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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항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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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2A2A2A><colcolor=#FFFFFF> 윤항기
尹恒基 | Yoon Hang Ki
파일:가수윤항기.jpg
출생 1943년 9월 15일 ([age(1943-09-15)]세)
충청남도 보령군 (現 충청남도 보령시)
본관 파평 윤씨
가족 아버지 윤부길[1], 어머니 성경자[2]
형 윤영기, 누나 윤수현, 여동생 윤복희
배우자 정경신, 아들 윤준호
학력 연세대학교 (종교음악과 / 학사)
미국 미드웨스트 신학대학교 (신학과 / 학사)
미국 트리니티 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
(교회음악학과 / 음악학 석사)
미국 트리니티 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
(신학과 / 신학 석사·박사)
종교 개신교 (장로회)
병역 해병대 병장 만기전역 (병 110기)
데뷔 1959년 '정든 배'
현직 예음예술종합신학교 총장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명예회장
한국예술사관실용전문학교 학장
한국전통문화예술협회 고문

1. 개요2. 활동3. 대표곡
3.1. 키보이스3.2. 솔로곡
4.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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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가수, 목회자, 교수.

2. 활동

1943년 9월 15일, 충청남도 보령시 출생으로, 1959년도에 작곡가 김희갑이 단장으로 있는 에이원쇼를 통해 가수로 데뷔하였다. 18세 되던 1960년에는 해병대병 110기로 입대하여 군악대 사병으로 복무했고, 전역 후 1964년에는 대한민국 최초의 록 그룹 키보이스를 결성하여 여러 히트곡을 발표했다.

그렇게 그룹 키보이스의 멤버로 활동하다가 1974년에 솔로로 데뷔하였고, '별이 빛나는 밤에', '장밋빛 스카프', '나는 행복합니다' 등의 히트곡을 발표하며 솔로가수로서도 성공하였다. 1975년에는 영화 '나는 어떡하라고'에도 출연하며 연기 활동도 잠깐 하였다.

1986년에는 돌연 가수 활동을 중단하고 미국으로 가 신학을 공부하였다. 이후 가요계를 잠시 떠나 목회자로서 활동하였으며, 그 때문인지 현재도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명예회장을 맡고 있을 정도로 종교계에서도 높은 인지도를 쌓았다.

2014년에는 목사 정년인 만 70세 제한 때문에 예음교회 담임목사직에서 물러나 다시 가수 활동을 시작했으며, '걱정을 말아요' 등의 곡을 발표하며 계속해서 가수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다.

3. 대표곡

3.1. 키보이스

3.2. 솔로곡

4. 기타

  • 아들인 윤준호는 CCM 가수로 활동하고 있다.
  • 한때 키가 192cm인 거한이라는 루머가 있었으나 실제로는 175cm 이하라고 밝혔다. 사실 나이를 생각하면 이 정도도 충분히 큰 키다.

[1] 희극인이자 작곡가, 뮤지컬배우, 45세 때 지병으로 사망.[2] 무용수, 윤항기 10세, 윤복희 7세 때 공연 중 사망.[3] 1971년에 나온 바닷가의 추억, 해변으로 가요 등의 곡은 윤항기 등 원년 멤버들이 키보이스를 떠나 새로운 멤버로 재편된 뒤에 나온 곡으로 윤항기와는 무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