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현재의 예명은 屍忌蛇('시이쟈'라고 읽는다).1966년 6월 4일 일본 고치현 출생.
일본의 기타리스트
일명 일본의 마이클 솅커, 알코올중독 아저씨로 불린다.
트위터 주소.[1] 그래도 술 안 먹었을 때 만큼은 나름 괜찮은 사람이라 가끔씩 올라오는 일상 사진은 정상적인 편.
2. 경력
1993년, 메탈 밴드 Gargoyle(가고일)[2]로 메이저 데뷔. 차세대 일본 메탈계를 이끌어갈 유망주로 주목받았으나 얼마 안 가 탈퇴한다.이후 인디즈, 세션, 기타 레슨 등을 전전했으며[3] 그의 인지도가 크게 높아진 계기는 1997년 ANIMETAL 프로젝트 참가. 이때부터 주목받는 기타리스트로 이름을 떨치게 된다. 2002년까지 ANIMETAL에서 활동했으며, ANIMETAL 휴식기에는 VOLCANO[4]를 재결성하여 활발하게 활동했다.
2007년 자신의 밴드인 VATHOKIJA(바소키야)를 재결성해서 지금까지도 정기적으로 활동 중이며, 2013년에는 ANIMETAL에서 함께했던 사카모토 에이조와 함께 애니메이션 주제가를 메탈로 편곡하는 프로젝트 '아이센시(哀旋士)'를 결성해 앨범 한 장과 싱글 한 장을 발매했다.
3. ANIMETAL 탈퇴와 그 전말
2002년, 시이쟈가 ANIMETAL을 탈퇴했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그 후임으로 차세대 유망주로 이름을 날리던 GALNERYUS의 SYU가 가입했다.그런데… 4년 후인 2006년 12월 28일, 시이쟈는 자신의 공식 홈페이지에 ANIMETAL의 프로듀서 히사타케 요리마사가 SYU와 짜고 자신을 내쳤다는 내용의 근거 없는 글을 올린다.
TV에서 히사타케가 나올 때마다 구역질이 난다. 죽어라 히사타케.
가르네리우스 따위가 뭔데? SYU? 그놈에게는 화가 치밀거든?
가르네리우스 따위가 뭔데? SYU? 그놈에게는 화가 치밀거든?
이렇게 히사타케 요리마사와 SYU를 직접 거론하며 욕설 섞인 비난까지 퍼부었다.
시이쟈는 그 실력과 별개로, 주사가 심해 많은 비난을 받았다. 라이브 직전에 술을 마시고 취해서 연주를 망치거나, 인터넷에서 팬들에게 "비판은 2ch에서나 하라"고 욕을 퍼붓는 건 예사였다. 평소에는 그나마 친절한 편인데 술 마시면 남 욕밖에 할 줄 모른다며 주변 사람들에게 기피대상이 되어갔다.
심지어 레코드사가 주최한 디너 파티에서까지 만취해서 난동을 부리고, 주사 때문에 시이쟈 개인의 사생활 뿐 아니라 프로젝트도 엉망이 되기 시작하자 프로듀서인 히사타케 요리마사가 참다 못해 그를 해고했다.[5]
결국 히사타케와는 완전히 원수지간이 되었고, 별 상관도 없었던 후배인 syu와도 사이가 틀어졌다. 아직도 시이쟈는 히사타케를 씹고 다니며, 이는 고스란히 그에게 악재가 되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히사타케 요리마사는 사이가 나빠진 후에도 시이쟈가 소속된 밴드의 프로듀스를 맡아, 업계의 프로페셔널로 불리고 있다.
4. 술버릇
심한 주사 때문에 ANIMETAL에서도 해고당하고, 그 후에도 자기 커리어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는데도 정신을 못 차린 듯하다.시이쟈의 주사는 예전보다도 오히려 심해진 것 같다.
아래는 대표적인 일화.
- 만취상태에서 트위터에 사이퍼(D'ERLANGER)를 욕했다.
- 만취상태에서 키츠타카 후미히코(근육소녀대)에게 "사내놈이 술도 못 마시고… 내가 훨씬 기타 잘 친다"고 말해 물의를 일으켰다. 참고로 키츠타카 후미히코가 한 살 연상.
- 만취상태에서 선배 기타리스트 요코제키 아츠시[7]에게 "플레이에 화려함이 없다"고 비난했다.
근데 잉베이는 왜 까냐?후에 요코제키 아츠시도 "내가 제일 싫어하는 부류는 비주얼계 애송이, ANIMETAL의 기타리스트, 가고일의 전 기타리스트, 볼케이노의 기타리스트, 쿠로이와 솅커다"라며 시이쟈를 대차게 까버렸다.[8]
- 만취상태에서 세이키마츠의 기타리스트 루크 타카무라에게 "내가 이 놈에게 기타를 가르쳤는데 아직도 서투르다"고 비난했다. 루크가 두 살 연상.
- 만취상태에서 온묘자에게 "너네는 코믹밴드일 뿐"이라고 폭언했다.
- 만취상태에서 후배인 Hiro(La'cryma Christi)를 걷어차 목뼈를 부러뜨릴 뻔했다.
- 만취상태에서 교제 중이던 여성의 알몸 사진을 인터넷에 올린 적이 있다.
- 만취상태에서 다른 밴드의 팬을 아줌마라고 부르며 비아냥거렸다.
5. AV 출연
2010년에 갑자기 AV배우로 데뷔해서 팬들을 경악시킨다.그러나 별로 화제도 되지 않았고 얼마 팔리지도 않았다.
6. 아이센시
2013년 사카모토 에이조와 아이센시를 결성하였는데, 하필 이런 인간과 팀을 만드냐며 사카모토 에이조에게 비난이 폭주하자 결국 사카모토 에이조가 트위터를 탈퇴한다. 시이쟈의 행동은 아이센시 초반부터 민폐였다.일본 록/메탈계에서 수많은 사람이 싫어하는 시이쟈에 대해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는 에이조에게 자파메탈 관계자와 팬들이 실망했다는 반응을 드러내고 극단적으로는 역적 취급까지 하는 등, 아이센시 하나 때문에 사카모토 에이조의 커리어에 심각한 문제가 생기고 말았다.
아이센시의 드럼 세션에 ANTHEM의 드러머인 혼마 히로츠구도 참가했는데, 이런 행보에 'ANTHEM에 집중하지 않는 개인 활동으로도 모자라 이제 팀까지 깨려고 드냐'고 생각한 시미즈 아키오와의 갈등이 커져서 감정대립으로 이어졌다고 한다. 결국 리더인 시바타 나오토와도 문제가 생겨 탈퇴에 이른다.
그래도 ANIMETAL 오리지날 멤버 두 명이, 다시 한번 애수의 선율을 연주하고 아니메송을 세계에 전하기 위해 손을 잡은 것까진 좋았으나… 애니메이션 곡을 메탈로 연주한다는 콘텐츠 자체가 이미 한물 간 상황이라[10] 나쁜 쪽으로만 화제가 되었고, 심지어 에이조의 팬이 가장 많은 남미에서까지 음반 반품 요청이 나오는 초 악재.
아이센시 프로젝트로 인해 사카모토 에이조는 자파메탈 계열에서 반쯤 내쫒긴 상황이라, 다시 자파메탈계에서 그를 보기는 힘들 듯하다. 시이쟈는 말할 것도 없고. 아이센시는 이제 겨우 앨범 한 장 싱글 한 장 냈는데 벌써 흑역사가 되어가는 중이다.
7. 금주 선언
2014년 4월 25일 소주를 절대 마시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당연하게도 못 믿겠다는 반응이 대부분이며, 금주 선언이 아니라 소주는 마시진 않아도 맥주는 마시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아니나 다를까 같은 해 5월 2일, 정확히 1주일 만에 소주를 안 마신다는 선언을 철회했다.
8. 평가
일본 메탈계의 서정시인실력에 비해 지명도도 떨어지고 상당히 저평가 받는 뮤지션이다.
일본의 기타 전문 잡지인 영기타(ヤング・ギター) 매거진이 2019년 2월에 SHEJA의 기타 연주 영상#을 본사 youtube 채널에 올렸는데 멀쩡히 잘 연주했음에도 불구하고 별 다른 이유 없이 비추가 유독 많은 걸 알 수 있다(...). SHEJA에 대한 일본 메탈 팬덤의 부정적 인식을 엿볼 수 있는 대목...
술버릇과 성격은 너무 더럽지만, 기타 실력과 멜로디 메이킹 능력은 무척이나 출중하다. 듣는 이로 하여금 애수를 자아낸다는 평가를 들을 정도로 독보적인 음악성을 구축한 멜로디컬한 프레이즈#가 특징이다. 혹자는 SHEJA를 두고 센티멘탈하면서 공격적인 멜로디를 앞세우는 일본 메탈의 특징을 가장 잘 구현하는 기타리스트란 평을 내린다. 그래서 일본 메탈씬에서 누가 최고의 기타리스트라는 물음에는 답이 엇갈리지만 누가 가장 일본적인 멜로디를 표현하는 기타리스트냐는 질문엔 SHEJA를 언급하는 평자들이 많다. SHEJA완 다소 다른 차원에서 역시 멜로디컬한 프레이즈를 잘 구사하는 베르사유의 기타리스트 히자키 역시 그런 측면에서 극찬#을 아끼지 않는다. 히자키 같은 경우는 너무 멜로티컬해서 메탈음악으로서 헤비한 맛은 다소 떨어진다는 평을 듣지만 쉐이자 같은 경우는 서정성과 공격성 양자 모두 균형을 잘 갖췄다는 평을 듣는다.
그래서 일본의 마이클 솅커나 쿠로이와 솅커라는 별명이 꽤 유명하다. 그런데 사실 SHEJA가 추구하는 음악은 잉베이 말름스틴으로 대표되는 네오 클레시컬 메탈에 가깝다.
깁슨 플라잉브이를 애용하고, 그의 트레이드마크로 여겨지고 있다. 마이클 솅커가 인기있는 일본에서는 플라잉브이도 매우 인기가 좋다. 이 기타를 메인으로 쓰는 기타리스트가 매우 많다. 근육소녀대 키츠타카 후미히코도 대표적인 플라잉브이 사용자이며, 타카사키 아키라도 LAZY에서 몸담았을 때는 플라잉브이를 사용했다.
결론적으로 심금을 울리는 멜로디로 대변되는 록 뮤지션으로서의 음악적 역량은 정말로 뛰어나지만 술버릇으로 대표되는 무절제하고 방종한 삶의 방식이 뮤지션으로서 훨씬 더 훌륭한 커리어와 업적을 쌓을 기회를 번번이 무산시켰고 결과적으로 삶을 송두리째 망가뜨렸다. 그래도 과거 PARANOIA[11], AION의 보컬이었던 NOV와 결성한 VOLCANO에선 꾸준히 활동하고 있고 또 계속 훌륭한 음악적 역량을 보여주고 있다.
[1] 2020년 3월 6일 기준 삭제됨.[2] 1987년에 결성됨. 초기 비주얼계로 분류되기도 하나, 닌겐이스(人間椅子) 등과 함께 '화풍(일본풍) 메탈'의 선구자로 불리는 밴드다. 이 화풍 메탈의 다음 세대가 바로 온묘자.[3] 대략 1993년~1997년 사이로 추정되는 이 시기는 일본 메탈 암흑기(정확히는 1990년대 거의 전체)로 불리는 시기로, 수많은 메이저 그룹들이 해체하는 등 헤비메탈 그룹들이 대놓고 외면당하던 시대였다.(라이브 하우스마저도 헤비메탈 밴드라고 하면 바로 쫓아보냈다고 한다.) 이 지옥 같았던 메탈 암흑기를 끝낸 그룹 중 하나가 바로 ANIMETAL이다.(다른 하나는 섹스 머신건즈)[4] 1994년에 결성한 밴드.[5] 이후 히사타케는 자신이 출연한 방송 '헤비메타 씨(ヘビメタさん)'에서, "술에 취한 채로 헤비메탈 연주는 불가능하고, 록스타가 공연 중에 마시는 위스키 병에는 홍차가 들어있다."고 발언하며 시이쟈를 간접적으로 비난했다.[6] 켈리 사이먼즈는 이전부터 비싼 레슨비나 기타 강매 등으로 제자들을 등쳐먹는다는 소문이 있었으나, 직접 거론하면서 비난하는 것은 경솔한 처사다. 원문은 俺が日本のギタリストで嫌いな奴、島、しゅう、ケリー、大村、全員イングヴェィキッズ、死ね(내가 일본 기타리스트 중에서 싫어하는 놈은, 시마 노리후미, SYU, 켈리 사이먼즈, 오오무라 타카요시. 모두 잉베이 키즈. 죽어). 순전히 잉베이 말름스틴의 영향을 많이 받은 기타리스트를 부정적으로 보는 자신의 개인적 취향 때문에, 잉베이에게 영향받은 기타리스트들에게 죽으라는 악담을 퍼부었다.[7] 1983년 메이저 데뷔 이후, 풍부한 상상력이 가미된 연주와 화려한 프레이즈로 '제트 핑거'라는 별명을 얻은 슈퍼 기타리스트.[8] 비주얼계라는 명칭이 생긴것은 후대의 일이지만, 현대에는 비쥬얼계의 의미가 확장되어 정통 헤비메탈 밴드였던 44매그넘(1977년 데뷔) 정도까지 비주얼계로 지칭하기도 한다. 하지만 저 말은 순전히 시이쟈만을 가리키는 말이다.[9] 타카사키 아키라 항목을 보면 알지만, 그는 어릴 때부터 꽤 유명한 주먹이었다. 그런 사람에게 대드니까 저런 망신을 당한다.[10] 반쯤은 오해다. 애니메이션 곡을 메탈로 연주한다는 콘텐츠는 21세기 들어서 동방 프로젝트에 이해 수많은 밴드들이 생겼고 오히려 음악적으로는 90년대를 능가했다는 말이 나오고 있었으며, 아예 토오루 메탈이라는 신생장르로 불리기까지 한다. 대중적으로 인기가 식어든건 사실이지만 콘텐츠 자체가 밴드들이 멸종될정도로 한물간 정도는 아니다.[11] X Japan의 히스가 데뷔했던 밴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