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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2A2A2A><colcolor=#fff> 윤복희 尹福姬|Yoon Bok Hee | |
본명 | 윤복기 (尹福基, Yoon Bok Ki) |
출생 | 1946년 3월 9일 ([age(1946-03-09)]세) |
미군정 조선 서울특별자유시 중구 을지로2가 (現 서울특별시 중구 을지로2가) | |
본관 | 파평 윤씨 (坡平 尹氏)[1] |
가족 | 아버지 윤부길[2], 어머니 성경자[3] 오빠 윤영기, 윤항기, 언니 윤수현 |
학력 | 한양여자고등학교 (졸업) 서라벌예술대학교 (무용과 / 중퇴) |
종교 | 개신교 (장로회 / 온누리교회) |
직업 | 가수, 뮤지컬 배우 |
데뷔 | 1952년 뮤지컬 <크리스마스의 선물> 1967년 노래 <웃는 얼굴 다정해도> |
링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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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세상을 놀라게 한 보컬리스트
엠넷 레전드 아티스트 100에서의 소개문구
한국의 가수이자 뮤지컬 배우.엠넷 레전드 아티스트 100에서의 소개문구
2. 생애
2.1. 어린 시절
1946년 서울 을지로 2가에서 태어났다.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셔서 오빠와 고생을 굉장히 했다고 한다.2.2. 데뷔
8살때 윤복희의 모습 |
월남전 한참이던 1966년 베트남에 가서 미군 위문공연을 하기도 했다. 당시 공연 모습을 보면 무대 퍼포먼스와 가창력이 정말 남다르다. 반세기 이상의 세월이 흘렀는데, 지금 봐도 파격적인 의상이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당시에는 더욱 충격적이었을 것이다. 참고로 이 의상은 모두 윤복희가 직접 기획한 것이라고 한다.
2.3. 미니스커트
한국에 미니스커트를 유행시킨 장본인이다. 대한민국의 유명인 가운데 최초로 미니스커트를 착용하여 장안의 화제를 불러일으킨 것으로 알려져 있다.이 때가 1967년으로, 당시에 여자가 다리를 드러낸다는 것 자체가 한국 사회에서 금기시 되던 때였는데, 미니스커트를 입은 윤복희의 모습에 충격을 받은 여성들에 의해서 미니스커트가 대유행을 하게 되었고, 속옷만 가리는 마이크로 미니스커트까지도 유행을 해서 정부에서 치마 길이 단속을 나서기까지 했다. 지금 같아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얘기지만, 당시 신문 등에서는 미니스커트를 민족의 반역자(...) 취급까지 했으며, 윤복희가 공항에서 미니스커트를 입고 입국하다가 군중들에게 계란 세례를 맞았다는 루머까지 나돌 정도로 파장이 컸다.
이 루머는 훗날 신세계백화점의 광고 연출 때문에 퍼진 루머로서, 실제로는 1967년 1월 6일 귀국 당시 오전 4시에 김포국제공항에 도착하여 인적이 드문 시간대였고 굉장히 추운 날씨라 미니스커트는 커녕 털코트를 입고 왔다고 한다. 또한 오전 4시는 야간통행금지 시간대라 통행금지가 해제될 때까지 공항에서 대기하다가 택시를 타고 서울로 들어왔다고 한다.
2.4. 결혼과 이혼
2번의 결혼과 이혼을 하였다.첫 남편은 가수 유주용으로, 김소월의 시에 노래를 붙인 <부모>라는 노래로 인기가 있던 가수였다.
유주용의 아버지는 독일 유학파 출신 공학 박사, 어머니는 독일 여성이었다. 부유한 집안 출신이었는데다, 경기고등학교[4]와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물리학과를 중퇴한 수재이기도 하였으며, 애초에 가수를 하게 된 계기도 서울대학교 교내 장기자랑 대회에서 노래로 1등을 하게 된 일이었다. 그리고 이 때 20살의 윤복희를 만나게 된다.
무릎팍도사에서 말하길 두 사람의 약혼식은 윤복희 본인만 모르는 상태에서 서프라이즈로 진행되었다고 한다. 당시 TBC에서 생중계한 윤복희의 특집 콘서트 도중 게스트로 유주용이 출연했는데, 공연 중간 MC인 곽규석이 갑자기 두 사람을 무대로 부르더니 바로 약혼식을 진행했다고… 본인은 당황했지만 이미 생중계되어버렸고 언론에서는 두 사람이 곧 결혼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결혼까지의 절차도 빠르게 진행돼서 결혼식 당일 머리만 감고 후다닥 결혼식장으로 뛰어갈 정도였다. 두 사람은 결혼식을 치른 뒤 곧바로 시가와 함께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다.
두 사람의 결혼생활은 갑자기 이루어진 것 치곤 굉장히 순탄했고, 시가로부터도 많은 애정을 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어린시절부터 지독한 가난 때문에 일찍 연예계에 뛰어들어야 했던 윤복희는 결혼을 하면 전업주부가 되어 연예인 생활을 접으려고 했는데, 유주용은 자신보다 훨씬 재능이 뛰어난 아내를 서포트하는 것이 낫다는 생각을 하고 본인의 가수 생활을 정리한 뒤 윤복희의 매니저를 자처하였다. 이러한 유주용의 행동에 윤복희는 크게 실망하게 되고, 점차 결혼생활에 회의를 가지게 되었다.
그 이후에도 몇 년간 결혼생활을 유지해왔지만, 1975년 TBC에서 주최한 특집 콘서트 출연을 위해 국내에 머물던 중 남진이 인터뷰에서 했던 말이 와전되어 “저는 윤복희 씨를 사랑합니다” 라는 자극적인 헤드라인으로 기사가 나게 되고, 이게 미국에까지 전해지면서 부부의 결혼생활은 끝을 맺게 된다. 본인의 회고로는 특집 콘서트를 끝내고 LA로 돌아갔을 때, 입국장에서 마중나온 남편이 스캔들 관련 기사가 실린 신문을 그녀의 앞에 들이밀었고 이 후에도 계속 예민한 태도를 보여주자 자신에 대한 사랑이 나약해졌다고 생각해 홧김에 이혼을 결정한 것이었다고 한다. 두 사람은 미국에서 이혼절차를 밟았으며 이 후 윤복희는 대한민국으로 귀국하게 된다.
귀국 후인 1976년, 스캔들의 주인공이었던 남진과 재혼했으나 3년 뒤인 1979년 다시 이혼하였다. 이 결혼생활에 대해 당시 워낙 루머가 많이 퍼져 남진이 잠시 국내활동을 중단해야 했을 정도로 파급력이 컸었는데, 남진이 윤복희를 폭행했다는 찌라시나 남진이 윤복희를 집에서 내쫓았다는 식의 루머가 돌았다. 그러나 윤복희 본인의 인터뷰에 따르면 남진은 윤복희를 진심으로 사랑했기에 자신에게 아주 헌신적이었다고 한다. 문제는 본인이 남진과 결혼한 건 사랑해서 결혼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의심했던 전 남편에게 심정적으로 복수하려는 목적으로 남진과 결혼한 것이었고 본인 스스로 ‘남진의 순진성을 이용했다’ 고 표현했다. 당연히 사랑으로 맺어진 관계가 아닌 부부생활이 순탄하게 흐를리가 없었고, 결국 자신의 행동에 큰 죄책감을 느낀 윤복희가 먼저 이혼하자고 제안하며 가진 재산과 집을 모두 남진에게 주고 홀로 짐을 챙겨 본가로 돌아갔다고 말했다.
이혼한 지 50여년 가까이 된 현재까지도 남진에 대해 매우 미안하게 생각한다고 심정을 고백했다.
남진과 이혼하고 얼마 뒤, 전 남편인 유주용이 다시 재결합하자고 제안했으나 윤복희 본인이 자신의 철없는 생각으로 2명의 남자에게 상처를 줬다는 사실에 부끄러워하며 이 제안을 거절했다고 한다. 그 후 윤복희는 다시 결혼하지 않고 쭉 혼자 살았으며 유주용은 미국에서 일반인 여성과 재혼했다.
참고로 무릎팍도사에 출연했을 때 윤복희가 자신의 결혼생활에 대한 속내를 전부 이야기했는데, 민감한 주제이다보니 강호동도 매우 조심스러워하며 진행을 했고 남진은 아예 실명을 언급하지 않고 ‘70년대 톱스타’ 라고 돌려서 말했다.[5]
2.5. 원로 가수로서
김영철이 윤복희의 성대모사로 히트를 친 적이 있고, 윤복희는 이에 대해 기분나쁘거나 하지 않느냐? 라는 MC 의 말에 오히려 재밌고 좋다며 TV에서 김영철과 함께 듀엣으로 성대모사를 한 적이 있다.K팝 스타 시즌5 엔딩 무대에서 탈락한 참가자들과 함께 여러분을 부르며 화제가 되었다. 제작진 측에서 심사위원들에게도 출연사실을 비밀로 했다고 한다. 이 때문에 심사위원들이 윤복희를 보자마자 놀라서 기립한 뒤 정중한 자세로 노래를 경청하기도 했다. 출연한 이유는 아마도 참가자 중 한 명인 유제이가 경연무대에서 여러분을 불러 호평을 받은 것에 착안하여 제작진이 섭외한 것으로 보인다. 여담으로 이 무대에서 피아노 반주는 바로 직전 시즌에서 3위를 기록한 참가자인 이진아가 맡았다. 출연 영상
2016년 8월 기준 70세임에도 트위터에서 직접 셀카봉으로 인증을 했다. # 이에 많은 네티즌들이 젊은 인생을 사는 그의 행보에 박수를 보냈다.
2022년 2월 17일 방송된 MBN '특종세상'에 윤항기가 출연해 윤복희가 몇년전부터 삼차신경통을 앓고 있다고 밝히며 "건강이 안 좋다. 여러 가지로 걱정을 많이 하고 있다. 요즘에도 몸이 안 좋아서 활동을 못 한다."고 언급했다. 이후 전화통화에서 윤복희는 "(건강은) 많이 좋아졌다. 이제 살만 찌면 된다"고 근황을 전했다. #
3. 논란
3.1. 빨갱이 발언 구설수
2016년 11월 29일, 자신의 트위터에 "대한민국을 위해 기도합니다. 내 사랑하는 나라를 위해 기도합니다. 억울한 분들의 기도를 들으소서. 빨갱이들이 날뛰는 사탄의 세력을 무리처[6]주소서라는 트윗을 올린 것이 크게 논란을 빚었다.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위한 촛불집회에 참여한 국민들을 대상으로 '빨갱이', '사탄의 세력'이라고 묘사한 것이 아니냐는 것.
윤복희 자신의 노래를 여러 번 금지곡으로 만들고 미니스커트를 못 입게 막는 등, 제4공화국 당시의 군사독재정권과 날선 대립각을 세우고 집요하게 괴롭혔을만한 사람이 쓴 트윗이라서 더더욱 큰 충격을 안겨주었으며,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자 트윗을 삭제했지만 이미 캡처로 일파만파 퍼졌다.관련 기사
윤복희는 일간스포츠와의 전화 통화를 통해 평화적인 해결을 바란다는 뜻에서 올린 글이며, '빨갱이'는 편과 세력을 가르는 이들을 가리킨 말이라고 해명하였다.[7] 논란이 되자 윤복희는 당일 전화기를 꺼두는 등 칩거에 들어갔다. 윤복희 측 관계자 역시 매일경제신문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해당 글은 특정인이나 특정 세력을 암시한 것이 아니라고 밝혔다. 윤복희 측, 빨갱이·사탄 발언 해명 "촛불집회 폄하 아니다" 그리고 본인도 촛불집회에 나갔다고 언급했다.
윤복희 빨갱이 언급 논란과 관련하여, 박사모 회원들 사이에서는 "애국보수들 천군만마 얻어"라는 응원글이 돌고 있다.
기타리스트 신대철은 이 사태에 대해 "윤복희 선배님. 이제 은퇴 하세요. 촛불드는 후배 빨갱이 사탄 한 마리의 고언입니다."라는 반응을 보였다. 다른 연예계 쪽에서는 이번 논란에 대해 굉장히 안타까워하며, "남은 여생 편안히 보내시라"고 하며 언급을 회피하는 중이다.
12월 2일에는 '빨갱이'라는 표현이 자신의 세대에서는 나쁜 것을 지칭할 때 습관적으로 몽뚱그려 쓰는 말이었으나, 레드 콤플렉스와 관련되어 잘못된 표현임을 깨달았다며 트위터를 통해 사과했다.
12월 29일 자신의 sns에 "최근 저를 괴롭히던 정치가가 공연을 못하게 해서 극장 측이 어이없게 관객들의 표 값을 다 물어줬다." "박 대통령 내려오라"라고 말하면 공연하게 해 주겠다는 압력을 받았지만 그렇게 할 수 없다고 했다는 글을 올렸다. 그 정치인이 누구냐고 묻자 "정치인 이름을 공개할 수 없다. 내가 한국 떠났으면 좋겠냐?" 라며 정치인의 이름을 밝히는 것을 거부했다.관련기사
결국 윤복희의 주장은, 자신의 발언 때문에 탄핵을 지지하는 성향의 어느 정치인이 자신의 공연을 막고 '박대통령 하야하라'라는 말을 하면 공연을 하게 해 주겠다고 했다는 얘기다.
허나 인터파크 측에서는 '윤복희의 SNS 발언 논란 때문에 취소된 것'이라고 반박했다. 관련기사 예매율도 높지 않았는데 논란이 커지자 기획사에서 취소했다는 것.
4. 작품
4.1. 노래
- 여러분 (작사 : 윤항기 / 작곡 : 윤항기)
- 왜 돌아보오 (작사 : 윤항기 / 작곡 : 윤항기)
- 나는 당신을 (작사 : 윤항기 / 작곡 : 윤항기)
4.2. 뮤지컬
국내 뮤지컬계의 대모로 존경을 받고 있으며, 특별히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의 마리아 막달레나 역을 수십 년간 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빠담빠담빠담
- 피터팬
'어린이여 나와라 어린이여 모여라'로 시작하는 피터팬 노래는 이 뮤지컬 수록곡이다. 이 인연으로 윤복희는 1990년에 방영했던 일본애니메이션 피터 팬의 모험 MBC판 오프닝곡을 부르기도 했다. 같은 가수가 불러서 헛갈리기 좋은데, 이곡은 '꿈과 모험이 있어요'로 시작한다. 윤복희는 2010년대에 자신의 팬들 태반은 '피터팬 팬 어린이였던 이들'이 90%라고 밝힌바 있다. 윤복희, "공연 관객 대부분 '피터팬' 팬들이 올 것 같다" 우리나라 배우로서는 최초로 브로드웨이에 진출했던 이소정 역시 윤복희의 피터팬을 보고 뮤지컬 배우로서의 꿈을 키웠다고. - 뮤지컬[8]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
1980년 초연에서 여자 주연인 막달라 마리아 역할을 맡았다. 극단 태.멘[9]에서 올렸다. 당시 캐스팅은 예수 역 이종용[10], 유다 역에 추송웅[11], 빌라도 역에 유인촌[12]과 박상원 등. 상세는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 문서 참조.
4.3. 영화
- 곰 - 1959
- 바람 부는 날에도 꽃은 피고 - 1987
- 창밖에 잠수교가 보인다 - 1985
- 죽으면 살리라 - 1982
디즈니 애니메이션 장편 영화의 한국어 더빙판에서 주로 할머니 역할의 노래로 자주 참여하였다.
- 미녀와 야수(애니메이션) - 포츠 부인(노래)
- 포카혼타스(애니메이션) - 버드나무 할머니(노래)
- 노틀담의 꼽추 - 라벤느(연기, 노래)
- 뮬란 - 할머니(노래)
- 공주와 개구리 - 마마 오디(연기, 노래)
- 신데렐라 - 요정 대모(노래)
4.4. TV
- 패티김 쇼 - 2012
- 불후의 명곡 전설을 노래하다 - 2011
- 뉴스쇼 '판' - 2011
- 승승장구 - 2010
- K팝스타 시즌5 - 2016
- 판타스틱 듀오 - 2016
- 불후의 명곡 전설을 노래하다 - 2018
- 눈이 부시게 - 2019
[1] 태위공파 22세손, 시조 34세손 ○기(○基), ○균(○均) 항렬이다.[2] 희극인이자 작곡가, 가수, 배우. 1957년 심장마비로 사망.[3] 최승희의 수제자 출신 무용수. 1952년 지방공연 도중 심장마비로 사망. 당시 윤항기는 10세, 윤복희는 7세였다.[4] 사회자 김동건과 동기이다.[5] 강호동이 “그 분은 여기 있는 우리 4명(강호동+유세윤+올라이즈 밴드+윤복희)을 합한 것보다 더 유명한 분‘ 이라고 조금 더 자세하게 설명을 하긴 했다.[6] 실제 트윗에도 이렇게 오타가 있었다.[7] 'SNS 논란' 윤복희 해명 "평화 집회 악용하는 세력이 사탄" - 일간스포츠.[8] 일반적인 대사는 없고 노래만으로 진행하는 송스루 뮤지컬. 초연 당시 포스터에는 "록 오페라"라고 표기되었다.[9] 성경 첫 구절과 마지막 구절 태초에... 아멘. 에서 따 온 이름. 개신교 신자 배우 위주로 이루어진 종교 색채가 강한 극단이었다.[10] 가수 겸 목사. "겨울에 태어난 아름다운 당신은~"으로 시작하는 노래 <겨울아이>가 바로 이 사람이 부른 노래다. 현재 미국에서 사역 중이다.[11] 한국 연극계에서 모노드라마의 대부로 일컬어졌던 인물. 1985년에 세상을 떠났다. 세 명의 자녀를 뒀는데 막내딸이 배우 추상미다.[12] 태멘 멤버들은 개신교 신자가 주축이었으나, 유인촌은 가톨릭 신자였다. 유인촌의 친동생이 천주교 서울대교구 보좌주교로 재임 중인 유경촌 디모테오 주교일 정도로 집안 전체가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다. 훗날 이명박과 함께 지내면서 개신교 교회에 나가다가 이후에 다시 가톨릭으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