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격의 거인 The Final Season의 오프닝 테마에 대한 내용은 나의 전쟁 문서 참고하십시오.
My War | |
<colbgcolor=#35a3f9><colcolor=#000> 발매일 | 1984년 3월 |
녹음일 | 1983년 12월 |
장르 | 하드코어 펑크, 슬러지 메탈 |
재생 시간 | 40:22 |
곡 수 | 9곡 |
프로듀서 | 스팟, 그렉 긴, 빌 스티븐슨 |
스튜디오 | 토탈 액세스 레코딩 |
레이블 | SST 레코드 |
1. 개요
죽기 전에 꼭 들어야 할 레코딩 1000 |
블랙 플래그의 2집 앨범. 1984년 발매.
2. 상세
블랙 플래그의 첫 정규 앨범인 "Damaged"가 많은 우여곡절을 겪으며[1] 1983년에야 간신히 발표되는 사이, 블랙 플래그는 여러 뮤지션들과 교류하며 다양한 음악적 영향을 흡수하고 있었다. Flipper, Void, Fang 등 보다 실험적인 성향의 하드코어 펑크 뮤지션들의 음악과 그리고 메탈에 대해서도 관심을 보였다. 이 과정에서 대표적인 초기 둠 메탈 밴드 "Saint Vitus"[2]등을 중심으로 당시 막 형성 중이던 둠 메탈 씬의 흐름에서 영향 받았다고 이야기 되기도 한다. 즉 그들을 통해 메탈, 특히 블랙 사바스 식의 메탈 음악의 영향을 흡수했다는 것.[3] 그리고 1984년 밴드의 2번째 앨범으로 발표된 "My War"에서 블랙 플래그는 한편으로 기존의 밴드 색깔에 블랙 사바스 등의 영향이 옅보이는 메탈음악의 색채를 짙게 받은 모습과 다른 한편으로는 또한 좀 더 실험적인 음악적 시도를 보여주었다.그러나 앨범 발매 당시에는 평단과 팬들의 반응은 호불호가 엄청나게 엇갈렸다. 특히 B 사이드의 느리고 음울한 분위기를 놓고는 평가는 극과 극을 달렸다. 이유는 - 앞서 첫번째, 두번째 앨범을 내는 동안 블랙 플래그가 겪은 우여곡절을 생각해보면 좀 더 이해가 될 수 있는 - 그들이 예상하거나 기대했던 '하드코어 펑크의 대표주자 블랙 플래그의 음악'과는 너무도 이질적인 탓이 컸다. 즉 마치 밥 딜런이 "Like a Rolling Stone"으로 포크 록을 선보였을 때의 엇갈리던 반응과 마찬가지 경우였다고 할 수 있다.[4][5]
하지만 그런 논란 혹은 소란에도 불구하고, 이 "My War" 앨범은 대담한 음악적 시도를 통해 당시 하드코어 펑크 씬 주변의 많은 뮤지션들에게 영향을 끼쳤고 이후 그런지, 포스트 하드코어 등 다방면 장르의 아버지격 되는 작품으로, 여기에 더해서 6번 트랙 'The Swinging Man'의 경우는 매스 록의 탄생에도 영향을 주었다는 평을 받기도 한다.
특히 발표 당시 가장 큰 논란의 대상이 되었던 B사이드의 "Nothing Left Inside"등의, 블랙 사바스 혹은 둠 메탈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가장 크게 말해지는 느리고 헤비한 사운드의 무겁고 어두운 감각의 곡들은 멜빈스 Melvins등 여러 후배 밴드들에게 영향을 끼쳐 슬러지 메탈 장르의 탄생으로 이어졌다.[6]
하지만 여기서 끝나지 않고, 이를 통해 최소한 두 장르의 또 다른 록 음악이 더 탄생하게 된다. 블랙 플래그와 슬러지 메탈에 영향을 받은 펑크 계열 뮤지션들 중 대표적인 경우의 하나가 바로 너바나등으로 대표되게 될 시애틀 그런지 뮤지션들이었다.[7][8] 그리고 다른 하나는 (특히) 캘리포니아 남부의 뮤지션들이 주축이 된 스토너 록이었다.
3. 트랙리스트
||<table width=100%><table align=center><tablebgcolor=#fff,#191919><table bordercolor=#35a3f9><bgcolor=#35a3f9><rowbgcolor=#35a3f9><rowcolor=#000><width=5%> 트랙 ||<width=18%> 곡명 ||<width=30%> 작사 / 작곡 ||<width=10%> 재생 시간 ||
Side one | |||
1 | My War | 척 두카우스키 | 3:52 |
2 | Can't Decide | 그렉 긴 | 5:27 |
3 | Beat My Head Against the Wall | 그렉 긴 | 2:34 |
4 | I Love You | 척 두카우스키 | 3:23 |
5 | Forever Time | 헨리 롤린스, 그렉 긴 | 2:55 |
6 | The Swinging Man | 헨리 롤린스, 그렉 긴 | 2:25 |
Side two | |||
7 | Nothing Left Inside | 헨리 롤린스, 그렉 긴 | 6:39 |
8 | Three Nights | 헨리 롤린스, 그렉 긴 | 5:51 |
9 | Scream | 그렉 긴 | 6:54 |
4. 참여자
[1] 배급사 MCA와의 갈등에 소속 레이블이던 Unicorn Record 파산 및 법정분쟁 등까지 겪었고, 그 과정에서 기타리스트 Greg Ginn과 작곡가 Chuck Dukowski 는 5일간 구류형을 당하기까지 했다. 그 결과 밴드는 1981년에 녹음된 앨범을 1983년에서야 발표할 수 있었다. 덕분에 미발표곡을 모은 컴필레이션 앨범 "Everything Went Black"이 정작 첫번째 정식 앨범보다 먼저 발표되게 된다.[2] 이들도 블랙 플래그와 마찬가지로 SST 레코드를 통해 음반을 발표했다.[3] 또 밴드 멤버들이 청소년기 등 이전에 좋아하던 음악인 하드록, 메탈의 요소를 자신들의 음악에 반영하고 싶어했다는 이야기도 있다.[4] "My War" 발표 당시 이전 같은 하드코어 펑크를 기대했던 이들 - 팬들은 물론이고 평론가들 (개중에는 로버트 크리스트가우 같은 저명한 평론가도 포함되어 있었다)의 격앙된 반응, 특히 '메탈 색채'(와 느린 음악)에 대한 반응은 실제로 딜런의 "Like a Rolling Stone/Highway 61 Revisited" 발표 당시, 딜런이 '포크의 순수성'을 유지하기를 기대했던 이들이 '일렉트릭 악기와 록음악'에 대해 보인 혐오감과 매우 유사했다.[5] 심지어는 앨범 발표 당시 블랙 플래그는 1년 이상 공연을 하지 않은 상태였고, 다시 등장했을 때는 멤버들 모두 머리가 꽤 길어진 상태였다. 당연히 당시 '긴머리 = 히피'라고 생각하던 펑크 팬들은 그들이 알고 있던 '하드코어 스킨헤드' 이미지에 더는 부합하지 않는 헨리 롤린스 및 밴드 멤버들의 모습에서부터 경악하곤 했다.[6] 그들이 블랙 사바스 등을 차용해 무겁고 느린 펑크 록을 시도한 이유의 하나는, 당연히 '시대의 정서'로서 '우울감, 좌절감, 무력감'을 표현하고자 했기 때문이다.[7] 실제로 적잖은 그런지 뮤지션들이 '80년대 중,후반 블랙 플래그와 멜빈스의 공연과 음반을 접하고 받은 충격을 술회했다.[8] 그런지 뮤지션들은 특유의 '루저'적인 감성을 통해 격렬한 분노 등 만이 아닌 무력감, 우울 등의 정서를 담아내려 했던 "My War" 특히 B-사이드를 사운드의 측면만이 아니라 정서적 측면에서도 계승했다고 할 수 있었다.[9] 녹음 당시 베이스가 공석이었기 때문에 그렉 긴이 데일 닉슨이라는 명의로 베이스를 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