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UGM-27 Polaris
폴라리스는 세계 최초로 잠수함이 수면에 부상하지 않은 상태로 발사가 가능한 SLBM으로서 미국 록히드 마틴이 개발했다. 잠수함을 통한 핵공격은 고정된 위치에서 운용되는 ICBM이나 레이더에 이따만하게 잡히는 폭격기와는 달리 적이 전혀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시원하게 선빵을 날릴 수 있다거나, 땅에 묻혀 있는 사일로와는 달리 찾기 힘들어 선빵에서 살아남아 대량보복에 나설 수 있다는 큰 이점을 지녔고, 당시 유럽지역에 배치된 중거리 핵투사 수단들은 소련을 완전히 끝장내기에는 머릿수가 부족했기에 해저를 통해 충분한 물량을 충족시킬 수 있는 3가지 목적을 달성할 수 있었다.[1] SSBN을 통한 핵투사는 추후 미국의 핵전력 운용방침에 큰 영향을 끼쳤고 무려 반세기가 훨씬 지난 현재까지도 가장 효과적인 수단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한편 영국은 핵을 탑재한 폭격기 등은 다 퇴역시키고 오로지 해군의 SSBN 전력으로만 핵무기를 운용하고 있는 상황이며, 프랑스 또한 ASMP 공대지 미사일이 있긴 하나 중추적인 역할은 당연히 SSBN이 담당하고 있다.
미 해군은 폴라리스를 1960년대 초반부터 1981년까지 약 20년 가량 사용했고 영국 해군 역시 약간의 개량과 자국산 탄두를 탑재한 폴라리스를 1969년에 도입해 1996년까지 운용했다. 그런데 미국은 폴라리스의 잠수함 발사시험 이전에 소련에 대한 핵억지 차원에서 이탈리아 해군을 포함한 나토군 해군 함정 여기저기에 폴라리스를 도배할 계획을 세우기도 했는데, 일반 함정보다는 잠수함에서 발사하는 탄도탄이 군사적으로 더 큰 효과를 지닌다는 판단에 따라
2. 역사
최초 나치 독일이 U보트에 V2 로켓을 실어다가 미국 동해안에 V2의 사정거리인 320 km 이내로 몰래 진입해서 뉴욕을 타격하자는 구상을 하긴 했으나 종전으로 그 뜻을 이루지는 못했다. 그런데 이런 구상은 미 해군으로 슬그머니 이어져 1950년대 초반 RGM-6 Regulus라는 일종의 순항 미사일을 개발하긴 했는데, 수면으로 부상한 상태에서만 발사할 수 있는데다가 이를 위한 준비시간도 꽤나 많이 소요되는 바람에 적에게 걸려 물귀신이나 되기에 딱 좋겠다는 조롱을 받았고, 더군다나 속도도 느려서 백날 발사해봤자 당시 소련의 방공능력으로는 얼마든지 식은죽 먹기로 격추가 가능하다는 진단이 내려진다. 그래서 차선책으로 당시 미 육군에서 개발중이던 PGM-19 Jupiter MRBM을 잠수함에서 발사하는 형태로 개량하려고 했지만 수납하기에는 너무 굵은 몸집과 액체연료의 위험성 등으로 이것도 역시 잠수함에 써먹기는 애초부터 글러먹었다는 판정을 받는다.[4] 그러나 무엇보다도 미사일을 잠수함에 집어넣기 위해서는 그만큼 소형화된 탄두가 필요했고 파도로 항상 출렁이는 바다에서 멀쩡하게 굴릴 수 있게끔 든든한 신뢰성 역시 간과할 수 없었다. 그리고 잠수한 상태에서 발사하기 위해서는 고체연료를 통한 추진이 가장 적합하다고 결론을 낸 후, 1956년 록히드社를 시켜다가 고체연료 로켓의 개발을 시작한다.[5] 이 과정에서 이른바 "Cold Launching"이라 불리는 미사일 사출방식도 연구되어 발사관에서 고압의 가스압으로 사출된 후 로켓이 점화되는 기술도 습득하게 된다.1963년 폴라리스 미사일 시험발사를 지켜보는 존 F. 케네디 대통령.
폴라리스의 최초 자체적인 발사시험은 1960년 1월 7일 케이프 커내버럴에서 있었고, 동년 7월 20일에는 미국 최초의 SSBN인 SSBN-598 USS 조지 워싱턴[6]이 잠항하고 있는 상태에서 성공적으로 발사되어 약 2,000km 가량을 비행하는데 성공한다. 그러나 사정거리와 정확도에 있어 지적된 부분은 개량을 거듭해 1961년 폴라리스 A2가 개발되었고 3년 후에는 몸뚱아리의 80% 이상을 뜯어고친 최종개량형 A3 모델이 등장하여 약 4,600km의 사정거리와 900m의 CEP를 달성하기에 이른다. A3는 유도부의 경량화, 추진부의 개량과 함께 3개의 재진입체(MRV : Multiple Re-Entry Vehicle)에 각각 200kt짜리 W58 탄두를 하나씩 탑재하는 구조로 변경되긴 했으나 현재의 MIRV와는 달리 각각 독립적인 목표물을 향해 유도되는 방식은 아니었다. 그러니까 이건 탄두를 3개로 분리시켜 최소 하나는 목표물에 근접할
지금의 시각으로 보자면 뭔가 좀 많이 모자란 물건이지만 그래도 어쨌든 최초의 SLBM인데다가 그 전략적인 가치는 어마어마할 수 밖에 없어서 1959년 조지 워싱턴급 잠수함의 취역을 시작으로 이튼 앨런급, 라파예트급 SSBN에 이르기까지는 1척당 16발씩 열심히 실어다가 전 세계의 바닷속을 마치 안방 드나들듯(...) 했다. 그러나 1971년 본격적인 MIRV를 지닌 UGM-73 포세이돈이 등장하면서 폴라리스는 슬슬 퇴역을 길을 걷기 시작했고, 대략 1969년에서 1977년 사이에 약 30척 가량의 폴라리스 탑재 SSBN이 포세이돈을 운용할 수 있게끔 개량되었다.
여담으로 세계 최초로 핵탄두를 장착하고 발사된 탄도 미사일이다. 1962년 5월 6일 이튼 앨런함이 W47 탄두를 탑재한 A2형을 발사했다.
Operation Dominic의 일환으로서, 실제 핵탄두를 장착하고 기폭시킨 SLBM 실험은 이 이후로 없었다.
3. 영국의 도입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이후 영국은 블루 스틸[8] 미사일과 WE.177 자유낙하형 폭탄을 개발했지만, 이를 투사할 수단들이 죄다 둔중하고 느려터진 대형 폭격기들이어서 소련의 방공망에 걸려들면 싹 녹아 없어질 것이 불을 보듯 뻔했다. 당연히 새로운 수단을 찾게 되었고 1960년 당시 보수당의 해럴드 맥밀런 총리는 아이젠하워 대통령과 회담을 거쳐 개발중인 GAM-87 스카이볼트 스탠드오프형 탄도탄(ALBM : Air-Launched Ballistic Missile) 144발의 도입에 합의한다. 여기서 영국은 자국산 탄두의 탑재와 함께 약소하나마 개발자금과 연구인력을 보태주기로 했고 미국이 스코틀랜드의 해군기지를 사용하는 것에 동의해주긴 했는데... 그러나 스카이볼트는 1962년 4월까지 있었던 총 5번의 누적 시험발사가 모두 실패로 돌아가는 바람에 프로젝트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이 급증했고 급기야 1962년 12월 존 F. 케네디 대통령에 의해 모든 계획이 취소되고 말았다.[9]영국은 이 사달이 난 것을 미국이 자신들의 핵보유국 지위를 방해하려는 의도라고 인식하는 바람에 "Skybolt Crisis"라고 일컬어지는 외교문제로 번지기까지 했는데, 이는 미국에게 큰 정치적 부담으로 작용하여 결국 폴라리스 A3를 판매하는 협정을 맺게 된다. 미국은 이와 더불어 폴라리스의 화력통제장치와 발사관 등을 같이 끼워팔긴 했으나 SSBN의 건조/운용에 관한 사항은 일절 도움을 주지 않았고, ET.317이라는 200kt짜리 영국제 탄두를 사용하는 것에는 상호 합의하기에 이른다. 영국으로 수출된 폴라리스는 Polaris A3T라는 명칭으로 개명된 후 1967년 취역한 영국 최초의 SSBN인 레졸루션급 잠수함에 탑재되어 실전에 배치된다. 그러나 폴라리스가 영국에 정식으로 도입된 시기는 1969년이고 그 사이에는 미국으로 보내져 폴라리스의 운용 적합성과 발사시험 등의 이런저런 테스트를 수행했다. 영국 해군은 총 133기의 폴라리스를 도입해서 1996년 12월까지 운용한 후 UGM-133 트라이던트 II로 대체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4. 제원
<rowcolor=#FFFFFF> | UGM-27A Polaris A1 | UGM-27B Polaris A2 | UGM-27C Polaris A3 |
<colbgcolor=#CD3861><colcolor=#FFFFFF> 길이 | 8.69 m | 9.45 m | 9.86 m |
지름 | 1.37 m | ||
중량 | 13,000 kg | 14,700 kg | 16,200 kg |
사정거리 | 2,200 km | 2,800 km | 4,600 km |
속도 | 13,000 km/h | ||
유도 | 관성항법 (Inertial Guidance) | ||
CEP | 1,800 m | 1,200 m | 900 m |
탄두 | W47-Y1 (600 kt) ×1 | W47-Y2 (1.2 Mt) ×1 | W58 (200 kt) ×3 |
추진 | 고체연료 2단 | ||
운용기간 | 1960~1965 | 1961~1974 | 1964~1982 |
|
Polaris A3 |
5. 관련 문서
(영문 위키백과) UGM-27 Polaris[1] 또한 스코틀랜드와 스페인에 위치한 일부 해군기지는 미 해군의 SSBN을 위한 중간 보급기지 노릇을 해서 미국 본토에서 이동하는 시간을 절감할 수 있었다.[2] 하지만 이탈리아는 이게 못내 아쉬웠던 것인지 1970년대 초반 자체적으로 Alfa라는 핵탄두 탑재 미사일의 개발을 진행하고 있었으나, 1976년 핵확산금지조약으로 인해 모조리 취소시켜 버리고 말았다.[3] 그러나 당연히 기술적인 연관성은 전혀 없다. 잠수한 상태에서 발사가 가능하긴 한데 R-21은 액체연료를 사용하는데다가 CEP는 무려 3 km에 이른다.[4] 여기서 육군과 해군의 탄도탄 개발은 서로 완전히 엇갈린 방향으로 흘러가게 됐고 그나마도 주피터 미사일의 관할은 1956년 미 공군으로 이관된다. 이 결정으로 미 육군은 사정거리 200 마일 (320 km) 이하의 전술형 지대지 미사일만 보유할 수 있게 제한된다. 그러니까 데이비 크로켓같은 미친 물건이 나오지[5] 록히드는 미사일의 총체적인 설계와 제작을 맡았고 추진부는 로켓엔진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던 Aerojet이라는 회사에서 담당했다. 이 회사는 추후 타이탄 로켓과 미니트맨, 피스키퍼 ICBM 등의 추진체를 납품하는 실적을 올렸으며 A-10 공격기의 주무장인 GAU-8 기관포의 탄약을 제작하기도 했다. 1980년대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의 SDI 계획에 의해 많은 사업을 수주했었으나 이후 군축에 따라 가세가 슬슬 기울기 시작하여 2013년 Aerojet Rocketdyne社로 인수/통합된다.[6] 원래는 스킵잭급 잠수함 SSN-598 USS 스콜피언으로 건조될 예정이었으나, 이 중대한 거사를 앞둔 시점에서 하루라도 빨리 건조하고자 이미 기공된 선체를 강탈하여 중간에 미사일 구획을 삽입하는 등의 개조작업 후 SSBN으로 탈바꿈시켰다(...) 사실 조지 워싱턴급 잠수함은 폴라리스의 운용을 위해 약간은 급조되다시피 한 함급이었기에 스킵잭급 SSN과 같은 원자로를 사용하는 등 중추적인 설비들은 서로 거의 동일했다.[7] 보복공격이야 뭐 사람 많은데 하나 골라잡아 이판사판 다 때려부수면 되지만, 선제타격을 위해서는 소련 ICBM 기지를 비롯한 전략적인 목표물을 정확히 제대로 털어야 하는데, 이게 엉뚱한 동네로 날아간다던지 라스푸티차에 풍덩 처박힌다던지 하면 안되니까(...)[8] 영국 공군에서 운용한 1.1 Mt의 탄두를 지닌 공대지 미사일인데, 화력은 좋으나 사정거리가 꼴랑 240km에 불과해서 이거 발사하려고 소련으로 날아가는 것은 그냥 불나방처럼 죽으러 가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사정거리를 연장한 파생형을 계획했지만 돈도 없고 기술적으로도 힘든 상황이라 스카이볼트만 바라보며 손가락만 쪽쪽 빨고 있었으나 스카이볼트 계획이 취소된 후 폴라리스를 도입하면서 1970년이 돼서야 이 진상을 쿨하게 갖다버릴 수 있었다.[9] 그런데 프로젝트가 취소된지 3일 후 애초 예정된 계획에 따라 어쩔 수 없이 시험발사를 했는데 이건 또 매우 성공적으로 끝났다고 한다(...) 그러나 대통령이 까라면 까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