년 3월 1일 | |||
서명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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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자 | 루시아 토폴란스키 (2005년 결혼) | ||
종교 | 무종교 | ||
소속 정당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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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우루과이의 농부 출신 정치인이자 제40대 대통령이다.
재임 중에 경제 성장률과 교육 수준을 높이고 부패, 문맹, 극빈층을 줄이는 성과를 냈다. 이 덕분에 레임덕을 겪지 않고 취임 때보다도 더 높은 지지율을 유지하며 퇴임했다. 국민들의 강력한 재선 요구에도 "민주주의 국가의 지도자는 물러날 만할 때 물러나야 한다."면서 재선 출마를 거절했다. 우루과이 대통령직은 연임이 불가능하고 한 번 쉬어야만 재선에 나갈 수 있다. 실제로 무히카의 다음 대통령인 타바레 바스케스도 2004년에 이어 두 번째로 당선된 것이다.
애칭은 엘 페페로, 스페인어로 할아버지라는 뜻이다.
2. 일생
독재 시절 활동하던 도시 게릴라 투파마로스 출신이다. 정계 입문은 국민당으로 시작했지만 군사독재가 시작되면서 진보 게릴라 활동에 뛰어들었다. 그래서 유권자들이 과거의 행적으로 볼 때 정책이 극좌적으로 나가지 않을까 생각을 했다.자신이 받는 대통령 봉급 90%를 사회기금으로 기부하고, 대통령궁을 노숙자 쉼터로 개방하고 자신은 전부터 살던 집에서 계속 살면서, 차량도 운전기사가 딸린 리무진이 아닌 작고 오래된 구형 폭스바겐 비틀을 직접 몰고 다니는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대통령으로 유명하다. 실질적으로 그가 공식적으로 소유한 재산은 전술한 파란색 폭스바겐 비틀 한대밖에 없다.
아르헨티나에서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가 2012년 이후로는 여러 실정으로 점차 지지율을 깎아먹다 보니 비판자들에게서 "역시 남편이 살아있어야 했어."라는 말이 종종 나오거나 "남편은 그래도 잘했는데 너는 왜 그따구냐?"라는 투의 조롱도 종종 들었다는 웃지 못할 후문이 있는데, 이때 자신도 네스토르 카를로스 키르치네르와 비교해보면서 "애꾸눈은 그래도 일은 잘했는데 마귀할범은 왜 일을 그따위로 하냐?"라는 식의 조롱을 해서 화제가 되었을 정도였다.
다만 문맥은 좀 이해해야 되는게 일단 정치적 관계를 넘어 애초에 아르헨티나-우루과이 양국 관계 자체가 미국-캐나다, 독일-오스트리아, 러시아-벨라루스, 터키-아제르바이잔 이상으로 문화적으로나 역사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거의 한 나라가 두개의 독립 국가로 갈라졌다고 볼만큼 국민감정이 가깝고, 그 와중 무히카나 키르네르 부부는 둘 다 살아온 시대나 행적도 큰 틀은 비슷한 70-80년대 라틴아메리카 좌파 도시 혁명가 게릴라 활동가 출신이란 점을 감안해야 된다. 사적으로도 무히카랑 키르치네르 부부는 양쪽이 대통령 취임하기 이전부터 면식이 있는 관계였고, 양국간 관계와 양자가 공유한 시대적 경험 같은걸 생각하면 진영도 같고 서로 친분도 있는 서유럽 정치인들이 서로 농담 주고 받는 수준이지 한국 대통령이 일본 총리 영부인을 모욕했다 수준으로 인식하면 곤란하다.
그리고 무히카와 키르네르 부부는 둘 다 살아온 시대나 행적도 큰 틀은 비슷한 70-80년대 라틴아메리카 좌파 도시 혁명가 게릴라 활동가 출신이란 점을 감안해야 된다. 무히카와 키르치네르 부부는 양쪽이 대통령 취임하기 이전부터 면식이 있는 관계였고, 양국간 관계와 양자가 공유한 시대적 경험 같은걸 생각하면 진영도 같고 서로 친분도 있는 서유럽 정치인들이 서로 농담 주고 받는 수준이지 한국 대통령과 총리가이 일본 천황의 배우자외 총리 영부인을 모욕했다 수준으로 인식하면 곤란하다.
2012년 겨울 추위가 오자 '대통령궁은 인민의 재산'이라면서 대통령궁을 열어 노숙자들을 묵게 했다. 그리고 자신은 사저인 농가에서 출퇴근했다. 이 때 자기 농가 문 집을 고치다가 머리를 박은 적 있는데 이를 알 리 없는 경호팀은 당연히 대통령 공격이라고 난리가 났다는 일화가 있다. 공격이라는 일화가 붙을 정도면 살살 부딪힌 게 아닌 꽤나 세게 박아 상처가 났는데 치료를 그대로 대통령궁에서 하려고 방치한듯.
대마초 합법화 법안도 세계 최초로 통과시켰다. 2013년 12월 11일 기준 그가 서명하면 공식 발효된다고 한다. 그리고 2014년 8월 합법화가 되면서 전세계 많은 나라들이 우루과이의 대마초 관련 정책에 관심을 가져 그에 관한 다큐멘터리도 많다. 재임기간 동안 사회의 금기요소인 마리화나, 낙태, 동성결혼을 통과시킬 정도로 말이나 보여주기식이 아니라 진짜로 행동으로 실천함으로써 마치 동화에서 온 것같은 인상을 주는 그가 이렇게 굉장히 진보적인 정책을 추진하고, 선진국에서조차 하지 않는 발언을 하여 전세계와 전세계 진보주의자들에게 큰 충격을 줬다. 전문
한편 2014년 대통령 선거에서도 진보의 압승이 예측되었으나 선거 중반 들어서 예상외로 국민당 후보가 치고 올라오면서 접전이 예측되고 있는 중. 10월 26일 선거에서 광역전선(진보)의 바스케스가 49.5%, 국민당의 라카예가 32%를 득표하여 11월 30일 결선투표를 진행하였고 타바레 바스케스가 당선되어 홀리오 산기네티 이후 민주화 시대의 2번째로 두 번 임기를 성공한 대통령이 되었으며, 호세 무히카는 5년의 정권을 유지하고 퇴임 직후 같은 당인 타바레 바스케스에게 이양하여 지금도 광역전선이 여당 위치를 유지하고 있다.
"만약 현재의 세계 인구가 평균적인 미국인들처럼 소비하려 든다면, 우리는 지구라는 행성이 세 개는 필요할 것이다."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이와 별개로 무히카는 반미적인 인물이 아니었으며 미국 측의 정치인들과 친분을 보여주기도 했다. 미국과의 관계는 전략적 친미 관계에 위치해 있다. 저 말의 뜻은 미국을 포함한 선진국 국민들이 자원과 환경을 생각하지 않고 지금의 소비수준을 유지하려 한다면, 결국 치명적인 자원, 환경 문제를 초래할 것이라는 의미이다.
대통령 퇴임 이후로도 사회활동을 하면서 남미 정세에 쓴소리를 내뱉는 등의 활동을 벌이다가 2017년 에콰도르 총 대선과 국민투표에서 선거참관 책임자로 발탁되었다. 어쨌든 에콰도르 1차 선거 개표 결과가 끝나가고 2차 선거 운동 기간에 돌입할 즈음에 뜬금없이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심장질환으로 별세했다.'라는 소식이 떠서 스페인어권 국가 네티즌들을 놀라게 했고, 수백만명의 네티즌들이 조의를 표했는데 알고 보니 에콰도르에서 멀쩡하게 살아있었다. 진상을 알고 보니 폭스뉴스 패러디 사이트인 폭스뉴스 24에서 장난성 기사를 실었던 것을 여러 언론사와 네티즌들이 진짜 폭스뉴스라고 잘못 알고 그대로 기사로 실어 내보냈던 게 퍼졌던 것. 어쨌든 2차 투표 참관까지 마쳤다.
# 2018년 상원의원직을 사퇴했다. 개인적인 요양을 위해서라고 한다.
2020년 10월 20일에 상원의원직을 내려놓고 정계에서 완전히 은퇴한다고 밝혔다.#
2024년 4월 기자회견을 통해 현재 식도암 투병 사실을 밝혔다. 호세 무히카 대통령 특유의 비유적 수사로 "확실히 분명한 이유로 이번에는 (저승사자)가 낫을 들고 오는 것 같다."면서도 "쓰러질 때마다 일어나야 한다. 그리고 만약 그때 분노가 생긴다면 그것을 희망으로 바꾸라"며 젊은이들에게 충고하기도 했다.
3. 대중매체
Why? 시리즈에서 그를 다루었다.2016년 12월 25일자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서 그를 다루었다.
영화 《12년의 밤》은 무히카의 투옥 생활을 그린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