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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코스트/증거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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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나치 독일의 문서들
2.1. 히틀러의 장애인 학살 명령2.2. 반제 회의 명령서2.3. 아이히만 리스트2.4. 보어만의 유대인 '절멸' 언급 금지 명령2.5. 헤움노 절멸수용소의 가스 밴에 관한 '개선 사항'2.6. 슈탈레커 보고서2.7. 하인리히 힘러의 편지2.8. 오스발트 폴의 편지2.9. 아우구스트 프랑크의 메모
3. 전후 보고서
3.1. '테레지엔슈타트' 게토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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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나치 독일이 벌인 유대인 학살 홀로코스트의 증거 자료들

2. 나치 독일의 문서들

2.1. 히틀러의 장애인 학살 명령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Aktion_brand.jpg
<colbgcolor=#fff,#1f2023>Reichsleiter Bouhler und Dr. med. Brandt

sind unter Verantwortung beauftragt, die Befugnisse namentlich zu bestimmender Ärzte so zu erweitern, dass nach menschlichem Ermessen unheilbar Kranken bei kritischster Beurteilung ihres Krankheitszustandes der Gnadentod gewährt werden kann.

A hitler
국가지도자[1] 필리프 보울러[2]와 의사 브란트에게

치료에 가망이 없을 만큼 병세가 무겁다고 판단되는 경우, 그 환자에게 병세에 관해 엄격한 감정을 실시한 뒤에 특별히 지명한 의사에게 자비로운 죽음의 처치를 허가할 권한을 부여한다

A 히틀러
- 아돌프 히틀러가 서명한 장애인 학살 승인 서류

1939년, 히틀러의 명령에 따라 T4 작전이 실시되어 수 많은 장애인과 정신질환자들이 학살되었다.

2.2. 반제 회의 명령서

파일:Goring Authorization Letter.jpg
1941년 7월 31일, 베를린

제국원수(Der Reichmarschall des Großdeutschen Reiches)
4개년계획부 전권 장관(Beauftragter für den Vierjahresplan)
국방위원회 의장(Vorsitzender des Ministerrats für die Reichsverteidigung)

공안경찰(Sicherheitspolizei) 및 보안대(SD) 최고책임자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 SS중장(SS-Gruppenführer) 귀하

베를린

1939년 1월 24일 최적의 수단을 동원해 유대인을 이주시키고 추방하라는 귀하의 의무에 더해, 독일의 영향력이 미치는 전 유럽에서의 유대인 문제를 완벽히 해결하기 위해 발생하는 조직적이고 기술적이며 실제적인 문제에 관련된 모든 필수적 사항들을 준비할 책임을 귀하에게 부여한다.

정부의 다른 부처가 관련될 경우 그들은 언제든 귀하에게 협조해야 한다.

나는 귀하에게 우리가 바라는 유대인 문제의 최종 해결(Endlösung der Judenfrage)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조직적, 기술적, 실제적 수단들을 모두 포함하는 전체 계획을 가까운 시일 내에 제출하도록 요구하는 바이다.

괴링(서명)

독소전쟁이 발발한 지 1달 가량 지난 1941년 7월, 루프트바페 사령관 겸 나치 독일 부총리 헤르만 괴링은 SS 국가보안본부장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에게 유대인 문제를 최종적으로 해결할 방안을 마련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리고 1942년에 개최된 반제 회의를 통해 유대인에 대한 최종 해결책은 '절멸'로 확정되었다.

2.3. 아이히만 리스트

파일:WannseeList.jpg
지역 숫자
분류A
알트라이히[3]
오스트마르크[4]
오스트게비테[5]
폴란드 총독부
비아위스토크
보헤미아-모라비아 보호령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벨기에
덴마크
프랑스 독일군 점령 지역
프랑스 비점령 지역(비시 프랑스)
그리스
네덜란드
노르웨이
131,800
43,700
420,000
2,284,000
400,000
74,200
-유대인 없음-
3,500
34,000
43,000
5,600
165,000
700,000
69,600
160,800
1,300
분류B
불가리아
영국
핀란드
아일랜드
이탈리아(사르데냐 포함)
이탈리아 점령 하의 알바니아
크로아티아
포르투갈
루마니아(베사라비아 포함)
스웨덴
스위스
세르비아
슬로바키아
스페인
튀르키예(유럽 지역)
헝가리
소련
소비에트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벨라루스(비아위스토크 제외[6])
48,000
330,000
2,300
4,000
58,000
200
40,000
3,000
342,000
8,000
18,000
1,0000
88,000
6,000
55,500
742,800
5,000,000
2,994,684
446,484
도합: 1,100만 이상
↑1942년 1월 20일 열린 반제 회의의 회의록 문서 중 6페이지. 아돌프 아이히만의 이름을 따 <아이히만 리스트>라 불린다. 유럽 전역의 유대인 수 (학살 대상자)를 정리해 놓았다. 유형 A는 회의가 열렸던 1942년 초 시점에 독일이 점령하여 직할하던 지역의 유대인들이며, 유형 B는 그 외의 지역들[7]의 유대인들이다.

2.4. 보어만의 유대인 '절멸' 언급 금지 명령

파일:보어만의 문서.png
국가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
당 당관방(Partei-kanzlei)[8]
당 당관방장
퓌러 본부 1943년 7월 11일
서신 번호 33/43 G.

주제: 유대인 문제 처리.

퓌러의 지시에 따라 알린다:
공식적인 유대인 문제 처리에서 미래의 해결책에 대한 논의는 중단되어야 한다.
그러나 유대인들이 적절한 작업에 동원될 수 있다는 점은 언급될 수 있다.

서명: M. 보어만

7.d.R.:
배포처: 국가지도자(Reichsleiter)
가우 책임자
연합 지도자.

-
주제 카드: 유대인 문제 처리.

유대인 "절멸"에 대해 공식적인 언급을 금지하는 나치당수부장 마르틴 보어만의 명령서. 그가 홀로코스트에 깊게 관여했다는 결정적 증거 중 하나가 되었다.#

2.5. 헤움노 절멸수용소의 가스 밴에 관한 '개선 사항'

1942년 6월 5일 베를린.
제국 기밀 업무(Geheime Reichssache)

현재 사용중이며 생산중인 특수차량(spezialwagen)에서 개선해야 할 사항.

1941년 12월 이래로 세 대의 특수차량을 이용해 97,000개의 화물처리했고 차량에 별다른 결함은 없었음. (중략) 이전의 사례들로 판단컨데, 다음의 사항들이 개선되면 좋을 것임.

1) 과잉압력을 막고 일산화탄소가 빠르게 퍼지게 하기 위해 차량 후방 벽면의 위에다 10x1cm의 구멍을 뚫을 필요가 있음. 압력 과잉은 밖에서 이 구멍을 막는 덮개를 여닫음으로써 조절할 수 있음.

2) 통상 적재 시 평방미터 당 9~10명임. 사우러(Saurer) 사[9]의 더 커다란 차량에도 그리 많이 적재하진 않음. 과적 문제 때문이 아니라, 최대한으로 적재 시 비포장도로를 주행할 때 차량 안정성에 문제가 있음. 적재공간의 축소가 필요해 보임. (중략) 이를 위해 지금껏 했던 것처럼 화물의 양을 줄여선 안됨. 화물의 양이 줄면 남는 공간에도 일산화탄소를 채워야 하기 때문에 '가동 시간'이 늘어나게 됨. 반면 적재공간이 줄면, 공간이 완전히 화물로 가득찬 상태이므로 '가동 시간'을 줄일 수 있음. 제작자들과의 회의에서 적재공간을 줄일 경우 무게중심에 문제가 생겨 앞 차축에 과부하가 걸릴것이라는 주장이 나왔으나, 사실 적재공간의 화물들이 가동 중에 언제나 뒷문으로 몰리기 때문에 무게중심 문제는 자연히 해결될 수 있음. 따라서 앞 차축 과부하 문제는 발생하지 않음.

4) 차량 내부 청소를 쉽게 하기 위해 바닥 중앙에 밀봉된 배수구를 설치해야 함. 배수구의 지름은 20~30cm로 하고 여기에 사이펀을 설치해 '가동 중에' 액체들이 빠져나갈 수 있게 해야 함. 파이프 위에는 거름망을 설치해 오물에 의해 막히는 것을 방지해야 함. 큰 오물들은 가동 후 차량을 청소할 때 배수구의 뚜껑을 열어 제거할 수 있음. 적재공간의 바닥은 중앙을 향해 약간 기울도록 해서 오물들이 중앙으로 모아져 빠르게 빠져나갈 수 있도록 해야 함.

6) 적재공간 내 램프를 더 철저하게 보호해야 됨. 램프에 철망을 씌워 파괴되지 않도록 해야 함. 램프는 필요 없다고 없애버리자는 말도 있음. 하지만 관찰 결과, 문이 닫히려 할 때 깜깜해지기 시작하면 화물들은 언제나 문을 밀치고 나오려 하기에 문을 닫기 어려워짐. 이는 화물들이 어둠 속에서 조금의 빛이라도 드는 곳으로 향하려 하기 때문임. 또한 어둠으로 인한 공포로 화물들이 소음을 일으킴. 따라서 가동 초기엔 램프를 켜 두는 것이 더 적절함. 또한 야간 운영과 차량 내부 청소에도 도움이 됨.

상기한 사항들은 수리를 위해 입고될 경우에만 적용될 것임. 이미 주문한 10대의 사우러(Saurer) 사 차량들에는 가능한 한 개선이 이루어질 것임. 제작사는 회의 때 사소한 몇가지를 제외하고 개조가 당장 이루어지긴 어렵다고 함. 따라서, 10대 중 최소한 한대의 개조를 위해 다른 제작사를 알아본 결과 호헨마우트에 있는 회사가 적격이라고 제안함. 현 상황에서 이 차량의 개조엔 어느 정도 시일이 걸릴 것으로 보임.

II D 부서장 SS 상급돌격대지도자 발터 라우프(Walter Rauff) 귀하.
서신 전문
독일어 원문

빌리 유스트 친위대 국가보안본부(RSHA) 간부가 발터 라우프에게 보낸 가스 밴에 관한 문서. 대량 학살을 다분히 전문적이고 행정적인 '은유'로 담담히 묘사한다는 점에서 더욱 끔찍함을 안겨준다.

2.6. 슈탈레커 보고서

파일:4912b059-5630-4ec5-b3c8-172fe908f148.jpg
특수작전집단 A그룹에 의해 수행된 유대인 처형

에스토니아: 963명 제거. 유대인 정화

라트비아: 3만 5238명 제거.
* 리가 게토: 2500명
* 다우가우필스 게토: 950명

리투아니아: 13만 6421명 제거.
* 샤울랴이 게토: 4500명
* 카우나스 게토: 1만 5000명

벨라루스: 4만 1828명 제거.
* 추정 남아있는 유대인 수 12만 8000명

러시아: 3600명 제거.

1941년 10월, 프란츠 발터 슈탈레커 특수작전집단 A그룹 지휘관이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 국가보안본부장에게 보낸 보고서. 유대인 정화(Judenfrei)라고 담담하게 서술하고 있으며 표식으로 관짝을 집어넣은 모습이 끔찍하기 그지 없다.

2.7. 하인리히 힘러의 편지

파일:752209.jpg
친위대국가지도자 -

필드 지휘소, 1943년 6월 21일.
국가지도자 사무국

친애하는 솔만에게!

저는 당신이 즉시 프라하에 있는 상급집단지도자 프랑크와 연락을 취하도록 지시합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그를 방문하는 것입니다. 해결해야 할 문제는 체코 어린이들의 공급, 교육 및 수용입니다. 이 어린이들의 아버지 또는 부모는 저항 운동의 일원으로 처형되어야 했습니다.

결정은 당연히 매우 신중해야 합니다. 나쁜 아이들은 특정 아동 수용소에 보내집니다.

좋은 혈통의 아이들은, 당연히 그들의 부모가 가장 위험한 범죄자가 될 수 있는 경우, 인도적이고 올바르게 교육되지 않으면, 제가 생각하기에, 레벤스보른 아동 보호소를 통해 시험적으로 수용되고 가능한 한 성격적으로 평가된 후 독일 가정에 양육 또는 입양 아동으로 제공되어야 합니다.

하일 히틀러!

서명: H. 힘러

2.) -상급집단지도자 프랑크, 프라하
3.) 안전 경찰 및 SD의 수장
참고용으로 발송됨.
I.A.
Br.
-상급돌격대지도자.

하인리히 힘러 친위대 국가지도자가 레벤스보른 담당자 막스 졸만에게 보낸 편지. 열등인종으로 분류된 어린이들은 수용소로 보내 살해하고 좋은 혈통으로 분류된 어린이들은 레벤스보른으로 보내진다는 잔인한 명령이 담겨져 있다.

2.8. 오스발트 폴의 편지

1942년 9월 16일 베를린
기밀(Geheime)!

친위대 국가지도자에게

어제 알베르트 슈페어 장관과의 만남이 있었습니다.

다음의 인원이 참여했습니다.

알베르트 슈페어 장관
오스발트 폴 SS-상급집단지도자
발터 쉬버 SS-여단지도자
알베르트 자우어 제국위원
슈테판 장관급 참의원(Ministerialrat)
브리에세 장관급 참의원
한스 캄러 SS-여단지도자

주제

1. 동부 이주로 인한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확장

2. 수용소(KL)의 대규모 폐군수공장 업무 인수

3. 수용소(KL)의 폭격 피해 응급 복구 지원

4. '팔러스레벤' 경금속 주조소

(후략)
서신 전문

오스발트 폴 친위대 경제관리본부장이 하인리히 힘러에게 회의에 관한 기록을 편지로 보낸 자료이다. 군수 생산을 위해 수감자들을 착취하고, 알베르트 슈페어 군수부장관이 아우슈비츠의 확장을 위한 건설 예산 1370만 라이히스마르크를 승인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2.9. 아우구스트 프랑크의 메모

August Frank Memorandum

아우구스트 프랑크의 메모는 죽은 유대인의 우표 수집품과 속옷을 처리하는 방법에 대한 지시가 포함되어 있다. 이는 나치독일이 유대인들의 가치 있는 모든 것을 몰수 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3. 전후 보고서

3.1. '테레지엔슈타트' 게토 보고서

파일:테레지엔슈타트보고서.png
테레지엔슈타트

1. 보호령에서의 수송 - 1941년 11월 24일
1. 독일에서의 수송 - 1942년 6월 2일
1. 에서의 수송 - 1942년 6월 21일
1. 네덜란드에서의 수송 - 1943년 4월 22일
1. 덴마크에서의 수송 - 1943년 10월 5일
1. 슬로바키아에서의 수송 - 1944년 12월 23일

1945년 4월 20일 테레지엔슈타트에 도착:
보호령 - 7만 3468명
독일 - 4만 2921명
오스트마르크 - 1만 5244명
네덜란드 - 4897명
덴마크 - 466명
슬로바키아 - 1447명
헝가리에서 오스트리아를 경유하여 - 1074명

총계 - 13만 9517명

그중 사망한 인원 - 3만 3521명 24%
동부로 이주된 인원 - 8만 7063명 62.5%
스위스나 스웨덴으로 추방된 인원 - 1만 9138명 13.5%

마지막 수송이 출발하기 전(1944년 10월 28일)
1944년 12월 31일 기준:

테레지엔슈타트에 도착한 인원 - 13만 1563명
테레지엔슈타트에서 태어난 인원 - 192명

그중 사망한 인원 - 3만 3124명 25.2%
동부로 이주된 인원 - 8만 7063명 66.9%
스위스나 스웨덴으로 추방된 인원 - 1만 1568명 7.9%

1945년 6월 1일 테레지엔슈타트에
아직 남아 있는 인원: 약 1만 명

1945년 5월 6일 테레지엔슈타트에 남아 있는 인원
독일에서 5,500명, 비엔나에서 1,400명

그 중 연령대 비율:
0-15세(독일: 4.2%, 빈: 5.3%)
16-60세(독일: 52.7%, 빈: 37.9%)
60세 이상(독일: 43.1%, 빈: 56.8%)

체코의 테레친에 세워진 게토와 수용소 내 인원들의 정보를 담은 보고서이다.


[1] 나치당 당수인 히틀러 바로 밑의 당 최고위 간부들이다.[2] 당시 당 총통 비서실장 즉 히틀러의 당무 비서실장이다.[3]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450px-Weimar_Republic_1930.svg.png 1938년 이전의 나치 독일 영토. 바이마르 공화국의 영토와 같다.[4] 합병된 오스트리아 + 슬로베니아 크렌스카 지방 + 코로스카 지방[5] 독일 제국 시절의 구 동방영토 중 1차 대전 패전으로 상실한 지역. 서프로이센, 포젠 등.[6] 비아위스토크는 오스트프로이센에 병합되었다.[7] 적국, 동맹국과 그 점령지, 중립국 등.[8] 당관방은 국가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의 당조직 가운데 하나로서 대략 총무처에 해당한다.[9] 스위스의 차량 제작 회사. 사우러 사가 직접 가스 밴을 제작한 건 아니었고 사우러 사의 트럭을 독일의 Gaubschat Fahrzeugwerke사가 가스바겐으로 개조했다. 사우러 사의 제품 외에 르노, 오펠 사의 트럭이 가스바겐으로 개조되었고 이렇게 전쟁 중에 개조된 가스바겐의 수는 약 20여 대로 추정된다. 즉, 이 가스바겐들 상당수는 처음부터 유대인을 죽일 목적으로 만든 차량이 아니었단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