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2-11 00:02:46

유머 1번지

유머1번지
유모어1番地
파일:humor1ban.jpg
파일:유모어1番地.png
방영 채널 KBS 2TV
방영 기간 1983년 4월 2일 ~ 1992년 10월 4일
공식 홈페이지 #

1. 개요2. 출연진3. 대표 코너
3.1. CF콩트 베스트53.2. Let's go 팝스3.3. 감초맨3.4. 감초의 전방3.5. 고독한 사냥꾼3.6. 괜찮아유3.7. 그는 이렇게 말했다3.8. 꼿꼿한 자세3.9. 꽃피는 봄이 오면3.10. 남 그리고 여3.11. 내일은 챔피언3.12. 농담 한마디3.13. 누가 예뻐요3.14. 다시 보고싶은 코미디3.15. 동궁마마는 아무도 못 말려3.16. 동작그만3.17. 맞벌이 부부3.18. 맨손의 청춘3.19. 밤이면 밤마다3.20. 백설공주3.21. 변방의 북소리 → 승리의 북소리3.22. 별당아씨3.23. 부채도사3.24. 북청 물장수3.25. 사재기3.26. 술마시는 남자3.27. 스타로 가는 마지막 비상구3.28. 심가이버3.29. 아르바이트 백과3.30. 아버지와 딸3.31. 알딸딸3.32. 어느 날3.33. 여자, 여자, 여자3.34. 여자들 마음3.35. 열녀문3.36. 영구야 영구야3.37. 유머 세계일주3.38. 이런 방법3.39. 이상해와 심형래의 폭소소동3.40. 장두석의 그 시절 그 노래3.41. 장밋빛 인생3.42. 제7병동3.43. 진중일기3.44. 차 마시는 여자3.45. 청춘을 돌려다오3.46. 추억의 책가방3.47. 충무로 차차차3.48. 캠퍼스학 개론3.49. 탱자 가라사대3.50. 팡파레를 울려라3.51. 필름공개3.52. 회장님 회장님 우리 회장님3.53. 60초 뉴스
4. 주요 유행어5. 몰락6. 여담

1. 개요

아름다운 여의도 KBS에~ 유머 1번지로 터 잡으시고~[1]

1983년 4월 2일부터 1987년 2월 28일까지 KBS 2TV 매주 토요일 저녁 7시 50분, 1987년 3월 7일부터 1991년 5월 18일까지 매주 토요일 저녁 6시 40분, 1991년 5월 26일부터 1992년 10월 4일까지 매주 일요일 저녁 6시 50분에 방영된 개그 프로그램. 동시에 1980년대를 대표했던 코미디 프로그램이다.[2] MBC의 <청춘만만세>와는 정통 희극이란 점에서 라이벌 관계였지만 시간대가 겹치진 않았다. 청춘만만세는 월요일 7시 프라임타임대였고, MBC의 토/일 프라임타임대는 그 유명한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 일요일밤의 대행진(일요일 일요일 밤에) 였던지라 KBS가 감히 비벼볼 대상이 아니었다.[3]

최초 방영시에는 '유모어 1番地'였지만[4] 1985년에 '번지' 부분이 한글로 바꿨고, 또 1986년 말기 외래어 표기법의 변경으로 인해 상기 제목이 되었다. 초기에는 단편 코미디 프로들로 구성되었다가 나중에는 고정 코너들을 선정하고 틈틈히 단편 개그 코너들을 투입하는 유연한 진행을 보였다.

이 진행은 동일 방송사의 프로그램인 개그콘서트의 전신이라고 볼 수 있지만 형식 면에선 오히려 쇼 비디오 자키 쪽이 더 가깝다고 봐야 한다. 스탠드업 코미디나 애드립 혹은 순간의 자극보다는 콩트나 코미디언들이 제대로 '코미디 연기'를 하는 희극 같은 분위기의 코너가 많았다. 1987년 초에 한 달 정도는 공개 코미디로 전향하다가 곧 원래대로 돌아왔다.

어쨌든 2024년에도 유머 1번지 출신 코미디언의 영향력은 어디 가지 않았다. 유재석, 김국진, 김용만, 박수홍, 남희석 등이 데뷔 시절 활동했던 프로그램이고, 이 프로그램이야말로 장수 코미디언의 등용문과 같은 역할을 했다는 사실 자체는 부정할 수 없다.

2. 출연진

이 작품으로 수 많은 스타들이 배출되었지만 그중에서 독보적으로 인기가 많았던 개그맨들은 심형래,,최양락, 김형곤이다. 이들은 개그 스타일도 모두 달랐으며[5] 단순히 일본 개그맨들을 카피하지 않고 본인들만의 오리지널리티가 살아있는 개그를 선보여서 인기를 얻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할 만하다. 실제로 기본적인 진행 대본은 PD가 작성하였지만 세부적인 대본의 작성과 편집은 해당 코너의 담당 개그맨들이 직접 참여한 당시로선 파격적인 프로그램이었다고 한다.

참고로 심형래, 최양락, 김형곤은 개그 스타일이 서로 달라, 함께 코너를 한 적이 거의 없다. 심지어 이 중 최양락과 김형곤은 개그 스타일 뿐만 아니라 모든 게 상극이라 주먹이 왔다갔다 하기까지 한 사이라서 같이 붙여 놓으면 절대로 안되는 사람들이었다.[6]

이 프로그램을 통해 한국개그의 대표적인 마스코트인 영구가 탄생하였으며 군대에 대한 풍자와 개그를 다룬 코너인 동작그만 역시 많은 사랑을 받았다.

워낙 오래된 방송이라서 초기에 병풍이었던 최양락이 나중에는 주역으로 오르는 등 부침이 심했다. 6개월이나 1년 정도 장수 코너를 제외하고 모두 갈아버리는 것으로 재탄생했다. 유튜브에서 찾아볼 수 있는 1986년 방송분과 1987년 방송분을 비교해보면 86년 이전 방송분은 군사독재 시대라 그런지 "이게 대체 뭐가 재미있지?"란 생각마저 들 정도다. 87년 이후 방송분은 지금 시각으로 봐도 나름 재미있는 개그 포인트라든가, 지금도 중장년층들이 기억하는 유행어가 있는 것과 대조적.[7]

출연진은 아래와 같다.

송해[8][9], 이상해, 배삼룡[10], 최용순, 고영수, 송영길, 임하룡, 김형곤, 전유성, 주병진[11], 최양락, 엄용수, 장두석, 김학래, 이성미, 정명재, 김정식, 이상운, 심형래, 이경래, 이선민, 지영옥, 김한국, 김혜정, 김미화, 이봉원, 조금산, 이경애, 임미숙, 김의환, 김용, 팽현숙, 한혜승, 곽재문, 박승대, 서원섭, 양종철, 조문식, 한정호, 김종국, 하상훈, 이현순, 김호남, 임인하, 김정빈, 오성우, 김황우, 성낙앙, 오재미, 김진호, 문정숙, 안숙희, 윤혜영, 이희구, 최형만, 이창훈, 배동성, 김지선, 김현영, 서현선, 서인석, 최영준, 문형주, 김찬, 김국진, 김용만, 김수용, 남희석, 박수홍, 양원경, 유재석, 최승경, 엄정필, 전효실 등이다.

3. 대표 코너

3.1. CF콩트 베스트5

방영기간: 1983년
출연 : 김형곤, 최양락, 주병진, 김학래, 이성미

3.2. Let's go 팝스

방영기간: 1983년
출연: 김광한, 이성미

3.3. 감초맨


방영기간: 1992년 4월 19일 ~ 8월 9일
출연: 장두석, 서현선, 엄영수, 배동성, 한정호, 전효실, 양종철, 서원섭, 김국진, 김수용, 김용만, 박수홍, 유재석, 윤기원 등

장두석이 슈퍼맨을 패러디한 <감초맨>으로 등장하고, 사건이 터지면 어김없이 끼어들어 어찌됐든 사건을 해결하는 코너.
오프닝.[12]
무슨 일이든~ 어떤 일이든~ 다아~ 해결해~
"감초맨!!!!!"[13]

오늘도 왁자지껄한 한 잡지사.
최선임자이자 부장 엄영수의 일 재촉이 있지만,
직원들은 그냥 자기들끼리 이런저런 노가리 수다.
그 와중에 잡지사에서 찐따 취급받는 장두석.
그런 장두석 귀에 감지된 어떤 사건.
장두석은 주저없이 밖으로 뛰쳐나간다.

사건 현장.
감초맨으로 변신한 장두석이 어디선가 날아와서 엎어지면서 등장한다.

감초맨의 자기소개 멘트.
''지옥의 싸움에 몸을 던진 이 시대 마지막 센티멘탈 휴머니스트, and 그리고 정의의 사나이, 감초맨!!!'' 그리고 감초맨의 호탕한 웃음.

그 멘트를 들은 주변사람들.
''아니? 감초맨???'' 이라고 반문.[14]

그리고 어찌어찌 사건해결.

사건해결 직후, 감초맨 혼자만의 시그니처 세레모니도 있다. 각 회차 끝부분에 감초맨이 하늘로 날아간 직후, 사진기자 배동성이 감초맨을 추적하면서 사진촬영을 시도하지만 번번이 실패(...)

악역 대장은 주로 양종철과 서원섭이 맡았고, 밑의 부하로는 김국진, 김수용, 김용만, 박수홍, 유재석, 윤기원 등이 돌아가면서 출연하는 형식이었다.[15] 그리고 악역들한테 괴롭힘을 당하는 역할들도 김국진, 김수용, 김용만, 박수홍, 유재석, 윤기원 등이 (돌려막기 식으로) 돌아가면서 맡았다.

잡지사에서 근무하는 장두석(감초맨), 서현선, 한정호의 삼각관계가 스토리의 주를 이룬다. 장두석은 서현선을 짝사랑, 서현선감초맨을 짝사랑하는 입장이다.

콩트 중반부부터 서현선이 한정호를 감초맨으로 착각하면서,[16] 서현선은 한정호와의 을 형성함과 동시에 장두석을 계속 무시한다. 그렇지만 마지막회[17]에서는 감초맨을 짝사랑하던 서현선감초맨=장두석 사실을 알게 되는 것으로 코너가 마무리된다.[18] 당시 방영분에는 따로 마지막회라는 부연설명이나 인사자막은 없었지만, 다음 주 방영된 유머1번지 회차[19]에서 감초맨 코너는 사라진 상태였다(...)

여담으로, 감초맨이 종영한 다음날인 1992년 8월 10일 새벽,[20]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 마라톤 부문에서 황영조가 금메달을 획득했다.

2024년 6월 16일부터, 유튜브[21]에 감초맨 편만 따로 편집되어 본격적으로 업로드되기 시작했다.[22] 그렇지만, 한창 업로드가 진행 중이던 2024년 7월 22일, 감초맨의 주역이었던 개그맨 장두석이 사망하면서 안타까움을 더하게 된다.

이후 2024년 8월 11일이 되어서야 감초맨 전회차 업로드가 완료되었다. 한가지 특이한 사항은,

3.4. 감초의 전방

방영기간: 1991년 9월 1일 ~ 10월 6일
출연: 심형래, 김정식, 엄용수, 양종철, 최영준


김정식이 감초 선생 역을 맡고 심형래가 바보 제자[25]로 나오는 코너. 그 외의 제자로는 엄용수, 최영준, 양종철이 등장한다. 한의원을 소재로 한 코너로서 이후 쇼 행운열차에서 심형래가 주축이 된 감초보감이나 심심보감 등의 원조 격 코너라 볼 수 있다. 주요 패턴으로는
  • 김정식이 제자들에게 질문을 하면 심형래 빼고 다 손을 드는데, 김정식이 이를 지적하면 심형래가 손을 들면서 다른 사람들이 다 내리게 되어 심형래가 지명된다. 이에 손을 원망하는 개그는 덤.
  • 심형래는 당연히 엉뚱한 대답을 하고 다른 제자나 김정식이 정답을 말한다.
  • 환자가 실려오면 심형래는 무조건 부검부터 하려고 든다.
  • 코너 마지막에는 간단한 한의학 상식을 알려주면서 끝.

그러나 이 코너의 핵심인 심형래가 SBS로 이적하면서 1달 만에 종영해버렸고, 심형래는 이적 3개월 만에 KBS로 복귀했다.

3.5. 고독한 사냥꾼

방영기간: 1989년 1월 ~ 1990년 6월 30일
출연: 최양락, 김종국

고정 출연자는 최양락(극중 이름은 최우빈)과 그가 자주 찾는 카페의 종업원(웨이터)을 연기한 김종국이었다. 최양락이 말그대로 여자들을 헌팅하는 일종의 픽업 아티스트인 시티 헌터로서 활약하는 이야기. 매번 단골카페에 나올 때마다의 독백인 "내가 이 카페를 자주 찾는 이유는, 이곳에 오면 뭔가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기대 때문이지" 멘트를 줄줄이 외우고 다니는 아이들이 많았다. 또한 웨이터 김종국이 주문음료를 받을 때, 최양락의 대답 ''커피! 아메리칸 스타일~'' 또한 전용멘트가 되어 나름의 유행어가 되었고, 심지어 나중에는 최양락이 미처 대답하기도 전에 웨이터 김종국이 그 멘트를 가로채는(?) 상황도 종종 발생하게 된다.[26]

그리고 그 당시의 미녀 연예인들이 상대역으로 자주 출연해서 더욱 화제가 되던 코너였다.

본인은 신사를 자처하지만 실은 백수에다가 작업도 늘 실패해서, 농촌 처녀에게 집적대다 농부 아저씨들에게 두들겨 맞고, 난폭운전 여성을 만나서 교통사고로 중상을 입고, 극도의 남자혐오증+폭력범 여성을 만나서 여성공포증에 걸리거나 여름 되면 납량특집으로 처녀귀신에게 얽히거나 여경에게 끌려가 부천서 지하실..에서 고문을 당하는 등 온갖 고생만 다한다. 무엇보다 한 에피소드에서는 인신매매범 일당인 여자에게 당해 새우잡이 어선에 팔려갔다. 나름대로 당시 이슈가 된 인신매매를 비꼰 멘트랄까. 그러다 보니 "에구에구에구 그 날 난 이렇게 저렇게 되었다."라는 독백성 멘트로 장식하는 게 현실. 참고로 이 멘트는 윤다훈이 진행하던 라디오 프로그램에서도 같은 제목으로 나왔었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지붕뚫고 하이킥(2010년) 이전 가장 충격적 결말을 보여준 프로그램이기도 하다. 마지막회에서 시티 헌터생활의 몰락으로[27] 업소에서 나온 최우빈이 승용차를 타고 어딘가로 가던 도중[28] S자 커브 구간을 지나다 시밤쾅하는 소리가 났고 이후에 행정복지센터에서 사망 신고가 수리되는 충격적인 결말이 나왔다. 다만 엔딩신에서는 그가 무사한 모습으로 명동에 나타나 똑같은 등장대사를 읊는 것으로 마무리되면서 또 한번 논란이 된다.[29]


KBS에서 지난 방송들을 올려줬다. 초반 방영분은 1989년 2월 11일치 하나뿐이고, 1989년 11월 4일치부터 몇 편이 빠진 채 순서대로 올라왔다.

종영 후 예우프로덕션에서 90분짜리 비디오용 극장판이 제작되었는데, 이상구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KBS 코미디 작가 유성찬이 각본을 썼다. 당시 기준으로는 19금을 먹었다. 이후 2011년 8월 25일 최양락과 함께 SBS 자기야 101회에 출연했던 팽현숙이 최양락이 마치 에로 영화에 출연한 것인양 표현하기도 했지만#1#2 실제로는 여성의 상반신 노출도 없을 정도로 수위가 약한 영화였다. 이후 최양락이 꼰대희 유튜브 체날에서 밝히기를 돈을 평소 버는 것 보다 더 준다고 해서 출연했으며 차마 말하기 부끄러운 흑역사라고 했다.

3.6. 괜찮아유

방영기간 : 1991년 5월 26일 ~ 10월 6일
출연: 최양락, 김학래, 이경애, 김지선 등


전형적인 충청도식 유머를 모티브로 한 코너. 배경은 당시 온양이다.[30] 김학래와 최양락은 실제로 각각 천안시, 아산시 출신이다. 처음에는 제목이 '반가운 이웃'이었는데 언제부터 괜찮아요의 충청도 방언인 '괜찮아유'가 되었다. 직설적인 말 대신 빙빙 돌리며 서로 속을 긁고 그 말에 서서히 열 받는 모습이 웃음 포인트. 처음에는 정다운 이웃이란 반어적인 제목으로 방영했다가 몇화만에 이 제목으로 달라졌다. 극 중 부부는 각각 양락이와 경애라는 아들딸이 있어서 극중에서 최양락은 양락이 애비이고, 이경애는 경애 애미이다. 가수인 송대관이 한번 카메오로 나오기도 했다.

처음에는 어수룩한 최양락을 김학래 이경애 부부가 찾아와서 골탕먹이는 기믹이었으나 중후반부로 갈수록 역할이 반대가 된다. 오히려 전반부에서 김학래에게 당한 것을 앙갚음이라도 하듯 최양락의 깐죽거림은 김학래를 아주 철저하게 희롱한다. 나중에는 최양락이 건들거리며 등장하는 장면만 봐도 웃음이 나올 정도.

특히 최양락의 필살기는 김학래 선친이 친일파였음을 거론하는 것인데 경애 할아버지(=김학래의 선친)는 그래도 일본 순사 나까무라랑 허구헌날 붙어다니면서(똘마니 노릇을 하면서)~~ 라는 말을 꺼내면 김학래가 어이! 하지마! 라고 버럭거린다.

마지막회에 양락이네가 서울로 이사를 가는데, 실제로는 주연 4인방 모두 서울방송으로 이적했다.[31]

무한도전 농촌 관련 특집에서 이 코너를 몇 번 오마주했는데 그때마다 평가가 매우 좋았다. 당연히 유재석이 최양락 포지션, 박명수가 김학래 포지션이었다. 나머지 멤버들은 적절한 추임새와 멘트로 박명수에게 깐족대는 유재석을 서포트했다. 또한 해피투게더 3의 메인 코너 "웃지마 사우나"에서도 이 상황극을 채용하였다. 여러모로 충청도 개그와 친일파 드립의 레전드였던 코너.

개그 콘서트 코미디 40년 특집으로 재구성된 바 있다. 최양락, 김학래, 박지선, 허안나가 출연. 박지선이 김학래의 마누라로 나오고, 허안나가 김학래의 딸인 김향자로 가수 세레나 허로 데뷔하여 금의환향한 것으로 나왔다. 여기서도 최양락이 친일파 드립을 치며 김학래의 속을 살살 긁는 게 백미.

뜬금없이 일본 만화 아빠는 요리사에 등장한다. 주인공 일미 씨네 가족이 1990년대 초반[32] 서울로 또 놀러가는데, 홈스테이 하는 주인집 아줌마 말버릇이 "괜찮아요~"다. 시기가 딱 이 코너 방영기 직후였기 때문에 우에야마 작가가 "괜찮아유"를 듣고 반영했을 가능성이 큰 대목.

2024년 최양락이 해당 코너에서 딴 동명의 유튜브 채널 최양락의 괜찮아유를 개설했다. 후배 개그맨 권재관과 함께 코너를 진행하며 주로 게스트의 발작버튼을 자극 시키며 깐족거리는 게 개그포인트이다.

여담이지만 1991년 추석특집 유머1번지 폭소가요제에서 코너 출연진 이였던 최양락, 김학래, 이경애, 김지선이 과테말라 출신 가수를 컨셉으로 참여했는데[33] 최양락이 무대에 나가기전에 대기실에서 갑자기 사망하는 황당하고 웃픈 설정이 나왔다. 결국 김학래, 이경애, 김지선만 무대에 나와 눈물의 열창을 하였다고... 슬픈감정(?) 때문이였는지 의외로 상을 받았다.

3.7. 그는 이렇게 말했다


방영기간: 1992년 2월 16일 ~ 10월 4일
출연: 김형곤, 이상운, 오재미, 성낙앙, 최승경, 남희석 등

잠깐의 휴식기를 가진 김형곤의 복귀작. 김형곤이 고대 그리스 철학자로 분하고 이상운, 오재미, 성낙앙, 남희석, 최승경 등이 제자로 나오는 시사풍자 코너였다. 탱자 가라사대에서 배경만 중국에서 그리스로 바뀌었을 뿐 포맷을 거의 그대로 가져왔다.

그래서 그런지 끝나기 전에 항상 그리스 신화의 최고신인 제우스한테 시사 풍자 내용이 담긴 기도를 올리는데, 그 기도가 끝나면 바로 마누라가 등장해서 구박을 했다(...). 그리고 마지막회 에서는 결국 이혼선언을 했다(...).[34]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유머 1번지에서 마지막으로 방영된 최후의 코너이기도 하다. 특히 마지막회 에서는 즉석으로 유머 1번지 고별사가 담긴 기도를 올렸다.

3.8. 꼿꼿한 자세

방영기간: 1984년
출연 : 송해

3.9. 꽃피는 봄이 오면

방영기간: 1990년 11월 3일 ~ 1991년 9월 1일
출연: 김형곤(왕손 역), 배삼룡(왕손 삼촌 역), 곽재문(합죽이 역), 이상운(대표 거지 역), 조문식(냄비 역), 서원섭(덩어리 역), 김진호(강골 역), 서인석(솥뚜껑 역), 최영준(촉새 역)

김형곤의 시사 코미디로 자칭 고려의 왕손이라는 거지 왕초 김형곤과 그 휘하 거지들이 세상사를 꼬집으며 벌이는 이야기다. 원로 코미디언 배삼룡도 이 코너에 참여했는데, 거지 왕초의 주책맞은 삼촌 역할로 나왔다. 항상 코너 마무리로 "꽃피는 봄이 오면... ***하겠지?"라고 약간은 기대를 담은 한마디씩을 남겼다.

회장님 회장님 우리 회장님의 외압성 하차에 따른 김형곤의 반발도 들어가서인지 풍자와 비판이 더더욱 노골적이었다. 오죽하면 1991년에 유머 1번지 결산 특별방송에서 출연진이 나와 "몇 해전만 해도 이렇게 찍다간 방송중지당하고 우리도 방송에서 사라졌을 걸요?" 라고 다들 쓴웃음지으며 이야기할 정도였다. 이를테면 거지 왕초인 김형곤이 지팡이를 들다가 부러지자 "지팡이가 썩었어! 썩었어! 이래놓고 뭐가 민중의 지팡이라는 거야?!" 라고 돌직구를 날려 경찰을 비판했다. 왕손 김형곤과 대표 거지 이상운의 관계는 대놓고 당시 대통령3당 합당으로 들어온 여당 대표의 풍자. 오죽하면 김형곤이나 등장인물들이 연말 방송 프로그램에 나와서 "몇 년전만 해도 이런 거 방영하다간 우리들 무사하지 못했죠"라고 씁쓸하게 웃었을 정도였다. 삼국지에 대한 토론도 나왔었는데 이때 거지 하나가 삼국지에서 통일을 김유신이 했다고 하자 김형곤이 "삼국지에서 통일을 무슨 김유신이 해? 조조가 했지..."라는 말도 하기도 한다. 물론 이건 웃기고자 연출된 것이고, 이 대사가 나오면서 녹음된 웃음소리가 나오고 다른 거지들이 이뭐병하는 얼굴로 쳐다보았다.

더불어 당시 이춘재 연쇄살인 사건에 대해 경찰도 깠다. 한 거지가 할머니 분장으로 한복입고 나오는데 저 거지 소굴에서 지하철이라며 상황극을 연기하는 거였다. 그 할머니가 경찰이라며 다른 역에서는 온갖 잘난척 하지만 막상 화성역이라고 적혀있는 곳에 도착하자마자 바람에 치마가 휘날리고 찍소리도 못하고 달아나는 걸로 경찰 무능을 은근히 꼬집어 풍자했다. 같은 사건을 놓고 만든 다른 상황극에서는 장가가려고 하는 농촌 총각이 맞선을 보는데 땅도 좀 있고 건실한 모습을 보여줘서 맞선이 잘 되어가는 와중에 남자 집이 경기도 화성이라는 이야기에 여자가 비명을 지르며 도망가버린다. 김형곤이 '화성에는 화성인이 사냐??'라며 한마디 하기는 했지만 사실 무시할 수 없는 정서였고 당시에는 화성연쇄살인사건으로 알려진 이 사건에 대하여 경찰의 무능을 비꼬는 거였다.

여담으로 .... 위에 영상에선 그냥 춤추고 각설이패가 신나게 노는 오프닝이지만 초반에 하던 다른 오프닝에선 김형곤이 바가지를 가득 가져와 해당 출연진이 풀숲에서 머리를 내밀때마다 머리를 치는데 바가지가 칠때마다 깨지는 오프닝도 있었다. 이는 어린이 교육상 좋지 않아 바꾼 듯 하다. 실제로 작중에서 출연진들 바가지로 머리를 많이 깼는데 어린이 교육상 좋지 않다는 언급을 하며 바가지 대신 물총으로 바꿨다.

1997년 1월 2일 신년특집 <코미디출발>에서 '품바! 봄에 돌아오다'로 일회성 리메이크된 바 있다.

3.10. 남 그리고 여

방영기간: 1987년 ~ 1988년
출연: 최양락, 팽현숙, 전유성

가부장적인 남자 철민(최양락)하고 순종적인 여자 현숙(팽현숙), 그리고 어리숙한 아저씨(전유성) 사이에 벌어지는 일을 다룬 코너. 유행어는 최양락의 "있을 때 잘해, 나는 봉이야~". 최양락-팽현숙은 실제 연인 관계로 발전했고 코너가 둘이 결혼하는 것으로 종영한 뒤 실제로 결혼하여 개그맨 1호 커플로서 개그계의 신성일 & 엄앵란이라 불렸다.

1987년 코미디연기대상에서는 역할을 바꿔서 최양락이 소심하고 순종적인 남자로, 팽현숙이 최양락을 구박하는 기가 썐 여자로 나와서 공연을 펼치기도 했다.

3.11. 내일은 챔피언


방영기간: 1990년 11월 3일 ~ 1991년 4월 13일
출연: 심형래, 임하룡, 양종철, 오재미, 김찬 등

심형래가 주인공으로 활약한 코너이다. 권투체육관을 무대로 챔피언을 꿈꾸는 젊은이들의 청춘을 그리고 있지만 실은 관장부터 관생들까지 전부 다 나사 하나 빠진 캐릭터들이다.

임하룡 관장은 작중 젊은이들을 지도하느라 고생중인 나만 정상인의 모습이지만, 원래는 머리를 치면 텅 빈 냄비 소리가 나고[35] 재정이 넉넉치 않아서 얼어붙은 집[36]에서 사는 전형적 개그 캐릭터다. 트레이드 마크인 콧수염과 더불어 작중에서 별명은 새우젓 관장. 심형래와 오재미가 관장이 사는 집으로 갔다가 놀라는 에피소드가 나오는데, 걸프전으로 인해 유가가 올랐는데 관원들이 관비를 안 내서 기름 못 때니 집이고 가구고 죄다 얼어붙은 것으로 설정 되었다.

최선임 양종철은 한국 라이트급 랭킹 13위라며 자랑하지만 설정상 국내 라이트급 선수가 딱 13명이고, 권투 하려고 시골서 상경한 심형래는 말할 것도 없으며 동기인 오재미는 체중 관리에 실패해 플라이급(50.793kg 이하)으로 입단해서 한 달만에 헤비급(90.718kg 이상)이 되었지만[37] 국내에 다른 헤비급 선수가 없어서 시합도 못하고 매번 먹기만 한다.

실력은 다들 낮다. 심형래는 20kg가까이 감량하겠다며[38] 한달 굶은 뒤 글러브를 빵으로, 오재미를 돼지로 착각해서 잡아먹으려 들고(!) 또 징크스라며 한달간 안 씻어서 냄새로 상대방이 기권해 승리하거나 한다. 당시 심형래의 별명 '칙칙이'가 유명해져서 스트리트 파이터 2마이크 바이슨(복서)을 칙칙이라 부르기도 했다.그나마 하나있는 체육관 유망주도 출중한 실력의 플라이급 김찬 뿐이었다.[39]

마지막회에서는 결국 칙칙이 심형래가 도저히 가망이 없다고 판단됐는지 고향인 시골로 돌려 보내지게 된다. 그토록 원하던 정식 시합은 한번도 뛰어보지 못하고 씁쓸하게 고향으로 돌아가게 되는 새드엔딩으로 끝난다.

역시 심형래 쇼에서 리메이크되었다. 관장은 임하룡에서 김준호로 변경. 나머지 멤버들은 유민상, 정태호, 신종령 등 후배 개그맨들로 채웠다. 줄거리는 관장님이 이사를 하게 되었는데 권투체육관 멤버들이 이를 도우러 가나 심형래는 짐을 올리다가 끈에 밀려서 계속해서 추락한다. 그러면 그럴수록 상처는 심해지지만 관장은 왜 일하는 중에 놀러나갔냐며 구박만 한다. 헌데 이 에피소드는 리메이크답게 이전에 했던 걸 그대로 했다. 다만 거기에선 심형래와 임하룡이 이삿짐을 올리다가 놓고 다른 이들이 연이어 추락하는데 올라올때마다 붕대 투성이가 된다.

칙칙이의 내일은 챰피온이란 제목으로 극장판으로 제작되기도 했다.# 1980년대에서 1990년대 초반에 유행하던 전형적인 어린이 영화이며 감독이 바로 전유성이다. 장고웅, 김미화, 김학래, 양종철, 엄용수, 이경래, 이경애, 주병진, 김성찬 등 당대를 대표하던 희극인들카메오로 출연한다. 원작의 후속작으로 볼 수 없는 스핀오프작이다. 심형래와 양종철을 제외하곤 본작에 출연한 사람들이 없다. 당장 관장부터 임하룡이 아니라 장고웅이다. 김성찬은 후반부 권투 주심으로 등장한다. 심형래보다 4살 연하인 최양락이 연기하는 칙칙이 아버지가 개똥을 밟고 미끄러져 사망해서 상경한다느니, 칙칙이가 번개를 맞고 초능력을 얻게 된다는 전개가 나온다. 비중은 적지만 고아원 교사로 열연한 김미미의 연기가 오히려 돋보일 정도였다. 나중에 전유성이 이거 찍고 호되게 망했다고 스스로 말했을 정도로 흥행에서 참패했다.

참고로 아동문학으로도 출간되었었는데 내용이 상당히 심오했다. 양종철은 가난때문에 막일을 하느라 체중조절에 늘 실패해서 경기 전에 무작정 굶다가 설사약을 먹는 등 컨디션 난조로 패배가 쌓여 가고, 심형래가 바보같은 컨셉을 가질 수 밖에 없었던 슬픈 가족사, 임하룡 관장과 딸의 슬픈 이야기 등등 아동문학답지 않게 사회비판적인 줄거리로 전개되는 것이 백미이다.

전 복싱 미들급 챔피언 박종팔과 주니어 플라이급 챔피언 김환진[40]이 까메오 출연하기도 했다. 김환진은 짜장면 배달부 역할로 나와서 망가지고 박종팔은 관장이 한수 보여달라며 직접 초청해 스파링까지 시키는데, 왕년에 선수 커리어가 무색하게 둘다 망가지는 연기가 일품이었다.

3.12. 농담 한마디

방영기간: 1988년 12월 ~ 1990년 2월
출연: 전유성, 고영수 → 엄용수

브리지 형식의 코너로 80년대 말에 유행하던 촌평 코미디였다. 초반 고영수(후기에는 엄용수로 교체)가 현 세태에 대해 날카롭게 비판하면 이어서 전유성이 주제의 본질을 흐리는 엉뚱한 논평으로 웃음을 주는 코너.

참고로 초기 출연진이었던 전유성과 고영수는 이 코너 방영 당시 삼영신약(현 코오롱제약)의 치은염 치료제 '덴타돌'의 광고에 출연했다.

3.13. 누가 예뻐요

방영기간: 1984년
출연 : 이성미

3.14. 다시 보고싶은 코미디

방영기간: 1983년 ~
출연: 김학래, 김형곤, 임하룡, 최양락 등

유머 1번지 첫회부터 한동안 고정으로 했던 코너, 제목 그대로 과거 1960~1970년대의 유명 단편 코미디를 다시 리메이크하여 보여주던 코너로 항상 김학래가 먼저 나와서 인사말과 함께 언제 방송되었던 코미디라고 소개를 한 뒤 시작했다.

3.15. 동궁마마는 아무도 못 말려


방영기간: 1990년 6월 23일 ~ 10월 27일
출연: 심형래, 송영길, 최영준, 김학래, 정명재, 김의환, 조금산, 곽재문, 윤혜영, 서현선, 김현영 등

예쁜 여자 좋아하는 사고 뭉치 왕세자와 궁궐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약삭빠른 내시 최영준과 미녀 무수리 서현선(원로 코미디언 서영춘의 딸), 맨날 나서다가 구박받는 추녀 무수리 김현영이 주로 나온다. 코너가 코너인지라 다들 나사가 빠진 캐릭터들이 많다. 후반부는 거지인 오재미와 심형래가 뒤바뀐다는 왕자와 거지 같은 내용. 이후의 회차 부터는 계속 두 사람의 처지가 바뀌어 나온다. 다만 진짜 세자인 심형래가 본래의 신분을 찾기도 전에 코너가 조기 종영되었는데, 원래는 심형래가 다시 세자 자리로 돌아오고 완결나는 것으로 계획이 잡혀 있던 것으로 보인다.[41] 최영준의 '연습이었소~~'가 대표 유행어. 신하들의 유행어로는 김의환의 '읍~습이옵니다'와 곽재문의 '별 다른 말이 없는 줄로 아뢰오~'가 있다.

이후 2006년 설특집 KBS 7080 개그쇼#에서 리메이크될때는 장동민이 대충이 왕세자로 나오고 심형래는 이제 왕이 된 것으로 나왔다. 당시 개그콘서트의 후배 개그맨들이 다수 참여했으며 각자 개그맨들의 드립도 중간중간 찾아볼 수 있었다. 이때 잠깐 광대로 등장한 이수근이 궁녀들과 신하들과 함께 조선시대 버전으로 뮤직드라마를 부르다가 갑자기 왕세자 장동민이 "네 이놈들아!" 하는 호령과 함께 도검을 빼들고 난입하는 왕의 남자 스타일의 장면도 있었다. 왕으로 등장한 심형래는 시종일관 근엄한 모습이지만 중간중간 뒤뚱거리거나 개그스러운 모습을 보여준다. 심지어는 왕세자 장동민에게 술자리 예절을 가르치다가 오히려 왕세자와 같이 취해서 망가지는 모습도 보였다. 그리고 동년(2006년) 추석에 방영한 7080 고전유머극장#에서 왕세자 장동민이 평범한 선비 복장을 하고 주변 백성들의 상황을 지켜볼 때 잠시 등장했던 왕을 연기한 사람이 오리지널 시리즈에서 왕으로 출연했던 송영길이다. 84년생 개그맨 송영길과는 동명이인으로, 원래 배우였다 개그계로 전직한 원로 희극인이며 한동안 미국에서 살다 현재는 귀국했다고 한다.

2011년에 방송된 심형래 쇼#에서 다시 한번 리메이크되었다. 여기서도 심형래는 왕으로 출연했고 박성광이 까불이 왕세자로 나온다. 박성광은 왕이 참여하라고 명한 어전회의도 몰래 빼먹으려 할 정도로 약삭빠른 모습을 보인다. 이때는 잠깐 슈퍼스타 KBS가 조선시대 버전으로 나오기도 했다. 심형래는 7080 개그쇼에서처럼 근엄한 왕으로 나오지만 여전히 예쁜 궁녀들만 보면 정신 못차리는 모습을 보여준다.

3.16. 동작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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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7. 맞벌이 부부

방영 기간: 1984년
출연 : 김학래

3.18. 맨손의 청춘

방영기간 : 1990년 7월 7일 ~ 1991년 1월 26일
출연: 최양락, 이경래, 이창훈, 김종국, 양종철, 전유성, 김혜정 ,안숙희, 이희구

맹구로 유명한 이창훈의 본격 코미디 출세작.[42] 민간부사관 분대장으로 입대하기 전의 코너 최양락이 조연을 맡은 몇 안되는 코너이다. 대중 목욕탕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엮는 휴머니즘 코미디이다. 목욕탕 사장[43], 이발사 병만이(최양락), 때밀이 달용이(이창훈), 전역 후 취직한 구두닦이 칠성이 (이경래) 복덕방 직원 삼돌이(김종국) 등이 주연으로 출연하였다. 특히, 달용이의 '난 짜장은 증말 싫어, 난 짬뽕!'[44], '난 목에 칼이 들어와도 절대 리바이벌은 안해'[45]가 대표 유행어. 한편 댓글을 보면 작중 달용(이창훈)이 하는 행보가 현행 기준으로 매우 좋지 않다고 까는 사람이 많은데, 이건 달용이가 극중 트롤러 역할이기에 당연한 것이다.

극 중에서 묘사되는 목욕탕 업계와 현실의 목욕탕 업계는 다소 차이가 있다는 의견이 있다. 우선, 때밀이 달용이는 사장에게 월급을 받는 직원이고, 달용이에게 갑자기 일을 하지 못할 급한 사정이 생기면 그냥 친구 김종국이 대신 일을 해주는데 현실에서는 때밀이들이 바쁘거나 일을 하지 못할 사정이 생기면, 목욕탕에서는 일용직 때밀이인 스피아를 구한다. 또한, 칠성이의 꼬드김으로 달용이가 대우가 좋은 호텔 사우나로 가려고 하다 뜻을 이루지 못하자 사장인 양종철이 처음에는 해고하려고 하다가 달용이의 생계를 걱정하여 너그럽게 계속 같이 일하기로 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이 또한 현실과 차이가 있다. 때밀이는 사용자인 목욕탕 사장과 고용계약을 맺은 노동자가 아니라 이발사, 구두닦이처럼 보증금을 내고 목욕탕 시설을 임대하여 영업하는 자영업자이다. 그러나 목욕관리사 항목에도 적혀 있듯이 목욕탕에 소속된 직원으로 일하면서 손님이 없을 때는 욕탕 정리와 수건 정리도 도맡아 하는 경우도 있다. 작 중 묘사를 보면 달용이는 전문적인 목욕관리사가 아니며, 기본적으로 목욕탕 잡일을 하면서 손님이 요청하면 때도 밀어주는 식이다. 누가 보증금을 내고 들어올 정도의 규모도 못 되는 동네 목욕탕이라 직원이 때밀이까지 하고 있다고 이해하면 될 듯.

마지막회 에서는 달용(이창훈)이 목소리를 깔고 진중하게 시청자에게 마지막 인사를 남겼다.[46]

KBS 유튜브 채널 '크큭티비'에 예전 방송분이 올라와 있다. 유튜브 상에선 1990년 10월 6일 방영분이 빠져 있다고는 하나, 해당 방영분은 KBS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다. 단, '맨발의 청춘'이라고 오타나 있다.

이 코너에서 최양락은 평소 자신이 주도하는 것과는 달리 누군가를 위해 꽁트에서 받쳐주는 역할을 맡았다. 진중하고 마음씨 따뜻한 이발사 역할인데, 자신의 개그에 자부심이 큰 최양락이 이 코너에서 이창훈을 적극적으로 밀어준 것은 연극배우였던 이창훈을 코미디언으로 데려온 사람이 자신이었기 때문이다.

1994년에는 <폭소대작전>을 통해 '돌아온 달용이'란 코너로 사실상 리메이크됐다.

3.19. 밤이면 밤마다

방영기간 : 1991년 5월 26일~10월 6일
출연 : 이봉원, 김미화


이봉원과 김미화가 경상도 말투 부부로 분해 밤마다 벌이는 소동을 다룬 코너. 극중에 쓰인 '문디', '보소' 같은 경상도 표현들이 인기를 끌었다. 이봉원과 김미화가 마지막으로 출연한 유머 1번지 코너다.(사유는 물론 SBS 이적)

3.20. 백설공주


방영기간: 1984년
출연 : 송영길, 김형곤, 주병진, 최양락, 임하룡, 김성희

3.21. 변방의 북소리 → 승리의 북소리

방영기간: 1986년 9월 ~ 1987년 10월
출연: 심형래, 임하룡, 이봉원, 김의환, 하상훈, 김용, 정우진 등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임하룡장군, 심형래가 바보 군졸로 나오는 코너. 개그맨 김용이 전령으로 나와 항상 실수 투성이 어명이나 정찰 상황을 전하고 장군에게 혼나다가 장군님~ 약오르시죠? 이 말하고 곱배기로 더 혼나기 일쑤였다. 이 외에도 여러 개그맨들이 군졸로 나와서 "군졸이~군졸이~ "[47] 라는 군가(?)를 불러 유행시키기도 했다

가끔 전투씬이나 훈련씬이 나왔다. 이를테면 아군끼리 전투 훈련을 한답시고 심형래가 성을 지키는 쪽을 훈련하고 다른 아군이 쳐들어오는 적군을 맡았는데 성 안에서 임하룡이 무기를 던져라! 라고 명령하자 심형래가 대포를 통째로 내던져서 밑에 아군들이 다 깔려버린다. 임하룡이 "임마! 대포는 쏴야지 그냥 던지면 어떻게 해!"라고 화내자 심형래는 "저것도 무기잖아요"라고 얘기하자 임하룡이 "으이구! 너 때문에 속터진다!" 이러고 끝이 난다.

대표적인 유행어로 경사났네 경사났어 등이 있는데, 현충일날 방영된 에피소드에선 이 대사를 그대로 쓰기가 그랬는지 좀 슬픈 이야기로 바꾼 적도 있다.

중간에 제목이 승리의 북소리로 바뀌었고, 종영 이후 1988년에 시대 배경을 거란[48]과 대치중인 고려시대로 바꾸고 임하룡과 심형래가 원래의 장군과 군졸 포지션을 그대로 유지하고 거의 같은 포맷으로 진행된 ‘서기 988년’[49]이 한동안 방송되기도 했고, 기존 심형래와 임하룡 외에 이상운을 부관 역으로 투입했다.[50] 다만 이쪽은 엄청나게 빨리 끝나서 기억하는 사람도 적다. 특히 부관 역의 이상운은 장교로 복무했던 군 시절 경험을 되살려 군대 예절 및 제식 동작을 선보여 주목을 받았고, 최고참 병사 심형래에게 꼬박꼬박 대드는 후임 병사 역으로 나온 게 훗날 ‘동작그만’의 주인공이 된 김한국이었다. 이 뺀질이 캐릭터는 동작그만에서 그대로 이어진다. 그 외에 <87북소리>와 <88북소리>[51] 등 일회성 에피소드들이 또 나왔다.

이후 1989년 2월 11일자 300회 특집편을 비롯해 1990년 공사창립기념 <KBS 대행진>, 1998년 추석특집코미디 <웃음과 추억사이>, 2005년 <코미디쇼 7080>, 2010년 <심형래쇼>를 통해 앵콜코너로 다시 부활했으며, KBS 대행진에선 기존 주연들이 대거 나온 반면, 심형래쇼에선 장군 역은 한참 후배인 김준호가 맡았다. 2007년 옛날 TV에서 변방의 북소리를 패러디했는데 그때는 심형래가 감독하고 유재석등 후배 연예인들이 선보였다. 2013년 3월에 방영한 공사창립 40주년 특집 <개그콘서트>에서는 심형래 역은 박성광[52], 장군 역은 이봉원이 맡았다. 그 외에 1997년 1월 2일 신년특집 <코미디출발>에서 '소들의 합창'이란 패러디 코너도 있다.

2024년 11월 2일에 개그콘서트에서 소통왕 말자 할매에 특별출연해 변방의 북소리 개그를 오랜만에 선보였다.

1996년 <코미디 일번지>에서 '포졸 아카데미'로 사실상 리메이크되었다.

3.22. 별당아씨


방영기간: 1992년 2월 23일 ~ 8월 9일
출연: 심형래, 최영준, 엄정필, 송영길, 지영옥

3.23. 부채도사

방영기간: 1991년 2월 2일 ~ 1992년 4월 5일
출연: 장두석, 김의환, 전효실 등


'부채신'을 모신다는 돌팔이 도사 이야기. 훗날 MBC <황금어장> 코너 '무릎팍도사'의 기획에 모티브를 준 코너이다.[53] 도사 역은 장두석이,[54] 손님 역은 주로 김의환이, 김의환 하차 후 투입된 보조 아가씨 역에 전효실이 나왔다. 원래는 손님 김의환, 도사 장두석 고정출연의 투톱 체제였는데 차츰 코너가 커지고 출연자가 매우 다양해지며 김의환의 비중은 줄어들다가 김의환이 SBS로 이적한 후 대신 전효실이 고정출연하게 되었다.

본래는 더 오래 방영될 예정이었으나 무속인들의 항의가 빗발쳐서 조기 종영되었다고 한다. 실제로도 이후에 장두석 본인이 과거 케이블 예능 프로그램에서 후일담으로 밝힌 적이 있는데, 부채도사 코너가 무속인과 민간신앙을 비하한다면서[55] 무속인 협회가 KBS측에 직접 항의를 했기에 결국 몇 회차 후 코너가 조기 종영 되었다고 고백한 적이 있다.

마지막 내용은 부채도사가 협회에서 제명당해 모든 것을 다 잃고 그동안 부채도사가 엉터리점으로 사기를 치는걸 알게 된 부채도사의 옛 스승이던 진짜 도사가 찾아와 부채도사에게 다시 수행이 필요하다며 부채도사를 데리고 떠나는 내용이다.[56] 그리고 조수 아가씨는 길 떠나는 도사를 마지막으로 배웅하며 그리워하는 새드 엔딩의 내용으로 마무리되었다.

삽입곡으로 "실례 실례 합니다~"로 시작되는 "실례송"이 있다.[57] 손님이 점 보러 들어올 때 나오는 노래로, 손님과 장두석이 한 소절씩 번갈아 부르는 것이 특징. 초창기에는 이 노래가 없었고 손님이 들어가면서 하는 대사였는데, 430회(1991년 10월 27일 방영)에서 부채도사 주제곡으로 처음 등장했다.[58] 부채도사 주제곡을 전국적으로 유행시키는게 목표였다면, 430회의 로고송은 가사가 뭔가 입에 안달라붙고 라임이 별로라 많이 부족했다.[59] 그런데 제작진 중 누군가가 이러한 문제점을 인지했는지 2주만에[60] 432회(1991년 11월 10일 방영)[61]부터 입에 착착 붙고 쉬운 내용으로 가사를 싹다 뜯어고치고 멜로디는 유지하되 1옥타브 내린 새로운 버전의 실례송[62]을 등장시켰고 마침내 수많은 초딩[63]들이 실례송을 흥얼거리게 만드는데 대성공했다.[64]

여담으로 김영하가 90년대 초에 아이큐 점프에서 이걸 거의 베낀 걸 '귀래거사'라는 제목으로 연재하기도 했는데 당시에도 욕처먹고 금세 연재를 끝난 바 있다.

이후 [코미디파일] 에서 김병만이 열연한 [쟁반도사]도 부채도사가 모티브인 것으로 추측된다. 시커먼스와 키컸으면의 관계를 이해하면 쉬울듯

본 코너의 실질적인 주역을 맡았던 코미디언 장두석이 2024년 7월 22일에 사망하였다.

3.24. 북청 물장수

방영기간: 1987년 7월 ~ 1988년 12월 31일
출연: 이봉원, 장두석, 임미숙, 조금산, 이경애, 김의환 등

당시 신인이던 KBS 공채 2기 개그맨들을 주연으로 내세워서 제작한 코너로 일제 강점기 함경남도 북청을 무대로 청년 물장수 이봉원, 이봉원의 라이벌로서, 특히 임미숙을 둘러싸고 앙숙 관계인 경상도 출신 물장수 장두석, 그리고 라디오 장수 김의환 등이 벌이는 소동을 그렸다. 특히 조금산과 장두석이 앉았다 일어나며 악수하는 "아이고~ 장사장"(장두석) "아이고~ 조사장님"(조금산) "반갑구만~"(장두석) "반갑십니더"(조금산)가 유행어가 되었다. 그리고 이 유행어는 28년 후... 더불어 김의환이 등장할 때마다 부르던 '만리포 사랑'이 재차 인기를 얻기도 했다. 막화에서는 사실상 연인 관계였던 이봉원과 임미숙이 전쟁통에 헤어지고, 경쟁에서 밀렸던 장두석이 그 틈을 파고들어 결국 임미숙과 아들 하나를 둔 부부가 되고 말았다. 하지만 서로 행복한 혼인 관계를 이루고 있진 않았는데, 우연찮게 장두석과 재회한 이봉원이 이 사실을 알게 되었지만 결국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임미숙을 포기하면서 코너가 막을 내리게 된다.

3.25. 사재기

방영 기간: 1984년
출연 : 김형곤, 심형래, 최양락

3.26. 술마시는 남자

방영 기간: 1992년
출연 : 정명재

취중진담을 모티브로 한 원맨토킹쇼다.

3.27. 스타로 가는 마지막 비상구

방영 기간: 1991년 2월 2일 ~ 3월 23일
출연: 최양락, 전유성, 김학래, 이경래, 김현영, 김황우, 이현순, 윤혜영, 문정숙

브룩클린으로 가는 마지막 비상구를 패러디했으며 최양락이 연기학원 강사로 등장하며 이경래, 김현영이 연기학원의 수강생으로 등장한다.

1991년 2월 23일 400회 특집에서 주윤발이 특별출연하였다. 최양락이 위 층의 에어로빅학원에 층간소음 항의하러 갔다가 주윤발을 보기 위해 에어로빅 학원 수강생들도 아랫층의 연기학원으로 몰려왔다.

3.28. 심가이버


방영 기간: 1992년 8월 16일 ~1992년 10월 4일
출연: 심형래, 엄용수, 서원섭, 양원경, 양종철, 윤기원, 유재석

미국 드라마 <맥가이버>를 패러디하였다.

심형래의 '심', 맥가이버의 '가이버' 로 심형래가 맥가이버 처럼 사건을 해결하는 듯 보이지만 결정적인 상황에 항상 엉성하게 마무리된다.

심형래의 보기드문 정상인(?) 캐릭터 연기중 한 코너다. 보통 바보 캐릭터를 거의 연기하여서 일반인 캐릭터가 드물어 보였을 뿐이다. 물론 사고뭉치인 캐릭터성격은 여전했다고...

3.29. 아르바이트 백과


방영 기간: 1985년 4월 ~ 1987년 7월
출연: 장두석, 김정식, 임미숙

영악한 선배 장두석과 거기에 휘말려 늘 이용당하고 골탕먹는 후배 김정식이 여러 아르바이트를 전전한다는 내용. 정식의 연인으로 나오는 개그우먼 임미숙이 오해해 김정식에게 날리는 멘트인 "짐~승~"은 코너에 시작되는 "아~ 아~ 아르바이트~"라는 멘트와 함께 나름의 유행어였다.[65]

1986년이 배경인 영화 기적에서 정준경(박정민)이 "아~ 아~ 아르바이트~"를 따라하는 장면이 나온다.

3.30. 아버지와 딸

방영 기간: 1984년
출연 : 송영길, 이성미

3.31. 알딸딸


방영 기간: 1990년 6월 30일 ~ 10월 13일
출연: 임하룡, 김미화, 김혜정, 최형만, 전은미

3.32. 어느 날

방영 기간: 1984년
출연 : 임하룡

3.33. 여자, 여자, 여자

방영기간 : 1990년 2월 ~ 6월
출연: 임하룡, 김용, 엄용수, 성낙앙, 김미화, 임미숙, 이희구

여자 세명이 사는 하숙에 들어온 사이코 예술가 임하룡의 이야기로 극의 실제 주인공은 여자 세명인 이희구, 임미숙, 김미화이다. 중간에 임하룡이 아이디어 부재와 비중 문제로 갑자기 점잖은 사람으로 출연하고 하차하면서 (오히려 김미화의 회사 상사인 엄용수의 비중이 높았는데, 주민등록증을 꺼내들며 자신을 과시하는 내용이 하이라이트) 유야무야 종료되었다.

3.34. 여자들 마음

방영기간: 1984년
출연 : 송영길

3.35. 열녀문

방영기간: 1991년 10월 13일 ~ 1992년 1월 12일
출연: 지영옥, 문형주, 김지선 → 최용순[66], 김용

조선시대 남편을 일찍 떠나보낸 과부 3대(지영옥, 문형주, 최용순)의 에피소드를 담은 코너.[67] 남편을 잃고 수절을 지키며 사는 것 같지만 실상은 언제라도 재가를 노리고 있고, 이런 그들의 사정을 아는 보부상(김용)이 남자를 소개시켜 주지만 번번이 실패한다. 머슴 선발대회 편에서는 배삼룡이 변강쇠로 등장해 특유의 비실비실한 몸개그를 선보였다.

과부들의 눈에 비친 현대문물의 진리도 포함되어 있다.

대표적인 멘트는 "이리오너라!"[68] → "듣지도 말거라!" → "이리 오너라!" → "보지도 말거라!" → "이리 오너라!" → "참아야 하느니라!" 였다.

3.36. 영구야 영구야

방영기간: 1988년 6월 ~ 1990년 1월 6일[69]
출연: 심형래(송영구 역), 송영길(송 영감 역), 이현순(영구 어머니 역), 윤혜영(색시 역), 조춘·김유행(쌍라이트 형제 역), 김학래 등

본래 유머 1번지중 한 코너인 '원작따로 코미디따로'의 한 시리즈로 시작되었으며 드라마 '여로'를 기본베이스로 패러디한 코너였다. 원래 영구야 영구야는 단편 몇주로 끝내고 다시 다른 작품을 베이스로 할 예정이었으나 심형래의 주인공 캐릭터인 영구가 크게 인기를 끌어[70] 원작따로 코미디따로는 사라지고 아예 영구야 영구야가 고정코너가 된다. 영구의 아버지로는 송영길이 출연. 영구의 이름을 지은 방법으로는, 01, 02, 03, 04..를 계속 해보다가, 07(영칠)은 너무 칠칠맞고, 08(영팔)은 이름이 너무 웃긴다고 하다가, 09(영구)가 괜찮겠다고 해서 지었다고 한다.

배경은 원작영화와 마찬가지로 일제시대를 따르고 있지만, 영구는 우연히 김학래가 이끄는 독립군 비밀조직의 일원이 되어 첩보원으로 활동하게 된다. 이때 임무를 하달받고 코피가 나도록 쾅! 뛰어서 큰절을 하는게 또다른 인기요인이 되기도 했으며, 영구는 당시 어린이들의 우상이 되어 극장용 영화 영구와 땡칠이 시리즈도 나왔다. 영구의 동료인 조춘과 김유행 콤비의 일명 쌍라이트 형제도 큰 인기를 끌며 또다른 어린이영화의 주연으로 활약하기도 했다. 300회 특집에서는 88년 KBS 주말드라마 순심이에서 바보 칠득이 역을 맡았던 배우 손영춘이 극중 캐릭터로 특별출연했고, 배삼룡이 칠득이 아버지 역으로 나왔다. 또 배삼룡은 6.25 전쟁 이전에 남한에서 공산화 운동을 펼치던 김삼룡 역으로 나오기도 했다.

3.37. 유머 세계일주

방영기간: 1983년
출연 : 임하룡, 주병진, 심형래, 최양락

3.38. 이런 방법

방영기간: 1983년
출연 : 송해

3.39. 이상해와 심형래의 폭소소동

방영기간: 1991년 4월 20일 ~ 8월 25일

이상해심형래가 콤비가 된 옴니버스 형식의 코너. 찰리 채플린 스타일의 슬랩스틱, 옆방 신혼부부집을 엿듣다가 난장판이 되는 의사와 환자, 영화 클리셰 비틀기, 어설픈 은행강도, 엉터리 의사 등 짧은 기간에도 다양한 코미디 형식을 선보였다.

3.40. 장두석의 그 시절 그 노래

방영기간: 1983년
출연 : 장두석

3.41. 장밋빛 인생[71]


방영기간: 1989년 10월 ~ 1990년 2월

장두석과 이상운이 바텐더로, 다른 개그맨들이 고객으로 출연하여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그린 코너이다.

동작그만과 시나리오가 이어지는데 이상운이 제대한 후 바텐더가 된다는 시나리오로 실제로도 제대한 후의 메기 병장이 이 코너에 출연할 때 입던 옷을 그대로 입고 김한국을 면회오는 장면이 존재한다. 반대로 동작그만 팀이 단체로 바에 찾아오기도 했다.

여담이지만 오프닝 BGM은 밴드 송골매가 연주하였다.[72] BGM은 '새가 되어 날으리' 의 간주 파트를 인용하여 락발라드 분위기로 편곡하였다.

3.42. 제7병동

방영기간: 1987년 10월 ~ 1988년 4월

제 7 병동의 남자 간호사 김정식과 그 주변 사람들[73]의 이야기로, 특이하게도 이 코너는 같은 KBS 안에서 연속드라마로 제작되었다. 드라마나 영화를 베이스로 한 (혹은 패러디한) 코미디의 사례는 종종 있으나 반대로 드라마의 모티브가 된 사례는 거의 없으므로 특이한 케이스. 드라마가 제작되면서 코미디 쪽은 종영되었다. 제7병동 코너 마지막 회에서 "드라마로 다시 만나요~" 라고 한다.

참고로 1988년 1월부터 방영한 드라마 쪽은 개그와는 거리가 먼 정극 메디컬 드라마였는데, 박성조 작가와 이성연 PD가 제작진에 이름을 올렸고 주요 출연진으로는 이순재, 주현, 김영애, 반효정, 한진희가 메인 라인업으로, 김봉근, 백준기, 박태민, 박정수, 최화정, 김진경 등이 조연으로 각각 나온다. 그리고 타이틀 롤에 얼굴도 안 나오는 조연 중에서는 이종만, 김흥기, 연운경, 이원종 등이 나오는 걸 볼 수 있다.

그러나 메디컬드라마 치고는 1980년대 당시의 열악한 제작 여건 등으로 인해 수술씬 등은 적고 환자와 의료진의 이야기 위주다.(관련 영상)[74] 1994년 MBC 종합병원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나름 이름있는 메디컬드라마로 기억되고 있었다. 특히 이 즈음해서 이상구 박사의 건강법을 KBS에서 작정하고 띄워주면서 일종의 메디컬 붐이 일었던 것도 있다.

사실 1980년작 <소망>이나 1984년작 <간호병동> 같은 메디컬 드라마가 하나 더 있는데 이 쪽은 기억해주는 사람도 없다.

3.43. 진중일기

방영기간: 1991년 10월 ~ 12월 29일
출연: 김형곤, 정명재, 양종철, 최승경, 서현선 등

임진왜란기를 배경으로 하는 김형곤 주연의 풍자 코미디 코너. 당연히 코너명의 유래는 난중일기. 1992년 초 김형곤이 일신상의 이유로 잠시 휴식을 선언하며 조기종영되었다. 당시 신인이었던 남희석최승경도 출연했다.

3.44. 차 마시는 여자

방영기간: 1992년 2월 16일 ~ 10월 4일
출연: 이경애

티타임을 모티브로 한 원걸토킹쇼다.

3.45. 청춘을 돌려다오

방영기간: 1988년 10월 22일 ~ 1990년 2월 3일

젊은오빠를 표방하지만 실제로는 나이값 못하는 주책바가지 헐랭이 영감 임하룡이 손자손녀 다둔 할아버지로 분하며 고지식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어리숙해 늘상 당하고 사는 친구 봇대영감[75] 전유성과의 툭탁거리는 우정, 동네할머니 지영옥과의 사랑을 그려나간다. 초창기에는 팽현숙이 임하룡의 며느리로 출연하기도 했다. 임하룡은 여기서 “헐랭이 춤”을 추며 잘 노는 할아버지로서의 모습을 선보였고, "내가 일주일만 젊었어도...아우!"라는 유행어를 남겼다. 임하룡이 평소 썸을 타던 할머니 임미숙과 재혼하면서 끝이 났다.[76] 추억의 책가방과 함께 임하룡의 개그맨 시절 전성기를 상징하는 코너이며, 이 코너로 1989년 KBS 코미디대상 대상을 수상하였다.

1989년에 아이큐 점프를 통해 만화로도 연재된 바 있는데, 스토리는 전유성, 작화는 고상한이 맡았다. 네모바지 스폰지밥의 한 에피소드를 번안한 제목으로도 쓰였다.

참고로 출연자들은 1989년 새한제약의 멀미약 '피크니 에프'광고에 출연했다.

3.46. 추억의 책가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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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7. 충무로 차차차


방영기간: 1990년 1월 ~ 6월

영구야 영구야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심형래가 내놓은 새로운 코너.[77] 1950년대 충무로에서 영화배우 지망생인 심형래와 감독인 전유성, 그리고 임화수를 풍자한 제작자(김학래)가 나와서 벌이는 영화 제작 이야기들. 윤봉길 의사에 대한 영화를 만들다가 진짜 폭탄을 던져서 다들 숯덩이처럼 새커멓게 멍하게 있는 장면도 나오기도 하고 암울한 배경이라 그런지 제작비를 아끼라고 허구헌날 끼어드는 무식한 제작자의 연기가 감초이다. 이를 본 임화수의 지인들이 임화수 병신 만들기라고 분노했으나 되려 그 시절을 겪은 이들에게 김학래의 재수없는 말투와 연기가 정말 임화수를 보는 모습이라고 감탄 및 심지어 임화수가 생각나서 치가 떨린다는 의견을 보였다고 한다.

멍한 얼굴에 둥근 모자를 쓰고 엄청나게 큰 단추를 매달고 나온 심형래의 패션이 인상적이어서 심형래가 이 차림으로 신문광고에 나온 바 있다. 심형래가 마지막에 하는 대사인 " 근데 ~하는 거 그거 정말 하는거요? 실감나데..." 라는 대사에서 나온 '실감나데'가 유행어가 되기도 했다.[78] 그리고 그해 여름, 유행어로 빙과 광고도 촬영했다.

3.48. 캠퍼스학 개론

이봉원과 김미화가 캠퍼스 커플로 나왔다. 코너 자체의 방영 기간은 언제인지 모르나 길지 않았다. 이 코너가 끝난 직후 이봉원이 동작그만에 합류하면서 그와 연계가 된다. 이봉원과 김미화가 산 속에서 분위기를 잡던 도중 동작그만의 출연진들이 나타나 "여기는 군사보호구역입니다."라고 하면서 내보낸 이야기가 있었는데 이봉원이 코너가 끝난 직후 군에 입대하는 형식으로 동작그만에 투입되면서 내무반 대원들이 다들 그 일을 기억하는 스토리로 이어진다. 그래서 이봉원은 동작그만에서는 캠퍼스학 개론에서 쓴 이름인 '이영남'으로 나온다.

3.49. 탱자 가라사대


방영기간: 1989년 3월 ~ 1990년 10월 27일
출연진: 김형곤, 이성미, 조문식, 김용, 하상훈, 오재미, 김황우, 이희구
옛날 옛적, 중국 춘추시대 노나라에는
탱자나무 그늘에서 도를 얻어
그의 명성을 청양 땅까지 떨친 학자가 야사에 전하니
그의 이름이 바로 탱자였다.
성우 장정진의 오프닝 내레이션

시사 코미디의 본좌인 김형곤의 출연작. 오프닝 배경음악은 영화 마지막 황제의 메인 타이틀 곡이고, 내레이션은 성우 장정진이었다. 스토리 설정상 야사 속 춘추시대의 노나라에 있던 탱자나무 그늘에서 깨달음을 얻은 탱자라는 사이비스러운 스승과 그 제자들이 벌이는 이야기로 역시 당대 사회를 열심히 비꼬고 있다. 사회만 비꼬는 게 아니라 학생들의 행태도 비꼬는 게 있었다. 특히 명언 하나를 날리고 나서 "적어라, 적어!", "꼭 공부 안 하는 것들이~"로 시작하는 부분은 당시의 입시위주 교육과 그 속에서 당시의 중고생들이 공부하기 싫어서 곧잘 핑계로 대던 미신에 대한 풍자가 담겨있었다.

원래 제자 백가시대를 배경으로 한 '꽁자 가라사대'라는 코너였으나 어떤 이유로 갑자기 '꽁자'에서 '탱자'로 인물이 바뀌었다. 극중에서는 꽁자가 입시 비리가 적발되어 문을 닫게 되었다며 제자들을 내보냈다. 누가 부정 입학한 제자냐고 묻는 제자들에게 꽁자 曰"너희 전부". 그 제자들은 다음회에 탱자 밑으로 가있었다. 일각에서 이를 두고 꽁자가 공자를 비하한다는 이유로 유림쪽에서 태클을 건 탓에 탱자로 바뀐게 아니냐는 얘기도 있는데 당시 유림에서 비판의 목소리를 냈던 것은 사실이다. 다만 당시 유림계는 구시대의 악습이라는 미명하에 은근히 탄압받던 시기이기도 해서 방송에 영향을 미칠 수 있었는지는 분명하지 않고, 아마도 탱자나무와 관계된 드립 및 꽁자가 어감이 안 좋아서 바꿨다는 게 맞다. 당시 유림계는 구시대의 악습이라는 미명하에 은근히 탄압받던 시기여서 이런 걸로 목소리를 내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런데 탱자로 바꾸니까 가수 이택림이 자기 별명이 탱자인데 왜 쓰냐고 태클을 걸기도 했다.

1989년 송년특집으로 이주일특별출연하기도 했다. "머리 밀면 다 탱자 아니냐"면서 가짜 행세를 하며 탱자와 대결하는 바보 사기꾼이자 80년대를 억압의 시대로 만든 29만원 그 분의 풍자 캐릭터를 연기했다. 탱자 김형곤이 "그대는 어디서 왔소?"라고 묻자 이주일이 "산 속에서 왔소이다"라고 말하고 "내가 내려오고 싶어서 산에서 내려왔느냐"라고 따지는데 이 역시 설악산 기슭 백담사에서 기거하다 내려 온 전두환에 대한 풍자다. 이 방영분은 1989년 12월 30일에 방송되었고 공교롭게도 이튿날 전두환의 국회 증언이 있었다.
그 이후인 1990년 6월 23일에도 이주일특별출연했다. 이 때는 김형곤이 등장하지 않고, 이주일이 단독으로 스승 역할을 했다.

제자로는 이자(조문식), 고자(하상훈), 환자(김용), 애자(이성미), 양자(오재미)가 출연했다. '고자'가 "이 밤의 주인공, 탱자님이 나오십니다"라고 소개를 하면[79] 징소리와 함께 탱자가 등장하는 것이 매주의 루틴이었다. '이자'는 탱자가 잘못된 지식을 읊으면 딴죽을 걸어서 탱자로부터 "그래 니 잘났다, 니(네) 팔뚝 굵다"라는 대사를 이끌어냈으며 이는 본래 존재하던 "그래, 니 잘났다. 니 똥 굵다"라는 유행어를 재유행시켰으며 이후 잘난척하는 사람에게 면박을 주는 용도로 니똥샤프심, 니똥칼라파워[80], 니똥칼라 등의 유행어들이 새로 파생되었으며 개그콘서트봉숭아 학당에서 유세윤이 맡은 복학생이 이 유행어를 다시 들고 나왔다. 양자는 오재미의 캐릭터다운 모자란 캐릭터로 탱자에게 구박을 당하는데, 이 때 탱자가 자주 쓰던 유행어가 "일생에 도움이 안 돼요". 탱자는 애자만 편애하는 바람에 다른 제자들이 딴죽을 걸고 양자가 애자를 따라하다가 탱자에게 면박을 당하기도 했다. 그 외에 질문에 대한 답을 하면 이자는 맞추는데 나머지는 못 맞추는 기믹도 있다. 예를 들어 문제의 정답이 프란시스 베이컨인데 고자는 햄, 환자는 핫도그, 양자는 케찹 바름 등으로 쓰는 식이다.

마지막회에서는 탱자 본인이 가르침이 부족했다며 깊은 산속으로 떠나겠다는 고별사로 코너가 종료되었다.

3.50. 팡파레를 울려라

방영기간 : 1991년 11월 10일 ~ 1992년 1월 12일
출연진 : 김한국, 정우진, 조문식, 서원섭, 곽재문, 성낙앙, 배동성, 김진호, 최순석, 오재미, 서인석, 윤기원

1991년 5월 18일에 종영한 동작그만과 비슷한 코너로 군악대를 소재로 하였다. 경례구호는 인화! 유행어는 동작그만에서 썼던 시정하겠습니다! 를 그대로 썼다.

곽재문이 군악대 상사, 정우진이 전역을 앞둔 병장, 김한국이 병장 분대장(초기에는 상병이었다가 후에 병장으로 진급)으로 등장하였다.[81]

에피소드 중 다방 근무자들과 노닥대고 인식표를 팽개쳐서 군사경찰(헌병)에게 걸려서 완전군장 뺑뺑이 군기훈련을 당하는 것[82], 후임병의 할머니가 위독해서 휴가가 절실한 상황에 휴가승인이 내려져서 선임병이 위로해주는 것, 국지도발로 공연이 취소되고 완전군장을 차고 집합하는 에피소드가 있다.

가수 태진아, 국악인 신영애, 음악그룹 휘파람새, 배우 유퉁이 특별출연하였다.

군악대라는 소재로 변화를 시도했지만 결국 동작그만의 재탕에 가까워서 인기가 없다보니 2달만에 종영되었다.

군대 코너 였는지 종전이 동작그만에 출연했었던 배우들이 대부분 재등장 하였다. 특히 정우진은 1989년 동작그만 출연 중 군입대로 잠시 하차하였다가 전역하면서 복귀하였는데 본 코너의 조기종영으로 인해 예전만 못했고 그해 가을 유머일번지 종영 이후 별다른 활동을 보이지 못한 채 은퇴했다.

3.51. 필름공개

방영기간 : 1984년
출연 : 임하룡, 장두석

임하룡이 사이비 역사학자로 나와서 현대의 여러가지 문화들의 기원이 실은 오래 전 한국에서 비롯 된 것이라는 주장을 펼치며, 그 근거가 되는 자료 영상을 공개하는 대담 형식의 코미디. 초반엔 스포츠가 주 소재였는데, 이후 크리스마스 등 다른 것으로까지 확장되었다.

축구의 유래 (38:11 부터)


역도의 유래

3.52. 회장님 회장님 우리 회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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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3. 60초 뉴스

  • 방영기간: 1992년 4월 12일 ~ 10월 4일
  • 출연: 김용만, 이영재

브릿지 형식의 짧은 꽁트 코너로, 60초 안에 단신뉴스를 전해야 하는 아나운서가 주어진 60초 동안 이러저런 해프닝 때문에 결국 뉴스를 다 전하지 못하고 코너가 끝나는 게 개그 포인트이다. 그런데 이 코너는 당시 실제로 있던 '1분 뉴스'를 패러디한 건데, 이는 경쟁사인 MBC에 편성되어 있던 뉴스였다(....)

4. 주요 유행어

아, 아, 아르바이트. 오늘은 OOO이죠 (장두석, 김정식/아르바이트 백과)
잘 돼야 될 텐데, 잘 될 턱이 있나[83]
어때요?/좋~습니다![84]
밥 먹고 합시다!
잘~될까?/맡겨 주십시오!
흥, 흥, 장사 하루 이틀 하나?
저는 회장님의 영원한 종입니다. 딸랑. 딸랑...[85] (회장님 회장님 우리 회장님)
경사났네, 경사났어 (심형래 외/변방의 북소리)
아, 뭔 소리 하는 거야? (임하룡/변방의 북소리)
아이고~ 장 사장! 아이고~ 조 사장! 이거 정말 반갑구만, 반가워요![86] (장두석, 조금산/북청 물장수)
있을 때 잘해, 나는 봉이야.
안녕하십니까, 여러분의 귀염둥이 철민이입니다. (최양락/남 그리고 여)
영구 없다/띠리리리리리~ (심형래/영구야 영구야)
에구에구에구, 그날 난~ (최양락/고독한 사냥꾼)
에휴. 일주일만 젊었어도 (임하룡/청춘을 돌려다오)
(~ 그 좋은 사실을) 누가 물어 봤어? 누가 물어 봤냐고? (조문식/탱자 가라사대)[87]
일생에 도움이 안 돼요[88]
그래, 너 잘났다. 니 팔뚝 굵다
알~~겠느냐?
공부 못 하는 것들이 말이야 (김형곤/탱자 가라사대)
그래, 나는 모른다, 니는 아나? (김용/탱자 가라사대)
짜장은 증말 싫어, 난 짬뽕!
난 목에 칼이 들어와도 절대 리바이벌은 안 해 (이창훈/맨손의 청춘)
괜찮아유
그래도 경애 할아버지는 나까무라랑...[89] (최양락/괜찮아유)
실례 실~례합니다 실례 실례하~세~요~ (장두석/부채도사)
이리오너라!
듣지도 말거라!
이리오너라!
보지도 말거라!
이리오너라!
참아야 하느니라! (지영옥, 김용/열녀문)

5. 몰락

사실 인기가 없는 코너는 그때그때 바로 내려버렸기 때문에 개콘이 나오기 전까지는 KBS 간판코미디 프로였다. 신인인 최양락 등이 이 작품을 통해서 성장하는 걸 볼 정도였고 대학 개그제 출신의 유재석, 김용만 등의 새로운 얼굴들도 그때 그때 충원되었다.

문제는 1991년 12월 9일에 개국을 한 SBS로 인해 중추를 이루던 개그맨들이 대부분 SBS로 가는 바람에 그 해 가을개편 때 많은 코너가 하루 아침에 없어져버렸다. SBS로 이적한 개그맨들은 나중에 용도 폐기되었다.[90] 심지어 SBS가 나오지 않던 지방에서도 팬레터를 받을 정도로 나름대로 성공적으로 이적했다고 하는 최양락조차도 어느날 갑자기 잘리는 바람에 호주로 이민을 갈까 생각할 정도였다. 그나마 간판을 지켰던 임하룡도 결국 프리랜서 선언을 하고 MBC하고 KBS 코미디를 동시에 출연했다. 게다가 1995년에 SBS에도 진출하며 역사상 전무후무한 3사 코미디 동시 출연을 달성한다. 이때 이적한 개그맨 중에는 심형래도 있었는데, 김학래의 증언에 의하면 SBS가 지방에서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는 1992년부터 KBS로 복귀했다고 한다. SBS의 지역민방이 개국된 것은 이 프로그램이 종영되고 3년 뒤의 일이다.[91] 이후 심형래는 유머 1번지 종영 이후에도 KBS의 각종 개그코너에서 맹활약을 할 수 있었다. 김형곤 역시 같은 시기에 KBS로 돌아왔다.

전문가인 선배들의 도움으로 무명부터 차근차근 올라와야 할 신인들이 어느 날 갑자기 빈약한 실력으로 코너를 맡으니 결과적으로는 아이디어나 연기나 모두 떨어지게 되는 법. 또한 이때를 기점으로 정통 코미디보다는 일밤이나 꾸러기 대행진 같은 버라이어티 쇼 예능 쪽으로 코미디 방송의 대세가 바뀌면서 입지가 좁아진 것도 문제였다.

그렇게 시청률이 떨어지게 되면서 결국 1992년 10월 4일, 통산 478회를 마지막으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동시간대 라이벌 프로그램 꾸러기 대행진의 MC가 한때 유머 1번지 주축이었던 최양락하고 이봉원이어서 아픔은 두 배였다.[92]

이후 KBS 코미디는 한바탕 웃음으로-명랑극장-코미디 1번지로 근근이 명맥을 이었으나 1990년대 초중반에 이경실, 박명수, 서경석, 이윤석, 김진수, 조혜련 등이 주축이 되어 활약했던 오늘은 좋은 날웃으면 복이 와요 등을 내세운 MBC에게 완전히 주도권을 내주면서 그마저도 웃으면 좋아요와 웃으며 삽시다를 내세운 SBS에게 지분의 일부를 내주는 암흑기[93]에 빠졌다. KBS가 코미디계의 패권을 다시 되찾아오는 시기는 1997년 외환 위기를 거쳐 7년 뒤인 1999년개그콘서트로 큰 히트를 치면서부터다. 이후 15년간 지상파 3사 대표 코미디 프로그램으로 전성기를 구가했으나[94] 2015년 이후 그 개그콘서트마저 쇠락하여 2020년 6월 말을 끝으로 종영되면서 KBS를 비롯한 지상파 3사 전체의 코미디 프로는 이로써 완전히 막을 내리게 될 뻔 하다가 KBS에서 2021년에 개승자로 서바이벌 형식으로 부활하였고, 2023년에 개그콘서트 시즌2로 부활하여 근근이 명맥을 잇고 있다.

6. 여담

방영초기 부터 높은 인기로 위상이 오른 영향 때문인지 1985년 삼양식품에서 한 신제품 라면을 '라면 일번지' 로 작명하여 발매했었다.

흔히 알려진 후기 오프닝[95]은 인기 락밴드 송골매가 작곡하여 연주하였다.

엔딩 스탭롤이 올라갈 때 나오는 음악이 프로레슬러 미사와 미츠하루의 입장 테마곡 (정확히는 성룡, 홍금보, 원표 주연인 홍콩 영화 쾌찬차(스파르탄X는 일본 개봉명)메인 테마 음악이다. 이 곡이 사용되기 전에는 장 미셸 자르Zoolook이 사용되기도 하였으며, 300회 특집에서는 Squash Gang의 Moving Your Hips의 Instrumental 버전을 엔딩곡으로 사용하였다. 시간상 스탭롤을 생략한 회차가 있다.

초창기 몇년간은 팝송 DJ인 김광한이 출연하여 해외 최신 팝의 뮤직비디오를 소개해주는 코너가 있었는데 처음에는 이성미와 함께 진행하다가 차츰 혼자 나오는 형태로 바뀌었다. 그리고 해외 팝 뮤직비디오 소개는 이후 쇼 비디오 자키로 이어졌다가, 코미디 쪽은 한바탕 웃음으로 쪽으로 이어지고 팝 음악 코너는 지구촌 영상음악이라는 별도 프로그램이 생겼는데 이쪽도 프라임타임대에서 꽤 시청률이 나왔다. 해외 팝 음악 시장이 지금의 K팝 가요 시장에 맞먹던 시절이었다.

종영 후 KBS 위성1을 비롯해 복지TV와 시니어TV에서도 재편성했다.

위에 언급된 유행어 중 다수가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 다시 등장하기도 했다. 극중 되도 않는 개그를 즐겨하던 김성균이 당대의 유행어들을 중독자 수준으로 시전하는 캐릭터였기 때문이다.

김형곤이 왕으로 나오는 '잃어버린 왕조'라는 정치풍자 코너를 만들고 녹화까지 마쳤으나 방송되지 못한 일화가 있다.

유튜브KBS 같이삽시다 채널에서 매주 일요일 오후 2시에 유머 1번지 방송분이 올라온다.

1980년대 프로그램인데도 불구하고 특이하게도 홈페이지가 존재한다. 다만 1989년 11월 4일 이전에 방영한 일부 회차들은 안타깝게도 KBS의 자료 관리 불량으로 인하여 다시보기에서 빠져 있으며, 이로 인하여 KBS 공식 홈페이지나 유튜브에 공개되지 못한 내용도 많이 있다.[96] 한편 KBS 영상자료실에 1983년 방송분부터 1986년 이전 방송분은 죄다 유실되었다.

366화 에서 '다시보는 코미디'를 선보였으며 당시 신인이였던 김지선이 북한의 해설가로 등장하였고, 장두석이 합창단 지휘자겸 북한군 간부로 등장하였다. 그리고 심형래, 김정식, 엄영수, 이봉원, 이상운은 합창단원 겸 북한군 병사로 등장하였다. 노래연습중[97] 합창단원들이 차례차례 실수를 하여 지휘자에게 사살되자[98] 마지막에 남은 지휘자 마저 실수하여 결국엔 자결하게된다.

유머 1번지 400회 특집에서 이수만이 MC로 공개방송을 하였다. 뽐, 복사기 코너를 선보였으며 민해경이 초대가수로 등장했고 홍콩 인기배우 주윤발도 특별출연하였다. 그리고 일부 코너는 기존에 출연했던 개그맨 대신 인기연예인이 특별출연하기도 했다. 여담으로 400회 기념 케이크를 특별 제작했는데 400회에 맞춰 모든 재료를 400g 정량으로 400명이 만들었다고 한다. 특히 케이크 컷팅식 때 심형래가 400회를 넘어서 500회, 600회도 계속 재미있는 웃음을 선사하는 바람을 남겼지만 478회로 방영 종지부를 찍어 그 바람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1991년 4월 20일 408회 방영 이후 KBS 작가파업[99]으로 인해 무려 한달 동안 휴방을 했었다.[100] 한달 뒤 방송을 재개한 1991년 5월 18일 409화를 방영한 이후부터는 토요일에서 일요일로 방영시간을 이동하였다.

1991년 9월 22일 추석 특집에서[101] 모든 출연진들이 세계가수를[102] 컨셉으로 <폭소가요제>[103]를 공개방송을 하여 각자의 끼를 발산하였다. 세계 참여가수 뿐만 아니라 세계 초대가수[104]도 재연하였으며 또한 심사위원 까지도 세계 유명인[105]으로 재연하였다. 그리고 일부 참여가수는 노래와 별개로 개그설정이 포함되었다.[106] MC는 임백천왕영은이 진행하였다.

유머 1번지의 마지막회인 478회에서 '빈대떡 신사'를 선보였으며 서원섭이 요릿집 근무자들과 사장으로부터 봉변당하는 사람, 장두석이 노래부르면서 서원섭을 괴롭히다가 오히려 응징당하는 사람으로 성명 미상 3명이 각각 요릿집 근무자와 사장으로 등장한다.

마지막회가 방송된 1992년 10월 4일 유머 1번지 본방 직전, 한국프로야구 1992 플레이오프 최종 5차전(낮경기)에서 롯데 자이언츠가 승리를 거두면서 한국시리즈에 진출했고, 이후 한국시리즈 우승까지 차지하게 된다.[107]

1983년 4월 2일부터 1992년 10월 4일까지 정확히 9년 6개월간 방영했었다. 그런데 TV에서는 '지난 10년간 유머1번지를 사랑해주신 시청자 여러분 대단히 감사합니다...' 라고 자막이 나왔었다.[108] 아마도 한국식 나이인 세는 나이와 같이 세는 횟수 단위로 한 모양이다. 참고로 마지막회에 스탭롤은 빠졌다.

유머 1번지 종영 후 1992년 10월 11일에 후속으로 '웃음 한마당'을 방영했지만 1993년 4월 25일 봄 개편을 앞두고 6개월 만에 종영되었다.

1995년 5월 3일 정신적 후속작격으로 '코미디 1번지'를 방영하였다. 하지만 대부분의 코미디 프로그램들이 그랬던 것처럼 지나친 말장난식 잡담과 해괴한 몸짓, 깜짝쇼식 프로진행 등으로 청소년들의 정서를 해쳤다는 지적 누적과 갈수록 낮아지는 시청률로 의해 1997년 5월 12일 방영한지 2년 만에 종영되었다.
[1] 2013년 3월 3일 개그 콘서트 - 코미디 40년 특집에서 마지막 무대로 꾸며졌던 코미디는 흐른다의 맨 첫 소절.[2] 여담으로 1990년대를 대표했던 코미디 프로그램은 옆 동네에서 방영했던 오늘은 좋은 날.[3] KBS 희극이 큰 인기를 끌었던 시기는 방송소재가 다양해진 민주화 이후부터 쇼 비디오 자키한바탕 웃음으로까지 이어지는 1990년대 초반 시기다. 상술한 오늘은 좋은 날도 한바탕 웃음으로를 다시 한 번 짓눌러보고자 MBC가 신설한 정통 희극 프로그램인 '웃으면 복이 와요'(2기)가 '콤비 콤비'를 거쳐 다시 이름을 바꾼 것이다.[4] 같은 시기 KBS 1TV에서 방영했던 '유모어 극장'이 이렇게 표기했다. 이 프로그램은 원로 코미디언들이 주축이었다.[5] 심형래는 몸개그, 최양락은 만담, 김형곤은 시사 풍자 개그로 서로 다르다.[6] 최양락은 남을 잘 약올리는 성격, 김형곤은 쉽게 화를 내는 다혈질에다 똥군기를 부리는 성격이라 둘이 같은 코너에 나왔다가는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실제로 김형곤이 동료 개그맨들까지 불러서 최양락의 집으로 쳐들어가 최양락을 집단구타해서 최양락이 병원에 입원하고 신문과 뉴스에 보도되기도 했다. 발단은 김형곤네 운전기사가 그만두려고 하는 걸 김형곤이 말리고 있었는데 그 운전기사를 최양락이 자기 운전기사로 고용해서 시비가 붙은 것이라고 한다. 이를 김형곤이 수개월간 욕하고 다녔고, 최양락은 괴로워하며 피해다녔는데, 어느날 김형곤이 다시 따지려고 전화를 하자 화가 난 최양락이 반말을 해서 김형곤이 동료개그맨들을 몰고가서 집단폭행을 저질렀다. 그때는 집단폭력 관련 특별법이 없어서인지 일반법인 폭행죄로 대충 합의로 끝났지만, 지금은 특별법이 있기 때문에 지금은 합의로 고소취하가 안되고 처벌되는 범죄이다.(물론 고소취하가 안될뿐, 형량 감경은 쉽게 된다.)[7] 사실 유행어는 공영방송 특성상 KBS가 편성심의 혹은 자율규제로 매우 보수적으로 엄격히 제한이 있었던 탓이 크다. 반면 비슷한 시기 경쟁사 MBC에서는 코미디언들의 유행어를 팍팍 밀어주면서 수많은 스타를 탄생시켰다. 서세원은 딱히 유행어가 없이 그 특유의 말투로 웃겼지만 김정렬, 이원승, 배영만, 그리고 후반부의 이경규까지 전부 유행어로 스타가 된 케이스다. 나중에는 이런 유행어들도 억지 밈처럼 시청자들이 식상해했고 때를 같이하여 혜성처럼 떠오른 게 바로 신생 방송국이던 SBS의 신동엽이다.(물론 '안녕하시렵니까?'도 유행어 범주에 들긴 하지만...)[8] 해당 프로그램의 초창기에 '꼿꼿한 자세' 등의 꽁트에 출연한 사실이 있다. 게다가 이 분은 이 외에도 코미디 하이웨이에서 사극을 하면 훈장이나 사또를 전담했다.[9] 코미디 하이웨이에서 훈장으로 출연한 송해.[10] 1989년 300회 특집 영구야 영구야에서 칠득이 아버지로 특별출연했고, 1991년 꽃피는 봄이 오면에서 왕손(김형곤)의 바보 삼촌 역으로 출연했다.[11] 1983~84년 초창기에 출연하다가 MBC로 이적했다.[12] 감초맨이 서울상공을 비행하는 영상과 함께 감초맨 주제가가 흘러나온다.[13] 엔딩에서는 감초맨이 서울상공을 비행하는 영상과 함께 "감초맨" 을 외치는 파트만 흘러나온다.[14] 선역ㆍ악역 가리지 않고 이구동성으로 반문을 한다.[15] 간혹 김국진이 악역 대장으로 출연하는 경우도 있다.[16] 유머1번지 458회 감초맨 편(1992년 5월 17일).[17] 유머 1번지 기준 470회.[18] 그 직전회차(유머 1번지 기준 469회)에 장두석의 직장후배 전효실도 감초맨=장두석 사실을 의심하면서, 직접 감초맨에게 사실여부를 질문하는 장면도 있다.[19] 471회(1992년 8월 16일 회차).[20] 한국시간 기준.[21] KBS 코미디채널 크큭티비.[22] 그전에도 유튜브에 유머 1번지 예전영상들이 업로드되어 있어, 그 안에서 감초맨 관련부분을 찾아볼 수 있긴 했다. 문제는, 기본적으로 유머 1번지 회차가 워낙 방대하다 보니, 감초맨 편만 따로 찾아보는 것 자체가 힘들고 불편한 면도 있었다.[23] 한국과 유럽의 시차문제로, 올림픽 폐막식은 한국시간 기준 다음날 새벽에 펼쳐졌다. 위에 언급된 마라톤 황영조 경기시간 또한 마찬가지 이유이다.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가장 마지막으로 펼쳐진 경기가 남자 마라톤이었기 때문이다.[24] 한국과 유럽의 시차문제로, 올림픽 폐막식은 한국시간 기준 다음날 새벽에 펼쳐졌다.[25] 김정식이 약을 잘못 지어준 바람에 바보가 되었다는 설정이다.[26] 김종국 입장에서는 그 멘트를 하도 자주 듣다 보니 나중에는 자연스레 외우게 된 것이다.[27] 우빈보다 잘난 후배(?) 시티 헌터들의 등장으로 문전박대 찬밥신세를 당했다.[28] 중간에 다른 차량의 휠과 자동변속차량 표시가 나오는 옥에 티가 나왔다.[29] 사망 처리되었지만 사실은 살아남은 것인지, 사망 전 과거의 회상인지, 사망 후 유령인지, 혹은 작중 닮은 다른 인물인지 연출 의도를 파악하기 어렵다.[30] 송대관 출연편에서 확인 가능.[31] 이경애는 유머 1번지 종영 이후에 SBS로 이적했다.[32] 한국 특집편이던 21권보다 좀 더 이후 시점이다.[33] 팀명이 '노 아이데깨' 인데 과테말라어로 '괜찮아요' 를 의미한다.[34] 이혼 사유는 처가댁에 돈을 빌렸는데, 사기로 다 날려 먹었기 때문이다.[35] 임하룡 집에 갔다가 임하룡의 학창시절 성적표를 발견했는데 가양양가양양양양가가 였다고 한다.[36] 사실상 얼음으로 된 집으로 나온다.[37] 때문에 극중에서는 늘상 헤비라고 불린다.[38] 원래 체급은 미들급(72.562kg 이하)인데 밴텀급(53.514kg 이하) 매치에 나가기 위해 감량에 도전했다.[39] 플라이급 유망주임에도 칙칙이가 오기전까지 줄곧 청소나 하는 막내 신세였다.[40] 성우 김환진과 동명이인.[41] 이후 거지들의 삶을 테마로 한 코너 "꽃피는 봄이 오면"에서도 거지옷을 입은 왕세자 심형래가 지나가는 모습으로 잠시 등장한다.[42] 맹구로 전성기를 알린 봉숭아학당을 연기하기 이전에 촬영한 코너다.[43] 사장 역은 원래 전역한양종철이 맡았다가 극 중반에 전유성으로 교체되었다.[44] 특히 이 유행어가 높은 인기를 얻어 이후 슈퍼 홍길동 시리즈인 '짬뽕 홍길동'에서 주인공 홍길동으로 출연까지 했었다.[45] 달용이가 유식한 말이나 외국어를 할 때가 있는데 꼭 틀리게 말한다. 이 때 최양락이 '너 방금 뭐라고 했냐??'라고 되물어보면 하는 대사다.[46] 달용의 목소리가 바보 컨셉일 뿐이지, 실제로 배우 이창훈의 목소리는 진중한 분위기가 있는 중저음이다.[47] 주로 동요 둥글게 둥글게의 노래 곡조에 맞추어 불렀다.[48] 임하룡이 거란족을 계란족이라고 발음한다. 공교롭게도 거란의 한자표기인 契丹은 음을 짜맞추다 보면 계란으로 읽을수도 있긴 하다.[49] 그래서 코너 시작 전 내레이션이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천년전....”으로 시작됐다.[50] <TV가이드> 1988년 4월 9일(제8권 14호) '군대시절 경험살린 서기 988의 이상운(전향규 기자)' p44~45.[51] 상단 유튜브 링크.[52] 심형래가 나오지 않은 이유는 하필 그 사건이 터졌기 때문이다.[53] 물론 오프닝 - 오게된 이유 - 끝 이라는 구성만 계승한 것이지 무릎팍 도사와 부채도사의 웃음 포인트는 다르다.[54] <TV는 사랑을 싣고> 2007년 10월 26일 방영분에 따르면 '부채도사'라는 별명을 지닌 실제 무속인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고 한다.[55] 점괘가 매번 틀리고 무속인을 우스꽝스럽게 그렸다는 이유인 듯.[56] 하필 마지막으로 찾아온 손님은 부채도사의 마지막 점을 믿고 당첨된 상황이라 부채도사가 마지막엔 정말로 점괘가 들어맞은 상황이어 더더욱 안타까운 마무리였다.[57] 응답하라 1988에서 김성균성덕선이 이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 나오지만 고증오류다. 극 중 배경인 1980년대 말기에는 이 코너가 없었고 가사도 틀렸다. '쏙~쏙~ 들여다보는' 이 아니고 '쇽~쇽~ 들여다보는'이 맞다. 고증의 생명은 디테일이라는 점을 간과한 것이 아쉽다.[58] 참고로 장르는 트로트이다.[59] (부채도사 혼자서 독창하는 형태) 말을 하~지 않아도 / 당신의 마음 다 알아~ / 쇽~ 쇽~ 들여다보지 / 모두다 들여다보지 / 야~ 야~ 야~ 야~ / 모두다 들여다보지[60] 431회는 실례송 없이 진행[61] 이상운이 최초로 부름[62] (손님과 부채도사가 한 소절씩 주고받는 형태) 실례 실~례합니다~~ / 실례실례하~세~요오~ / 쇽~ 쇽~ 들여다보는 / 부채도사 댁이 맞나요오~ / 맞어~ 맞어~ 마~앚어~ / 어떻게 알~고왔어~ (뿅)[63] 당시 기준 국딩[64] 지금 들어도 중독성이 개쩐다.[65] 이 코너의 시그널 음악은 장미셸 자르의 앨범 Zoolook 수록곡인 Diva의 중간부분.[66] 김지선의 SBS 이적으로 최용순으로 변경.[67] 지영옥이 40년차 과부, 문형주가 20년차 과부, 당시 KBS 희극인실 최선임자이었던 최용순이 이틀 된 과부로 나온다.[68] 사극에서 자주 듣는 말이자, 한국 전통식 초인종 누르기. 외부 양반이 하인에게 문을 열라고 시키는 것으로, 하인도 못 부리는 가난한 양반들은 하인이 없는데도 하인이 있는 것처럼 "~라고 여쭈어라"라고 대화했다고 한다.[69] 심형래가 처음 영구를 연기한 것은 1986년도 극장판 여로다. 당시 분장은 땜빵머리가 아닌 본인 머리 그것도 떡진머리에 달랑 얼굴에 점부치기. 앞니 빠진 분장도 안했다. 참고로 심형래 코믹 캐롤 앨범은 영구가 탄생하기 전인 1984년에 발매되었고 하룡 서당이라는 코너의 바보 제자 캐릭터(난 잘 몰르겠는데요)를 이용한 것이다.[70] 엄청난 인기를 끈 결과 원래 "영구"의 원본이라 할 수 있는 장욱제의 영구보다 심형래의 영구가 더 유명해지게 되었다. 개그캐릭터로서, 그리고 개그맨 심형래의 페르소나로서의 영구가 국민적인 바보 캐릭터가 되고, 한 시대를 풍미했던 여로의 영구가 그 시대를 살았던 어르신들 이후로 잊혀지게 된 것도 다 이것 때문이었다. 다만 여기에 뒷 사정이 있기는 한데 여로는 녹화 테이프를 알뜰하게 재활용을 했기때문에 방송자료가 이제 달랑 1편만 남아있다는 것도 한 몫한다. 70년대만 해도 녹화테이프가 워낙 비싸서 어쩔 수 없었다고 한다.[71] 방영 당시에는 '장미빛 인생'[72] 이 시기 송골매는 같은 KBS의 자니윤 쇼에 스튜디오 밴드로 출연하고 있었다.[73] 동료 여간호사로 김미화가 나왔다.[74] 사실 이는 제작비 딸리는 국가들(특히 공산권) 드라마의 공통적인 특징으로, 과거 중국의 관영 드라마나 현재의 북한 드라마가 저렇다. 밀리터리물인데 전투는 안 하고 장군들이 대화만 하거나 의료물인데 수술 장면은 없거나. 비슷한 얘기가 KBS가 제작비 대고 북한 조선중앙텔레비죤이 제작한 사육신 드라마가 한국에 방영됐을 때 국내 시청자들 사이에서 "대사가 너무 많아 극이 늘어진다"는 반응이 나오기도 했다.[75] 작중 이름이 전봇대였다.[76] 여담이지만 주례는 탱자(김형곤) 하였다. 또한 하객들중 고독한 사냥꾼의 최우빈(최양락)과 동작그만의 김진호 중사도 카메오로 등장했다.[77] 방송사 사정으로 이창훈으로 바뀌기도 했다.[78] 이 유행어는 1990년 심형래가 주연을 맡은 어린이영화 <심형래의 쫄병군단>에서 활용되기도 했다.[79] 당시 인기리에 방영됐던 '자니 윤 쇼'에서 조영남이 매주 하던 오프닝 멘트("이 밤의 주인공을 소개합니다. 자니 윤!")와 자니 윤의 목소리를 패러디한 것이었다.[80] 1988년에 나온 당시 빙그레에서 내놓은 콘 아이스크림이름이 칼라 파워였으며 가격은 200원이었다.[81] 공교롭게도 정우진과 김한국은 동작그만 때 선후임 포지션을 그대로 물려 받았는데 다른 점은 동작그만 에서는 짬 차이가 많이 났지만 본 코너 에서는 짬 차이가 많이 나지 않았다.[82] 이 때 한정호가 군사경찰 중 1명으로 등장했다. 한정호가 동작그만에서 김한국의 맞후임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재미있는 장면.[83] "잘 될 턱이 있나" 부분 중 '턱' 대목에서 주먹으로 턱을 친다.[84] "좋~습니다"를 외치면서 손으로 'OK' 동작을 하거나 머리 위로 동그라미를 크게 그리는 모션을 했는데 어른의 사정으로 이들 모션이 엄지 손가락을 내미는 모션으로 달라졌다는 이야기가 있다. 'OK' 손동작은 당시 통일민주당 총재였던 김영삼을 상징하는 손짓이었고 머리 위로 동그라미를 크게 그리는 모션은 평화민주당 총재였던 김대중의 트레이드 마크 모션이었기 때문이다. 바뀐 모션인 엄지 손가락은 그 당시 집권당이던 민주정의당을 의미했다.[85] 이 유행어는 극중 김학래가 밀던 것으로, 코너의 인기 때문에 인지도는 상당히 높지만 의외로 실생활에서 따라하는 경우는 별로 없었던 특이한 케이스였다. 아마도 대놓고 아부를 하는 모습이 보기 안 좋아서 그런듯.[86] 응답하라 1988에 이 대목이 등장한다.[87] 김용이 매회 에피소드 첫 부분에 어떤 이야기를 주제로 이야기를 꺼내자 모두가 호응하는데, 이자 역을 맡은 조문식이 항상 재미있어하다가 뜬금없이 나오는 멘트다.[88] 위에서 말한 것처럼 주로 양자(오재미)를 구박할 때 한 말이다.[89] 이 말 한 마디에 훈훈한 분위기가 갑자기 험악해지고, 경애 아버지(김학래 분)가 최양락의 멱살을 잡거나 밀어 넘어뜨린다.[90] SBS로 이적한 개그맨들은 나름 활동을 잘 이어갔는데 하필이면 1997년 말에 IMF가 터지는 바람에 모든 개그 프로그램이 폐지하기에 이르렀다. 지금이야 말도 안되는 일이라고 생각하겠지만, 당시는 어쩔 수가 없었던 것이 외환 위기로 인해 사회분위기상으로 브라운관을 통해 웃고 즐길 수 있는 예능프로그램을 편성하기에는 부적절하다는 이유로 SBS를 포함한 모든 공중파 예능 프로그램의 대부분이 개편 시기를 막론하고 강제 종영되었기 때문이다.[91] 1995년 개국 지역민방을 1차 지역민방, 1997년에는 2차 지역민방, 2001년을 3차 지역민방이라 한다. 단, iTV 경인방송은 SBS 네트워크 라인을 쓰지 않고 독자민방이었는데 노사갈등으로 인해 2004년 말에 폐국조치되었으며 경인방송의 TV방송 부문은 2007년에 개국한 OBS 경인 TV가 승계했다.[92] 정작 이 꾸러기 대행진도 고작 1년 뒤에 종영하고 만다. 아역 탤런트나 유아들을 출연시켜 아동에게 억지 상황을 주고 부적절한 대사를 하게 했다고 방송위원회의 제재를 받았다고...[93] 그나마 코미디 세상만사 덕분에 코미디 프로의 명맥이 완전히 끊기지는 않았다.[94] SBS의 웃찾사가 2004~5년 무렵 전성기때 아주 잠깐 개콘의 전성기에 살짝 비비긴 했었고, MBC의 개그야도 2006~7년에 나름 전성기를 누리긴 했지만, 두 프로 모두 개콘의 아성을 뛰어넘지는 못했다는게 중론이다.[95] 1988년 연말부터 적용했었다.[96] 다만 유튜버 Woober99가 1985년, 1986년~1987년 사이에 방영된 유머 1번지 녹화본을 올려준적이 있으며 현재 계정이 폭파되어 Woober99의 데일리모션 채널에서 볼 수 있다.[97] 노래는 '잘 살아보세' 였다.[98] 물론 직접 연출하지 않고 잠시 퇴장한 상황에서 소리만 연출하였다.[99] 집필 거부.[100] 당시 최고인기를 구가했던 KBS 일일드라마 서울뚝배기 등도 동시기에 한달간의 휴방기를 가진다. 서울뚝배기 / 여담 항목 참조.[101] 이 날이 추석연휴 당일 이였었다.[102] 가상참여국가는 이탈리아, 미국, 한국, 남아공, 멕시코, 과테말라, 모리타니, 북한, 피지, 홍콩, 소련, 불명 등 이다.[103] 사실은 1990년 8월 여름방학 특집으로 방영했던 <세계폭소가요제>의 정신적 후속작 이지만 당시에는 유머 1번지와는 별개인 특별프로그램 이였었다.[104] 심신, 엘비스 프레슬리, 마이클 잭슨[105] 찰리 채플린, 마돈나, 존 레논, 미스고구마아가씨(...)[106] 노래가 시작하자 마자 갑자기 엄영수가 진행하는 긴급뉴스속보가 나왔는데 정작 속보가 끝나자 노래도 같이 끝난설정(...), 심지어는 일부 참여가수는 노래전 사망 플래그(...) 설정 까지 있었다.[107] 이후 20**년 현재까지도 롯데 자이언츠의 마지막 한국시리즈 우승으로 남아 있다.[108] 10년간 이면 1993년 4월 2일이 지나야 맞는데, 10년을 채우지 않았기에 '지난 9년여간 유머1번지를 사랑해주신 시청자 여러분 대단히 감사합니다...'가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