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0-03-06 18:48:36

U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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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피(UP)[1]
그룹명 유피(UP)
멤버 이해정, 강현[2], 김용일[3], 이정희, 상후, 이켠[4]
활동기간 1996년 - 1999년
장르 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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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2. 멤버 변천사3. 활동 내역
3.1. 1집3.2. 2집3.3. 3집3.4. 4집
4. 그 후 근황

1. 소개

대한민국의 1990년대에 활동한 혼성 아이돌 그룹. '유피'라고 읽는다. 참고로 그룹 이름의 의미는 올라간다는 뜻의 UP이 아니고 'Ultra People(울트라 피플)'의 약칭.

혼성 아이돌의 역사 중 하나이며, ‘바다’, ‘뿌요뿌요’와 같이 오랜 시간 동안 기억되고 있는 히트곡들이 있다. 다만 말년의 이해되지 않는 콘셉트 변화와 허술한 기획, 1998년에 접어들 때 1997년 외환 위기에 이은 여성 아이돌과 1세대 아이돌 그룹의 부상으로 세대가 바뀌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2000년대 초반의 S#ARP, 스페이스 에이와 함께 일시적이나마 성공한 혼성 아이돌의 마지막 세대라고 볼 수 있다. 신비감이 갖춰져야 하는 아이돌과 대중성으로 승부를 노리는 혼성 그룹과의 궁합이 맞지 않기 때문으로 보는 경우도 많다. # 유피 역시 잦은 콘셉트 변경으로 시장 확보에 성공 사례인 동시에 실패 사례일 것이고... 물론 스페이스 에이도 있긴 하지만 말이다.[5]

여담으로 UP의 2집 외에도 H.O.T.의 '캔디'나 '행복'으로 최고 히트 작곡가 반열에 오른 장용진 역시 이때 이후로는 좀처럼 히트곡을 쓰지 못했다.

2. 멤버 변천사

  • 1집 - 강현, 김용일, 이해정
  • 2집 - 이해정, 김용일, 이정희, 박상후
  • 3집~4집 - 김용일(중도 탈퇴), 이해정, 이정희, 박상후, 이켠(3집 활동 중 중도 투입)[6]

3. 활동 내역

3.1. 1집

1996년, 강현, 김용일, 이해정으로 구성된 3인조 혼성 그룹으로 '1024(10월 24일)'[7]이라는 곡으로 데뷔했으며 중상위권에서 꾸준히 오랜 기간 인기를 얻었다.

사실 그 당시에는 가요차트에선 10위권 안쪽에 들어와야 히트했다고 말하는 분위기가 있었고, 중위권에서 오래 버티는 노래들은 상당히 저평가를 받았는 분위기가 있었다. 대표적으로 김흥국의 '59년 왕십리'는 거의 10개월 동안 가요톱텐에서 11~30위에서 버티고 있었지만 '호랑나비' 같이 1위를 못해서 김흥국을 원 히트 원더라고 생각하게 만든다. 하지만 빌보드 연말차트 방식으로 계산했다면 연말결산 20~30위에 충분히 들어가며, 웬만한 빌보드 1위곡들도 저 수준이다.

'59년 왕십리'만큼은 아니어도 '1024'도 차트 권에서 서너 달을 버티면서 선전했다. 역시 빌보드 연말결산 방식으로 따지면 충분히 40~60위권은 바라볼 수 있고 웬만한 탑텐 곡들이 저 수준이다. 그리고 당시 활동했던 1996년 초중반은 대형 가수들이 대거 컴백해서 1996년 별들의 전쟁이라 부를 정도로 경쟁이 심했으니 이 정도면 상당히 선전한 것이며 원 히트 원더의 사례에 나오는 웬만한 노래들보다는 히트했다.

다만 곡 일부의 멜로디와 분위기가 서태지와 아이들의 이 밤이 깊어가지만과 상당히 유사하다. 요즘 시대였더라도 역시 표절시비로 인하여 높은 평가를 받기 어려울 것이다.

당시 멤버들은 1976년 전후 생으로 당시 갓 20대였다. UP하면 기억하는 귀염발랄 돋는 모습과는 사뭇 다른 강렬한 비트와 댄스의 혼성 그룹이었으나, 메가히트까지는 하지는 못하자 전면적인 체제 개편 작업을 단행했다.


1996년 m.net에서 방영된 유피의 '1024' 무대 장면이다.

3.2. 2집

1997년, 1집에서 랩을 담당하던 강현이 빠지고 박상후, 이정희가 가세했다. 이들은 1982년생으로 당시 16세의 중3이었다. 결국 멤버 구성이 20대 남녀 2명과 중3 남녀 2명으로 구성된 4인조 혼성 그룹으로 변모하였다. 이정희는 당시 남자아이 같은 외모로 '쟤가 여자애였어?' 라고 놀라는 사람이 많았으나, UP 해체 이후 평범하게 지내는 모습이 공개되며 단순한 콘셉트가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그리고 이해정 역시 전작과는 전혀 다른 귀엽고 깜찍함을 강조하는 모습으로 탈바꿈해 보이시한 이정희와 함께 비주얼적인 개성을 한껏 강조했으며, 이게 노래 분위기와도 그대로 맞아떨어져 본격적인 성공가도를 달리기 시작했다.

그 해 여름 2집에서 '뿌요뿌요' 와 '바다' 등을 잇달아 히트시키며 UP의 전성시대를 열었다. SBS TV가요 20에서는 '뿌요뿌요'가 5주 명예졸업을 했으며 왕중왕전에서도 1위를 하는 기염을 토했고, KBS 가요톱10에서는 2주간 1위를 차지했다. 후속곡인 '바다'도 1위 후보에 여러 번 오르면서 큰 인기를 끌었다. 한 앨범에서 두 곡을 연속으로 가요차트 최상위권에 히트시킨 사례는 지금도 흔치 않다. 참고로 '뿌요뿌요' 이후 컴파일 코리아로부터 레어 한정품 뿌요인형과 뿌요뿌요 2를 선물받았다고 한다. 뿌요뿌요 게임 시리즈의 팬들이라면 네이버 등지에서 검색하다가 '뿌요뿌요' 라는 제목의 곡은 이름이라도 본 적이 있을 듯하다.[8][9] 그런데 이 2집의 수록곡 중에 '아프리카' 는 이미 1집에 실렸던 노래를 그대로 재탕해서 다시 실었다.[10][11] 후속곡인 '바다'는 인기 때문인지 예전에 투니버스에서 광고 중간에 '투니뮤직'으로 나왔으며, 그때 삽입된 영상은 '먼 바다에서 온 쿠'라는 극장판 애니다.



뿌요뿌요의 라이브 버전[12]

당시 활동하던 댄스 그룹이 대부분 립싱크를 했음에도 꽤 많은 무대에서 라이브를 하였다. 중학생 멤버 두 명의 역할은 귀여운 댄스+랩이라기 보단 추임새에 가깝고,[13] 보컬은 당시 UP의 마스코트와 같았던 여성 보컬 이해정과 리드 보컬 역할을 했던 김용일에 편중돼 있다. 이해정의 보컬은 잘 한다기 보다는 특색 있다에 가깝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애교 발사 + 비음 작렬[14][15][16] 김용일의 경우는 좀 다른 것이, 위 영상을 보면 알겠지만 '뿌요뿌요'에서 본인 파트가 도입부터 시종일관 고음인 데다, 숨 쉴 틈이 거의 없는데 음정이나 호흡에 흔들림이 거의 없다. 심지어 이 노랜 댄스곡이다! 요즘처럼 보컬트레이너에게 몇 년씩 레슨 받는 신인들과 비교해도 못지 않거나 심지어 나은 모습이다. 최근의 아이돌들이 부른 '뿌요뿌요'랑 비교해보면 김용일은 물론이고 이해정의 파트마저도 그렇게 제대로 소화 못하는 영상도 있다.[17] 이를 보면, 보컬리스트로서의 타고난 재능은 꽤나 훌륭한 편이라는 걸 알 수 있다.

3.3. 3집

'바다' 활동 이후 '미야(美夜)'로 잠시의 변신을 준 후 2집을 마무리하고 쉴 새 없이 같은 해 가을 바로 3집을 내서 '밝은 세상"(發斤世上)' 을 타이틀 곡으로 했으나, 제작사의 투자 미비로 뮤직비디오를 내지 못하는 등 2집만큼의 반응은 나오지 않았다. 애초에 전작 활동을 마무리한 지 두 달만에, 그것도 발라더가 아닌 안무가 있는 아이돌 팀을 컴백시켰다는 것 자체가 2집의 인기를 바탕으로 날로 먹어 보겠다는 생각과 다를 바가 없다. 날로 먹기는 커녕 쪽박을 찼지 하지만 젝스키스는 1달 공백기에도 성공했잖아?

게다가 요즘처럼 디지털 싱글이나 미니앨범이 나오던 시절도 아니다. 하물며 항상 국내+해외 포함해서 수천 곡의 음원을 받아 저장 대기 중이며, 몇 개의 댄스 팀이 상주해서 전문 댄서들이 안무를 찍어내는 시스템을 갖춰 놓은 현재의 SM과 같은 거대 엔터 회사에서도 자기 회사 아이돌을 두 달만에 컴백시키는 미친 짓은 하지 않는다.[18][19]

그런데 이제 막 그룹을 히트시킨 구멍가게 수준의 기획사가 2달의 준비 기간 동안 완성도 있는 앨범을 제작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아니나 다를까? '밝은 세상"(발근세상/發斤世上)'의 콘셉트과 스타일은 전작에 비해 발전은커녕 오히려 곡의 퀄리티만 훨씬 떨어졌으며, 2집 후속작이었던 '반성' 역시 좋은 반응을 얻지 못했다. 설마 그랬을까 하는 위키러라면 한 번 직접 들어보라.[20]

밝고 귀엽고 통통 튀는 깜찍 콘셉트는 그 퀄리티와 스타일이 조금만 떨어지거나 촌스럽다, 유치하다, 애 같다, 못 들어주겠다로 되돌아오게 되기 십상이다. 더구나 2집의 '뿌요뿌요'와 '바다'는 살짝 유치해 보일 수 있는 콘셉트에도 불구하고 귀에 착착 감기는 멜로디에 뚜렷한 기승전결 어디 한 군데도 비는 구석이 없는 노래였지만, '밝은 세상'은 그냥 뻔한 건전가요. 그래도 '밝은 세상'은 이전 앨범 히트의 후광을 받으면서 가요톱텐 기준으로 최고 9위까지 오르면서 선전했다.

가요계 역사 전부를 통틀어도 스타를 이제 막 만들어 놓고 이렇게 급조한 티가 역력한 앨범으로 활동 시키는 경우는 별로 없을 것이다. 게다가 이미 여름 내내 온갖 음방에 돌아다니면서 이미지 소모는 다 한 상태. 이런 상황에서 2연타를 치려면 전성기적 H.O.T소녀시대, 빅뱅 정도는 돼야 그나마 가능했을 거다. 팬덤의 행동지령 : 지갑 오픈+공구 폭발+대중을 향한 피의 실드 + 소속사 갈아마시기를 동원해야한다

더욱이 결정적으로 그 기간에 겉보기에만 화려하고 내실 없는 연예인 생활에 회의를 느낀 김용일이 탈퇴하여 웨이크보드 선수로 전향하고 이켠이 가세했다.[21] 2000년대 이전 많은 음반 제작사들의 소속 연예인에 대한 횡포는 이루 말할 수 없었을 정도였는데, 이러한 문제가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던 걸로 보인다.

요즘이라고 기획사에 문제 없겠냐마는 저 때는 훨씬 더 열악할 때다. 당시 기획사는 가수의 재능을 키워주기는 커녕, 조금이라도 인기가 있는 어린 가수들을 각종 행사, 지방 공연에 뺑뺑이 돌리면서도 그나마 최소한의 수익 분배도 안해주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까지 최고의 스타였고, 지금까지도 최대 기획사 중 하나인 SM의 H.O.T조차 해체 무렵엔 수익 분배에 관해 많은 갈등이 있었음이 드러났다. 그나마 SM 포함 몇몇 회사는 소속 아티스트의 역량을 키우거나 기획력을 제고하고, 새로운 신인을 키우고, 음반을 제작하는 데에는 회사가 휘청일 정도의 아낌 없는 투자라도 했다. 다른 기획사들은 그나마도 저조한 경우도 많았다. 불공평한 수익분배나 무리한 스케줄 같은 병크야 요즘 기획사 시스템 하에서도 심심치 않게 터지긴 하지만, 그래도 현 소속사들에는 표준계약서가 존재하고, 음반과 음원과는 달리 행사나 공연 수입 같은 경우는 실연자 몫을 대부분 보장하며, 그렇지 않으면 아이돌들이 소송을 거는 경우도 많다. 예전엔 그런 거 없었다. 많은 기획사들이 애초에 몇 대 몇이라는 분배의 개념조차 없었다. 그냥 삼촌이 조카한테 용돈 주듯 주는 대로 받는 거다. UP의 경우에도 이는 별반 다르지 않았던 걸로 보인다. 그의 인터뷰를 보면 그가 회의를 느낀 것은 노래를 부르는 가수로서의 정체성보다는 겉보기만 화려하고 내실 없는 연예인으로서의 정체성에 가까워 보인다.

사실 UP의 소속사였던 조선음향[22]의 대표 가수들이 UP, Y2K, 써클, 리아, 최창민, 이덕진 정도인데 아무도 롱런한 연예인이 없다. UP의 김용일, Y2K의 고재근, 리아의 이 대표보컬 3명은 당시 보컬리스트로서 좋은 재능을 타고난 어린 가수들이었다. 이런 가수들이 재능을 꽃피우기는 커녕 모조리 히트곡 한두 개를 성공시키고 나서는 눈에 띄게 하락세였다는 사실은 소속사에 기획력이 여실히 부족했다는 증명이다. 아니 기획력이나 인재 육성을 떠나 돈벌이에 급급하는 것조차도 중장기적으로 바라보지 못하고, 그저 인기 좀 얻으면 최단시간에 최대한 빼먹자 하는 마인드로 밖에는 안 보인다.

결국 UP 역시 이 회사 하에서 20대 여성 1명과 16세의 남 2, 여 1이라는 다소 어정쩡한 구성(...)에 노래의 뼈대를 만들어줄 보컬은 하나 없고, 귀엽고 특이한 외모나 스타일로서의 개성 밖엔 남지 않은 그룹이 되었다. 더구나 이러한 개성은 2집 활동 때 써먹을 만큼 써먹었는데, 노래로 더 이상 아무것도 보여줄 게 없고 딱히 원 히트 원더로 엄청난 팬덤을 보유하게 된 것도 아닌 UP의 활동이 성공적일 수 있다면 기적이었겠지만 말이다.[23] 한 철 끝나고 졸업 제도

다만 김용일의 빈 자리에 이켠이 들어옴으로써 그룹 이미지가 더 젊어지고 이켠을 보고 새로 유입되는 팬이 있을 정도로 유피의 생명력에 도움이 되었다.

3.4. 4집

1998년에 4집을 발표하고[24] 타이틀곡 '그때 그 시절' 로 활동을 재개했지만 이것이 그들의 마지막 공식 앨범이 되었으며, 1999년에 베스트 앨범을 발표하고 그 해 여름 팬미팅을 끝으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4집의 앨범 역시 완성도 넘치는 것도 아니었고, 타이틀 곡 그때 그 시절 역시 별 반응이 없었다. 이미 심하게 내리막을 타고 있는 UP를 반등시킬 만한 어떤 긍정적 조짐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던 터라 예상대로 4집도 별다른 상업적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다만 2집의 성공에 기대어 4집에 베스트까지 낼 수 있었던 것은 2집 때의 인기가 얼마나 컸는지를 보여준다.


'그때 그 시절' 활동 모습. 각자 들어보고 판단하자. 결과론적인 얘기지만, 남은 건 특이한 콘셉트 뿐이다.

4. 그 후 근황

해체 후 이켠을 제외한 다른 멤버들은 연예 활동을 하지 않았다. 김용일은 수상스포츠 웨이크보드 선수로 맹렬히 활동하며 후학 양성에 힘쓰는 중. 이해정은 EBS 딩동댕 유치원의 동이 언니로 2000년대 초반까지 활동했다고 한다. 이정희의 근황이 밝혀졌는지 네이버 프로필에는 이정희의 신체 사항까지 적혀있다. # 박상후는 2014년 '리온'이라는 예명으로 가수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2017년에 수상한 가수에 '후아유'라는 가명으로 등장, 한풀이송으로 '뿌요뿌요'를 불렀다. 그룹이 아닌 솔로로서의 무대라는 게 특징이다.

장용진은 그 뒤 척과 동자라는 그룹을 만들었지만 두 그룹 모두 별다른 두각을 보여주지 못하고 묻혔으며, 김용일은 영턱스클럽 멤버인 지준구, 구피 멤버인 박성호와 같이 유닛 그룹 옵션을 만들어서 활동했지만 역시 묻혔다.

그 외에도 바이오캅 윙고 OST에 참여했다.

2015년 투유 프로젝트 - 슈가맨에 박상후가 방청객으로 참가해 오랜만에 UP에 대한 기억을 환기시켰다. 사실 UP도 섭외를 하려고 했으나 여자 멤버들이 섭외가 안 됐던 터라...

이후 2016년 5월 31일 33화에서 Y2K와 함께 재석팀 슈가맨으로 출연했고 김용일과 박상후와 개인사정상 출연 못한 이해정과 이정희를 대신하여 출연한 오마이걸승희미미와 함께 슈가송인 ''뿌요뿌요''바다'를 불렀다.

멤바들의 근황으로 이정희는 현재 미국에서 셰프로 일하고 있으며, 이해정은 애견의류 업체에서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고, 김용일은 양양에서 서핑샵을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초기 멤버였던 강현은 그 동안 근황이 알려지지 않았다가 2019년 초 유튜브에 있는 가요톱텐 1024 영상에 댓글을 달며 인증했다.'1024'


[1] 리즈 시절의 멤버로 상후, 이정희, 이해정, 김용일.(윗줄 왼쪽부터 시계방향)[2] 본명은 '임영규'며 1집 활동만 참여했다.[3] 3집 활동중 탈퇴.[4] 3집 활둥중 영입.[5] 코요태은 아이돌로 시작했으나 조금 경우가 다르므로 논외.[6] 본명 양상모. 1982년생으로 예명의 뜻은 '이 세상을 밝게 켠다'라는 뜻으로 멤버들이 지어준 것. 대부분은 연기자의 이미지로만 알고 있는 사람이 많아도 UP의 멤버였다는 사실은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영입되던 시기가 '뿌요뿌요' 이후로 그룹 자체가 끝물을 타고 있었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수로서는 거의 알려진 것이 전무하며 2005년에 연기자로 전향하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리게 된다.[7] 이 노래의 작곡가 장용진의 생일이 10월 24일이라서 '1024'라는 곡명으로 탄생했으며, 헤어진 연인을 자신의 생일(10월 24일)에 잊는다는 내용의 노래다. 뮤직비디오는 MBC 토토즐에서 만들어서 방영했지만 완전한 버전은 끝내 공개되지 않았다. 그 뒤 코요태가 이 곡을 2015년 12월에 리메이크했다.[8] 펌핏업을 해봤던 사람이라면 O.B.G에 수록되어 있어서 알 것이다.[9] 당시 국내 출간된 디스크 스테이션에도 UP에 대한 내용이 짤막하게 실렸다. 당연히 '뿌요뿌요'를 불렀던 이유로...[10] '아프리카'는 1995년 (블랙신드롬의 그 분과는 동명이인인) 박영철이라는 솔로가수가 처음 불렀고 유피의 곡은 원곡과 편곡이 거의 같게 발표되었다. 길이가 꼭 중요한 건 아니지만, 2집 자체도 30분이 조금 넘는 러닝타임과 이미 그나마도 재탕이 포함됐던 걸로 보면 유일한 히트작이었던 2집 앨범도 완성도가 넘치는 앨범은 아니었다.[11] 전 앨범 재탕은 4집에서 또 했다.[12] 화질이 안좋아서 정확히 확인은 안되지만 인이어를 끼지 않은 듯하다.[13] 하지만 '강적'에서 제법 빠른 랩을 구사한다.[14] 들어보면 알겠지만 잘하진 못해도 못 들어줄 정도는 아닌 데다가, 지금 보면 살짝 과해보일 수도 있는 저 애교나, 콧소리 가득한 스타일이 UP나 이해정 본인의 성공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음을 결코 부정할 수 없다. 이해정이 보컬로서 기본기가 부족함이 느껴지는 것은 오히려 훨씬 부르기 무난한 곡인 후속곡인 '바다'에서 더 적나라하게 드러난다.[15] 하지만 1997년은 댄스 가수가 라이브를 막 시작하던 시기이다. 당연히 댄스+라이브를 위한 발성법 훈련 따위는 아예 없었고, 이해정의 파트는 고음+가성으로 라이브하기에 까다롭다. 게다가 김용일은 원래부터 운동으로 다져진 몸이기 때문에 20대 초반 여성인 이해정과 단순히 비교하는 것은 적절하지 못하다. 사실 댄스와 라이브를 동시에 소화하지 못한다는 것을 이유로 보컬로서의 기본기가 부족하다고 하는 것은 부당한 평가다.[16] '뿌요뿌요'에서 보여준 독특한 가성 뽀오~ 기 모태 은 같은 앨범 수록곡 '나만의 너'에서 실컷 들을 수 있다.[17] 사실 '뿌요뿌요'라는 곡이 그렇게 만만한 곡은 아니다. 특히 김용일 파트.[18] 이런 수준의 SM이나 YG에서 1년동안 준비해도 팬덤에겐 몰라도 대중들에게는 항상 "이게 노래냐?" 하면서 까이기 십상인 걸 기억하자. 언제나 그렇듯 팬덤을 넘어 대중을 만족시키는 앨범을 제작한다는 것은 정말 쉬운 일이 아니다.[19] 보통 가수들은 한 앨범에서 2~3곡의 무대 활동을 한 다음 6개월~1년 간 후속 앨범 준비를 하며, 이나 젝스키스 같은 예외의 경우도 있고 그 동안 0.5집 형식의 스페셜 앨범을 내는 경우가 있다.[20] 유피의 히트곡은 전부 장용진의 곡이니 작곡가 장용진의 커리어로 놓고 판단해보자. 장용진의 곡은 대략 4가지 스타일로 나뉘는데 '밝은 세상'은 뿌요뿌요, 캔디, 행복과 같은 스타일이고 '반성'의 초반부는 메모리즈, 후반부는 1024, 짱과 같은 스타일이다. 열거한 곡들과 비교하면서 들으면 레코딩 상태나 곡의 짜임새가 완전 다른 수준인 것을 알 수가 있을 것이다. 밝은 세상과 반성과 동시기에 발표된 곡으로 태사자의 '도'와 척의 '별땅'이 있는데 이 두곡과 비교해도 답이 나온다.[21] 다만 바로 전향한 것은 아니고, 옵션이라는 프로젝트 그룹(구피의 박성호, 영턱스클럽의 지준구와 함께 했다) 활동을 잠깐 했으나, 결과적으로는 그가 탈퇴한 UP와 옵션 모두 별로 성공적이지 못했다.[22] 신주학 스타제국 대표도 여기서 일했다고 한다.[23] 다만 이켠이 2월생이라 박상후나 이정희보다는 한 학년 위였다. 문제는 연령도 연령이지만, 유일하게 제대로 된 보컬이었던 멤버인 김용일이 빠졌다는 것. 문제는 UP에서 김용일이 차지하는 비중보다 더한 비중을 차지한 멤버였다는 게 여지껏 서태지와 아이들서태지 하나뿐이라는 것이다.[24] 4집의 패션 콘셉트는 어째서인지 중국이라 멤버들이 치파오 계열 복식을 착용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