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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3절까지 모두 수록된 버전[1]
2절 까지만 수록된 버전. 2008년 제작된 뮤직비디오이다.
1964년판 LP복원 버전
1949년 작곡된 대한민국의 군가. 1957년부터 일선에 보급되었다.
작사자 및 작곡자는 1949년 당시 육군군악학교 행정과장이었던 정동주[2]이다.
2. 역사
당시 육군군악학교가 주둔하고 있던 장충동 일대[3]는 일제강점기 당시에 박문사[4]라는 이토 히로부미를 기리기 위한 사찰이 있던 자리였다고 한다. 8.15 광복과 함께 사찰은 당연히 훼철되었으나 부지는 미군이 접수해 사용하였고 대한민국 정부수립과 함께 미군이 철수하면서[5] 비로소 한국군에 이관되었다.이곳에 육군 군악학교가 들어서면서 개교기념식이 진행되었는데, 당시 행정과장이었던 정동주가 게양식에서 바람을 받아 나부끼는 태극기를 보고 감명을 받아서 작사 작곡한 것. 같은 해 스카라극장에서 열린 육ㆍ해ㆍ공군 군악연주회에서 당시 육군 군악대장이었던 김희조의 편곡으로 처음 연주된 후 일선 장병들에게 불리기 시작했고, 육군에서 정식 군가로 채택한 것은 1957년의 일이다.
3. 특징
다른 군가에 비해 전투나 전우애 등 전쟁에 대한 언급이 없고, 국가나 민족에 대한 충성심과 애국심을 강조하는 라이트한(...) 내용인 까닭에 군인들이 국민학생 어린이들을 상대로 가르쳐 주거나 국민학교 음악교과서에 실리기도 하는 등 군가라기보다는 건전가요로 취급을 받았다. 고등학교에서 교련을 가르치던 시기에는 학생들이 행군 등 제식훈련을 하며 부르기도 했다.4. 가사
(1절) 휘날리는 태극기는 우리들의 표상이다 힘차게 약진하는 우리 대한민국이다 너도나도 손을 잡고 광명으로 보존하자 청년아 나가자 민국 번영에 (2절) 휘날리는 태극기는 우리들의 표상이다 유구하고 청사(靑史)깊은 반만년의 무궁화꽃 숭고한 금수강산 자손만대 계승하자 나가자 겨례여 국토 통일에 (3절) 휘날리는 태극기는 우리들의 표상이다 대한의 아들딸아 뭉치어서 진군하자 단일민족 한 핏줄기 길이길이 이어가자[6] 나가자 용사여 국토 수호에 (후렴) 힘차게 울리어라 평화의 종을 우리는 백의민족 단군의 자손 |
5. 기타
- 상술했듯 군가라기보다는 건전가요의 일종으로 취급되었기 때문에 1970년대~1980년대 주요 음반에 한번씩은 반강제적으로 취입되기도 했다. 심지어는 텔레비전의 화면조정이나 라디오의 주파수 조정 직전 방송을 종료하면서 애국가와 함께 방송하기도 했다. 대한뉴스 오프닝[7]에도 한참 사용되었다.
- 가사나 상징 때문에 조원진이나 전광훈 등 우리공화당계 태극기 집회에서 애창되었으나, 저작권료를 내기 싫다는(...) 지적에 의해 어느순간부터 빠지게 되었다고 한다(...)
지랄났다 더민주 X맨
- 2017년까지 육군훈련소 영내에서 틀어 주었다.
- 빈대가족 시리즈에서는 '휘날리는 돈'으로 패러디된다.
- 한동안 잊혀져 가다가 건군 제76주년 국군의 날 기념행사에서 제창되며 모처럼 회자되었다. 3절 가사 후반부의 '단일민족 한 핏줄기'부분도 수정되지 않고 그대로 불렸다.
[1] 잘 들어보면 2절 부분에서 무궁잎꽃으로 삑사리(...)가 난다.[2] 육사 7기라는 증언이 있다.[3] 오늘날 신라호텔 부지[4] 이토 히로부미의 이름을 한국식 한자음으로 읽으면 '이등박문'이다.[5] 광복과 함께 조선에 들어온 미군은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자 500여명의 고문단 인원만 남기고 철수했다. 오늘날 들어온 주한미군은 6.25 전쟁으로 다시 진주한 것이다.[6] 21세기 현대 사회에는 부담스러운 시대착오적 가사지만, 3절만 빼고 부르거나, 아니면 한국인의 정체성을 지켜나가자는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다.[7] 영상 시작 직후 허공에 태극기가 나부끼는 장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