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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4 도쿄 올림픽/폐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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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4 도쿄 패럴림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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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와 덴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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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ux de la XVIIIe Olympiade Tokyo 19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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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영상3. 내용4. 사용 음악5. 반응 및 평가6. 기타

1. 개요

현지시각 1964년 10월 24일[1]일본 도쿄국립 카스미가오카 육상 경기장에서 개최된 1964 도쿄 올림픽 폐회식의 내용을 정리한 문서이다.

2. 영상

[nicovideo(sm24764686, width=640, height=360)]
IOC 공식 계정 영상 폐회식 라디오 중계 영상

3. 내용

현지시각 기준 오후 5시에 시작하였다. 금일에 국립 카스미가오카 육상 경기장에서 열린 승마 경기가 종료되자 마자 경기장은 폐회식 준비에 돌입했고, 준비를 모두 마치자 쇼와 덴노고준 황후가 참석해 식이 본격적으로 시작하였다.

저번 개회식에 참석하였던 당시 IOC 위원장이었던 에이버리 브런디지 위원장과 도쿄 올림픽 조직위원장 야스카와 다이히로가 이번 식에도 다시 참가하였다. 또한 당시 일본 총리였던 이케다 하야토도 이번 폐회식에 참석하였다.[2]

쇼와 덴노가 경기장에 입장하자 마자 바로 기미가요가 연주되어 관객의 기립을 유도했고, 이후 개회식에서도 선수 입장식에서 사용한 '올림픽 마치(オリンピック・マーチ)'[3]가 연주되며 선수 입장식이 시작하였다. 플랜카드는 저번 식에서도 담당했던 방위대학교 학생들이 다시 들었다.

당시에는 선수 입장식이 진행될 때 선수들은 발을 맞추고 마치 군대의 열병식 하듯이 정자세로 행진해야 했다.[4] 예정대로라면 이번 폐회식 선수 입장에서도 그런 식처럼 행진할 예정이었는데, 갑자기 선수단 전원이 안내위원의 명령을 듣지 않고 그냥 쏟아져 나와 버렸다.[5] 모든 경기를 끝마쳐 이제 집에 갈 일만 남았던 젊은 선수들이 '이번 폐회식이라도 제대로 즐겨 보자'라는 마인드로 정렬하지 않고 어깨동무를 하며 나와 버린 것이였다. 당시 보수적이고 제식적이였던 행진과 매우 대비되는 이 모습은 사람들에게 큰 임팩트를 주었고, 조직위 입장에서도 굳이 이 좋은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고 싶어하진 않았으므로 행진하는 선수단을 그저 내버려 두었다.

선수단은 일장기를 들던 일본 기수인 '후쿠이 마코토'를 번쩍 들어 어깨 위에 올려서 다녔으며,(위 IOC 공식 영상의 썸네일) 서로를 카메라로 찍어 주거나, 경기복을 입어 트랙을 질주한다거나, 행진곡을 연주 중인 악단 앞에 가서 마치 자기가 지휘자인 것처럼 우산을 들어 연주하는 ... 등의 여러 기행을 선보였고, 국적이나 나이, 성별, 계급, 인종 등을 가리지 않고 모두 하나가 되어 걸어가는 이 모습은 일본 조직위나 세계 시민들에게 평화의 제전이라는 올림픽의 추구 정신을 단단히 각인시켰다. 이후 이러한 모습은 세계인들에게 매우 큰 호평을 받았고, 이때부터 폐회식 선수단 행진은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치뤄지게 된다.

선수단 입장식이 종료되고, 관례대로 초대 올림픽 개최국인 그리스의 국가, 개최국 일본의 국가, 그리고 차기 올림픽 개최국인 멕시코 국가가 연주되며 전광판 위의 깃대에 세 국가의 국기가 계양되었다. 이후 도쿄 올림픽 조직위원장 야스카와 다이히로의 감사 인사, IOC 위원장 에이버리 브런디지의 폐막 선언이 진행되고
15일 동안 타오르고 있었던 성화가 서서히 꺼졌다. 또한 올림픽 찬가가 연주되며 오륜기가 자위대원에게 내려져 경기장을 떠났고, 이윽고 사람들이 촛불을 흔들며 반딧불의 빛이 연주되었다. 경기장 전광판에는 'SAYONARA'[6] 문구가 출력되었고, 4년 뒤에 다시 1968 멕시코시티 올림픽에서 만날 것을 고했다.

반딧불의 빛 합창이 끝나고 다시 경기장에 불이 켜지며 방금같은 분위기 속의 행진이 시작되었고, 선수단 전원은 관객들의 작별과 환대를 받으며 경기장을 떠났다. 경기장에는 이번 대회를 축하하며 불꽃이 터졌고, 경기장 내 일동은 이 모습을 지켜보며 여운에 빠지기도 하였다.

4. 사용 음악

5. 반응 및 평가

인간은 4년마다 꿈을 꾼다.(人間は4年ごとに夢を見る)
- 1964 도쿄 올림픽 기록 영화 'Tokyo Olympiad' 中 -
'본래 정렬해서 입장하기로 했지만, 자유분방이 돼서 입장했다.'라는 일화가 마음에 든다.
1964 도쿄 올림픽 폐막식 기록 영상 중 한 댓글의 어록

자유분방한, 한편으론 어지럽혀진 갑작스러운 선수단 행진은 일본, 아니 세계적으로 큰 호평을 받았고 이는 올림픽 폐회식 역사에 영향을 끼쳐 이후 선수단 입장 시에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시행되도록 조장하고 있다. 또한 당시를 기억하는 일본인들에게 매우 깊은 추억으로 남았으며 이번 올림픽은 앞으로 무지막지하게 발전할 일본의 역사상 최대 호황기의 시작이었기 때문에 현재까지도 많이 회자되고 있는 이벤트였다. 특히 성화가 꺼지거나 반딧불의 빛을 부르며 모두 촛불을 흔드는 모습은 매우 큰 여운을 남겼다 평가받았고, 이번 이벤트의 성공으로 일본의 위상이 높게 올라가 공식 선진국 반열에 진입하는 발판이 되었다. 일본은 이번 올림픽의 성공 이후 오사카 박람회2차례의 동계 올림픽을 개최하고, 56년 후인 2020년[7]에 다시 도쿄하계 올림픽이 돌아온다.

6. 기타

  • 잠비아는 개막식 입장때 북로디지아로 참여했지만, 폐막식 입장때가 마침 독립한 날이라 새로운 국가의 플랜카드와 現 잠비아 국기를 들고 입장했다.



[1] 올림픽 대회는 통상적으로 16일 동안 치뤄지지만, 이번 대회에서는 하루 더 짧은 15일 일정으로 정해져 개회식 그 다다음주 토요일에 시행되었다.[2] 여담으로, 올림픽이 치뤄지기 약 1달 전인 1964년 9월 9일에 그는 이미 일본 국립 암 연구센터에 입원해 후두암 진단을 받고 꾸준히 치료를 받고 있었으나, 이미 암이 많이 진전되었기 때문에 입원을 계속 유지할 것을 권고받았다. 그러나 이 사실을 알릴 시 정계에 큰 변동을 일으킬 것이 뻔했기 때문에 알리지 않았고, 이번 대회 개회식과 폐회식에는 아픈 몸을 이끌고 병상을 나와 직접 참가하였다. 이후 폐회식 그 다음 날인 10월 25일에 건강 악화로 인해 공식적으로 총리직 사임을 발표 및 사토 에이사쿠를 차기 자민당 총재로 지명하였으며, 이듬해인 1965년 8월 13일 향년 65세를 일기로 타계한다.[3] # 일본에서 굉장히 유명한 올림픽 노래로, 이후 열린 2020 도쿄 올림픽 폐회식에서도 선수 입장에 이 노래가 사용되었다.[4] 1964 도쿄 올림픽 개회식의 선수 입장 모습[5] 사실 국적, 신분, 성별 등에 상관 없이 모든 선수단이 같이 행진한 사례는 1956 멜버른 올림픽 폐회식에서도 있던 일이었다. 그러나 이를 두고 볼 수 없었던 IOC 측은 1960 로마 올림픽 폐회식에서는 더 엄격한 규율과 통제 속에서 선수 행진을 지시했고, 다시 자유로운 분위기 속의 선수단 행진을 보고 싶었던 당시 일본체육협회 식전부장 마쓰자와 이치즈루(松沢一鶴)가 최대한 선수들을 폐회식까지 잡아두기 위해 선수촌 숙박비를 일본 측이 내주는 공약 등을 배풀었다. 이에 따라 대부분의 선수들은 조기 귀가하지 않았으며, 폐회식에서 선수단의 이런 모습을 볼 수 있었다.[6] 파일:sayonara_1964.png일본어로 작별을 뜻하며, 오랫동안 만나지 못하는 상대에게 쓰는 말이다. 2020 도쿄 올림픽 폐막식에선 이 문구를 오마주해 고맙다는 뜻의 '아리가토' 문구를 내보냈다.[7] 코로나 팬데믹으로 1년 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