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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91년
"너무 얼떨떨해서... 저는 올해 크게 한 것도 없고, 다른 분들이 너무나 열심히 하셔서...축하해주려고 아주 마음을 먹고 있었는데, 너무 뜻밖의 큰 상을 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열심히 노력하는 연기자로 남겠습니다." (임하룡)
MC는 허참, 오미영
대상은 1989년에 이어 임하룡이 수상하면서 코미디대상 최초 2회 수상을 달성하였다. 사실 이 때는 한 해 내내 부채도사로 맹활약한 장두석이나 봉숭아 학당의 맹구 역으로 맹활약한 이창훈 정도가 가장 유력한 대상 후보였지만, 장두석은 남자 연기상에 그쳤고, 이창훈은 다음 해에서야 대상의 영예를 안게 된다. 이 해의 임하룡은 <추억의 책가방>의 주연 해롱이 역으로 맹활약하여 받은 것으로 보이는데, 정작 당시는 <추억의 책가방>이 시작한지 겨우 3개월 정도에 지나지 않았고, 유머 1번지가 종영되는 1992년 10월까지 방영했기 때문에 <추억의 책가방> 코너 방영일은 1992년이 더 길었다. 이 때문인지 임하룡은 첫 수상했던 1989년과는 다르게 이때는 수상자 호명 당시 다소 당황하고 얼떨떨한 기색이 역력했다. 수상 소감에서도 본인은 자신보다는 다른 연기자들의 활약이 더 출중했기에 축하하러 시상식에 참여했는데 생각지 못하게 큰 상을 받게 되었다고 술회하였다.
이 해 남자 신인상은 서인석, 여자 신인상은 <추억의 책가방>에서 해롱이를 짝사랑하는 오달자 역의 김현영이 수상했다. 남자 연기상은 상술했듯 부채도사 역의 장두석이, 여자 연기상은 원로 코미디언 최용순이 수상했다.
보기 드물게 유재석, 박수홍, 김용만 등 신인 개그맨들도 영상에 나왔던 해로 기억되고 있다. 사실 그럴 수밖에 없었던게, 이 해 12월에 SBS가 개국하면서 그 동안 KBS 코미디를 이끌었던 기존의 베테랑 개그맨들의 절반 가까이가 SBS로 이적해버리면서 그 빈자리를 신인들이 메꿀 수밖에 없던 사정이 있었다.
2. 1992년
"무슨 말씀을 어떻게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이창훈)
MC는 허참, 노사연.
봉숭아 학당에서 맹구로 초대박 활약을 한 이창훈이 대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남자 연기상은 오재미, 여자 연기상은 문영미가 수상했다. 그리고 남자신인상 후보로는 김국진, 김용만, 남희석, 박수홍, 양원경이 후보에 올라 김국진이 받았고 여자신인상 후보로는 엄정필, 장미화, 전효실이 후보에 올랐고 엄정필이 받았다.
사실상 KBS 코미디 황금기 끝물에 열린 마지막 코미디대상이었다.
3. 1993년
"참 오랫동안 했습니다." (이상해)
MC는 송지헌, 정은아. 대상은 이상해가 수상했다. 사실 이 해의 대상은 다소 공로상의 느낌이 짙다. 일단 당시 이상해는 40대 후반이긴 했으나 당시 기준으로는 사실상 준 원로 코미디언 위치에 있었고, 기존에 수상했던 심형래, 김미화, 김형곤, 임하룡, 이창훈 등보다도 한 세대 앞선 사실상 대선배의 위치에 있었다. 1989년에 원로 코미디언에게 주는 특별상을 받은 이력이 그것을 증명해준다. 그럼에도 이상해에게 대상을 안긴 것은 그만큼 맹구 이창훈 이후 한 해를 지배하다시피 했던 KBS 희극인 스타의 명맥이 끊어진 것과 다름없는 것이었고, 그나마 명랑극장에서 전통 희극 콩트로 노익장을 과시하여 오랫동안 KBS 코미디를 지킨 공로가 커서 주어진 것으로 풀이되었다. 그만큼 SBS의 개국으로 인해 KBS 코미디의 전성기에 큰 타격을 주었고, 그 후유증이 그대로 전해진 시상식이었다. 그렇지만 이 해 가을까지 KBS의 간판 코미디 코너였던 봉숭아 학당이 방영되었으므로 기울어져 가는 KBS 코미디 간판을 지킨 맹구 이창훈의 2회 연속 수상이나 맹구 다음으로 인기를 끌었던 오서방 오재미의 대상 가능성도 충분했음에도 당시만 해도 강호동 이전까지 KBS에서 2회 연속 대상 수상 전례는 없던 터라 제외된 이창훈은 그렇다 치더라도 오재미는 2년 연속 남자 연기상에 그친 것이 의문이다. 정작 오재미는 다음해에서나 대상을 탔지만, 활약에 비해 너무 늦게 탔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여하튼 이 해 부터 KBS 코미디의 암흑기가 시작되었다. 그것을 방증하려는 듯이 시상식 시간도 기존의 2시간 가까이 진행된 것과는 달리 겨우 1시간 20분만에 시상식이 종료되었다.(...)
여담으로 유재석이 이 해에 남자 신인상 후보에 오른 바가 있다. 그런데 정작 남자 신인상은 이 인간이 가져갔다.(...)
4. 1994년
"저를 사랑해주시는 모든 분들께 이 영광을 돌리겠습니다." (오재미)
MC는 송지헌, 오미란. 대상은 오서방으로 잘 알려진 오재미가 수상했다. 하지만 정작 활약에 비해 대상을 너무 늦게 탔다는 평이 우세했다. 간판 캐릭터인 오서방은 작년에 봉숭아 학당이 끝나면서 종료되었고, 오재미가 대상을 수상했지만 정작 이 해에는 무슨 코너로 어떤 캐릭터로 탔는지는 아무도 기억을 하지 못한다.(...) 심지어 지금까지의 대상 수상자들은 모두 남녀 연기상 후보에 있던 후보들 중 대상을 가져갔는데, 오재미는 이 해 연기상 후보에도 들지 못했고, 뜬금없이 대상을 수상해버렸다. 역시 작년에 수상한 이상해에 이어 그나마 KBS 코미디를 지킨 공로 때문에 수상을 한 것으로 풀이된다.[2] 여하튼 지난 해에 이어 KBS 코미디의 현실을 여실히 보여준 시상식이었다.
그리고 신인상, 작품상, 작가상, 특별상, 연기상, 대상 등으로 이루어진 기존의 시스템으로 시상식을 한 마지막 코미디대상이었다. 또한 1989년부터 1993년까지 쓰이던 기존의 트로피 대신 새 트로피 디자인으로 시상하였다.
5. 1995년
"본업은 코미디언이죠. 죽어도 코미디언입니다." (서세원)
코미디대상의 이름 대신 코미디 대축제라는 이름으로 진행되었고, 시상 부문도 'NG대왕상', '올림픽정신 실천상' 등 이색 시상식을 지향했다. 그 외에도 특별게스트상, 특별연기상 등 희극인이 아닌 비희극인들에게도 상을 시상하면서 연예대상의 중간 단계를 느낄 수 있다. 특별게스트상은 태진아가, 특별연기상은 슈퍼선데이에서 인기리에 방영된 시트콤 <금촌댁네 사람들>에서 맹활약한 김용건이 수상했다.
MC는 임성훈, 지수원. 임성훈은 89년 이후 6년 만에 코미디시상식 진행을 맡았다. 대상은 코미디 세상만사에서 사미인곡으로 맹활약을 했던 서세원이 수상했다.
1995년 시상식 이후 2001년까지는 코미디 부문의 시상이 이루어지지 않았고, 1996년과 1999년에 코미디 대축제가 진행된 바 있다.[3]
[1] 그래서 유재석의 첫 KBS에서의 시상은 10년 뒤인 2003년 연예대상에서야 최우수상 수상자가 되면서 이루어졌다. 그리고 2년 뒤에는 데뷔 14년 만에 친정에서 첫 대상이란 영예를 안게된다.그리고 유재석의 대상 콜렉션의 시작[2] 역시 공로상 격으로 대상을 수상한 이상해도 93년에는 그 역시 남자 연기상 후보에 들었었다. 그만큼 남녀 연기상 후보들 중 가장 뛰어난 활약을 한 사람이 대상, 그 다음으로 활약했던 남자 후보와 여자 후보가 연기상을 가져가는 KBS 코미디대상만의 시스템이었다.[3] 1997년과 1998년은 국가적인 위기인 IMF 사태의 여파로 인해서 열리지 못한 것으로 추정된다. 대신에 연기대상과 가요대상의 시간을 조금 늘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