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04-02 19:50:15

A Beat 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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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식명칭 A Beat C/A Beat-C/A-Beat-C
업무 음악 레이블, 작곡, 매니지먼트
전문 장르 유로비트, 이탈로 디스코
설립일 1990년 10월
위치 이탈리아
소유자 지안카를로 파스퀴니, 알베르토 콘티니
활동여부 활동 휴지

1. 개요
1.1. 설립 초
1.1.1. 슈퍼 유로비트로의 본격적인 참전
1.1.1.1. 초창기 SEB에 수록된 A Beat C의 주요 수록곡들
1.2. 1990년대 중~후반1.3. 2000년대 초~중반1.4. 레이블 말기
2. 전체적인 평가
2.1. 레이블 휴지 후

Time, Asia(The Factory Studio)와 함께 90년대 유로비트 붐을 성공적으로 이끈 초창기 유로비트의 역군

1. 개요

A Beat C는, 이탈리아이탈로 디스코, 유로비트 전문 레이블이다.

1.1. 설립 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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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80년도 중~후반, 지안카를로 파스퀴니는 타임 레코드에서 중요한 보직을 차지할 정도로 그 비중이 상당했다. 그런 그는 새로 발표하기 위해 데모 곡을 제작하는데, 그 데모 테이프가 외부로 유출되어 같은 레이블 내에서 비슷한 코드의 곡이 발표되기에 이른다. 그런 해프닝이 생기자 그는 1989년부터 타임 레코드의 프로듀서 직과 겸임해서 하던 Flea 레코드로 본격적으로 이적을 시작했고, 잠시동안 Flea 레코드에 재직하다 복합적인 요소로 인해 독립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그는 1990년에 자신의 개인 스튜디오인 Rodgers Studio를 설립하게 되고, Discomagic 레코드의 A&R이자 메탈 밴드 'Bulldozer'의 베이시스트 겸 보컬인 알베르토 콘티니를 만나 그와 같이 Rodgers & Contini 레코드를 세운 뒤 본격적으로 독립하기에 이른다.

그렇게 독립한 지안카를로에게 일본의 비트프리크라는 소형 음반사가 정식 제휴를 요청해왔고, 비트프리크의 임원이었던 마츠우라 마사토[2]와 잘 알고 지냈던 지안카를로는 자신의 이탈로 디스코 프로듀싱 경력을 살려 새로운 컴필레이션 앨범에 참여하기로 결정, 동년 10월에 비트프리크와 최초로 정식 계약을 맺게 된다.

1.1.1. 슈퍼 유로비트로의 본격적인 참전

본래 Super Eurobeat는, 지안카를로가 재직했었던 타임 레코드가 자사의 이탈로 디스코 곡을 수록하는 형식으로 제작된 일종의 기획 앨범(컴필레이션)이었고, 비트프리크가 'Super Eurobeat'의 판권을 구입해 경쟁사인 알파 레코드의 That's Eurobeat에 대항하기 위해 2집부터 8집까지는 논스톱 이탈로-디스코 앨범이라는 지금보면 해괴한(...)[3] 컨셉으로 밀고 나갔었다. 하지만 이에 부족함을 느낀 비트프리크 측에서는 군소 레코딩 회사와 타임 레코드의 곡이 아닌 '새로운' 회사의 유입을 원했고, 시기 적절하게 비트프리크와 계약을 맺어 A Beat C를 새로 차린 지안카를로가 주변의 지인들을 불러모아 A Beat C가 본격적으로 Super Eurobeat 시리즈에 뛰어들게 된다.
1.1.1.1. 초창기 SEB에 수록된 A Beat C의 주요 수록곡들
A Beat C의 첫번째 곡이며, 보컬은 키아라 델 피리가 맡았다.[4] 애수 유로비트의 기초적인 틀을 잡았다는 평을 받으며 매니아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는다.

타임 레코드 시절부터 준비해오던 지안카를로의 곡이며, 우여곡절 끝에 발매되었다. 발매 초 공격적이고 Bad Desire와 같은 고BPM[5]의 곡조는 상당한 히트를 치는 데 성공한다.

슈퍼 유로비트 10집에 실린 곡으로, 지안카를로의 부인인 알렉산드라 미르카 가티의 친구인 엘레나 고비 프레나티가 본격적으로 A Beat C에 참여하는 계기가 되는 곡이다. 이 곡 또한 당시 무명이던 프레나티가 스타덤에 오르게 할 정도로 상당한 인기를 구가하였다.


* King & Queen - King And Queen
알렉산드라 미르카 가티, 키아라 델 피리, 엘레나 고비 프레나티가 유닛을 이루어 발표한 곡으로 이 곡을 통해 A Beat C가 본격적인 위세를 넓혀 나갔다고 평가받는다.

1.2. 1990년대 중~후반

이후에도 A Beat C가 영입한 작곡가들과 보컬들은 해가 갈 수록 늘어났는데, 지안니 코라이니, 안드레아 레오나르디[6], 마우리지오 데 조리오, 토마스 마린 등 걸출한 보컬리스트와 작곡가들이 영입되어 초창기에는 거의 독과점에 가까웠던 Time 레코드의 세를 빠른 기간 안에 따라잡을 수 있었다.

하지만 A Beat C 또한 세력이 거대해지면서 상대적으로 소외되어가는 작곡가와 보컬들이 있었고, 이들이 타임 레코드를 벗어나고자 하는 세력들과 응집되어 1995년부로 델타 레코드를 세워 독립하기에 이른다.

또한 1980년대부터 지안카를로와 막역지간의 사이였던 지노 카리아 또한 자신만의 세력이 필요하다고 체감했고[7], 타임 레코드 산하에서 초창기 테크노, 하드코어 음악을 제작하던 다비데 디 마르칸디토와 A Beat C에서 알고 지낸 에멘지아 소멘지-스테파노 카스타그나 부부와 함께 1996년에 바이브레이션을 설립해 독립하는 등, 잠시동안 그 위세가 주춤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시기 적절하게 2차 유로비트 붐이 일본에서 시작되었고, 2차 유로비트 붐의 후반기에 이니셜 D의 애니메이션에 양질의 곡들을 수록해 90년대 후반에는 타임 레코드와 더불어 업계 투 톱으로 발돋움한다.

1.3. 2000년대 초~중반

3차 유로비트 붐 시기에는 Night Of Fire를 중심으로 급성장한 델타와, Mad Cow와 Dancing At Twinstar로 성장한 Hi-NRG Attack에 비해 조금은 아쉬운 성과를 보여주었지만, 업계에서 가장 큰 회사라는 이름값과 함께 Disney Eurobeat 3연작을 히트시켜 대중적인 인기를 어느정도 끌어올리는데 성공하고, 이러한 시도가 상당히 잘 통하여 2000년 일본 골든디스크 어워드 올해의 기획앨범 부문에서 Super Eurobeat 시리즈 참여 레이블 대표로 수상한다.[8]

또한 이탈리아의 유명 가수인 마테오 세티(Matt Land)의 영입이 성공적으로 치러져 그가 유로비트 계에서 스타덤에 오르게 되었고, 2002년 당시 대형 신인이었던 드니스 디 빈센조(Nuage)의 데뷔 또한 폭발적인 반응을 얻는 등, 그 위세는 2000년대에 가서도 잘 이어지는 같았다.

하지만 잘 나아가던 A Beat C 또한 슈퍼 유로비트 시리즈가 6강 체제로 재편된 2004년을 기점으로 세력이 하락곡선을 타기 시작했고, 결정적으로 레이블을 대표하는 '''지안카를로ᆞ알렉산드라 부부가 이혼을 겪으며 유로비트 시장의 주도권을 후발주자인 SCP 뮤직ᆞ델타 레코드에게 빼았겼다고 평가받는다.

1.4. 레이블 말기

2000년대 중반에도 지안카를로의 아들인 페데리코 파스퀴니와 지노 카리아의 아들인 쟈코모 카리아, 그리고 빈센조를 잇는 대형 신인 네오(Neo)와 스테파노 브란도니(Digital Planet/Spock), 마누엘 카라모리(Manuel) 등의 성과가 있기는 하였지만, 같은 시점에 곡풍 변화를 거친 타 레코드들의 퀄리티와 세력 성장에는 한없이 밀리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이러한 레이블의 상황을 체감이라도 한 것인지, 지안카를로는 2000년대 후반에 데뷔한 A Beat C 소속의 마지막 신인이었던 에블린 말페라리(Futura)와 함께 선파이어를 발족하고[9] 2009년을 끝으로 A Beat C에서의 신곡발표를 일체 중단,[10] 2010년에는 A Beat C 소속의 아티스트를 전부 선파이어로 이적시킨 뒤 레이블을 휴지시켰다. 초창기 시절부터 유로비트 시장을 선도했던 A Beat C는 불과 20년만에 막을 내린 것이었다.

2. 전체적인 평가

레이블 후반기에 가서는 그 세력이 후발주자에 밀려 아쉽게 마무리를 했지만, 그래도 일본에서 유로비트의 대중화와 유로비트 붐을 이끌어낸 것에 대해서 만큼은 높이 평가를 받는다.

2.1. 레이블 휴지 후

2011년에는 별도의 유령회사를 세워 지안카를로와 알베르토가 A Beat C 시절의 비공개 곡을 모은 자체적인 컴필레이션 시리즈를 발매하기도 하였으며, 레이블 휴지 후에도 한동안 슈퍼 유로비트 시리즈에 A Beat C 시절의 비공개곡을 수록하기도 하였다.


[1] 설립 당시의 심볼로, 1990년대 중반까지 쓰였다.[2] 일명 MAX 마츠우라로 잘 알려져 있으며, 후에는 에이벡스의 사장이 된다.[3] 지금의 슈퍼 유로비트는 논스톱 시리즈가 많이 발매되지 않고, 주로 Extended Version 위주로만 발매된다.[4] 데뷔 초부터 최근까지는 알베르토 콘티니의 딸(혹은 여동생)로 알려진 프란체스카 콘티니가 불렀다고 알려졌으나, 2015년을 부로 지안카를로가 이를 부정해 그 비하인드가 드러났다.[5] 당시에는 이탈로 디스코가 주류를 이루었고, 유로비트가 이탈로 디스코와는 다르다라는 개념은 마우로 파리나 Bad Desire를 발표하면서 부터 점차 생기기 시작한다.Wild Reputation 정도면 당시 기준에서는 고 BPM의 곡인 것.[6] 후에 델타 레코드를 세운다.[7] 당시 지노는 타임 레코드와 A Beat C 두 회사와 이중계약을 해 줄타기를 하는 상황이었는데다가 지안카를로와 이중계약 문제로 내심 사이가 틀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8] 2000년 올해의 프로듀서 상에는 델타 레코드의 안드레아 레오나르디가 수상한다.[9] 선파이어는 전부 에블린의 소유이다.[10] 단 로베르토 티란티(Powerful.T)의 경우에는 계약기간 문제로 2010년 중반까지 A Beat C 명의로 곡이 발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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