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일본도
1.1. 庖丁藤四郎
호쵸 토시로(庖丁藤四郎) | |||
도공 | 아와타구치 요시미츠(粟田口吉光) | 도파 | 아와타구치(粟田口) |
제작 시기 | 가마쿠라 시대 | 종류 | 탄토 |
길이 | 7寸2分(21.8 ㎝) | 현존 여부 | 도쿠가와 미술관 |
명문 | 吉光 | 문화재 등록 | 중요미술품 |
호쵸 토시로는 두 자루가 있는데 1번의 호쵸 토시로(庖丁藤四郎)는 오오타니 요시츠구가 썼다고 알려진 단도다.
미나토가와 강의 전투로 패배해 죽은 구스노키 마사시게의 원령을 베었다고 전해지는 호쵸 토시로는 후에 아시카가가에 전해져 내려왔다가 교부 오오타니 요시츠구의 손에 들어왔는데 세키가하라 전투로 그의 사후 도쿠가와 쇼군가로 전해졌다.
이후 오와리 도쿠가와의 보물로 내려져 오다가 1941년 9월 24일 중요미술품으로 지정되었고 현재는 도쿠가와 미술관에 보관중이다.
1.2. 包丁藤四郎
호쵸 토시로(包丁藤四郎) | |||
도공 | 아와타구치 요시미츠(粟田口吉光) | 도파 | 아와타구치(粟田口) |
제작 시기 | 가마쿠라 시대 | 종류 | 탄토 |
길이 | 八寸六分 | 현존 여부 | 소실 |
명문 | 吉光 | 문화재 등록 | - |
2번의 호쵸 토시로(包丁藤四郎)는 도쿠가와 히데타다가 썼다고 알려진 단도다.
일설에 따르면 예전 주인인 오미국(近江国)의 타가 타카타다(多賀高忠)가 정적에게 학요리를 부탁받았는데 그 정적은 타카타다에게 수치를 입히려고 학의 배에 마름쇠를 숨겼다고 한다. 타카타다는 이를 눈치채고 이 호쵸로 학의 배를 마름쇠 째로 갈라베어 모두에게 갈채를 받았다고 한다.
이후 토리카이 소우케이가 사들였고 이후 아들 요헤이 소스케에게 넘겨주다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이를 빼앗아 우에스기 카게카츠에게 하사하였다.[1] 나중에 도쿠가와 히데타다에게 헌상하였고 이후 아버지 도쿠가와 이에야스에게 선물했으며 다시 10남 도쿠가와 요리노부[2]에게 선물해주었다.
요리노부는 이후 도쿠가와 쇼군가에 다시 헌상하였지만 메이레키 대화재로 소실되어 현재는 실물이 없다.
2. 도검난무의 등장 캐릭터
호쵸 토시로(도검난무)[1] 히데요시의 곁에 있었을 때 혼아미 코토쿠(本阿弥光徳)가 가압하였으며 1611년 2월 우메타다 쥬사이(埋忠寿斎)가 금장신구를 만들었다.[2] 에도시대 다이묘. 키슈 요리노부(紀州賴宣) 라고 부르며 키슈 도쿠가와의 선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