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세자와 뒤주대왕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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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667fa5,#667fa5><colcolor=#e6ad42,#e6ad42> 장르 | 대체역사, 빙의, 전쟁 |
작가 | 라세이어 |
출판사 | KW북스 |
연재처 | |
연재 기간 | 본편: 2022. 04. 01. ~ 2023. 08. 28. 외전: 2023. 09. 01. ~ 2023. 09. 13. |
단행본 권수 | 전자책: 13권 (2023. 12. 04. 完) |
이용 등급 | 전체 이용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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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국의 대체역사 웹소설. 작가는 라세이어. 약칭은 감자뒤주.2. 줄거리
'어디라도, 어떻게라도 좋다. 제발 아바마마에게서 벗어날 수 있기를.'
'어디라도, 어떻게라도 좋다. 제발 아버지에게서 벗어나게 해다오.'
도저히 이 아버지 밑에서는 살 수가 없다!
영조와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 아래에서 벗어나길 간절히 바라는 두 왕자, 이선과 프리드리히 폰 호엔촐레른.
훗날 사도세자와 감자대왕이라 불릴 이 두 사람은.
""여기는 또 어디고, 너희는 누구지?""
격동의 18세기, 서로의 몸에 빙의한 두 왕자.
그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새롭게 역사를 써나간다.
― 네이버 시리즈 작품 소개
'어디라도, 어떻게라도 좋다. 제발 아버지에게서 벗어나게 해다오.'
도저히 이 아버지 밑에서는 살 수가 없다!
영조와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 아래에서 벗어나길 간절히 바라는 두 왕자, 이선과 프리드리히 폰 호엔촐레른.
훗날 사도세자와 감자대왕이라 불릴 이 두 사람은.
""여기는 또 어디고, 너희는 누구지?""
격동의 18세기, 서로의 몸에 빙의한 두 왕자.
그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새롭게 역사를 써나간다.
― 네이버 시리즈 작품 소개
3. 연재 현황
문피아에서 2022년 4월 1일부터 연재를 시작했다.2023년 8월 28일에 본편이 총 260화로 완결되었다.
2023년 9월 1일부터 외전 연재를 시작했다.
2023년 9월 13일에 외전이 총 7화로 완결되었다.
4. 특징
주인공이 2명인 대체역사물로, 현대인이 아니라 시대의 차이는 있지만 과거의 인물 2명이 서로에게 빙의해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으로 역사를 바꿔나간다.5. 등장인물
5.1. 유럽
- 이선
아버지 영조에게서 벗어날 수 있기를 빌자 프리드리히와 영혼이 바뀌게 된다. 온갖 꼬투리를 잡아 괴롭히는 영조보다는 단순한 빌헬름 1세가 낫다고 긍정적으로 여기며 무골 기질을 뽐낸 덕에 빌헬름 1세의 환심을 사게 되었고[1] 폴란드 왕위계승전쟁에 참전해 군공도 세우게 된다. 이것이 인연이 되어 마리아 테레지아와 결혼해 동군연합을 이루고 황제로 즉위했고, 계승을 인정하지 못하겠다는 적들을 물리친 뒤 군사체계를 개혁하고, 아시아와의 교류에도 적극적으로 나섰는데, 조선 국왕이 된 프리드리히를 초청해서 세례를 받게 하고[2] 베이징에 공사관 설치를 비롯해 아시아와 무역로를 개통했다.
50세가 되어가는 몸으로 전장에 참전해 오스만을 상대로 공세를 펼쳐 발칸반도를 확보하고, 콘스탄티노플을 차지하여 살아생전에 성자로 대접받게 되었으며 프랑스, 영국, 스페인을 굴복시키고 아시아로 여행을 떠나 관계를 다지고 귀국한 뒤 청나라의 멸망 이후 양위하고 야인으로 여생을 보냈고 장례식에는 100만에 달하는 인파가 몰렸다고 한다.
-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
처음부터 이선을 두들겨 패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하지만 영조보다 단순한 성격이라 이선이 빠르게 미사여구를 섞어가며 사과문을 써서 올리고 마상쌍검과 마상궁술을 시전하는 무골 기질을 뽐내자 태도가 싹 바뀌어 이선을 극찬하며 자신이 아끼던 거인연대도 붙여주는 등 신임을 보낸다. 임종 직전에 이선이 자기 아들이 아니라는 걸 눈치채고 정체가 뭐냐고 물어보는데[3][4], 이선이 자신의 과거와 아시아의 역사에 대해 털어놓자 이를 듣고 활달하고 밖으로 나가야 직성이 풀리는 자신과 동류였는데 공부만 하는 샌님 밑에서 태어났으니 당연히 서로 안 맞았을 거라는 반응을 보였다. 그리고 이선에게 마지막 충고를 한 뒤 원 역사와 같은 날짜에 사망한다.
- 하노버의 조피 도로테아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의 왕비. 아들이 근육질로 변한 모습을 보고[5] 괴물이라며 기겁하는 모습을 보인다.
- 마리아 테레지아
프리드리히의 몸에 빙의한 이선의 아내이자 합스부르크 제국의 주인. 본래라면 프리드리히와 적대 관계가 되었겠지만 프리드리히에게 빙의한 이선과 처음 만난 자리에서 한눈에 반해 결혼해 합스부르크-호엔촐레른 동군연합을 이룬다. 슐레지엔을 되찾기 위해 수십 년간 고생했던 원 역사와는 달리 끊임없이 승승장구하며 편안하게 국가를 경영하고 있다. 행정 및 내치 관련으로 쌓은 업적이 상당한 덕분에 국모로 칭송받는다고. 그리고 민족주의의 발흥을 예측하고는 민족 통합 정책에 매진한다.
- 표트르 3세
원 역사에서도 프리드리히의 열성적인 팬이었는데, 여기서는 사냥 중 위험에 처할 뻔한 걸 이선이 구해주면서 원 역사 이상의 빠돌이가 된다. 콘스탄티노플을 확보한 뒤 신성 로마 제국 측에 양보하는데 이에 원 역사에 비하면 트롤링이 작아졌다.
- 루이 15세
주로 무력한 모습을 보인다.
5.2. 조선
- 프리드리히 2세
아버지 빌헬름 1세에게서 벗어날 수 있기를 빌자 이선과 영혼이 바뀌게 된다.[6] 영조를 보고 빌헬름 1세보다 막장이라는 반응을 보이며 결국 홍봉한과 함께 유럽식 화승총을 만들어 영조를 암살하고[7] 국왕으로 즉위한다. 이후 프로이센 식으로 조선을 갈아엎는 과정에서 반발하는 수구세력의 반란을 쓸어버리고 강력한 왕권을 확보하고 신성 로마 제국 사절단과 수교를 맺고[8] 유럽을 순방하며 제사 의식의 정당성을 인정받고, 대외무역을 제재하려고 내정간섭을 해온 건륭제를 상대로 전쟁을 선포해 만주를 획득하고 오스트레일리아를 구입하고 패전국의 인재를 영입한 뒤 합스부르크의 국혼 제안을 수락하고 이 과정에 쳐들어 온 청나라를 무너뜨리고 산해관을 차지했으나 그동안 심하게 무리를 해서 친위대의 재건을 맡기는 것에서 시작해 40대부터 후계자에게 권력을 물려주기 시작했고 1795년의 칭제건원 이후 프랑스 혁명 전쟁에서 합스부르크를 지원한 것을 마지막으로 공식적으로 은퇴를 선언했다. 이후 이선이 죽자 직접 유럽까지 찾아와 장례식에 참석해 조문을 낭독했다고 한다.
- 영조
처음부터 프리드리히를 무지막지하게 갈구는 모습으로 등장한다.[9][10] 여기에 프리드리히는 죽이지 않고서는 자신이 살 수 없다고 판단했고 작중 초반에 사살당하고야 만다.[11] 시호는 익문선무희경현효대왕(翼文宣武熙敬顯孝大王)이며, 묘호는 영종(英宗).[12] 생전의 유언이 있었다는 프리드리히의 지시에 의해 장례식은 선왕들에 비해 간소히 치러졌고, 삼년상은 이일역월제를 적용, 12일간 상복을 입는 것으로 마무리되었고 장례식의 제사상에는 간장게장과 갓 수확된 생감이 매년 올랐다고 한다.[13] 218화에서 무덤이 드러났는데 벽돌이 혼용되고 장식은 최소한에 난간석도 마감이 대충이고, 정자각은 구조가 엉성하여 빗물이 샌다고 나온다.[14] 이선은 여기서 자신은 황제가 되었다며 당신은 후계자의 자질을 못 알아본 멍청이라고 역사에 남을 것이며 자식을 하인보다 못하게 대하는 게 고심을 거듭해 통치하는 태도냐며 지옥에 처박혀 만백성과 신하들이 무능력자로 평가하는 비참한 기분이 어떻냐고 말하려 할 만큼 격노하는 걸 프리드리히가 입을 틀어막으며 우리는 우리의 삶을 살자며 뜯어말리는 모습이 나온다. 이에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는 자식이 펜대 굴리며 편하게 지낼 수 있으면 된다고 털어놓은 것에서 부족한 화해라도 했는데 여기서 가장 안 좋은 꼴을 당했다는 반응도 나왔다.
- 혜경궁 홍씨
이선의 몸에 빙의한 프리드리히의 아내. 프리드리히가 워낙 여성과의 관계에 관심이 없는 탓에 작중에는 초반을 제외하면 거의 등장하지 않지만, 아예 관계를 맺지 않을 수는 없어 프리드리히와의 정사를 통해 공주를 출산한다.
- 정조
이선의 몸에 빙의한 프리드리히가 만나자마자 최고의 후계자감이라고 평가할 정도의 수재. 자세히 묘사되지는 않았으나, 작중의 표현으로 보건대 물리학, 화학, 천문학 등 온갖 서양 학문을 섭렵하고 군사학을 익히는 등 원래 역사 이상의 팔방미인이 되어가고 있다. 이후 유럽에 유학도 다녀오고 합스부르크의 황녀와 결혼하게 되는데, 이에 대해 노국대장공주나 제국대장공주(충렬왕의 제1비)의 재림을 우려하거나[15] 어찌 외국인을 궁중에 들이려는 것이냐며 반발하는 이들이 있었지만, 수구세력이 쓸려나간 상태라 별 의미는 없었다.
- 홍봉한
혜경궁 홍씨의 아버지이자 이선의 장인. 영조 암살 계획에 협력한다.
- 이익
규장각의 인재들을 가르치기 위해 섭외한다.
- 박문수
평안도 관찰사로 임명되어 개혁을 밀어붙인다.
- 채제공
홍봉한과 함께 근왕파로서 보수파를 맡게 된다.
5.3. 청나라
- 건륭제
신성 로마 제국 측에서 황제를 칭하는 것에 한나라와 맞먹은 로마의 후계면 황제를 칭할 만하다고 하며, 사절단에게 삼궤구고두례를 요구하나 미리 이선이 이야기해 놓은 대로 초상화를 뒤에 세우고 절하는 것으로 합의본다. 제1차 조청전쟁에서 프리드리히에게 패배하고 포로 신세가 되는 굴욕을 겪었다. 이후 복수를 위해 제2차 조청전쟁을 일으키나 끝내 실패하고 사망한다.
6. 개변된 역사
6.1. 유럽
- 합스부르크-호엔촐레른 동군연합
원 역사에서 프리드리히 대왕과 적대 관계였던 마리아 테레지아가 프리드리히에게 빙의한 이선과 처음 만난 자리에서 한눈에 반해 결혼해 합스부르크-호엔촐레른 동군연합을 이룬다. 원 역사보다 수백 년 빨리 안슐루스가 이뤄진 셈.
- 사관학교 창설
사관학교를 졸업해야 장교가 될 수 있게 했다.
- 로마 제국 선포
- 그레이트 게임
대전쟁의 승자가 된 로마가 대한과 함께 전 세계를 양분하였다.
6.2. 조선
- 흑룡영 설치
영조가 저격된 것을 명분으로 프리드리히가 호위별장과 호위대장을 처형하고 호위청 소속의 군관들을 삭탈관직 및 관직에 재진출을 금지하고 금군을 제외하고 궁궐의 경비와 경호를 맡는 조직이 무예청, 선전관청, 내시부에 금위영 등 업무가 겹치는 게 번잡하다고 금군과 각 군영들을 경호 임무에서 제외하고 흑룡영이라는 친위대를 새로 창설하였다.[16] 블랙드래곤 문양을[17] 사용하며 전열보병식으로 훈련시켰다. 공개적인 자리에서 열린 5군영과의 모의전에서 승리하는 모습을 보여줄 정도의 전투력이 있으며 궁궐 경비 및 경호 외에 수도 내의 질서 유지도 맡는다.
이후 흑룡영의 업무가 너무 비대하다며 주작영과 현무영이 새로 창설되어 각기 도성의 방비와 제물포 및 흑룡공장의 경비를 맡았다.
후반에 제2차 조청전쟁에서 청나라의 공격으로부터 한양을 지키기 위해 싸우다 대부분이 전사했는데[18] 이후 정조가 재건을 맡게 되었다.
- 금난전권의 폐지
실제 역사에서 금난전권이 폐지된 건 정조 때이나 시기가 앞당겨졌다. 시전 상인들이 피해자들에게 복수당하고[19] 간혹 행인에게 불똥이 튀긴 했으나 이들에게 가장 엄중한 처벌이 훈계였고[20] 이로 인해 반홍파의 자금줄에 큰 손실이 갔다.[21]
- 규장각 설치
규장각에서 서구식 문물을 교육하면서 관직 진출과 학문 연구로 진로를 구분해놨다.
- 조선 내전
금난전권의 폐지로 손실을 입은 반홍파가 축성된 지 얼마 되지 않은 평양성 철거, 흑룡공장 폐쇄, 현재 운영되는 상단들을 모조리 없애고 상인들을 잡아가두는 것, 광산 허가제 폐지, 금난전권 재개, 시전상인들의 유족에게 배상금을 베풀 것 등의 상소를 올리자 프리드리히가 헛소리도 이 정도면 중증의 병이라며[22] 전면부정하고 상소에 이름을 올린 자들을 전원 추방한다.
이후 이들이 모여서 반란을 시도하였으나 결국 패배하였고[23] 역도들의 직계가족은 사형, 여자와 다섯 살 이하는 예외로 공노비가 되었으며 삼족을 멸하는 건 현실적으로 무리라 친척들은 재산 몰수와 양민으로 강등, 5대간 과거 응시 금지라는 처분을 받았으며 주모자가 아닌 단순 가담자는 훈계방면, 소작농이나 끌려온 지역민들은 본업으로 귀환, 노비들은 우선 조정에서 거두어 공노비가 되고, 일가족의 신원을 확보하고 나면 양민 해방 처분을 받았다.[24]
이로 인해 변혁을 거부하는 수구 세력은 사라졌고 급진적인 개혁을 억제하는 세력인 보수파와 규장각 출신의 신흥 세력인 진보파가 존재하는 판도를 만들었다.
- 검정고시
훈장들의 수준이 천차만별이라 이를 개선하기 위해 시험에서 합격한 이만 서당을 열 수 있도록 개편했다. 이에 반대 시위가 벌어졌으나 이들을 끌고 와서 시험 보게 했다.
- 과거시험 개편
무과는 폐지되고 사관학교식으로 대체되었다.
- 신사독립선언
- 제1차 조청전쟁
- 제2차 조청전쟁
- 그레이트 게임
대전쟁의 승자가 된 대한이 로마와 함께 전 세계를 양분하였다.
6.3. 청나라
본작에서 가장 큰 피해자라 볼 수 있는데 조선을 위해 악마가 되겠다는 결심을 한 이선이 아편을 퍼트렸으며[25] 제1차 조청전쟁에서 만주를 빼앗기는 굴욕을 당하고, 조선의 사주를 받은 유럽의 해적들에게 지방관마저 노예로 끌려가는 일이 생길 만큼 해안가가 초토화될 정도로 약탈당하는데[26] 외전 수목백과 편에서 18세기 중반부터 19세기 중반까지 100년 가까이 대해적 시대가 열어젖혔다고 표현될 정도이며, 기껏 와신상담 끝에 제2차 조청전쟁을 일으켰으나 결국 조선에게 패배해 멸망, 분열된 뒤 통일이 되지 못하게 대한제국이 공작을 벌였고[27], 21세기에도 제대로 된 중앙정부를 세우지 못한 채 공산품을 생산할 능력도 없어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고 한다.7.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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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점 9.72 / 10 | 조회 수 23만 2024-11-01 기준 |
1부 내내 유럽 파트와 조선 파트를 왔다갔다 하는 식으로 진행되다 보니 집중이 안 된다는 평가가 많다. 그러나 특유의 필체가 묘한 중독성이 있어서 마이너한 소재를 비롯한 여러 핸디캡이 있음에도 연독률은 높은 편이다. 그나마 2부부터는 1부의 연재 방식을 버리면서 좀 더 읽기 쉬워졌다.
그 외 작중 대사로 혜경궁 홍씨가 언급되는데 혜경궁은 사도세자 사후에 얻은 호칭이라 서술이 아닌 등장인물의 대사로 나오는 것은 고증 오류다.
8. 기타
- 작가의 휴재가 잦은 편이다. 통상적인 웹소설과는 달리 주 4회 연재인 것도 그렇고, 해외 유학생인지라 여러 가지로 바빠 작업할 시간이 모자라다고. 게다가 작가가 교통사고를 당하거나 뇌진탕에 걸리는 등 부상이 워낙 잦아서 독자들의 걱정을 사고 있다. 그래도 무사히 완결을 내는데 성공했다.
- 실제로 사도세자를 신격화해서 부르는 명칭이 뒤주대왕신이다. #
- 해병문학적인 표현들이 나온다. 초반에 사도세자가 라이라이 차차차를 외치거나 후반에 청나라의 해안가가 해적에게 약탈당하는 모습을 앙증맞은 찐빠라고 표현하는 대목이 있다.
[1] 이에 주변인들은 믿기지 않는다는 반응을 보였다.[2] 이때 프리드리히는 마리아 테레지아와 사이가 안 좋은 모습을 보였다.[3] 처음에는 바뀐 모습을 좋아했으나 점차 아시아의 문화에 조예가 깊어지거나 기마전의 명수가 된 것, 어미와 형제들을 상대로 거리를 두기 시작한 것, 자신에게 호의적으로 나선 것 등을 이상하게 느꼈다고 하며 진짜 프리드리히라면 자신이 죽었다는 소식에 현수막을 걸어놓고 무도회를 즐겼을 것이라고 했다.[4] 실제로 장녀 빌헬미나는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가 죽고 나서 국상 기간이 끝나자 이를 기념하는 연회를 열었다.[5] 본래 162cm 정도이던 키는 170cm 가까이 성장했고 체중은 126kg에 달하는데, 얼굴선은 거칠고 굵게 변했으며 가발은 내다 던진 채 덥수룩한 장발에 팔뚝은 도로테아의 몸뚱이와 비슷한 굵기였고 여기에 수염만 길러주면 전설 속 바이킹 전사가 나타났다고 해도 믿을 인상이라며 비유하자면 병약미 넘치던 미소년이 코난 더 바바리안이나 올돌골이 되어 온 격이라고 한다.[6] 이때 곤룡포를 보고 어째서 악한 상징인 용을 쓴 거냐는 반응을 보였다. 동양의 용과 서양의 드래곤의 인식에 대한 차이를 보여주는 장면.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에서 이집트에서 온 출연진들이 경복궁의 용 문양을 봤을 때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7] 시대와 출생지를 감안할 때 당시 프로이센군의 주력화기였던 포츠담 소총이 되었어야 하나, 작가의 의도인지 스코프를 장착 개조를 한 브라운 베스로 묘사된다.[8] 이때 자신과 영혼이 바뀐 이선을 만나 친구가 되었고 사제왕이라는 별명이 생겼다.[9] 프리드리히는 저건 자식을 보는 눈이 아니며 자신의 아버지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보다도 자식을 더 증오하고 있다고 독백한다. 아예 부모의 원수가 더 친근하게 느껴질 지경이라고 했다.[10] 팬아트에서도 갈구는 모습으로 등장한다.[11] 이때 유언으로 세손에게 왕위를 넘겨달라고 하는데 프리드리히는 자신이 세자인데 유언을 관료들이 들어도 정통성과 서열 문제로 예송논쟁이나 왕자의 난은 장난으로 보일 정도의 숙청과 내전이 벌어질 거라 독백한 뒤 프리드리히는 귓속말로 저격을 사주한 건 누구라고 생각하냐며 제사상은 챙겨주겠다고 하는 등의 티배깅을 했다(주변 인물들은 프리드리히가 내보낸 상태였다).[12] 실제 역사에서도 영종이었다가 영조로 추존되었지만 여기서는 추존되지 못해 영종으로 남았다.[13] 간장게장과 생감은 한의학적으로 같이 먹으면 안 되는 음식이며, 영조의 형 경종은 영조가 올린 간장게장과 감을 맛있게 먹었으나 그 부작용으로 심히 앓게 되었고, 건강이 좋지 않던 경종의 몸 상태가 겹쳐 사망하였는데 영조는 평생을 이것 때문에 "형을 독살하고 왕위에 오른 놈"이라고 까였고 영조 본인이 내가 죽인 게 아니라며 해명하는 내용의 책을 쓸 정도로 심했다.[14] 프리드리히가 의도한 바라고 한다.[15] 제국대장공주라면 몰라도 노국대장공주는 공민왕의 개혁을 지지했으니 부정적 예시로 적절하지 않다.[16] 직업군인으로 활동하던 이들이 이곳으로 편입되어 파직당한 3000명 중 2000명이 이곳에 배정받았다.[17] 박쥐날개가 달린 도마뱀이라는 서양식 드래곤의 형상이다.[18] 이 과정에서 홍경래의 부친도 전사했다.[19] 복수하러 온 피해자 가운데 아들이 맞아죽고 집이 박살 났다고 한 이도 있었으며 해당 복수자는 어느 양반에게 군자의 복수는 10년이 걸려도 늦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다는 것을 언급하는데 고려시대 복수법을 연상케 한다는 서술도 나왔다.[20] 정도를 넘었으면 흑룡영이 나서서 막았을 것이라고 한다.[21] 해설에서 정치는 자신의 파벌구성원을 챙겨주기 위한 비용 때문에 정경유착이 필연적이며 청백리는 집안에 재산이 많거나 비 새는 집에 살아도 괜찮다는 별종으로 나온다.[22] 옛날부터 이어져 온 것이라 지킬 가치가 있다고 하자 프리드리히는 공자와 맹자의 시기에는 철기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다며 어찌 그 당시의 생활양식을 유지하면서 사는 게 아니냐며 더 이상 들어줄 가치도 없다고 했다.[23] 열세에 몰리자 제물포에서 배를 타고 북경으로 가 간신들이 나라를 망치려 함을 알리고 천병을 빌려오자는 말을 하기도 했으나 8파운더 야포에 배가 부서진다.[24] 이때 반홍파들은 프리드리히에게 간신들에게 속고 있다고 외치지만 자신이 누구에게 조종당할 만큼 바보로 보였냐며 그렇게 보이도록 유도하고 있을 거라는 생각은 못하냐고 한다.[25] 외전에서 임칙서가 마약을 퍼트린 이가 어찌 성자로 칭송받을 수 있냐고 한 걸 보면 어떻게든 이 사실이 알려지긴 한 모양.[26] 그 와중에 조선의 해적들은 일부러 만주족의 저택을 건드리지 말라고 사주했다. 덕분에 한족들은 자길 약탈한 해적들보다 만주족에게 더 증오심을 품게 되었다.[27] 모택동이 프리드리히를 중화에 있어선 극악인이라고 하는 대목이 있는 등 두 주인공 모두 중화권에서는 증오의 대상이라고 한다.